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20 01:56:53

김정구

김정구
金貞九 | Jeonggu Kim
파일:가수김정구.jpg
<colbgcolor=#878787><colcolor=#fff> 출생 1916년 7월 15일
함경남도 원산부 명사십리
(現 강원도 원산시)
사망 1998년 9월 25일 (향년 82세)
미국 캘리포니아 주 로스앤젤레스
학력 광명보통학교 (졸업)
원산기독교청년학원 (졸업)
가족 김용환, 누나 김안라
종교 개신교[1]
데뷔 1936년 '삼번통 아가씨'

1. 개요2. 생애3. 여담4. 대표곡5. 광고6.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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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 눈물젖은 두만강' 으로 유명한 대한민국 가수이다. 활동은 일제강점기부터 시작되었다.

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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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가수 김정구 젊은시절.jpg
젊은 시절.

1916년 함경남도 원산의 명사십리가 위치한 마을에서 개신교 집안에서 태어났다. 개신교 집안이다 보니 어렸을 때부터 찬송가 등의 노래를 잘 접했다고 한다. 1936년에 가수가 되기 위해서 경성으로 간 김정구는 형인 김용환의 레코드사에서 삼번통 아가씨라는 노래로 처음 데뷔하게 되나 성공하지 못하였고, 1939년에 눈물젖은 두만강이라는 노래로 대성하게 된다.

계속해서 활동한 그는 바다의 교향시를 시작으로, 여러 곡으로 활동하게 되는데 그의 가창력과 노래들은 민요를 기반으로 해서 익살스러운 분위기가 많다. 특히, 그러한 노래들을 부를 때면 가히 할아버지의 특성들을 모두리 보여줄 만큼 민요스러운 분위기가 많았다. 이러한 노래들을 만요라고 한다.

광복 후에도, 눈물젖은 두만강이 계속 전파를 타게 되어 가수로서 활동을 이어나갔고 1985년 가요무대가 방영한 뒤로는 주로 그곳에 많이 나와 원로가수로서 미국 LA, 일본 오사카 공연 같은 해외에도 동포위문공연을 자주 다녀, 원로가수의 대표격으로 활동하였다.[2] 1985년에는 실향민의 한이라고 할 수 있는 북한 방문과 더불어 북한에서 공연도 하게 되어 실향민 출신 가수의 꿈을 완전히 이뤘다고도 볼 수 있다. 1980년에는 대중가수로서는 처음으로 문화훈장인 보관문화훈장을 수여받게 된다.

그러다가, 1992년부터 급격히 노쇠해져, 아들이 이민가 있는 로스앤젤레스로 요양을 떠나 그곳에서 1998년에 숨을 거두게 된다.
김정구 가요무대 스페셜

3. 여담

  • 목소리 톤이 굉장히 높다. 현인이 한 번 가요무대에서 본인이 스스로 바리톤의 음색을 가졌다고 했는데 김정구는 그렇게 따지면 테너의 음색을 가지고 있다.
  • 무대에서 항상 신나게 노래를 부르고 장난을 치고는 하는데. 현인, 고운봉 등과는 거의 친형제처럼 지내서 항상 대폿집에 술을 마시러 가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김정구가 형이니 술을 많이 내곤 했는데 어떨때는 현인이 술자리를 파할 무렵이 되면 화장실에 간다고 핑계를 대고서 술값을 몰래 내는 경우도 있었다고.
  • 이북 출신이다보니 말투의 억양에서 서울 표준어와 함경도 사투리가 아주 약간 섞인 억양이 들렸다. 이는 전술한 현인, 고운봉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인데 현인은 경상도풍스러운 표준어, 고운봉은 충청도풍스러운 표준어를 구사했다.
  • 김정구의 가장 유명한 곡은 ' 눈물젖은 두만강'으로 인식되나 김정구가 활동하던 초반기에는 ' 왕서방 연서'가 더 히트했었다. 게다가 눈물젖은 두만강이 민족의식을 고취시킨다는 이유로 조선총독부에서 1943년에 눈물젖은 두만강을 수록한 음반을 판매 금지하였다. 1963년에 동명의 영화가 나오고, 1964년 KBS 라디오의 프로그램 《김삿갓 북한방랑기》의 배경음악으로 삽입되어 역주행하였다.
  • 예전에 가수 현인 가요무대에서 말하기로는 김정구가 길에서 지나가면 사람들이 " 눈물젖은 두만강 지나간다."라고 말했다고 한다.[3]

4. 대표곡

5. 광고

6. 수상



[1] 생애 문단 참고. [2] 김정구와 더불어 자주 가요무대에 나온 남자 원로가수는 고운봉, 현인, 한복남 등이 있는데 모두 김정구 보다 3~4살 어리며. 그와 동갑인 김영춘, 최병호 등은 히트곡이 단 하나인 탓으로(...) 자주 가요무대에 출연하지 않았다. [3] 그외에도 현인이 지나갈땐 " 신라의 달밤 지나간다.", 고운봉이 지나갈땐 " 선창 지나간다." 등으로 불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