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 노임수(盧琳壽) |
이명 | 노공수(盧共壽), 노인선(盧仁先) |
생몰 | 1876년 5월 24일 ~ 1909년 5월 21일 |
출생지 | 전라남도 곡성군 죽곡면 태평리 |
사망지 | 곡성형무소 |
추서 | 건국훈장 독립장 |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77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받았다.2. 생애
노임수는 1876년 5월 24일 전라남도 곡성군 죽곡면 태평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05년 을사조약이 강제로 체결되면서 대한제국의 국권이 일제에게 넘어가자 유원중(柳原中)· 조규하 등과 함께 의병 수백 명을 모집하여 석곡면(石谷面)과 삼산(三山)에서 적과 교전하여 적 7명을 사살했다. 또한 1907년에 김동신(金東臣) 의병장의 부대에 가담하여 순천과 구례 등지에서 일본군과 전투를 벌였다. 그러나 김동신이 오랜 전투 생활 중에 병을 얻어 의병 활동이 원활하지 않게 되자, 그는 1908년 4월 김동신 의병대에 소속되었던 의병 중 뜻이 맞는 28명과 합세해 새로운 의병대를 형성하고 의병장이 되었다.노임수는 곡성, 구례, 낙안 등지에서 일본군과 교전하고 일본인 수십 명을 사살했다. 4월 16일에는 신정우 의진의 20명과 합진하여 곡성군 죽곡면 상계리에서 육군 수비대 및 일본 경찰과 교전했지만 크게 패하여 의병이 분산되고 말았다. 이후 1908년 11월 24일 일본 헌병대에게 체포되었고 1909년 5월 21일 곡성형무소에서 교수형에 처해졌다.
대한민국 정부는 1977년 노임수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