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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프로스 5+1 회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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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프로스 5+1 회담 |
그리스 | 키프로스 |
1. 개요
그리스와 키프로스의 관계. 그리스와 키프로스는 고대부터 관계가 깊었고 현재에도 양국은 매우 우호적이다. 특히 언어, 문화, 종교적으로 매우 가까운 수준을 넘어서 사실상 동일하다고 볼 수 있다.[1]2. 역사적 관계
2.1. 고대
고대 이래 키프로스 섬은 그리스 반도에 구리를 수출, 공급하는 섬으로 명망이 높았다. 크레타 섬의 미노아 문명와 키프로스의 고대 문명은 청동기 시대부터 서로 활발하게 교역하던 입장이었다.기원전 8~7세기 무렵부터 고대 그리스 세계의 그리스인들은 지중해 동부 연안과 흑해 각지에 폴리스들을 건설하기 시작하였다. 아나톨리아 서부( 이오니아) 키프로스, 이탈리아 남부, 발칸반도, 흑해 연안에 그리스어를 사용하는 도시들이 들어섰다. 키프로스 지역에도 그리스인들의 도시 국가가 세워졌고 양 지역은 여러차례 교역이 활발했다. 문화적으로도 매우 가까웠다.
훗날 고대 로마가 그리스 반도와 이오니아 그리고 키프로스 섬을 모두 정복했다. 로마 제국 동부에서는 그리스 문화 및 그리스어의 영향이 매우 컸기 때문에, 정복 이후에도 현지 그리스계 주민들은 그리스어와 그리스-헬레니즘 문화를 그대로 보전할 수 있었다. 서기 3세기 이 지역은 기독교로 개종하기 시작했으며, 4~5세기 로마 제국이 동서로 분열되는 과정에서 양 지역은 모두 동로마 제국 영토에 속하게 되었다.
2.2. 중세
로마 제국이 동로마 제국과 서로마 제국으로 나뉘어질 때, 그리스 반도와 키프로스 섬은 동로마 제국의 영토가 되었다. 동로마 제국때에도 그리스 문화와 그리스어가 널리 쓰이고 있었지만, 동로마 제국이 슬라브족의 침략으로 그리스 반도를 잠시 상실한 시점에서. 7세기 후반에 아랍인들에 의해 북아프리카 지역의 영토를 빼앗기면서 동로마 제국이 크게 위기를 겪었다. 서기 7세기부터 10세기까지 동로마 제국와 압바스 칼리파조는 키프로스를 공동 통치하였다. 동로마 제국의 중흥기 당시 동로마 제국이 키프로스 섬을 온전히 재정복하는가 싶더니 십자군 운동이 일어나면서 동로마 제국의 영토였던 키프로스 섬 영토를 강탈한다. 이후 그리스 반도에는 카탈루냐 용병들이 동로마 제국으로부터 반란을 일으킨 후 독자 세력을 이루기도 했다.2.3. 근세
동로마 제국이 오스만 제국에 의해 정복당하는 과정에서 그리스 반도 역시 오스만 제국의 영토가 되었으며 베네치아 공화국의 영향 하에 있던 키프로스 섬도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았다. 키프로스 외에도 그리스 반도 각지에 식민지를 두고 있던 베네치아 공화국은 종종 그리스 반도 내 여러 도시들과 섬들을 탈환하기도 했으나, 결국은 오스만 제국 측이 그리스 반도의 여러 요지들을 재탈환하였다. 오스만 제국과 베네치아 사이의 전쟁과 교역이 반복되는 과정에서 그리스 반도와 키프로스 섬 모두 양측으로부터 상당히 많은 영향을 받게 되었다.오스만 제국의 지배 하에서 밀레트 제도가 시행되고 정교회를 믿던 그리스인들은 종교의 자유를 일부 보장받았다. 키프로스 지역도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으면서 영향도 같이 받았다. 하지만 그리스인들은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으면서 차별받는 경우도 있었다.
2.4. 19세기
19세기에 이르면서 오스만 제국은 쇠퇴하고 그리스는 왕국으로 독립했다. 그리스는 왕국으로 독립한 뒤에 영토를 크게 확장시켰다. 키프로스 지역은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고 있었지만, 훗날 영국의 지배를 받았다.2.5. 20세기
20세기에 들어서면서 그리스와 영국령 키프로스 지역간의 교류도 생겼다. 영국의 지배하에서 키프로스도 독립을 하게 되었고, 독립 직후 양국의 합병에 대한 논의도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그러나 키프로스내 그리스계와 튀르키예계간의 갈등이 심하되었고, 그리스 군사정권의 지원을 받은 키프로스군의 일부 친그리스 장교들이 1974년 키프로스 쿠데타를 일으켜 두 민족 사이의 분쟁을 조정하던 마카리오스 3세 대통령을 몰아내고 그리스계 니코스 삼프손을 대통령에 옹립했다. 쿠데타 이후 튀르키예가 개입해 키프로스 전쟁이 발발하면서 튀르키예군은 키프로스 북부를 점령하고 북키프로스를 독립시켰다. 이에 그리스와 키프로스 양국은 반발했고, 튀르키예를 견제하기 시작했다.2.6. 21세기
현대에 양국은 언어, 종교, 문화 등에서 매우 가깝다. 그리스에서도 키프로스와의 교역과 교류가 많은 편이다. 키프로스도 튀르키예를 견제하기 위해 그리스와 손을 잡고 협력하고 있다. 그리스와 키프로스를 잇는 노선이 자주 있다.양국은 유럽연합, 프랑코포니 회원국들이고 그리스어가 공용어이다.[2] 그리고 유로를 공식 화폐로 같이 쓰고 있다.
3. 문화 교류
그리스와 키프로스는 동로마 제국시절부터 정교회를 믿고 있다. 양국의 정교회 비중은 매우 높다. 키프로스의 그리스어는 키프로스의 터키어와 마찬가지로 그리스 본토의 표현이나 발음에서 차이가 있는 편이다. 정교회를 믿고 있고 그리스어를 같이 쓰고 있다보니 그리스와 키프로스는 통합을 추진하려고 했던 적도 있었지만, 무산되기도 했다.4. 관련 문서
- 그리스/외교
- 키프로스/외교
- 그리스/문화
- 키프로스/문화
- 그리스/역사
- 키프로스/역사
- 그리스인 / 키프로스인
- 그리스어 / 그리스 정교회
- 그리스-튀르키예-키프로스 관계
- 대국관계일람/유럽 국가/남유럽 국가
[1]
심지어
국가(國歌)도 같다.
[2]
다만, 북키프로스 지역은 유럽연합에 소속되어 있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