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북도 제5대 민의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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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金思萬1919년 11월 26일 ~ 몰년 미상(1973년 이후)
대한민국의 법조인 출신 전직 정치인이다.
2. 생애
1919년 충청북도 괴산군 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재직중 중퇴하고 변호사시험에 응시하여 합격 하였다. 이후 서울, 부산 등지에서 변호사로 활동하였고, 서울지법 판사, 부산지법 판사 직무 대리직 등을 역임하였다.1954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충청북도 괴산군 선거구에 무소속 후보로 출마했지만 자유당 안동준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55년 민주당이 창당될때 합류하였다.
1960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선거 도중 후보직을 사퇴하였다.
이후 안동준이 공민권 위반으로 의원직을 상실하자 치러진 1961년 재보궐선거에서 괴산군 선거구에 민주당 후보로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 그러나 얼마 되지 않아 일어난 5.16 군사정변으로 인해 단 3일만에 의원직을 잃었다.[2]
5.16 군사정변 이후 민주당이 해산되자 민정당에 합류하였다. 그러나 제5대 대통령 선거 5일 전인 10월 10일, 영주에서의 연설에서 대구, 부산에는 빨갱이가 많아요. 김일성이가 오면 만세를 부를 거에요.라는 발언을 하며 민주공화당 박정희 후보의 매카시즘 공세에 불을 질렀다. 그러나 논란이 거세지며 민정당 측에서 공식적으로 사과했고, 윤보선 후보의 낙선과 동시에 민정당에서 제명당하는 굴욕을 겪어야 했다.
이후 자유민주당에 입당하여 같은해 치러진 제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괴산군 선거구에 입후보 하였으나 위의 지역감정 조장 발언 후폭풍으로 민주공화당 안동준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67년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공화당 안동준 후보에 밀려 또다시 낙선하였다. 이후 정계를 은퇴하고 제천시에서 변호사를 지냈다.
이후의 행적은 관련 자료가 남아있지 않아 언제 사망했는지 알 수 없다.
3. 선거 이력
연도 | 선거종류 | 소속정당 | 득표수(득표율) | 당선여부 | 비고 |
1954 | 제3대 국회의원 선거 ( 충북 괴산군)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9,144 (17.33%) | 낙선 (3위) | |
1960 | 제5대 국회의원 선거 ( 충북 괴산군) |
|
후보사퇴 | ||
1961 | 1961년 재보궐선거 ( 충북 괴산군) | 12,200 (45.40%) | 당선 (1위) | 초선 | |
1963 | 제6대 국회의원 선거 ( 충북 괴산군) |
|
19,717 (41.12%) | 낙선 (2위) | |
1967 | 제7대 국회의원 선거 ( 충북 괴산군) |
[[신민당(1967년)| |
21,539 (36.8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