대학가요제 대상 | ||||
높은음자리 바다에 누워 (1985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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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FFFA1,#5D5E00> 유열 지금 그대로의 모습으로 (1986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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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하나 난 아직도 널 (1987년) |
<colbgcolor=#957b62><colcolor=#fff> 유열[1] 柳烈 | Ryu Yeo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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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61년 1월 12일[2] ([age(1961-01-12)]세) |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現 서울특별시 은평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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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본관 | 문화 류씨 |
학력 |
갈현초등학교 (졸업) 대성중학교 (졸업) 대성고등학교 (졸업 / 4회)[3] 한국외국어대학교 (무역학 / 학사) 칼빈대학교 신학대학원 (신학 / 석사) |
데뷔 |
1986년
MBC 대학가요제 대상 「지금 그대로의 모습으로」 |
가족 | 무녀독남[4], 배우자 배서윤(1976년생)[5], 슬하 1남 |
종교 | 개신교( 침례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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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가수이자 뮤지컬 제작자이다. 개명 전 본명은 유종열.2. 생애
서울특별시 은평구[6]에서 무녀독남 외동아들로 태어났다. 유열이 태어났을 당시 아버지 나이가 40대였다고 한다. 빠른 61년생으로 1960년생들이랑 같이 학교를 다녔다. 대성고등학교와 한국외국어대학교 무역학과를 졸업했다. 1986년 대학가요제에서 '지금 그대로의 모습으로'로 대상을 수상하며 음악계에 데뷔했고, 1994년부터 2007년까지 KBS 2FM에서 '유열의 음악앨범' DJ로 활동했다.[7]1980년대 가요계에서 얼굴 길기로 유명한 세 사람 중 하나로 이문세, 이수만, 유열을 묶어 '마삼트리오(馬三Trio)'라고 불렸다. 이 셋은 모두 서울 출신이며[8], 당시 MBC 라디오 DJ를 맡고 있었다는 공통점도 있다. 당시 갓 3도어형 미국형 모델인 프로 엑센트와 5도어형 유럽형 모델인 유로 엑센트가 출시된 현대 엑센트의 광고에도 등장했다.
1990년대 초반까지는 TV 무대에서 활발하게 활약했으나, 1990년대 중반 이후로 가수보다 라디오 DJ와 뮤지컬 기획 위주로 활동하며 이후 세대에게 점차 인지도가 낮아져 갔다. 2013년 광복절 행사에서 윤하와 함께 애국가와 닫는 곡 '다시 한 번 대한민국'을 불렀다.
이경규의 몰래카메라의 첫 희생양으로 삼푸 테러를 당한 것으로 유명하다.
마삼 트리오 중에서 가장 늦게까지 결혼하지 않았으나, 2012년 6월 15일에 15세 연하인 부산 출신 여성과 결혼하여 슬하에 1남을 두었다.[9] 결혼하기까지 무려 10년 간 교제했다고 한다.
2019년 유열의 음악앨범이라는 영화를 개봉했고 본인 역시 특별출연하였다.
3. 주요 히트곡
- 지금 그대로의 모습으로(1986)
- 이별이래(1987)
- 잊을거야(1987)
- 가을비(1987)
- 화려한 날은 가고(1988)
- 에루화 (1989)
- 어느날 문득(1991)
4. 출연
5. 여담
- 결혼을 상당히 늦게 했다 보니 자연히 첫 아들을 얻은 나이도 상당히 늦었는데, 그의 나이 53세(만 52세)에 득남했다. 아내 역시 결혼 당시 37세로, 역시나 결혼이 늦은 만혼이었다.
- 1987년 당시 KAL기를 폭파한 주범을 비난하는 노래를 부른 바 있다.
- 한 음악방송에서 피아노 앞에 앉아 담배를 피운 적이 있다.
- 2016년 1월 18일 갑작스럽게 하차한 주병진의 후임으로 KBS 제2라디오의 아침 프로그램인 "매일 그대와"의 진행을 맡아 9년 만에 DJ로 복귀했으며 오랜만의 전국방송 활동이다.[11] 2017년 2월 5일에 하차했으며, 후임은 최수종이다.
6. 관련 문서
[1]
원래 본명은 유종열이었으나, 2009년 11월
예명인 유열로
개명했다고 한다.
#
송승헌과 비슷한 케이스. 원래는 류열이 맞다.
[2]
음력
1960년
11월 26일
[3]
최일구 앵커와 고교 동기로 1978년 3학년 1반 급우다.
[4]
유열이 태어났을 당시 어머니가 41세였다.
[5]
2012년 6월 15일에 결혼식을 올렸다.
[6]
출생 당시
서대문구
[7]
2019년에 개봉한 영화 "
유열의 음악앨범"이 바로 이 라디오 프로그램을 모티브로 한 것이다.
[8]
다만 이수만은
부산 출신이지만 서울에서 성장했다. 이는
6.25 전쟁 당시 부모님이 피난중이었던 시절이었기 때문.
[9]
[단독] 유열, 15일 소망교회서 결혼…드디어 노총각 탈출
[10]
당시
미용사였다.
[11]
왜 이런 이야기가 나왔는지는
KBS 2FM 참고.
[12]
투병영향 때문인지 급노화로 핼쑥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