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1-10-12 19:32:54

노기순

성명 노기순(盧基淳)
생몰 1892년 9월 10일 ~ 1975년 3월 18일
출생지 평안남도 순천군 자산면 제일리
사망지 서울특별시 성동구 행당동
매장지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추서 건국훈장 애족장

1. 개요2. 생애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노기순은 1892년 9월 10일 평안남도 순천군 자산면 제일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3.1 운동에 참가했고 그해 5월에는 만주 관전현으로 망명했으며, 9월에 임시정부로부터 군자금 모금 지령을 받고 귀국했다. 이어 1920년 3월 김석황, 송인표(宋寅杓), 여행렬 등과 함께 평양 기휼병원을 중심으로 결사의용단(決死義勇團)을 조직하고 순천군 지부장 겸 경리를 맡아 동지들과 함께 중화, 평양 일대에서 수합한 군자금을 관전현 독판부에 헌납한 후 폭탄과 권총 10정을 가지고 잠입해 의용단간부회(義勇團幹部會)를 개최했다.

이후 1920년 6월에는 의열단 간부와 합세하여 평남도청과 평양시청, 평양경찰서 등에 폭탄을 투여하는 데 관여했고, 기림에서 일본 형사 청목(靑木)을 처단했다. 그러다가 그해 8월 말 순천경찰서에 체포되었지만 가혹한 고문에도 끝까지 의열단 관련 사실을 부인했기에 만세시위에 가담한 것 만으로 예심에서 징역 1년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에는 독립운동에 계속 가담했다가 3개월간 구금되기도 했으며, 다시 이준용(李俊用)과 군자금을 모집하다가 피체되었으나 불기소처분을 받고 이후에도 군자금을 모집해 임시정부에 송금했다. 8.15 해방 후에는 서울로 이주해 서울 성동구 행당동에서 말년을 보내다 1975년 3월 18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63년 노기순에게 대통령표창을 수여했고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1994년에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