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6:11:04

그룹 B

당시 그룹 B가 어떤 경기였는지[1]광기의 레이스라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다.] 요약해서 보여주고 있는 영상

Group B Class (Gr. B)

1. 개요2. 역사
2.1. 시작, 광기에 물들었던 랠리의 황금기2.2. 참사, 그리고 이른 종말2.3. 이후
3. 여담4.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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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WRC는 애들 장난이고, 그룹 B는 사나이들의 경기였다.
(WRC is for boys. Group B was for men.)

유하 칸쿠넨[2]
The Age of the Supercar[3]

그룹 B는 1982년 FISA에 의해 출범된 모터스포츠 카테고리로, 당시 존재하고 있던 그룹 3(그랜드 투어러)와 그룹 6(스포츠카)를 대체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시중에 판매되는 2도어 스포츠카들이 경쟁하는 GT 클래스로, 양산차 기반 중에서는 가장 빠른 카테고리였으나 1986년을 끝으로 5년 만에 사라져 단명한 클래스다.[4] 그러나 랠리계에서는 그 짧고 굵은 역사와 특유의 마초적인 면, 레트로를 대표하는 1980년대의 시대상으로 인해 시대의 아이콘이 되어 지금까지도 WRC의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클래스이기도 하다.

2. 역사

2.1. 시작, 광기에 물들었던 랠리의 황금기

70년대에서 80년대 초까지 WRC에는 그룹 4, 그룹 2, 그룹 1이라는 세 가지 클래스가 있었고, 그중 최고봉이었던 그룹 4는 400대만 양산하면 호몰로게이션 취득이 가능했다. 특히 당시 우승을 휩쓸던 란치아 스트라토스는 이전의 랠리카와는 전혀 다른 모습의 차체에 6기통 페라리 엔진을 탑재하여 랠리계를 독점하였으며 기술이 발전해감에 따라 메이커들은 개조 규정을 더 풀어주기를 원했다.

1970년대 후반 모터스포츠의 침체기를 겪으며 개혁 필요성을 느낀 FISA 역시 스포츠카 레이싱과 랠리에 더 많은 메이커의 참전과 더 박진감 넘치고 재미있는 경기를 위해 1982년 숫자로 나눠져 있던 모터스포츠 그룹을 알파벳으로 개편하여 그룹 A, B, C를 신설했다. 알파벳이 뒤로 갈수록 출력도 크고, 베이스도 좋고, 개조 범위도 넓었다. 그룹 B는 양산차 계열에서는 가장 강력한 클래스였는데 4인승이어야 하는 그룹 A와는 달리 2인승도 허용되었고, 연산 200대만 되면 호몰로게이션 취득이 가능했고, 차량 개조에 거의 제한을 두지 않은 상황이었다[5][6]. 해당 차들은 1982년 월드 랠리 챔피언십에 도입되었고, 이듬해 1983년에는 온로드 레이스인 유러피언 인듀어런스 챔피언십과 월드 스포츠카 챔피언십에도 도입되었다.

특유의 널널한 규정 때문에 공차중량 1톤 미만의 차체에 500마력[7][8]을 넘나드는 출력의 엔진을 가진 괴물들[9]이 레이스에 투입되었는데, 포장도로보다 접지력이 훨씬 떨어지는 비포장도로에서도 약 200 km/h의 속력과 제로백 3초 혹은 그 미만[10]의 가속력이라는 무시무시한 성능을 보였다. 서킷이라면 폭도 넓은데다 코너가 비교적 크고, 도로 노면도 좋아서 고출력을 감당해 낼 수 있으나, 울퉁불퉁한 노면에 길도 좁은 랠리의 그래블 코스는 말할 것도 없고 타막 코스조차 온로드 레이스 기준으로는 절망적인 노면의 공공도로였기 때문에 드라이버에게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컨트롤을 요구하는 그야말로 미친 차량들의 시대가 열려버렸다.
출력이 과한데.
(So much Power.)
유하 칸쿠넨

이런 클래스가 들어서자 랠리의 황금기가 열렸다. 이 시대를 말하는 사람들은 드라이버와 참가팀은 물론이고, 주최자와 관중들까지 모두가 미쳐 있었던 시대라고 한다.

그때 갤러리들은 안전의식이 전혀 없어서, 뒤가 미친듯이 흔들리는 차들을 손 뻗으면 닿을 거리까지 근접해서 구경했다. 차가 오면 다가가는 것이 아니라 주요 길목을 사람들이 가득 메우고 있다가 차가 오면 좌우로 벌어져서 차가 겨우 지나갈 틈을 만들어 주는 것이었다. 레이서들 또한 사람 사이를 속도를 전혀 줄이지 않고 질주했다. 독일의 전설적인 드라이버 발터 뢰를[11]의 신들린 주행을 찍은 온보드 캠이 유명하다. 한번 보자. 물론 레이서들도 부담감을 느끼지 않은 것은 아니다. 사실 당시에도 미디어와 팬들 사이에서 그룹 B의 오버파워에 대한 우려가 많았고, 그러한 우려의 가장 큰 대변인이 바로 드라이버들이었다. 드라이버들은 까딱하면 살인자가 될 수도 있는 경기 환경에 대해 불만을 표했고, 경기를 치른 후 땀을 미친듯이 흘린다거나 심하면 두통을 호소하는 등 극도에 긴장감에 고통받는 경우가 많았다. 포인트는 그렇게 문제가 꾸준히 제기됐음에도 불구하고 관중들과 주최자는 물론이고 드라이버들 스스로도 그룹 B의 강렬한 매력에 빠져 문제점을 외면해 경기를 계속 강행했다는 점.[12]

WRC 최초의 풀타임 4WD 차량 아우디 콰트로의 그룹 B 사양이 투입되며 그룹 B 역사의 초반부는 후륜구동과 사륜구동의 대결로 전개됐다. 1982년 제조사 챔피언은 아우디가 가져갔으나 후륜구동의 오펠 아스코나를 탄 발터 뢸의 활약으로 드라이버 챔피언은 후륜구동 차량의 드라이버가 달성하였다. 1983년 미드십 후륜구동 레이아웃의 란치아 037이 본격적으로 경쟁력을 발휘하기 시작하며 란치아와 아우디가 본격적으로 챔피언 경쟁을 시작했다. 사륜구동은 콰트로가 그룹 B 이전부터 시도해 왔지만 란치아는 후륜구동을 고수했고, 란치아는 민첩한 기동성을 가졌으나 트랙션이 부족하고 콰트로는 엄청난 트랙션이 있지만 아우디 80의 큰 차체에 5기통 엔진과 사륜구동 시스템을 장착하면서 너무 앞으로 쏠리게 된 무게중심으로 인한 절망적인 타막 기동성을 가지게 되면서 장단점을 양분하게 되었다. 이번엔 전년도와 반대로 제조사 챔피언을 후륜구동의 란치아가 가져갔고 드라이버 챔피언의 자리에는 아우디의 한누 미콜라가 올랐다.

1984년에도 란치아 랠리 037은 계속 참가했으나, 아우디가 콰트로의 프레임에 대규모 개수를 가해서 축간거리를 극단적으로 줄여[13] 타막에서의 강렬한 언더스티어를 개선한 '스포트 콰트로'를 선보이면서 1984 시즌은 아우디가 드라이버와 제조사 챔피언 모두 우승했다. 한편 1984년 시즌 도중에 푸조가 한 사이즈 작은 차체의 205를 기반으로 만든 초경량, 리어 미드십 사륜구동 레이아웃의 푸조 205 T16을 내세워 참가하기 시작해 시즌 후반부를 완전히 장악해 내면서, 후륜구동과 사륜구동 사이의 대결에선 사륜구동이 승리했고 초점은 기동성과 출력, 그리고 그 사이의 밸런스 대결로 옮겨진다. 1985년과 1986년 시즌은 푸조가 지배했다. 포장도로에서는 여전히 후륜구동이 유리하긴 했으나, 그래블에서의 압도적인 차이 때문에 더 이상 후륜구동으로는 승부할 수 없던 란치아는 1986년 시즌부터 037을 대체할 사륜구동의 신모델, 란치아 델타 S4를 선보이기에 이른다.

란치아 델타 S4는 란치아 최초의 풀타임 4WD 랠리카이자 890kg의 공차중량에 터보차저와 슈퍼차저를 동시에 장착한 트윈차저 엔진을 선보이며 저회전은 슈퍼차저가, 고회전은 터보차저가 담당하여 고압 터보차저의 고질적인 문제인 터보랙을 보완하고자 하였다. 아우디는 여기에 맞서 스포트 콰트로에 더욱 공격적인 에어로파츠를 장착한 스포트 콰트로 S1을 투입했고, 푸조 205 T16 또한 '에볼루션 2' 모델이 등장하며 업그레이드됨은 물론 포드 RS200, MG 메트로 6R4, 르노 5 터보, 시트로엥 BX가 나머지 라인업을 장식하게 되며 1986년은 기술적으로 굉장히 진보한 차량들이 참가한 시즌이 되었고, 그것은 차량들이 역사상 가장 강력하고 빠르다는 것을 의미했다.

2.2. 참사, 그리고 이른 종말

무슨 일이라도 일어난다면, 재앙이 될 겁니다.
발터 뢸

그동안 그룹 B에서는 기적적으로 큰 사고가 발생하지 않았으나, 드라이버들에게 있어서 이는 그야말로 폭풍전야였다. 드라이버들은 하나같이 드라이버만 죽는 사고가 일어나면 차라리 다행이고 관중을 덮치는 사고가 일어나면 사람 한두 명 죽는 선에선 안 끝날 거라며 주최 측과 미디어에 입이 닳도록 말하고 다녔다. 일단 랠리 드라이버로서 맡은 바는 충실히 하되 위험에 가장 크게 노출되어 있다 보니 가장 큰 경각심을 가지고 있던 셈. 그렇게 차량이 빨라지기를 거듭하며 모두가 애써 무시하던 문제가 수면 위로 드러났다.

우선 1985년 5월 코르시카 랠리에서 아틸리오 베테가의 랠리 037이 나무에 충돌해 운전석이 크게 훼손되어 코드라이버는 부상조차 없었으나 드라이버는 사망했던 사고가 있었다.[14]. 동년 7월의 아르헨티나 랠리에서 아리 바타넨의 푸조가 약 190 km/h[15]의 속력에서 차량이 튀어올라 세게 굴렀고, 바타넨의 시트 마운팅이 풀리면서 차량이 구르는 동안 드라이버가 차량 안에서 곤두박질치며 코드라이버와 드라이버 모두 목이고 허리고 다리고 다 부러지면서 둘 다 죽을 뻔했으나 기적적으로 생존했던 사고가 있었다. 이외에도 1985년에는 사고들이 상당히 많이 일어나 여러 드라이버들이 죽을 뻔했는데, 특히 경추나 요추 등 굉장히 중요한 뼈들에 손상이 가는 경우가 많았다.

1986년에 이르러 이미 빨랐던 차량들이 더욱 빨라지면서 드라이버들의 능력이 차량의 능력을 따라잡지 못하는 일이 종종 벌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사고의 심각성은 더욱 커지기 시작했는데, 최초의 대형 사고는 1986년 3전 포르투갈 랠리에서 일어났다. 컨트롤을 상실한 호아킴 산투스의 포드 RS200이 슬라이드하던 중 리버스 스티어[16]가 일어나면서 코스에 바짝 붙은 관중들을 향해 돌진해 그대로 덮쳐 3명이 사망하고[17] 31명이 부상을 입는 참사가 벌어진 것.[18] 대부분의 드라이버들은 사고 소식을 듣고는 경기를 포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단 경기는 속행되었고 이때까지는 그대로 시즌이 진행되었다.

그러나 프랑스에서 열린 5라운드, 투르 드 코르스에서 결정적인 사고가 발생한다. 독감에 걸려 정신이 오락가락하던 드라이버 헨리 토이보넨[19]이 랠리를 무리하게 강행하다가 사고로 사망한 것. 당시 란치아 델타 S4는 그룹 B 내에서도 특히 오버 테크놀러지가 집약된 차량이었는데, 1986년 챔피언을 푸조가 차지해서 좀 묻힌 감이 있지만 당시 델타 S4의 페이스는 그야말로 완주만 하면 우승 수준이었다.[20] 그래서 토이보넨은 개막전 몬테 카를로 랠리에서 실로 엄청난 격차로 푸조와 아우디를 따돌리고 우승하였으나, 투르 드 코르스에서 그는 무려 600마력이라는 엄청난 출력을 내도록 세팅된 차량을, 그것도 독감 걸린 상태에서 몰게 되었다. 물론 페이스는 아주 강력했으나 그는 "문제가 생기면 나는 끝장이다"라고 인터뷰에서 말하기도 했을 정도로 차가 과하게 빨라서 크게 우려하고 있었다.

병에 걸렸는데도 랠리에 참가한 토이보넨과 그런 토이보넨에게 강력한 차량을 몰게 한 란치아가 이해되지 않을 수 있는데, 사실 전말은 당시 토이보넨과 란치아의 관계에 있다. 토이보넨은 관중 3명이 사망했던 포르투갈 랠리에서 스스로 경기 속행 포기를 선언한 거의 모든 드라이버들 중 하나였는데, 란치아가 이걸 굉장히 아니꼽게 봤다. 공식적인 문서들에선 단순히 란치아가 '탐탁지 않아 했다' 정도로만 묘사되나, 실상은 분노한 란치아가 "드라이버가 경기를 뛰는지 안 뛰는지는 란치아가 결정하고 일개 피고용인인 드라이버에겐 그것을 결정할 권리가 없으며 토이보넨은 이제부터 단 한 개의 랠리에도 멋대로 결장해서는 안 되고 또 경기를 포기했다가는 그에 맞는 처벌을 할 것이고 급여도 주지 않을 것"이라는 누가 봐도 협박인 편지를 보내기도 하며 토이보넨에게 엄청난 압박을 가했을 정도였다.드라이버 대우가 얼마나 개차반이었을지 보인다

란치아의 다른 드라이버들 또한 경기를 포기했기 때문에 다른 드라이버들에게도 그런 식으로 말했겠지만 당시 토이보넨은 란치아가 크게 기대하고 있던 팀의 리드 드라이버였기 때문에 더욱 심한 압박이 들어갔을 것이다. 물론 토이보넨 또한 드라이버로서의 도리를 지키기 위해 투르 드 코르스를 감행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나, 란치아의 압박이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 결국 그렇게 출전한 토이보넨의 무리하게 세팅된 란치아 델타 S4는 코스를 이탈하며 절벽으로 추락해 숲속으로 굴러떨어져 폭발했고,[21] 토이보넨, 그의 코드라이버[22], 차량 모두가 불에 타버려 시체조차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참극이 벌어졌다. 불이 꺼지고 난 뒤 사고가 일어난 현장에 있던 것은 전소한 차량의 섀시와 롤케이지의 잔해 뿐이었다.

토이보넨의 사고가 발생하자 전부터 그룹 B를 주시하고 있던 FISA의 회장 장마리 발레스트르는 즉시 그룹 B 차량들의 추가적인 개발을 금지했고 1987년부터의 그룹 B의 참가를 금지했다. 이렇게 인간의 능력을 초월해버린 그룹 B는 결국 이 두 건의 사고로 말미암아 1986년 시즌을 마지막으로 랠리에서 퇴출되었고, 그룹 A가 그룹 B의 자리를 대체하게 되었다. 뒤늦게 참가를 결심한 페라리 포르쉐가 만든 그룹 B 경주차인 페라리 GTO 포르쉐 959는 랠리 세계에서 빛을 보지 못했다.

그룹 B의 역사에선 랠리 계열의 위상이 워낙 높다 보니 문서 내내 랠리만 언급됐는데, 서킷 레이싱에서는 어땠냐면 광속으로 망했다. 동시기 나온 그룹 C에 비해서 외관과 속도가 밋밋한 편이었는데다가, 여러 안전규정이 적용되어 디자인된 온로드에서는 랠리에 비해 컨트롤이 단조로운 편이라 별 흥미를 끌지 못했다. 유러피안 인듀어런스 챔피언십은 도입 1년만에 대회가 사라졌고, 월드 스포츠카 챔피언십에서도 엔트리가 썰물같이 빠져나가며 1년만에 카테고리가 폐지되었다. 그나마 르망 24시에서는 1984년 이후라도 출전이 가능했는데 정말 찔끔찔끔 출전했다. 이후 1986년 랠리에서의 그 사고가 터지자 인기도 없는 온로드 그룹 B도 덩달아 퇴출되며, 그룹 B는 알파벳 그룹 중 가장 먼저 사라진 카테고리가 되었으며, 그랜드 투어러 레이싱은 ACO가 르망 그랜드 투어러(LMGT)를 발표하기 전까지 암흑기에 빠졌다.

2.3. 이후

그룹 B가 갑자기 종말하면서 팬들뿐만 아니라 자동차 제조사들에게도 아주 큰 혼란이 빚어졌다. 짧고 굵었던 그룹 B에서 전설을 쓰던 차량들은 갑작스레 없어진 그룹 B를 떠나 낭인이 되어 이곳저곳을 정처없이 떠돌았는데, 그렇게 떠돌면서도 여기저기서 전설적인 족적을 남겼다. 우선 푸조 205 T16은 다름아닌 다카르 랠리에 출전하여 1987, 1988년에 우승했고 아예 여기 잠깐 말뚝을 박아서 푸조 405를 후속 모델로 내세워[23] 1989년과 1990년에도 우승을 거두며 4연승 신화를 썼다. 파익스 피크에서도 마찬가지였는데, 1987년에 2, 3, 4위를 휩쓸었고 이듬해부터 405로 기존 기록을 경신하며 2년 연속 우승을 거뒀다. 이후 푸조는 푸조 208 기반의 차량으로 세바스티앙 로브와 함께 다시 한 번 기록을 크게 앞당기기도 했다.

한편 1987 파익스 피크 힐클라임에서 우승한 차량은 다름아닌 아우디 콰트로였다. 사실 아우디는 그룹 B 해산 이전부터 파익스 피크에 참가 중이었는데 1985년엔 아우디를 대표하는 드라이버 중 한명이었던 미셸 무통이, 1986년에는 미국인 바비 언저가, 1987년에는 발터 뢸이 우승하여 3연승을 달성하였다. 파익스 피크 출전 사양의 그룹 B들은 엔진 출력을 쥐어짜내 600마력을 돌파하는 엄청난 고출력이었다. 한편 205, 델타, 콰트로, 메트로, RS200 등 매우 많은 차량들이 귀한 차 망가지게 랠리크로스로 이동해서 서로 치고박고 싸우기도(...) 했는데, 현재의 랠리크로스와 결이 상당히 비슷하다.

원래 그룹 B에 새롭게 등장할 예정이었으나 갑작스러운 개최 중지로 등장하지 못한 차량들도 있다. 대표적으로 상술된 페라리 288 GTO 포르쉐 959가 있다. 당대 최고의 양산 슈퍼카였던 이 차량들은 본래 그룹 B에 출전할 목적으로 개발된 차량들로, 페라리 GTO는 그냥 그대로 양산화되었고, 얼마 뒤 페라리 F40으로 진화한다. 포르쉐 959의 경우 다카르 랠리에 참가해서 2년 연속으로 우승까지 하며 칼을 갈고 있었는데 그룹 B가 없어져 버려 이쪽도 완전 양산차로 노선이 바뀌었다. 이런 배경 덕에 두 차량 모두 1980년대 최고의 하이엔드 양산 슈퍼카로 여겨지게 되었다.

여담이지만 그룹 B의 관뚜껑에 못질을 해버린 란치아 델타 S4는 총 20대만 만들어졌으며 현재는 10대 정도 남아있다고 추정된다. 그룹 A의 규정에 맞추어 성능을 다운시킨 란치아 델타 HF 인테그랄레를 만들어[24] WRC 그룹 A 클래스로 출전시켰는데, 란치아 델타 HF 인테그랄레는 87년부터 내리 6년동안 WRC를 제패하며 델타 S4와 다른 의미에서 전설이 되어버렸다.

FIA 또한 사고 이전에도 그룹 B의 위험성을 알고는 있었는지 300마력의 출력 제한을 거는 대신 혁신성을 강화한 그룹 S를 준비하고 있었다. 호몰로게이션 생산대수는 10대로 훨씬 낮아져 진짜 프로토타입 수준의 랠리카들이 등장할 예정이었다. 시대 또한 1990년대로 접어들고 있었기에 그룹 S는 그룹 B 랠리카들에 비해 서스펜션이나 트랙션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할 예정이었지만 그룹 B가 비극으로 끝나면서 FIA는 그룹 S의 출범을 성급하게 취소해버렸고, 그룹 S의 초도 생산 차량들은 모두 창고 안에서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제조사들이 그룹 B 폐지 전에 그룹 S용 시제품을 만들어 보기도 했기 때문인데, 이런 차량들 중에서는 'ECV'라는 이름의 더욱 향상된 퍼포먼스의 란치아 델타 S4나 미드십 엔진 콰트로 등의 걸출한 물건들이 있었다. 일부 차량들은 현재는 각종 행사에서 이따금씩 데모런을 한다고. 그룹 S는 그룹 B에 비해 출력은 낮았지만 양산차를 껍데기만 남기고 마개조하는 기존 랠리카 제작 방식에서 벗어나[25] 처음부터 랠리만을 위해 만들어진 사실상 프로토타입의 섀시로 디자인되었고 최후기형 아우디 스포트 콰트로에 버금가는 과격한 에어로 패키지가 특징이었다. 취지를 보면 현재의 WRC가 지향하는 바와 상당히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3. 여담

그룹 B는 오일 쇼크로 인해 무너져 있던 모터스포츠의 인기와 힘들던 지구촌의 경제 사정이 1980년대에 들어서며 복구되기 시작하고, 그러면서 다시금 강력한 모터스포츠를 원하게 된 팬들의 니즈를 정확히 충족시키는 데에 성공해 모터스포츠가 역대 최고의 인기를 구가했던 시대를 함께하며 랠리의 황금기를 장식한 클래스였다. 사실 당시까지 모터스포츠가 성행한 시장은 큰 분류로 유럽, 미국, 일본으로 나눌 수 있었는데 셋 다 내수 모터스포츠가 탄탄하다 보니 F1이든 WRC든 WSC든 1980년대가 되기 전까진 '유럽 지역 리그'로서의 성향과 이미지가 상당히 남아 있었다. 1980년대에 세 시리즈 모두 최고의 성능을 가진 차가 멋드러진 리버리를 두르고 시원한 속도로 질주한다라는 점을 위시해 흥행 대박을 터뜨리면서 유럽에서 시작한 메이저 모터스포츠들은 비로소 전세계에게서 무한한 선망을 받는 온전한 글로벌 경기로서 성장할 수 있었고, 그룹 B는 그 주역들 중 하나였다.

특별한 드라이버들이 그룹 B 시대에 많이 포진해 있다는 점도 특유의 매력을 가중시키는 요인 중 하나다. 물론 콜린 맥레이라든지 토미 매키넨 등의 드라이버들이 인지도는 훨씬 높지만, 그룹 B는 참가 팀들 자체가 아주 많았다 보니 괴짜 드라이버 발터 뢸, 자동차와 거리가 멀었으나 랠리 챔피언이 된 아리 바타넨, 성공적인 여성 드라이버인 미셸 무통 등 개성적인 성격과 배경을 가진 드라이버들이 굉장히 많이 등장할 수 있었다. 또 핀란드인 드라이버들이 주류가 되기도 한 시기로, 소위 말하는 '플라잉 핀' 드라이버들이 그룹 B 시기에 많이 몰려 있다. 1980년대 중반은 스칸디나비아 출신의 드라이버들이 지배했다고 보아도 무방할 정도. 또 이런 드라이버들이 격돌하면서도 서로에게 경의를 표하며 기사도 넘치는 싸움을 한 랠리 특유의 매력이 돋보이기도 했다.

문제점도 많았지만 그룹 B가 가졌던 매력은 그것을 덮고도 남을 만큼 거대했으며, 비극으로 끝났지만 아직까지도 최고의 시기로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있다. 또 WRC를 비롯한 각종 랠리 경기들에 대기업의 제조사 차원에서의 참전을 주류로 만들어 모터스포츠의 대중화에 기여하거나 콰트로를 필두로 사륜구동 시스템이 자동차계에 정착하게 되는 기술적 원동력이 되기도 하며 이후의 자동차 역사에도 광범위하고 깊은 영향을 끼쳤다. 그룹 B의 메인스트림을 장식한 명차들이었던 아우디 콰트로 푸조 205 T16, 란치아 델타 S4는 지금도 스타일 아이콘으로서 소비되고 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으며, 이후로도 그룹 A와 WR, 랠리1 등 많은 매력적인 클래스들이 출범했음에도 지금까지의 랠리 역사에서 그룹 B만큼의 인지도와 위상을 확보해 낸 클래스는 없다고 단언할 수 있다.

그렇다 보니 그룹 B는 실상보다 과대평가되는 경우도 많으며, 인터넷 여기저기에도 그룹 B를 그리워하는 양덕들이 즐비하다. 이들은 "도로 안까지 들어온 구경꾼이 멍청이들"이라는 이론을 고수하며[26], 출력이 그룹 B에 비하면 심영이 되어버린 현재의 WRC를[27] 못마땅해 한다. 이들은 맨 위의 구절을 인용하여 현재의 WRC를 그룹 B에 비하면 애들 장난이라 비하하지만, 실제로는 기술의 발전과 드라이버 기량의 상향 평준화로 같은 구간 기록을 비교해보면 현재 WRC 경주차가 그룹 B 시절의 기록보다 훨씬 빠르다. 상술했듯이 그룹 A 시절에 이미 그룹 B의 페이스는 능가되었다. 출력 고점은 떨어졌지만, 차량의 밸런스 자체가 크게 향상되어 전체적인 경기 페이스와 코너링 스피드는 비교할 수 없이 올라갔기 때문.

최근 랠리카와 비교하자면 트랜스미션부터 다르다. 당시는 수동 5단 H패턴이었으나 현재 WRC카는 시퀀셜 자동화 수동 변속기다. 또 최대 토크는 WRC카가 더욱 높으며, 전자 제어 디퍼런셜은 그룹 B의 원시적인 기계식 LSD와는 차원이 다르다. 그룹 B가 우월한 점이 있다면 최고출력과 똘끼밖에 없으니, 코너링이 많은 코스에는 현세대 WRC 차량이 훨씬 우월하다.[28] 출력이 아무리 높아도 다른 것이 받쳐주지 못하면 헛일이 되므로, 전체 성능은 요즘의 비개조 부문 차보다도 못하다. 아니, 80년대 차들과 현재 차를 비교하는 자체가 말이 안 되는 일이다.[29] 무엇보다 현대 스포츠는 관중들의 재미를 위해서 사고의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다. 한편,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그룹 B가 최고의 시절로 기억되는 것이기도 하다. 그룹 B가 유일하게 현재의 랠리카들을 압도하는 것이 최고출력과 똘끼이고, 그것이 모터스포츠에서 소위 '낭만'을 논할 때 가장 중요시되는 것이기 때문. 지금은 높아진 안전 의식으로 그룹 B 시절의 미친 듯한 광경을 볼 수 없게 된 것도 한몫한다. 한마디로 이제는 모니터 속에서만 볼 수 있는 광경이기 때문에 인기가 더욱 높은 것이라 할 만하다.

대규모 규정 변경으로 인해 다시금 상당히 강력해진 2017년부터의 WRC 차량들이 그룹 B와 직접적으로 비교되고 있다. 랠리카의 개조 수위가 다시금 프로토타입 수준의 경지에 올라섰기 때문. 최근의 WRC 랠리카의 주행 장면을 보면 굉장히 역동적으로 주행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2022년부터 하이브리드가 되어 500마력을 돌파한 랠리1 규정의 경우는 문서 도입부의 "WRC는 애들 장난이고 그룹 B가 사나이들의 경기다"라는 명언을 하고 그룹 A를 까기도 했던 유하 칸쿠넨조차도 그룹 B 시절을 생각나게 한다고 인정했을 정도로 매력의 수준이 많이 올라온 편.[30]

워낙 전설적인 클래스가 되었다 보니 "그룹 B 랠리카들은 F1을 따라잡을 수 있다"라는 설이 나오기도 했다. 사람에 따라 받아들이는 정도가 극히 다른데, 음모론 수준으로 치부하는 사람들도 많은 반면 어느 정도 가능성이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이런 이야기가 나오게 된 가장 큰 원인은 란치아 델타 S4인데, 헨리 토이보넨이 포르투갈 에스토릴 서킷에서 했던 테스트에서 F1 차량들을 따라잡는 기록을 냈다고 하는 전설이 전해지기 때문이다.

좀더 자세히 들어가 보면 주로 전해진 이야기는 "1986 포르투갈 그랑프리에서 6위를 할 만한 기록을 냈다"라는 것이었다. 이후에 레드불에서 당시 란치아의 팀 매니저였던 난니 루소를 취재한 내용에 따르면 실전의 F1 차량을 따라잡는다는 것은 와전된 것이고 당시 델타의 테스트 직전에 있었던 F1 테스트의 기록과 대조해 보면 상위 10위 안에 들 만한 기록을 냈다고 주장했다. 또 여기에 토이보넨은 델타 S4를 굉장히 잘 몰았고 당시에는 F1과 WRC간의 기술 격차가 크지 않았던 덕이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카더라 통신으로는 당시 테스트에서 토이보넨이 몰았던 S4는 700-800마력 정도의 스펙이었다고 하기도 한다.[31] 결국 정확한 랩타임 등의 확증은 없고 다 증언뿐이라 확실히 결론지을 순 없다.

확실히 당시 기준으로 랠리카들, 특히 슈퍼차저도 같이 장비하고 있어 제로백 2초대를 끊으며 제로-100마일까지는 F1보다 빠를 수 있다고 알려져 있는 델타 S4는 저속 구간들에선 F1보다 빠를 수 있으나 에어로 및 타이어, 기어비의 차이로 고속 영역에서는 뒤떨어질 수밖에 없으며, 또 당시 테스트의 '상위 10위'의 기록이 얼마나 되는지는 알 수 없는 데다 팀별 격차가 매우 컸던 시대였던지라 가장 빠른 F1의 기록보단 많이 느릴 가능성이 높다. 또 당시의 F1에는 예선용 타이어와 예선용 엔진이 존재하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실전에서 100% 페이스를 짜내는 F1에는 속수무책으로 털릴 확률이 높다.-[32] 결국 아무리 그룹 B라 한들 F1의 아성에는 도전할 수 없다고 보는 것이 타당한 결론에 가까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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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틀은 FIA에서 제공하는 부록 J 사료를 바탕으로 제작되었다. 그룹들은 최고 클래스 혹은 주요 클래스만 작성된 것이며 세부 클래스들은 상위 클래스에 포함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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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당시 서스펜션이나 구동계 기술에 비하면 과도한 오버스펙 엔진을 갖고있는 랠리카, 그런 랠리카를 현란한 휠놀림과 페달 놀림으로 조작하고 있는 드라이버 듀오들, 그걸 또 트랙 위에서 찍고 있다가 달려오는 차와 박을 것 같으니 재빠르게 트랙 옆으로 빠지는 관중들. 말 그대로 [2] 4회 WRC 챔피언. 그룹 B 폐지 후인 그룹 A 시절까지도 전성기를 유지한 드라이버이다. [3] 그룹 B 출범 당시부터 그룹 B를 상징했던 구절이다. [4] 그룹 B의 이름을 내건 정식 대회는 1986년을 끝으로 열리지 않았으나 그룹 B에 참가한 자동차들은 이후로도 이런저런 경기들에 출전하며 현대식 랠리크로스와 파익스 피크 전용 차량의 기틀을 마련하기도 하였다. [5] 일례로 란치아 델타 S4의 공차중량은 890kg. [6] 200대라고 하면 매우 적어 보이지만 사실 이런 프로토타입에 가까운 하이엔드 클래스에서는 이것도 많은 편에 속한다. 이런 차들은 양산차를 레이스카로 만드는 게 아니라 레이스카의 도로 주행 버전을 양산한다고 봐야 하기 때문. 일반적인 수제 스포츠카들이 얼마나 적게 양산되는지를 생각해 보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제때 호몰로게이션을 취득하려면 200대를 거의 한 번에 생산해 내야 했고 그러려면 상당히 많은 노력과 돈이 필요하다. 후속 클래스로 계획됐던 그룹 S는 10대(...) 생산이 호몰로게이션 취득 기준이었을 정도. [7] 참고로 2021년까지의 차량들도 400마력이 안 됐고 하이브리드가 도입되고 나서야 500마력에 도달했다. 세팅에 따라 달라졌지만, 황혼기였던 1986년에 가서는 당시 출력이 가장 약했던 MG 오스틴 메트로 6R4도 400마력은 기본으로 넘었고, 포드 RS200이 550마력 이상, 아우디 스포트 콰트로가 500~600마력 사이였고 엔진 출력보다 차체 짜임새에 집중했던 푸조 205 T16 또한 500마력 근처의 출력을 냈다. 란치아 델타 S4리미터 걸고 480마력이었다. 엔진 테스트 당시 터보 부스트를 최대치 수준인 5 bar로 올렸을 때 무려 1,000마력에 달하는 출력이 찍혔다고. 그 외 르노 5 터보와 시트로엥 BX 4TC도 500마력 전후로 당시 그룹 B 기준으로 출력이 절대 약하지 않았다. [8] 다만 항상 이런 출력이 나오는 게 아니라 터보랙 때문에 랠리에선 이 출력을 상시로 사용할 순 없어 과대평가된 면도 있다. 변속기, 타이어의 트랙션 등 엔진 이외의 부분에서 낭비되는 출력 또한 많았다. 그래서 그룹 B 멸종 직후 그 자리를 대체한 그룹 A 랠리카들이 이미 진작에 그룹 B의 페이스를 능가했다. [9] 당연한 얘기지만 그룹 B 랠리카는 여기에 모두 습식 클러치 + H패턴 수동변속기를 달았다. 심지어 케이스조차 달지 않아 바가 그대로 보이는 극한의 경량화를 추구하기도. 시퀸셜은 이보다 15년 정도 뒤인 1997년에 포드와 미쓰비시가 도입하며 시작되었다. [10] 양산차 기준으로만 봐도 현대의 슈퍼카 정도면 제로백 2초대를 어렵지 않게 끊고 랠리카들은 제로백 1초 대도 바라보는 지금의 기준에선 빛이 바래지만, 그룹 B가 등장한 1982년은 페라리 테스타로사가 출시되지도 않았고 512 BB가 현역이었던 시절인 데다(...) 가장 빠른 스포츠카도 제로백이 5초 대에 머물던 시대였으며 4초의 벽이 1985년에 처음 깨졌다. 당대의 슈퍼카도 초라해보이게 만들 괴물들이 득실대는 랠리였던 셈. [11] Walter Röhrl, 1947~. 14번의 우승 기록을 가지고 있고, 후륜구동 랠리카 최후의 챔피언이며, 란치아와 아우디, 포르쉐를 비롯한 여러 팀에 몸담기도 했다. 1981년 르망 24시에서 GT 클래스 우승을 달성하기도 한 드라이버. [12] 실제로 칸쿠넨처럼 그룹 B와 그룹 A에서 모두 활동했던 드라이버들 중 일부는 그룹 A 차량은 특별한 매력이 없다며 아쉬워하기도 했다. [13] 휠베이스를 무려 320mm나 줄였다(...). 그래서 척 보기에도 일반 콰트로는 아주 길쭉해 보이는데 스포트 콰트로는 보기에 아주 짤막하다. 태생적인 언더스티어를 완전히 극복할 순 없었지만, 그래도 기동성이 이전에 비해 눈부시게 개선되었다. [14] 당시 란치아는 온갖 기발한 기술적 진보를 이뤄내는 한편 꼼수도 많이 부렸는데, 더 그랜드 투어에서 란치아와 아우디의 라이벌리를 다룰 때 설명한 적이 있다. 호몰로게이션을 받을 때 검차관들에게 눈속임을 해서 차량 수를 2배로 뻥튀기한다든지(...). 그런 꼼수들 중 하나가 안전을 상당량 희생한 경량화였다. [15] 랠리에서 이 정도의 속력은 아주 높은 것으로, 온로드 레이싱에서 300 km/h를 넘기는 것과 같은 급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16] 과도한 카운터 스티어로 인해 차량이 갑자기 진행하던 방향의 반대 방향으로 튀어 나가는 현상. [17] 불행하게도 그 중 2명은 어린이였다. [18] 사진밖에 남지 않은 1985년의 사고들과는 다르게 영상 자료 또한 있는데, 차량이 말 그대로 관중 무리를 향해 직진해 덮쳤고, 관중들도 말 그대로 돌진한 차량에 쓸려나갔다. 또 관중들을 덮친 속력과 각도를 고려하면 훨씬 더 많은 사망자가 나왔어도 이상하지 않았던 심각한 수준의 사고. 이 사고가 그룹 B에 대한 우려의 본격적인 기폭제가 되었다. [19] 1980년 랠리 최연소 우승 기록을 경신한 유망주였다. 란치아 팀에 합류하며 전성기를 시작하였고, 당시엔 미래의 챔피언으로 거의 확실하게 여겨졌다. 최연소 랠리 우승 기록은 28년 후인 2008년 야리마티 라트발라에 의해 깨지게 된다. [20] 실제로 토이보넨은 1985년부터 1986년까지 델타 S4로 참가한 5개의 경기 중 완주한 모든 경기에서 우승했다. [21] 당시 어떻게 토이보넨의 차량이 코스를 이탈했는지는 목격자가 없어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유일하게 남아있는 사고 영상은 멀리 떨어진 곳에서 차량이 굴러 떨어져 폭발하는 것밖에 찍히지 않았다. 다만 사고 후 도착한 관계자들에게서 사고 현장에 스키드마크가 없었던 것을 근거로 토이보넨이 운전 중 의식을 갑자기 잃었을 것이라는 추측이 있지만 자세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22] Sergio cresto(1956.01.19~1986.05.02) [23] 205의 데이터를 토대로 만들어진 만큼 이쪽도 만만치 않는 괴물이었는데 1980년대의 랠리카임에도 무려 사륜조향을 달고 있었다. [24] 정확히는 델타 S4는 생긴 것만 비슷하지 설계는 처음부터 끝까지 모조리 레이스만을 위해 다르게 설계된 실루엣 레이스카였고 양산차와의 연계성이 더 높은 그룹 A의 델타 HF 인테그랄레는 델타의 개조 사양이라고 족히 칭할 만했다. [25] 물론 란치아 스트라토스, 랠리 037, 포드 RS200 같이 처음부터 랠리만을 위해 만들어진 차는 이전에도 있었다. [26] 물론 이 말도 어느 정도는 사실이다. 정말 관중이 코스를 가득 메우고 있다가 차가 다가오면 우르르 빠져나가고 좁은 틈새로 차가 아슬아슬하게 빠져나가는 그 당시 영상을 보면 안전의식이라고는 전혀 없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27] 슈퍼 2000 규정. 투어링 카와 GT를 비교하면 당연히 GT 출력이 더욱 강하다. [28] 사실 직선에서도 크게 불리하지 않은 게, 랠리 트랙에선 보통 긴 직선에선 점프 구간이나 그에 준하는 구간이 나오기 때문에 최고 속력이 높아도 큰 의미가 없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랠리카의 최고속력은 보통 200 km/h 정도를 넘길 일이 없고 기어비도 그렇게 짠다. [29] "옛날이 진짜였다."라는 식의 얘기가 F1에도 나온다. 역시 기술 발전과 선수 기량 향상을 간과한 발언이다. [30] #. 칸쿠넨은 인터뷰에서 GR 야리스 랠리1에 대해 자신의 구절을 역으로 인용하여 "이거야말로 사나이들의 것이다. 그룹 B 같다. 애들 장난이 아니다"라고 직접적으로 치켜세웠다. 또 "직선에서는 205가 더 빠를지도 모르지만 코너링과 점프에서는 절대 따라잡지 못할 것"이라고 하기도 했다. [31] 실제로 델타 S4는 실전에서도 600마력까진 확실히 사용했고 700마력 위로도 사용했다는 기록이 전해지긴 한다. [32] 당시 F1의 예선용 엔진, 타이어는 길게 달려야 하는 본선 레이스의 것보다 수명이 짧고 출력이 폭발적인 것들이었다. 즉 예선(퀄리파잉)에서의 페이스가 훨씬 더 빨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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