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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현/플레이 스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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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피칭 스타일
2.1. 투구 폼2.2. 보직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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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김병현의 플레이 스타일을 정리한 문서.

2. 피칭 스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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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ALDS 1차전에서 마크 엘리스와의 승부에서 던진 98마일[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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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기엔 언더핸드 스로면서도 평균 86.5마일[2], 최고 -158km/h- [3]93마일을 기사 던지는 엄청난 강속구를 자랑했으며 옆으로 휘는 프리즈비 슬라이더와 업슛으로 유명세를 떨쳤다. 기본적으로 언더핸드기에 위의 움짤처럼 무브먼트도 뛰어났으며 거기다 업슛, 싱커, 프리즈비 슬라이더, 백도어 슬라이더가 홈플레이트에서 각각 상하좌우로 휘어지는 구종이기 때문에 타자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공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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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슛 슬라이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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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커

특히 그 중에서도 프리즈비 슬라이더는 엄청난 각도로 날카롭게 휘어졌던 터라 위의 이미지처럼 바깥쪽으로 빠지는 공임에도 타자는 그것이 몸쪽으로 들어오는 공인 줄 착각하여 휘두르는 일이 있었을 정도다. 여기에 특유의 구위와 메이저리그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오버핸드 수준 강속구를 던지는 언더핸드 투수라는 유니크함[4]이 더해지면서 김병현은 전성기 시절 애리조나 최고의 불펜투수로 군림했다. 이 과정에서 무지막지한 탈삼진율까지 기록하며 Born to K(탈삼진을 잡기 위해 태어난 사람). 일명 BK 라는 별명을 얻었으며[5], 1이닝 9구 3탈삼진( 무결점 이닝)[6][7]라는 메이저리그에서도 약 40여 명의 투수밖에 이루지 못한 일대 업적을 달성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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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의 데드볼 삼진

언더핸드 특성상 좌타자한테 불리하기 때문에 좌타자 한텐 약했다. 더군다나 김병현은 옆구리 투수의 필수라고 할수 있는 싱커나 서클체인지업 등 역회전볼이 좋지않아 더더욱 약했다. 좌타자를 상대할 때는 바깥쪽에 슬라이더를 넣거나 몸쪽으로 많이 붙여서 넣기 때문에 위같은 상황도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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랜디 존슨과 함께.

당시 랜디 존슨과 그의 등번호의 합이 정확히 100(51+49)이었던 까닭에 둘이 이어서 던지면 완벽하다는 농담이 있었으며, 장신(長身)인 랜디 존슨이 던진 직후 김병현이 나와 언더핸드로 던질 경우 이전까지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공에 익숙해져 있던 기존 타자들은 공이 갑자기 지하 밑바닥에서 솟구쳐 올라오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는 이야기도 종종 나왔다.[8][9] 덕분에 랜디 존슨의 별명인 '빅 유닛'에 빗대어 김병현에게 '리틀 유닛'이란 별명이 붙기도 했지만, 정작 김병현 본인은 이 별명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고 한다.

또한, 랜디 존슨은 "삼진을 잡는 능력만은 나보다도 뛰어나다."란 이야기를 하기도 했으며, 블라디미르 게레로[10]로부터 "저런 지저분한 공을 던지는 투수는 MLB에서 당장 퇴출시켜야 한다."는 립서비스성 발언을 듣기도 했다. 게레로의 김병현 상대 통산 성적은 9타수 3안타 2홈런 3타점 2삼진이다.

자신의 공에 상당히 자신이 있는지 적극적인 승부를 즐긴다. 일본의 대타자 스즈키 이치로는 김병현을 경기장에서 만났을 때를 회상하며 보통 투수들은 자신의 정교한 컨택을 의식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비해 김병현은 자신의 구위가 얼마나 위력적인가를 떠나서 상대하는 타자가 누구인지 전혀 관심 없는 듯 공을 던졌다고 말했다.[11] 이런 스타일 덕에 아드리안 벨트레[12], 스캇 롤렌[13] 같은 선수들은 찍어누르고 새미 소사 제프 켄트[14]처럼 당대 최고였던 선수들에게도 좋은 성적을 뽑았지만 이게 안 통하는 배리 본즈, 알버트 푸홀스, 치퍼 존스, 앤드류 존스[15]같은 선수들에게는 약했다. 즉 언더핸드치고는 유니크한 구속과 구위에 더불어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어떤 타자든지 상관하지 않고 삼진을 잡겠다는 엄청난 배짱으로 스테로이드 시대의 대타자들과 경쟁한 뛰어난 투수였다는 것. 야구에 만약은 없지만 부러진 배트로 인해 발목부상의 여파가 없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남는 선수이다.

발목 부상 이후에는 심한 제구 난조를 보였으며, 2007년에는 리그 전체 사구 1위를 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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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현은 2002년 시즌 첫 양키스 등판에서 세이브 후, 마운드서 부터 좌중간 담장까지 공을 힘껏 던져서 여유있게 넘겨버렸는데, 그의 공이 약 330피트 정도의 거리를 비행했다고 비공식 확인되어 현지에서도 이슈가 된 바 있다.[16] 김병현은 당시 행동에 대해 "반항의 행동이었다. 양키스에게 너희들만 펜스 밖으로 공을 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나도 넘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회상했다.

2.1. 투구 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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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당시 투구폼으로 이 세트 포지션으로만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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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전반기 투구폼[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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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중후반기 투구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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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전반기 투구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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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후반기 투구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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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2003~2004년까지 사용한 투구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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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부터 메이저리그 마지막까지 사용한 투구폼

언더핸드임에도 불구하고 제구력이 항상 불안정했기 때문에 투구폼이 굉장히 자주 바뀌었다. 위 투구폼을 보면 일반적인 언더핸드 투수와는 다른 점이 있는데 허리를 굽히지 않고 다리를 들어올린다는 점이다. 세트 포지션은 조금씩 다르게 던졌는데 구속을 끌어올리려고 사이드암까지 던지기도 했고 가끔씩 중간 언더핸드까지 내려가기도 했다.

2.2. 보직 논란

김병현이 선발 욕심을 부린 탓에 커리어가 망가진 것이며, 그가 그대로 마무리를 했었더라면 마리아노 리베라, 트레버 호프먼에 버금가는 투수가 되었을 거라고 주장하는 팬들도 간혹 있다. 하지만 메이저리그에서도 보직의 특성상 한두 시즌 반짝한 뒤 사라지는 마무리 투수가 많아서 사실상 야만없급의 의미없는 가정이다. 솔직히 말해, 계속 마무리로 남았다 한들 꼭 대성하리란 보장도 없었을 뿐더러 MLB 역사에서 김병현 수준의 커리어를 남긴 투수는 무지하게 많다.(...) 그리고 김병현은 몸이 상당히 늦게 풀리는 편이라 불펜투수로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고 이로 인해 커리어 내내 선발전향을 시도했던 것이다. [18]

또한 김병현은 부상을 입기 전까지만 해도 선발로 출전하여 매우 준수한 활약을 펼쳤으며, 커리어를 망쳤다는 소리를 듣기 시작한 건 부상으로 인해 본래 구위를 잃은 뒤의 일이다. 요컨대 부상이 문제가 된 것이지, 보직과는 별다른 관계없었다는 이야기라는 관점도 있다.

김병현의 부진이 시작된 것은 2004년으로, 시즌 내내 부상에 시달리며 선발로도 불펜으로도 위력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고, 2005년 콜로라도 입단 이후에는 단 한 번도 조정방어율 100을 넘기지 못하고 메이저리그 커리어를 마감하게 된다.

발목을 맞은 2003년 시즌에는 훌륭한 성적을 냈으나 이후 부진이 시작된 것으로 볼 때, 부상 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것으로 볼 수 있다. 그 시점에서 김병현은 보직에 대한 불만과 그로 인한 코칭스태프와의 충돌 등으로 인해서 감독이나 코치 등과 불화를 겪는 경우가 많았고, 엎친데 덮친격으로 애리조나를 떠나 타격이 강한 AL동부의 보스턴으로 트레이드 되었으며, 2005년에는 투수들의 지옥 쿠어스필드를 홈으로 쓰는 콜로라도로 트레이드 되었다.

결국 정리해 보자면 김병현은 혹사와 부상 이후 관리에 중점을 둬야 할 시기에 각 구단들의 이해타산으로 인해 트레이드로 팔리는 선수로 전락하면서 부상관리는 커녕 안정적인 플레이를 하기에는 어려운 팀들을 떠돌게 되었고 그에 따른 누적된 대미지로 커리어가 일찍 꺾인 선수로 보는것이 타당할 것이다.

특히 화려했던 애리조나 시절에 너무 구른 나머지 커리어에 타격이 왔다고 볼 수 있는데 풀타임 마무리로 뛰기 시작한 00년부터 최전성기라 볼 수 있는 02년까지 김병현이 던진 이닝은 각각 70.2 - 98 - 84이닝인데 이건 불펜 투수로써 많은 이닝을 소화한 거다. 부상도 부상이지만 이때의 투구가 선수생활 전체를 갉아 먹었을 가능성도 크다. 특히 언더핸드 투수들은 특유의 투구폼 때문에 무릎과 허리에 무리가 심하고, 김병현이 했던 투구폼 또한 상당히 다이나믹한 투구폼으로 몸에 무리를 주는 폼이다. 거기다 몸이 늦게 풀리는 타입이라 불펜에서 거의 선발투수급으로 공을 던지고 나서야 경기에 등판했다는 증언과 더불어 언제든지 출동준비를 해야하는 소방수 혹은 마무리 투수로 커리어 초반을 보냈다고 생각해보면 실제 경기에서 던진 것보다도 대미지가 컸을 것이다.

이 때문에 김병현의 바람처럼 선발로 완전 전향했다면 전성기가 좀 더 연장되었을지도 모른다. 선발은 5인 로테이션제 때문에 그나마 계투보다는 관리를 받는 편이고, 준비시간도 길어지는 등 선수들 컨디션 관리에도 좋기 때문이다. 상술된 2003년 시즌만 봐도 7월부로 마무리 전향해서 정규시즌 끝나는 9월 29일(거의 10월)까지 거의 3달 동안 42경기를 찍었는데 이건 관리 부실을 넘어 엄청난 혹사다.[19] 03시즌 보스턴에서의 막판 마무리 전향(+혹사)이 전성기를 일찍 마감하는 데 일조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만약 김병현이 마무리 전향 없이 2003년을 풀타임 선발로 소화했다면 좀 더 관리받을 수 있었을 테고, 그만큼 전성기도 좀 더 연장되었을 것이다.

충분한 시간도 없이 3개월 만에 마이너리그에서 메이저리그로 콜업시킨 것도 전성기가 짧아지는데 영향을 줬었을 수도 있다. 마이너리그에서 배우는 것은 단순히 야구 기술만 아니라 20살의 어린 선수들이 갑작스럽게 많은 이닝을 던져서 버두치 리스트에 걸리지 않도록 루키부터 AA까지 단계적으로 소화할 수 있는 이닝수를 늘려가며 프로선수의 몸을 만들어주고, 프로선수로서 1년간 풀 시즌을 치르며 몸 만드는 법, 부상 관리법, 혹독한 마이너의 환경에서 멘탈 단련 등 오래 살아남는 메이저리거가 되기 위해 마이너에서 야구인으로 살아가는 법을 배우도록 하는 시스템인데 김병현의 선수 생활을 되돌아보면 공은 뛰어났지만 이런 부분들이 부족해서 결국 재능에 비해 롱런하지 못했기 때문. 결국 너무 엄청난 천재성 때문에 급속도로 콜업된 게 장기적으로는 독이 된 아이러니한 케이스. 참고로 김병현이 계약금으로 받은 225만달러는 90년대는 당연하고, 2020년대에 와서도 30억원에 달하는 웬만한 1라운더 유망주들이나 받는 거금이다.

후에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에서 언급이 되기를 자신이 그 이후에 부진한 이유는 보직보다는 부상관리에 대한 소홀과 일찍 복귀했다는 점이 크다고 말했다. 당시에 배트에 맞은 부상을 당하고 일찍 나가고 싶어 급하게 회복하고 빨리 나간게 독이 되었다고.[20] 그래서인지 은퇴한 지금 후배들한테 부상을 당하면 조급하지말고 무리하지 말라고 충고한다.


[1] 이날 스피드건이 오류가 있었는지 다른 투수도 평소보다 최소 3마일 이상 구속이 더 나왔다. 참고로 마크 엘리스에게 98마일 - 97마일 - 96마일 - 96마일 - 80마일 슬라이더로 5구 삼진을 잡고 강판된 후 전설적인 법규를 날린다. 이후 경기는 앨런 엠브리 에루비엘 두라조에게 동점 적시타를 맞고 12회말 데릭 로우 라몬 에르난데스에게 끝내기 번트 안타를 맞으며 오클랜드가 승리했다. [2] 02년 기준,이해 메이저리그 평균 구속이 88.5마일이다. [3] 98마일. 2003년 보스턴 시절 디비전 시리즈에서 기록 하지만 이날 스피드건의 오작동인지 다른 투수들도 최소 3마일 이상 높게 나와 신뢰하기 힘들다. 본인도 그 날 스피드건이 3마일 정도 더 나왔다고 인정하였다. 무결점 이닝 당시 최고 구속은 94마일(151km/h) 였다. [4] 메이저리그에 언더핸드 투수가 잘 안 보이는 건 구속이 상대적으로 느린데다가 횡 변화구 위주인 언더핸드 투수들이 팔이 긴 메이저리그 타자들에게 잘 안통해서이지 언더핸드 투수 자체가 없어서 그런 건 아니다. 실제로 아마 레벨이나 마이너 레벨에서는 심심찮게 보이니 메이저리그 타자들이 단순히 언더핸드 스로우 투수가 익숙지 않아 당한 것은 아니며, 김병현은 뛰어난 변화구와 더불어 당대 오버핸드 투수들이랑 구속을 비교해도 꿇리지 않을 정도로 빠른 공을 던진 것이 크다. [5] Byung-Hyun Kim으로, 이름을 영어 약자로 압축한 의미도 가지고 있다. 한국 한정 법규라는 별명이 생기고부터는 법규의 약자라는 드립이 나오기도 하는데, 실제 김병현이 인터뷰에서 이 드립을 치기도 했다. [6] 2002년 5월 11일 필라델피아 필리스를 상대로 8회 말에 거둔 기록. 참고로 그다음 이닝에 토마스 페레즈에게 동점 홈런을 맞아 이날 선발투수였던 랜디 존슨의 승리를 날리고 말았다. 그러나 곧이어 10회에 애리조나가 주니어 스파이비의 적시타에 힘입어 역전에 성공했으며, 10회 말에 또 올라온 김병현이 경기를 잘 마무리 지으면서 이날 경기의 승리투수가 됐다. [7] 이론에 따르면 1이닝 5구 3탈삼진도 가능하다고 한다. 대신 실질적으로 이루어질 확률은 극악이기 때문에 별로 현실적인 이야기는 아니다. 출처 여기서 참조하자면 1.A를 전 투수가 2스트라이크를 잡고 자신이 교체되어서 삼진을 잡는다. 2.다음 타자 B를 삼구삼진으로 잡는다. 3.여기서 야구의 특이한 룰이 돋보이는데 일단 다음 타자인 C를 상대하기 직전 야수 X에게 투수를 맡긴다. 이후 X는 사구로 출루시키는 등 이닝을 종료시키지 못한다. 4.다음 타자인 D를 X가 2스트라이크를 잡은 이후 다시 투수 자신으로 교체되고 스트라이크를 잡아 삼진 아웃. 이 때 투수 자신의 투구수는 5구이다. 대신 이 때 기록된 삼진은 D의 것이 아닌 C의 것이다. [8] 이를 랜디 존슨이 왼쪽집 2층에서 폭격하다 김병현이 바통을 이어받으면 오른쪽집 지하실에서 유탄이 날아오는 느낌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9] 언더스로 투수의 강점 중 하나다. 대부분의 피처가 공을 위에서 아래로 던져 구속을 늘리는 추세인데, 이에 익숙한 타자들이 언더스로를 만나게 되면 익숙하지 않은 궤적과 구위에 헤매는 모습이 나오는 것이다. 거기다가 오버핸드 투수들이 떨어지는 변화구(체인지업, 포크볼)를 구사했다가 언더핸드의 업슛성 공을 보면 그냥 눈물만... 실제로 보면 언더핸드와 오버핸드가 같은 변화구를 던지더라도 던지는 지점이 달라서 각이 전혀 다르게 나온다. 즉슨 타이밍이나 치는 곳이 전혀 다르다는 말. 물론 눈에 익고 이닝이 쌓일수록 얄짤 없긴 하지만, 그래도 갑작스럽게 변한 타이밍을 맞추는 타자들은 리그에서 손에 꼽는다. 그렉 매덕스가 '구종을 읽어내는 선수는 가끔 있다. 그러나 그런 선수들도 구속에 완급을 주기 시작하면 꼼짝없이 당한다. 인간의 눈으로는 그걸 구분하기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라고 말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10] MLB 역사상 최고의 배드볼 히터로 웬만한 공은 다 치는 선수다. 게레로는 2009년 8월 15일 볼티모어와의 경기에서 크리스 틸먼이 던진 홈플레이트 앞에서 바운드된 공을 안타로 만들어 내기도 했다. [11] 다만 이것과는 별개로 전체 데이터를 보면, 김병현은 이치로를 상대로 상성을 타는 모습을 보였다. 폼과 구위가 살아있던 2001년에는 1타석 상대해 아웃을 잡고 발목 부상 이후로 계속 하락세를 탔던 2003년에도 1타석 상대해 아웃으로 잡았지만, 2006년에는 3타석 상대하여 1볼넷, 2안타에 그 중 하나는 2루타로 허용했다. 상대전적 [12] 18타석 1피안타 8K/1BB .180OPS로 압도했다. 김병현이 가장 많은 삼진을 뽑은 선수이기도 하다. [13] 21타석 3피안타 1피홈런 5K/1BB .490OPS [14] 소사: 11타석 1피안타 7K/0BB .455OPS, 켄트: 39타석 8피안타 4K/4BB .697OPS 또 켄트는 김병현이 가장 많이 상대한 타자다. [15] 본즈: 17타석 2피안타 1피홈런 1K/6BB .925OPS, 푸홀스: 15타석 5피안타 1피홈런 3K/3BB 1.283OPS,치퍼 존스: 18타석 6피안타 3K/4BB 1.127OPS, 앤드류 존스: 21타석 7피안타 2피홈런 4K/3BB 1.359OPS [16] 양키스 스타디움은 좌측 펜스 거리가 101m로 우측 펜스 97m에 비해 긴 편이다. [17] 참고로 당시 랜디 존슨 20k경기였으며 타자는 배리 라킨이다. [18] 애리조나 시절 등판간격을 길게 하려고 2이닝 마무리로 돌린것도 이때문이다. [19] 단순계산해서 3달을 90일이라 쳐도 하루걸러 하루등판했다는 소리다. [20] 해당 프로그램에 함께 나왔던 배우 차태현은 경쟁이 심한 메이저리그에서 부상을 당해 아파도 말할 수 없으며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해도 동일한 선택을 했을거라며 김병현을 위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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