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9-25 21:05:00

김동건(야구)

김동건의 수상 경력 / 역임 직책 /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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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SK 와이번스 우승 엠블럼 V1.svg
KBO 리그 한국시리즈
우승반지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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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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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fffff> 2012 2013~2014 2015~2016 2017 2018
김동건 이호준 이종욱
박석민 손시헌 손시헌 박석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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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성범 박민우 양의지
노진혁 양의지 손아섭 손아섭 박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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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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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 와이번스 등번호 6번
장재명
(2000)
김동건
(2001)
정경배
(2002~2006)
SK 와이번스 등번호 4번
손차훈
(2000~2001)
김동건
(2002)
이대수
(2003~2004)
SK 와이번스 등번호 14번
김민재
(2002~2005)
김동건
(2006)
최정
(2007~)
SK 와이번스 등번호 5번
김태균
(2005~2006)
김동건
(2007~2009)
최윤석
(2010)
NC 다이노스 등번호 6번
팀 창단 김동건
(2012~2013)
강민국
(2014~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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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엔씨김동건.jpg
김동건
金東建
출생 1982년 3월 7일 ([age(1982-03-07)]세)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학력 성동초 - 잠신중 - 춘천고[1]
포지션 유격수, 3루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 입단 2001년 2차 1라운드 (전체 3번, SK)
소속팀 SK 와이번스 (2001~2009)
NC 다이노스 (2012~2013)
지도자 경찰 야구단 수비코치 (2014~2019)
장안고등학교 야구부 코치 (2020~)

1. 개요2. 선수 경력
2.1. 아마추어 시절2.2. SK 와이번스 시절2.3. NC 다이노스 시절
3. 지도자 경력4. 여담5.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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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SK 와이번스, NC 다이노스 소속의 내야수. 前 경찰 야구단 수비코치.

NC 다이노스의 초대 주장이자 NC 다이노스 역사상 첫 백투백 홈런을 친 선수이기도 하다.[2]

2. 선수 경력

2.1. 아마추어 시절

휘문고등학교 재학 시절 춘천고등학교로 옮겨간 이명섭 감독을 따라 전학해 팀의 돌풍을 이끌었고, 1999년 청룡기 전국고교야구대회에서 준우승을 한적이있다.[3] 청소년 대표로 캐나다 에드먼턴에서 열렸던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4]에서 우승을 맛본, 2001학번(1982년생) 중에서 가장 촉망받는 유망주 중 한 선수였다.

2.2. SK 와이번스 시절

파일:external/www.sksports.net/Large_2001061123141775996_150.jpg
창단 특례로 2차 1번 지명을 선수 3명에게 할 수 있었던 SK 와이번스가 2차 1순위에서 김희걸, 조형식[5]과 함께 그를 지명했다. 그러나 이 선택은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사상 최악의 선택 중 하나라고 평가할 수 있는데,[6] 김희걸, 조형식, 김동건이 불려나간 다음에 롯데 자이언츠가 2차 1순위로 지명한 선수는 조선의 4번 타자다.[7][8][9]

결론적으로 김동건은 SK 와이번스에서 망했다. 정근우보다 포텐이 많았으나 게으른 천재라는 김성근 감독의 지적이 많았다. 결국 정체된 발전으로 인해 최정 나주환에게 3루수, 유격수 자리를 뺏긴 후 백업의 백업으로 밀렸고, 결국 2009년 시즌 후 SK에서 방출되었다. 그래도 2007년 한국시리즈 엔트리에 들어 우승반지 하나를 챙기긴 했다.[10]

2.3. NC 다이노스 시절

SK에서 방출된 후 한동안 야구와 인연을 맺지 못하다가[11] NC 다이노스 창단 트라이아웃에 합격하며 극적으로 다시 프로 생활을 이어갈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2012년 7월 이후 부상으로 경기 출전을 하지 못했고 2013년 시즌을 앞두고 실시하는 해외 전지훈련에서도 제외되었다. 2013 시즌에는 초반에 잠시 출전하다가, 주장 자리를 이호준에게 넘기고 2군으로 내려간 상황. 결국 다시 1군으로 올라오지 못했고 시즌 종료 후 NC에서 방출당했다. 그래도 팀의 창단 첫 백투백 홈런을 친 선수라는 기록을 남기고 은퇴했다.(4월 5일 vs 삼성 라이온즈전 9회 허준 - 김동건)

3. 지도자 경력

방출된 후 경찰 야구단 코치를 해체 직전까지 맡았다. 2020년에 장안고 코치로 합류했다.

4. 여담

  • SK 소속이었던 2008년에 2군에서 사이클링 히트를 기록한적이 있다.
  • NC 다이노스 갤러리에서는 엔잘알과 엔알못을 가르는 기준으로 가끔씩 언급되고 있다. 팀의 초대 주장이 누구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김동건이라 답하면 엔잘알이고, 이호준이라 답하면 뉴비나 엔 알못으로 거르는 식. NC팬인것부터가 뉴비인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

5. 관련 문서


[1] 휘문고에서 전학 [2] 2013년 4월 5일 vs 삼성 라이온즈전 9회 허준 - 김동건 [3] 우승팀은 대구상고였으며 3학년 장준관 - 2학년 이정호 원투펀치가 마운드를 지켰다. 2000년 청룡기 결승에서 대구상고는 대회 2연패에 도전했으나 혜성처럼 등장한 김주철의 성남고에 패했다. [4] 추신수, 이대호, 김태균, 이동현, 정근우, 이정호, 김주철, 조영훈, 조중근 등이 포진했으며 미국과의 결승전에서 연장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박명옥(속초상고)의 결승타로 우승을 차지했다. [5] 야구 무명교인 속초상고의 투수였으며 조영훈과 함께 팀을 이끌며 2000년 돌풍을 일으켰다. 데뷔시즌은 2001년에는 1군에 모습을 드러내지 못했고 2002년, 2005년, 2006년 3시즌을 1군에서 보내는 동안 단 1승도 거두지 못하고 2007년 11월에 방출됐다. [6] 다만, 이 선택을 제외하면, 나머지 선택은 그야말로 신의 한 수였다. 이 때 뽑은 선수들이 김강민, 채병용, 박재상이고, 이후 트레이드로 SK를 떠났지만 박준서 조중근도 이 때 SK가 지명한 선수들이다. 그런데 제일 중요한 2차 1순위를 망쳤으니(...) [7] 이대호가 1차 지명이 되지 못한 이유는 메이저리그에 있는 어느 한국인 타자에게 1차 지명권을 썼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롯데 자이언츠 추신수의 계약에 실패하여 지명권을 날리면서, 사실상 이대호가 선순위로 지명받아 롯데에 입단하게 된다. [8] 근데 이때 이대호는 당시 고졸 선수 중에 못 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김동건은 청대 주전 유격수라는 점이었다. 이대호가 SK 와서 타자 전향해서 잘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9] 그리고 2007년 추신수는 해외파 우선지명에 SK 와이번스가 지명하면서 3명은 묘한 인연이 생겼다.그런데 추신수 광저우에서 병역특례를 받았다 [10] 참고로 김동건의 2007년 성적은 10타수 무안타 1득점.... [11] 그 사이 2011년 야구 영화의 붐이 일었을 때, "글러브"나 "완득이"의 야구 영화에서 야구 지도를 하기는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