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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紀信(? ~ 기원전 204년)
상고 진말한초 중국의 인물. 한고제 유방 휘하의 장수. 유방의 신하 기성(紀成)과 동일인물로 보기도 하나 아닌 쪽이 유력하다.
2. 생애
홍문연에서 빠져나온 유방이 장량에게 사후수습을 맡기고 말을 타고 도망칠 때 기신은 번쾌, 하후영, 근강(靳彊)과 함께 칼과 방패를 들고 걸어서 함께 도망쳤다.항우의 군세가 유방이 있는 형양성을 포위한 데다가 식량 고갈로 성이 함락될 위기에 처하자 자신이 유방으로 위장하여 항우에게 거짓 항복하는 사이 진짜 유방은 성을 탈출할 것을 진언했고, 그 책략 수행을 직접 맡았다. 유방은 병력들을 여군으로 해서 기신에게 부하로 배정하라는 진평의 조언에 의해 밤중에 형양성 동문으로 2천 명의 여자들을 무장시켜 여군으로 만들어서 내보냈는데 초나라 군대는 그녀들을 공격했다.[1] 이 사이 기신은 유방의 수레를 타고 나가 "성 안의 양식이 바닥나서 이제 항복한다!"라고 외치자 초군은 만세를 불렀다. 이 틈에 유방은 수십 기와 함께 성 서문을 탈출하여 성고로 도망쳤다.
가짜 유방의 정체를 알고 화가 난 항우는 기신에게 한왕이 어디 있느냐고 묻자 기신은 "우리 왕께서는 이미 도망치셨소!"라고 대답했다. 그 직후 대노한 항우에게 화형당해 죽고 말았다.[2] 그리고 그가 지휘하던 여군 2천 명은 항우의 부하 병력들이 겁탈했다.[3] 항우와 유방의 작가 시바 료타로는 자신을 위해 죽어줄 수 있는 사람까지도 생길 정도의 매력 덕분에 유방은 이길 수 있었다고 해설했다. 근데 사실 유방의 매력도 매력이지만 항우가 굉장히 문제가 많은 폭군이라서 그런 게 크다.일단 이것만 봐도 조조 같으면 관우처럼 아예 살려주거나, 진궁같이 굳이 죽이더라도 예의 정도는 차리면서 죽이고 후대해줄 걸 굳이 분폴이로 태워 끔살시켜버려 불필요한 어그로만 잔뜩 끌었다는 데서 안드로메다로 가버린 항우의 막장 인성과 처세성을 볼 수 있다.
나중에 항우는 기신의 친구인 주가 등을 회유하려 했다가 "내 친구 기신이 죽어가며 선비가 무엇인지 보여줬거늘 또 헛수고를 하는구나, 그따위 정신머리로 천하를 다투려고 하느냐? 그냥 지금 당장 한왕께 항복해라!"라고 욕을 먹고 망신만 당하자 선비라는 집단 자체에 치를 떨며 " 시황제 그놈이 왜 그렇게 기를 쓰고 네놈들을 파묻어댔는지 이제야 알겠다."며 2차 분서갱유에 대한 의지를 드러내어 막장 인성을 다시 인증하기도 했다.[4]
3. 평가
고려의 문인 이곡(李穀, 1298년 ~ 1351년)은 그를 혜소와 더불어 '자신을 돌보지 않고 의를 따른 용감한 자'로 찬미했다.다만 자신을 대신해 죽음을 당한 기신에 대해 유방은 그의 가족을 돌봐주면서도 별다른 녹훈이나 포상을 해준 것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인지 조선 시대의 문인 장유는 한조불록기신론이란 글을 지어 "그때 기신이 없었으면 유방은 온전하게 몸을 지킬 수도 없었고 휘하에 장량이나 진평, 한신, 경포 같은 인재가 아무리 많았어도 천하를 얻을 수도 없었을 텐데 자신을 위해 대신 죽어준 사람한테 그게 할 대접이냐? 개고생은 있는 대로 다 시켜 놓고 운이 좋아서 황제까지 되고 잘 나가게 되니까 이제 와서 그 때 일을 갖고 포상하자니 그 때 자기가 너무 못나보이겠다 싶어서 일부러 숨긴 거 아니냐? 한의 신하들은 어째서 기신에 대해서 유방에게 그를 포상해야 한다고 한 마디도 하지 않았느냐?" 라며 가루가 되도록 깠다.
하지만 현대의 관점에서 드러난 유방의 성격을 생각하면 일부러 감췄을 가능성은 매우 희박해서 설득력있는 비판은 아니기에, 공훈을 내리고 싶어도 기신의 연고가 없었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본인이 죽었으면 아들[5]이나 하다못해 어머니[6] 등 가족 친척에게 작위를 주지 본인에게는 작위를 주지 않는 고제의 공신 목록을 보면, 그냥 일족이 없었기 때문에 작위를 못 받은 것일지도 모른다. 실제 형양에서 같이 죽은 주가는 이때의 희생을 인정해 아들 주성을 고경후로 임명해 주었다. 즉 기신은 정말 가족이 없었을 가능성이 높고, 그게 맞다면 안타깝기도 하고, 말 그대로 이렇게까지 해서 죽더라도 유방에게 아무것도 받을 수 없었던 입장인데도 목숨을 바치고 나선 것이니 그야말로 무서울 정도의 충성심이다.
정작 자기도 진짜로 잊혀진 종공에 대해선 언급도 안한다. 기신이 화형된 후 주가와 함께 형양에 남아서 항우를 막다가 붙잡혀서 사형당한 인물이다. 그나마 기신은 인상적인 일화가 전해지며 주가는 공신연표에 오르고 아들은 후에 봉해졌는데 종공은 언급이 없었다.
4. 기타
- 기신의 이 일화는 병법 삼십육계 중 금선탈각(金蟬脫殼, 매미가 허물을 벗듯 위기를 모면하다)의 모범사례(?)로 자주 인용된다.
- 후삼국시대 후백제 견훤과의 공산 전투에서 크게 패하여 위기에 빠진 고려 태조 왕건을 탈출시키기 위해 신숭겸이 왕건의 옷을 입고 후위를 맡아 왕건을 도망치게 하고 전사한 것은 바로 이 기신의 일화에서 차용한 것이다. 다만 죽어서 큰 대접을 받지 못한 기신과는 달리, 신숭겸은 잘려나간 목 대신 황금으로 된 머리를 깎아 만들어 왕건 자신이 원래 쓰려고 했던 묫자리에 묻혔으며, 장절(莊節)이라는 시호와 함께 훗날 태조의 묘정에 배향공신으로 배향되는 등 공신으로써의 모든 영예를 크게 누렸다. < 태조 왕건> 160화에서 언급된다.
5. 대중매체에서
- 2012년 중국 드라마 < 초한전기>에서는 망탕산 시절부터 유방을 따른 고참병으로 등장. 잊을만 하면 한번씩 얼굴을 비춘다. 선두에서 적진에 돌격하길 마다 않는 용사지만 매사 불평불만이 많고 이를 직설적으로 드러내는 통에 진급을 못해 일개 보졸에 머무른다. 형양성 사수를 맡게되는 주가와는 절친한 친구 사이. 형양에 포위되어 고생하는 와중에 진평 앞에서 진평 욕을하다 진평 눈에 들어 기만작전에 투입된다. 계속되는 전투속에 하나둘씩 스러져간 패현 출신 형제들을 늘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고 유방앞에 나아가 그들의 죽음을 헛되어 하지 말아줄 것을 거듭 당부하곤 당당하게 사지로 걸어들어간다. 유방은 죽기 직전( 영포의 난 진압 이후)까지 그를 잊지 않고 그의 가솔을 찾아 보상을 하려 했으나, 막상 패현에선 그의 인척은 고사하고 그를 아는 사람조차 찾을 수 없어[7] 보상을 하지 못할 처지가 되자, 하다못해 기신의 친구나 이웃이라도 찾아서 데려오면 그에게 상을 내리고 평생 편하게 살게 해준다고 선언한다.
- 2004년 홍콩 드라마 <초한교웅(楚漢驕雄)>에서도 나오는데, " 초나라 사람은 목후이관이구나"라고 말해서 항우가 분노해서 죽이라는 명을 내렸는데, 기신은 끌려 나가면서도 목후이관이라 깠다. 그런데 유방도 초나라 사람이고, 유방의 고향 이웃인 기신도 초나라 사람이다. 어쩌면 한국인이 헬조선 개드립치는거랑 비슷한걸지도.
- 요코야마 미츠테루의 < 항우와 유방>에서는 유방과 닮은 장수를 뽑겠다는 말에 여러 장수들이 자원했지만 그 중 가장 닮은 기신이 선택된 것으로 나오는데, 전혀 닮지 않았다. 미츠테루의 캐릭터들 중 광대뼈가 돌출된 형상의 캐릭터로, 같은 작가 요코야마 미츠테루 삼국지의 유비를 복붙한 얼굴의 유방과는 아예 접점이 없는 얼굴인데 작중에서는 닮았다고 한다.
- < 고우영 초한지>에서는 유방과 비슷한 외모로 나온다. 유방과 다른 부하들이 기신에게 최고의 충신이라고 한껏 띄워주며 설득하고, 결국 여기에 넘어간 기신이 미끼를 자처한다. 유방은 기신의 가족에게 후한 보상을 약속하는데, 그 와중에도 속으론 '그나마 가족 수가 적어서 다행이네.'라며 안도하는 치졸한 모습으로 묘사한다.
- < 문정후 초한지>에서는 요코야마 미츠테루 작품처럼 광대뼈가 도드라지는 인상으로 등장, 대신 수염이나 눈가가 그나마 비슷하여 옷차림을 가꾸고 멀리서 보면 분간이 힘든 정도로 묘사했다. 거짓 항복 당시 여자들을 무장시킨 것이 아니라, 아리따운 궁녀들을 먼저 항우한테 보내며 병졸들의 시선을 돌려놓은 뒤, 마지막에 가마를 타고 나와 유방은 이미 떠났다며 항우를 비웃는다. 항우가 빡쳐하는 와중에도 "나랑 실랑이하며 허송세월했으니 팽월과 한신에게 팽성이 떨어졌을 것이다"라며 도발을 멈추지 않았고, 불에 태워죽이는 순간까지도 웃음을 그치지 않았다고 하니... 한편, 유방은 사전에 이 계책을 듣지 못한 채 움직인 탓에 후일 이 사실을 전해 듣고 크게 슬퍼하며, 짐이 알았다면 허락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분노한다. 그래서 안 알려드렸습니다라며 오명을 대신 뒤집어쓰는 진평이 압권.
[1]
여자 2천을 병사로 꾸미게 한 건
진평이 생각한 계책.
[2]
일설에는 항우는 화가 나기는 했지만 주군을 위해서 목숨을 버릴 각오를 한 기신을 높이 평가하여 관직을 주고 중용하려 했으나 기신은 이를 거절하고 항우를 욕하다 죽었다고도 한다. 이는 야사에 따르면 기신은 평소에도
지위고하를 가리지 않고 욕지거리를 하기 좋아하는 사람이었는데, 이를 증명하듯 불에 몸이 타면서도 항우를 끝까지 비웃다가 죽었으며, 그 광경을 보던 초나라 병사들은 물론이고 항우조차 "대체 유방의 어디가 그렇게도 잘났기에 저렇게 목숨을 내다버리면서까지 충성을 바친단 말인가" 하면서 감탄을 했다고 한다.
[3]
다른
초한지에서는
궁녀들을 성밖으로 내보내 초군의 시선을 모두 끈 다음, 텅 빈 포위망을 뚫고 유방이 탈출했다고도 한다.
[4]
사실 이미 항우는
함양을 불태우고
약탈하면서 그곳에 있던 책들은 죄다 태워먹었기 때문에 분서갱유 중 분서는 진작에 실행한 지 오래였다.
[5]
역이기의 아들
역개나, 바로 이 기신과의 동일인물 의혹이 있는 기성의 아들
기통. 다만 장유는 기신과 기성이 동일인물이라는 설을 부정했다.
[6]
해연의 어머니 자.
[7]
얼마나 아는 사람이 없으면, 기신이 같은 패현 사람이 아니라는 루머까지 언급된다. 유방이 화를 내며 바로 부정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