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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嫪毐(? ~ 기원전 238년)
중국 전국시대 진(秦)나라의 인물.
환관으로 알려졌지만 후술하듯이 그는 거세를 한 적이 없다.
2. 생애
노애는 소위 화류계 스타였는데, 다른 사람보다 유난히 남성의 심볼이 크고 아름다웠기 때문에 주변 여자들이 그와 하룻밤을 보내는 것을 늘 소망하였고, 직업 없이 지내면서도 그런 여성들의 기둥서방 노릇을 하면서 늘 풍족하게 먹고 살았다. 주특기는 무거운 오동나무제 수레바퀴를 자신의 그것에 매달아서 그 상태로 자신의 '심볼'을 꼿꼿이 세워서 돌아다니는 것으로, 마음먹으면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반나절이고 간에 계속할 수 있었다고 한다. 다만 이는 후대 역사가의 과장이 아닌가 의심되는데, 실제로도 이랬다면 4시간 이후에는 심한 통증을 느꼈을 가능성이 있다. 아무튼 이렇게 크다보니 아예 노대(嫪大)라는 별명으로도 불렸다.당시 진왕 정의 어머니인 왕태후 조희는 여불위와 사통하고 있었는데, 여불위는 언제 들킬지 모르는 불안한 관계를 청산하기 위해 자신의 대타로 노애를 태후에게 소개시켰다. 물론 장성한 남자는 왕이 아니면 몸이 정상적일 경우 궁에 상주할 수 없었기 때문에 수염을 몽땅 뽑아 환관으로 위장한 후 입궁하였고, 점괘를 조작해 왕후가 함양에 계속 거처하고 있으면 좋지 않다는 결과를 내놓게 한다. 이런 불길한 점괘를 막기 위한 방편으로는 함양에서 특정 방향으로 멀리 떨어진 땅으로 이사를 가야 한다는 점괘를 내놓았고, 진왕의 눈에 띄지 않는 옛 수도이자 수도 함양에서 멀리 떨어져 있던 옹 땅으로 거처를 옮긴 후 둘은 마음껏 놀아났다. 불륜 상대라는 게 알려지지 않은 데다 태후의 최측근으로 늘 붙어 있었기 때문에 열후에[1] 봉해져 권세를 누리기까지 했다.
그러나 이런 생활이 잘 이어졌으면 모를까 불륜 끝에 태후는 아이를 둘이나 낳게 되었고, 허파에 바람이 솔솔 들어간 노애는 자신의 아이들을 진왕 정 대신 왕으로 세우려고 모의했다. 그리고 이런 간이 배 밖으로 나온 짓이 중간에 들키자, 그는 한 번 해보자는 식으로 옥새를 위조해 군대를 모아 반란을 일으켰다. 하지만 상대가 전국시대의 다른 호구같은 나라와 호구같은 왕이라면 모를까, 불행히도 노애의 상대는 전국시대를 끝장낸 진왕 정, 즉 시황제라 결과가 영 좋지 못했다. 반란군은 대번에 박살났고 노애는 체포당했다. 시황제는 노애가 무슨 짓을 했는지 온천하에 알리기 위해 붙잡은 노애를 한동안 살려두고 수염을 기르게 했다. 이후 수염이 꽤 자라자 사람들을 불러모아놓고 "와하하하. 이걸 좀 보시오. 환관인데 수염이 났소이다!"라며 노애를 비웃고 즐겼다. 이렇게 시황제에게 비웃음을 실컷 당한 노애는 이후 거열형에 처해져 조각난 시체는 진나라 곳곳에 조리돌림을 당했다. 태후가 낳은 노애의 사생아들 또한 결국 처리되었고[2] 태후는 유폐되었다가 중신들의 만류로 가까스로 사면받을 수 있었다. 노애를 추천해준 여불위 또한 이에 연루되어 상방(상국)의 직위에서 파면되었다. 하지만 이후 타 국가에서 중용하는 움직임을 보이자 격노한 진왕에게 여불위를 모욕하는 편지와 함께 일족과 함께 촉 땅[3]으로 유배갈 것을 명령받고 음독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노애의 반란을 진압했을 때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성기를 대문에 걸어놓았다고 한다.(...)
원전에서 노애의 특기는 오동나무 수레바퀴를 단순히 들고 돌아다니는 것이었으나, 여러 매체[4]나 《 고우영 십팔사략》에서는 더욱 업그레이드하여 그 상태로 빙글빙글 계속해서 돌리기까지 하는 기술로 거듭난다. 같은 작가의 《열국지》에서도 조금 다른 모습으로 등장하는데 소변을 보니 바닥재가 산산조각나기까지 한다. 그리고 세간에 퍼져 있는 속설의 영향인지 공통적으로 코가 매우 크게 디자인되어 있다.[5] 또한 환관으로 위장하여 입궁하는 장면에서는 그의 거시기를 잘랐다는 증거로 당나귀의 거시기를 잘라 걸어놓는다.[6] 《열국지》에서는 결국 당나귀 6마리[7]에 거열형을 당했다. 노애의 아이들도 무지막지하게 맞아 죽는데 조희가 울며불며 아이들만은 살려달라 간청해도 "부끄럽고 추잡한 짓의 결정체니 더욱 살려둘 수 없습니다."라고 차갑게 말을 마친다. 이후 아이들의 시체를 보고 조희에게 더 큰 벌을 내리는데 "저 걸레들을 낳은 여인은 냉궁으로 유폐시킨 뒤 두 번 다시는 그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하게 하라."라고 냉혹한 엄명을 내린다. 조희는 울고 또 울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그리고 중국 드라마 여불위에서 노애의 난을 진압하고 분노한 진왕 영정이 노애와 조희가 난 자식들을 죽이려 하자 조희가 "너의 이부동생이잖니 살려다오!!!"하자 진왕은 분노하여 조희에게 "정말 뻔뻔하군요! 그런 짓을 저지르고도 철면피처럼 아이들을 살려달라 하시니"라며 냉혹하게 무시해버리고 아이들을 뭉둥이로 때려 죽인 뒤 조희를 그 누구도 오지 않는 냉궁에 감금시키라고 명한다. 이를 들은 조희는 억울함과 동시에 분노하여 "내가 저런 짐승 같은 놈을 낳았구나!" 하며 분노하지만 적반하장도 유분수인데 태후인 조희가 진왕 영정에게 할 소리는 아니었다.
왕의 친모인 태후의 몸으로 일개 환관을 사칭한 시정잡배와 간통하여 아기를 낳아서 왕실을 능멸하고 그 시정잡배가 반란을 일으켰으니 진시황이 아니라 어느 성군이라도 이런 태후와 간통한 반역자와 그 일족을 인정사정 안 봐주고 처단시키는 것이 당연했다. 이 정도면 그 의심많던 진시황이 태후를 폐위시키지 않고 감금만 하는 것도 용할 수준이다.[8]
고려에서도 천추태후의 정부인 김치양이 노애와 같이 그곳의 크기가 커서 바퀴를 들 정도라고 기록하고 있다.
서양에서는 은근히 중국의 그리고리 라스푸틴으로 소개하고 있다. 물론 둘이 좀 많이 다르긴 하지만...
3. 대중매체에서
김성한의 소설 진시황제에서는 잘생기고 매우 유능한 청년으로 나온다. 주희가 연일 자신을 유혹하자 질린 여불위는 주희를 떼어놓기 위해 노애를 강간범으로 조작하여 투옥한 다음에 부형에 처해 거세하는 척 하고 대신에 수염을 모두 뽑은 후에 주희에게 바친다. 이후 주희가 임신하자 주희는 노애는 지긋지긋하다고 시치미를 떼고 옹으로 떠난다. 여불위는 애 하나 낳는 것이 어렵지 둘 낳는 것은 일도 아니라면서 조나라 시절부터 자신을 섬기던 자객 동칠이와 서팔이를 보내 노애를 죽이라고 하지만 머리 좋은 노애는 주희가 옹으로 떠나자마자 함양을 탈출하여 제나라로 달아났으나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제나라, 연나라를 떠돌다가 옹으로 잠입하여 다시 주희를 섬기게 된다. 이에 살기등등한 여불위가 직접 주희를 찾아가 노애를 죽이라고 요구하지만 노애가 이미 이를 다 예상하여 주희에게 대사 연습까지 시켜서 주희는 당당히 여불위에 맞선다. 이에 여불위는 조나라 시절부터 자신을 모시던 집사 효리와 상의하는데, 효리는 노애를 없애봐야 주희가 또 다른 노애를 찾을테니 그냥 노애를 옆에 두고 영원히 옹성을 떠나지 못하게 하자고 조언하여 여불위가 이에 따르게 된다.하지만 하태후가 급사하면서 주희가 다시 함양에 돌아오는데 노애가 아예 주희의 등 뒤에서 아예 관청을 차려서 나랏일을 하는 지경에 이른다. 그리고 영정의 이복형제인 장안군을 일부러 패할 수밖에 없는 조나라와의 싸움에 보내서 반란을 유도하는 등 고도의 술수까지 부리기 시작한다. 이는 노애가 영씨 집안을 멸절하고 자신의 아들을 왕으로 삼으려는 계획의 시작이었다. 결국 주태후를 등에 업고 총사령관인 국위에 임명되어 장안군 토벌에 나서는데 무능한 노애는 진벽의 결사대에게 포로로 잡히고 고자인지 아닌지 검사와 성고문(...)을 당한다. 하지만 장안군은 궁지에 몰려 끝내 진벽과 함께 자결하고 장안군의 부하들은 노애를 죽일지 말지 고민하다가 두들겨패준 다음에 목숨은 하늘에 맡기기로 하고 묶고 달아난다.
2001년 홍콩드라마 심진기에 조연으로 등장한다. 진짜 노애는 좌수검법으로 유명한 떠돌이 검객인데 어떤 남자가 자신의 연인을 노애에게 성상납하고 대신 좌수검법을 전수받았고 이후에 스승인 진짜 노애를 죽이고 노애를 사칭하며 역사속의 노애가 된다. 무술실력으로 진나라 황궁의 통령이 된다. 외로워하던 조희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했고 조희는 노애의 아이를 임신했다. 진왕 영정의 사주를 받고 여불위 암살을 시도했으나 실패했고 화가 난 여불위는 노애가 조희와 붙어먹지 못하도록 노애를 거세시켰다. 노애는 수치심 때문에 투신자살하려 했으나 조희가 '당신이 죽겠다면 나도 아이와 함께 죽겠어요'라고 말하며 임신사실을 고백했고 노애는 처자식을 위해서 자살을 포기했다. 노애의 아이를 죽이려는 진왕을 바다에 빠트리고 진왕을 닮은 가짜를 내세워 국정을 노애의 마음대로 했다. 죽은 줄 알았던 진왕이 복귀하자 노애는 도망쳤다. 진왕이 노애의 아이를 죽이려 하자 노애는 아이를 구하기 위해 돌아왔지만 할 수 있는 것은 없었고 아이는 진왕에게 죽고 노애는 병사들의 창에 찔려 죽고 조희는 비녀로 목을 찔러 자결했다.
2017년 중국드라마 진시려인명월심 1화에서 역모를 일으키려다 진시황에게 바로 진압당한다.
2019년 중국드라마 호란전에는 후반부터 등장한다. '조희와 노애는 연인이고 아이도 있다'라는 소문이 돌긴 하지만 사실 정적들이 유포한 헛소문이다. 모반을 시도했지만 진시황의 화살과 칼을 맞고 사망했다. #
3.1. 하라 야스히사의 만화 킹덤에서의 묘사
공식능력치 | ||||
시기 | 무력 | 지휘력 | 지력 | 정치 |
가이드북3 | 70 | 20 | 50 | ? |
평범한 하급문관의 집에서 태어나 머리만 크고 체력도 없는 데다가 머리까지 나빠서 돼지머리라고 불리는 등 괴롭힘만 당했으며, 성인이 되어서도 용기가 없어 전장에 나가지 못한 데다가 여자들에게 인기도 없었고 아버지 빽으로 하급문관이 되었다.
그러나 능력이 없어서 다른 문관들에게 오동나무 수레바퀴를 돌리는 일이나 보여줬으며, 이로 인해 조희의 눈에 들어 내시로 변장해 후궁으로 들어가 태후(조희)의 반려자가 되었다. 태후와 처음에 만리장성을 쌓았을 때는 매일밤 악귀같이 광폭했다고 해서 처음에는 무서워했지만 조희의 눈물을 보고 태후는 자신이 상상할 수 없는 깊은 상처를 입어 아직도 아물지 않았으며, 통증의 배출구로 불려왔다는 것을 깨닫고 그날 밤 이후로는 태후에게 사랑에 빠지게 된다.
단순히 태후의 성노리개지만 타인이 자신을 필요로 했기에 짧은 시간이라도 태후가 상처를 잊고 눈물을 흘리지 않도록 하겠다는 생각을 했으며, 태후가 자신의 아이를 낳자 태후를 염려해 유산을 권하지만 태후는 이를 강행하고 태원에서 군사를 모아 애국을 세우면서 애국의 왕이 된다.
불안해하면서 애국이 독립하고 자신은 왕이라 불리는 것에 대해 기뻐하면서도 태후가 대신들에게 끌려다니지 말라고 한 것을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는 등 태후를 진심으로 소중히 여겼다. 그러나 이미 초나라의 지령을 받은 호력의 흉계로 인해 태후와 간통한 것, 두 명의 아이에 대한 것을 함양에서 알아차렸다는 소식을 듣는다.
결국 궁지에 몰린 끝에 조희의 결단에 따라 함양을 급습하기로 결심해 가짜 옥새가 찍힌 위조 명령서의 도움으로 함곡관을 저항 없이 통과하여 함양으로 진군한다. 하지만, 이는 모두 여불위의 흉계여서 진나라 왕족들과 공멸할 처지에 몰리게 되었으며, 또한 진격 과정에서 반란군을 몰아세울 목적으로 포로들을 모조리 참수[9]시키던 번오기에게 역시 충동질당해 휘둘린다...하지만 군사적 능력은 전혀 없던 터라 결국 반란군이 참혹하게 대패당하자 태후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면서 절규하다가 부랴부랴 달아나지만 환기군에 반란군 패잔병도 털리고 사로잡혀서 압송된다.
여불위가 자신을 가짜 환관으로 후궁으로 들어간 것을 자백했으며, 태후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자신이 왕의 옥새 복제본, 태후의 옥새를 훔친 반란의 주도자라고 거짓으로 자백해 거열형을 받게 되었다.
하지만, 진시황 미화만화답게 역사와 달리 노애와 태후 사이에 태어난 아이들을 안 죽이고 몰래 숨겨서 살 수 있도록 한다. 실제와는 다른 역사 왜곡이다. 안 그래도 진시황 미화하느라 번오기를 악역으로 왜곡시켰으니 노애도 은근히 좋게 그린 셈.
[1]
통후라고 하기도 한다. 원래는 철후라고 불렸지만
한무제의
휘가 '철'이었기 때문에
피휘를 위해 같은 뜻의 한자였던 통후 또는 열후로 바뀌게 되었다.
[2]
자루에 넣어져 몽둥이에 맞아죽었다.
[3]
당시에는 개발 자체가 되지 않은 오지 중의 오지였다. 이 때문에 당대는 물론 한나라 때까지 조선시대의 제주도처럼 중죄인을 유배보내는 지역으로 꼽혔을 정도.
[4]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표절만화를 여럿 그리던
이로마도 극화체 만화로 노애를 80년대에 이렇게 그린 바 있다.
[5]
현대 연구에 의하면 어느 정도의 상관관계는 있다고 한다.
[6]
《고우영 십팔사략》에서는 사나이가 다른 산들 앞에 있는 가장 큰 산 모습으로 비유되어 나오고 정력왕에 대물이 된 이유가 나오는데 7년 반 동안 입산수도를 해서 당나귀에게 맞아가며 배운 것이라고 친히 인증한다(...). 그 정력에 감탄한 여인네들이 싸우거나 살인까지 저지르는 일도 다반사. 이후 내시로 위장한 채 대물이 있는 멀쩡한 몸으로 들어가서 음기가득 도화녀인 조황후가 노애의 그 엄청난 대물과 무시무시한 양기에 반해 여불위를 부르지 않아 여불위가 안도하며 편히 쉬는 것은 동일. 반란을 일으키다 진압당한 뒤 그의 심볼을 보여주자 그 크고 아름다움에 병사들이 감탄하며 놀라는 것은 덤.
[7]
처음에는 일반적인 5마리(양쪽 팔, 양쪽 다리, 머리)로 하려 했는데 신하가 "6마리가 필요할것 같은데요"라면서 6마리로 늘렸다. 나머지 1마리는
어디에 쓰였을지는 알아서 상상하자.
[8]
이 시대에도 부모 공경이니 뭐니 하는건 있긴 했고 실제로도 전국시대 못지않던 춘추시대 초의
정장공또한 어머니인 무강을 극히 원망하긴 했지만 결국은 화해를 한 바 있다. 그러나 반대로 조혜문왕은 아버지인 조무령왕을 감금해 굶겨죽인 바 있다. 다만 무령왕은 일국의 왕이었던 만큼 나라에 끼칠 수 있는 영향력이 막대한 반면 무강이나 조후는 아무래도 여자인데다 각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요소가 사라졌고 특히 조후의 경우 당대 기준으로는 지금보다도 더 심하게 비난받을 짓을 저지른 만큼 그녀를 후원해줄 사람이 없으니 어차피 목숨을 살려줘도 별 문제될 일은 없었을 것이다.
[9]
같은 진나라 병졸들을 죽이게 함으로서 그들에게 함께 죄를 짊어지게 해 물러서지 못하게 하려는 술수로 이에 거부하는 병사가 나온다면 그 병사도 참수할 생각이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