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Группа крови 혈액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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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d5bb9a><colcolor=#000> 발매일 | 1988년 1월 5일 |
녹음 기간 | 1986년 ~ 1987년 |
장르 | 포스트 펑크, 뉴웨이브, 러시안 록, 얼터너티브 록, 레게[1], 인디 록 |
재생 시간 | 47:30 |
곡 수 | 11곡 |
프로듀서 | 조안나 스팅레이, 알렉세이 비시냐 |
레이블 |
레이블 없음(
마그니티즈다트), Russian Disc , Gold Castle Records Moroz Records, Maschina Records |
1. 개요2. 상세3. 평가4. 트랙리스트
4.1.
Группа крови (혈액형)4.2. Закрой за мной дверь, я ухожу (내 뒤에 문을 닫아줘, 난 떠날테니까)4.3. Война (전쟁)4.4. Спокойная ночь (편안한 밤)4.5. Мама, мы все сошли с ума (엄마, 우린 모두 미쳤어요)4.6. Бошетунмай (보셰툰마이)4.7. В наших глазах (우리의 눈(眼) 속에는)4.8. Попробуй спеть вместе со мной (나와 함께 노래부르자)4.9. Прохожий (행인)4.10. Дальше действовать будем мы (우린 계속 행동할 것이다)4.11. Легенда (전설)
5. 참여 인원1. 개요
2019년 마시나 레코드 재발매판 | 데모 |
2. 상세
1986년 10월에 조안나 스팅레이가 제공해준 4트랙 카세트 포터블 스튜디오 'Yamaha MT-44'과 드럼머신 'Yamaha RX-11'은 키노에게 있어서 그야 말로 혁신이었다. 기존 기기들과는 달리 리듬패턴 뿐만 아니라 음색과 음량 편집, 멀티 트랙 녹음, 사운드 캡처도 가능해졌다. 이 기기들은 구리야노프의 집에 설치되었으며 혈액형 녹음 작업의 대부분은 그곳에서 진행되었다.1987년 6월 3일, 제5회 레닌그라드 락 페스티벌에서 혈액형을 비롯한 여러 신곡들을 선보였고 '창조적인 성년들을 위한 특별상'(специальный приз «За творческое совершеннолетие»)을 수상했다. 그러나 대중들의 큰 호응을 얻는데는 실패했다. 1987년 제5회 레닌그라드 락 페스티벌 실황. 1988년 드러머 게오르기 구리야노프의 집에서 녹음한 데모판[2]
원래 소련에서는 발매할 예정이 없었고, 미국 캐피톨 레코드(Capitol Records)에서 'Blood Type'라는 제목으로 발매할 예정이었다. [3] 그러나 당시 앨범의 프로듀서였던 알렉세이 비시냐가 이 앨범을 빼돌려 소련에 발매했고, 이는 그야말로 대박을 치게 된다.[4] 다만 키노 측의 허락을 받지 않은 무단 전재였기에 이후 둘의 관계는 약간 소원해지게 된다. 이후 1989년, Gold Castle Records를 통해 미국과 일본에서도 발매되었다. #[5]
2019년, 마시나 레코드 측에서 이고르 티호미로프가 수십년간 보관하고 있던 원본 마스터 테이프를 바탕으로 리마스터링한 뒤 재발매 했다. 마시나 레코드의 설립자 막심 콘드라쇼프(Максим Кондрашов)가 작성한 라이너 노트에서는 원본 재생 속도 복원 및 마그네토폰의 주파수 응답 수정, 소리의 잡음과 왜곡 등을 제거했다고 한다.
앨범 커버의 경우 독일 감독 프리츠 랑(Fritz Lang)의 1922년 영화 '도박사 마부제 박사(Dr. Mabuse der Spieler)'의 러시아판 포스터를 오마주한 것인데, 러시아의 유명 예술가 카지미르 말레비치(Kazimir Malevich)가 러시아 아방가르드 미술의 영향을 받아 디자인했다고 한다.
3. 평가
★★★★☆ |
Rate Your Music |
3.74 / 5.00 |
Album of the Yea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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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st Russian new wavers, their translated lyrics unobtrusively poetic, alienated by habit, politically aware, resigned. But Victor Tsoi's solidly constructed tunes have a droll charm that's fresh if not new, and to an English speaker, the physical peculiarities of his talky voice, which saunters along as if a low baritone is the natural human pitch, seem made for the offhand gutturals and sardonic rhythms of his native tongue. When his boys ooh-ooh high behind "It's Our Time, Our Turn!," it's as if someone has finally concocted an answer record to "Back in the U.S.S.R." B+
(그저 러시아의 몇몇 뉴웨이브 음악가들. 천성적으로, 정치적으로 민감하여, 체념하여 드러나지 않는 시적인 가사 번역본 뿐이다. 하지만 빅토르 초이의 단단한 선율은 매우 신선한, 그리고 기발한 매력이 있다. 또한 영미권 청자에게 있어, 마치 낮은 바리톤 목소리가 인간의 기본적인 피치처럼 느껴지듯 어슬렁거리는 그의 말 많은 목소리라는 독특한 특성은 즉석에서 나오는 후두 뒤에서 울려퍼지는 목소리와 그의 모국어의 냉소적으로 들리는 리듬을 위해 만들어진 듯하다. 그의 동료 음악가들이 높은 목소리로 "이젠 우리의 시간이다, 우리의 때가 되었다!"[6] 뒤로 코러스를 넣을 때면, 누군가 마침내 " Back in the USSR"의 노래에 대한 답을 만들어낸 듯한 느낌을 준다. 점수: B+)
미국의 유명 평론가 로버트 크리스트가우의 리뷰. 출처
(그저 러시아의 몇몇 뉴웨이브 음악가들. 천성적으로, 정치적으로 민감하여, 체념하여 드러나지 않는 시적인 가사 번역본 뿐이다. 하지만 빅토르 초이의 단단한 선율은 매우 신선한, 그리고 기발한 매력이 있다. 또한 영미권 청자에게 있어, 마치 낮은 바리톤 목소리가 인간의 기본적인 피치처럼 느껴지듯 어슬렁거리는 그의 말 많은 목소리라는 독특한 특성은 즉석에서 나오는 후두 뒤에서 울려퍼지는 목소리와 그의 모국어의 냉소적으로 들리는 리듬을 위해 만들어진 듯하다. 그의 동료 음악가들이 높은 목소리로 "이젠 우리의 시간이다, 우리의 때가 되었다!"[6] 뒤로 코러스를 넣을 때면, 누군가 마침내 " Back in the USSR"의 노래에 대한 답을 만들어낸 듯한 느낌을 준다. 점수: B+)
미국의 유명 평론가 로버트 크리스트가우의 리뷰. 출처
мне очень нравится, а в том, что он поднимает наш рок на новую ступень. Я бы назвал ее ступенью мужественной гражданской ответственности при всей моей нелюбви к громким словам. То, что Виктор Цой - романтик и "последний герой", мы все знали давно. Но мне казалось, что после феноменального по свежести и музыкальной самобытности альбома "45" он стал немного "подкисать". "Ночь" и "Это - не любовь" при том, что и там были превосходные песни, в целом производили впечатление некоторой заторможенности, и я даже как-то печатно назвал Цоя "остывшим метеоритом". Герой медлил, подобно Гамлету, и вот прорвалось! Такого "горячего" альбома не было давно. Он обжигает! Музыка прекрасна по своей мощи и чистоте. И отточенно проста. Ритм-секция, где Густав на этот раз играет на компьютере, что не помешало ему сделать барабаны удивительно живыми, а Тихомиров, как всегда, предельно четок, создает великолепный по крутизне горячий пульс альбома. Такой альбом можно действительно назвать "Группа крови", в его жилах кровь, а не вода. Юра Каспарян практически в одиночку тащит музыку, а клавишные помогают в нужных местах создать фон. И, конечно, голос Цоя, в котором и сдержанная боль, и благородство, и пафос..."
나는 이 앨범이 매우 마음에 든다. 특히 우리 러시아 록을 새로운 단계로 끌어올린다는 점에서 말이다. 내가 과장해 말하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용기 있는 시민적 책임감의 단계라고 부르고 싶다. 빅토르 초이가 낭만주의자이자 '마지막 영웅'이라는 것은 우리가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신선함과 음악적 독창성에서 놀라운 앨범 ' 45' 이후로 그는 조금 '식어간다'고 느꼈다. '밤'과 ' 이건 사랑이 아니야'에도 훌륭한 곡들이 포함되어 있었지만, 전반적으로는 약간 느린 느낌을 주었고, 나는 심지어 한 평론에서 초이를 '식어버린 유성'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영웅은 햄릿처럼 주저했지만, 이제 폭발했다! 이토록 뜨거운 앨범은 여태껏 없다. 이 앨범은 강렬하게 다가온다! 음악은 그 강력함과 순수함에서 아름답다. 그리고 매우 간결다. 구스타브[7]가 이번에는 컴퓨터로 드럼을 연주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럼 소리를 매우 생생하게 만들어 냈고, 티호미로프는 늘 그렇듯이 매우 정확하게 연주하여, 이 앨범의 뜨거운 박동을 완벽하게 만들어 냈다. 이 앨범을 정말로 '혈액형'이라고 부를 만하다. 그 속에는 물이 아닌 피가 흐른다. 유리 카스파랸은 사실상 혼자서 음악을 이끌고 있으며, 키보드는 필요한 곳에서 배경을 만들어준다. 그리고 물론, 초이의 목소리에는 억제된 고통, 고귀함, 그리고 열정이 담겨 있다.
알렉산드르 지틴스키(Александр Житинский), 록시(Рокси) 14호(1988년)
나는 이 앨범이 매우 마음에 든다. 특히 우리 러시아 록을 새로운 단계로 끌어올린다는 점에서 말이다. 내가 과장해 말하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용기 있는 시민적 책임감의 단계라고 부르고 싶다. 빅토르 초이가 낭만주의자이자 '마지막 영웅'이라는 것은 우리가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신선함과 음악적 독창성에서 놀라운 앨범 ' 45' 이후로 그는 조금 '식어간다'고 느꼈다. '밤'과 ' 이건 사랑이 아니야'에도 훌륭한 곡들이 포함되어 있었지만, 전반적으로는 약간 느린 느낌을 주었고, 나는 심지어 한 평론에서 초이를 '식어버린 유성'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영웅은 햄릿처럼 주저했지만, 이제 폭발했다! 이토록 뜨거운 앨범은 여태껏 없다. 이 앨범은 강렬하게 다가온다! 음악은 그 강력함과 순수함에서 아름답다. 그리고 매우 간결다. 구스타브[7]가 이번에는 컴퓨터로 드럼을 연주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럼 소리를 매우 생생하게 만들어 냈고, 티호미로프는 늘 그렇듯이 매우 정확하게 연주하여, 이 앨범의 뜨거운 박동을 완벽하게 만들어 냈다. 이 앨범을 정말로 '혈액형'이라고 부를 만하다. 그 속에는 물이 아닌 피가 흐른다. 유리 카스파랸은 사실상 혼자서 음악을 이끌고 있으며, 키보드는 필요한 곳에서 배경을 만들어준다. 그리고 물론, 초이의 목소리에는 억제된 고통, 고귀함, 그리고 열정이 담겨 있다.
알렉산드르 지틴스키(Александр Житинский), 록시(Рокси) 14호(1988년)
4. 트랙리스트
작업 당시 작성된 세트리스트를 보면 지금과는 상당히 다르다. "Следи за собой"가 포함될 예정이었으며[8] 노래 제목이 "Группа крови"가 아니라 가사에서 따온 "Пожелай мне удачи"(나에게 행운을 빌어줘)로 되어 있다.4.1. Группа крови (혈액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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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background-color: #fff; display: inline-block; padding: 1px 2px; border-radius: 3px; color: #000" Группа крови | 04: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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Группа крови - на рукаве
Мой порядковый номер - на рукаве
혈액형이 내 소매에, 나의 군번이 내 소매에
Мой порядковый номер - на рукаве
혈액형이 내 소매에, 나의 군번이 내 소매에
4.2. Закрой за мной дверь, я ухожу (내 뒤에 문을 닫아줘, 난 떠날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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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background-color: #fff; display: inline-block; padding: 1px 2px; border-radius: 3px; color: #000" Закрой за мной дверь, я ухожу | 04: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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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봄, 얀시바 셸라에서 녹음 되었다. 이 버전은 세르게이 리센코 감독의 대학 졸업 작품용 단편영화 '휴가의 끝(Конец каникул, 1986)'에 삽입되었다. [11]
1987년, 앨범 '혈액형(Группа Крови)'의 작업에 참가한 안드레이 시글레(Андрей Сигле)가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 스타일의 피아노 연주를 맡았다. 시글레의 회고에 따르면 피아노 파트는 구리야노프와 티호미로프의 아이디어였다고 한다. 공연장에서는 피아노를 칠 사람이 없었기에 피아노 솔로 파트 없이 연주 되었다.
2022년 10월 20일, 리메이크 버전이 공개되었다. # 이 버전은 같은 해 12월 22일에 발매된 '12_22'에 수록되었다.
러시아의 록 전문 라디오 방송국인 나셰고 라디오 (Нашего радио)가 선정한 20세기 최고의 러시아 록 100곡 중 58위로 선정되었다.
4.3. Война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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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background-color: #fff; display: inline-block; padding: 1px 2px; border-radius: 3px; color: #000" Война | 04: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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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Спокойная ночь (편안한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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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background-color: #fff; display: inline-block; padding: 1px 2px; border-radius: 3px; color: #000" Спокойная ночь | 06: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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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Мама, мы все сошли с ума (엄마, 우린 모두 미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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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background-color: #fff; display: inline-block; padding: 1px 2px; border-radius: 3px; color: #000" Мама, мы все сошли с ума | 04: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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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Бошетунмай (보셰툰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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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background-color: #fff; display: inline-block; padding: 1px 2px; border-radius: 3px; color: #000" Бошетунмай | 04: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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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셰툰마이"는 정체불명의 조어이다. 생전 초이는 누가 그 뜻을 물어보면 자신도 모른다거나[17], 비밀이라며 넘어가거나, 그 뜻 자체에 크게 관심 없어하는 태도를 보였다.
초이 사후 구리야노프의 증언에 따르면 영국의 밴드 UB40이 레닌그라드에 공연을 왔던 당시 있었던 해프닝에서 생겨난 단어라고 한다.[18] 당시 UB40은 마리화나를 들고 와서 마구 피웠는데 이걸 본 다른 사람들도 다들 하나씩 달라며 하자 "안 팝니다"(Давай, не продадимся)라고 말했는데, (당국의 눈을 피하기 위해?) 비밀스럽게 돌려 말하고자 이 말을 중국어 "不是出卖"[19]로 돌려 말한 걸 들은 초이가 이걸 자기 노래에 집어넣었다고 한다. '보셰툰마이'는 최소한 정규 앨범에 실린 키노 노래 중에서는 유일한 레게 스타일의 노래인데[20], UB40 방문 당시 영감을 받아 쓴 노래란 것이 구리야노프의 증언을 통해 확인되었다.
4.7. В наших глазах (우리의 눈(眼) 속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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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background-color: #fff; display: inline-block; padding: 1px 2px; border-radius: 3px; color: #000" В наших глазах | 03: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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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Попробуй спеть вместе со мной (나와 함께 노래부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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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background-color: #fff; display: inline-block; padding: 1px 2px; border-radius: 3px; color: #000" Попробуй спеть вместе со мной | 04: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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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Прохожий (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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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background-color: #fff; display: inline-block; padding: 1px 2px; border-radius: 3px; color: #000" Прохожий | 03: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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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0. Дальше действовать будем мы (우린 계속 행동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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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background-color: #fff; display: inline-block; padding: 1px 2px; border-radius: 3px; color: #000" Дальше действовать будем мы | 03:5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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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1. Легенда (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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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background-color: #fff; display: inline-block; padding: 1px 2px; border-radius: 3px; color: #000" Легенда | 04: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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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제5회 레닌그라드 록 페스티벌에서 처음 공개되었다. 빅토르 초이가 특별출연한 영화인 도시(Город, 1988)에서 그가 부른 노래이기도 하다.
젬피라의 커버 버전이 영화 스탈린그라드(2013)의 사운드트랙으로 사용되었다.
5. 참여 인원
인원 | 역할 |
빅토르 초이(Виктор Цой) | 보컬 및 기타 연주, 작곡 |
유리 카스파랸(Юрий Каспарян) | 리드 기타, 백보컬 |
이고르 티호미로프(Игорь Тихомиров) | 베이스 기타 |
게오르기 구리야노프(Георгий Гурьянов) | 야마하 RX-11(Yamaha RX-11) 드럼머신 프로그래밍, 백보컬 |
안드레이 시글레(Андрей Сигле) | 키보드 |
이고리 베리체프(Игорь Веричев) | 노이즈 |
알렉세이 비시냐(Алексей Вишня) | 녹음 |
[1]
Бошетунмай(보셰툰마이) 한정
[2]
이미 이 당시부터 앨범의 전반적 틀이 짜여져 있었단 걸 확인할 수 있다.
[3]
페레스트로이카와 함께 수많은 소련의 락밴드들이 미국 진출을 시도했다. 키노의 앨범 Blood Type,
아크바리움의 앨범 Radio Silence,
크루이즈의 앨범 Iron Rock 등이 그 예시였다. 그러나 다만 언어의 장벽, 미국 청중의 무관심, 정치적 사유 등으로 인해 큰 성공을 거두진 못했다. 당시 이들의 진출이나 미국 활동은 이들의 음악적 재능 때문이라기보다는 페레스트로이카와 냉전의 종식이라는 정치적 사유가 더 강했다. 이러한 분위기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러시아의 록 그룹
고르키 파크(파르크 고리코보)의 진출로, 이들의 싱글곡인 "Bang!"은 당시
MTV 인기차트 3위에 오르는 등 잠시 반짝했으나 냉전의 종식과 함께 SNL의 풍잣거리로 전락했으며(냉전이 끝나서 좋은 이유: 더 이상 고르키 파크 같은 후진 밴드의 곡을 들을 필요가 없다는 것!) 이후 미국 시장에서 완전히 퇴출되었다.
[4]
알렉세이 비시냐는 소련의 음악가이자 엔지니어였으며, 비시냐와 키노는 앨범 제작 전부터 서로 친하게 지내던 사이였다. 예를 들어 키노의 "
이건 사랑이 아니야" 앨범의 경우 비시냐의 홈 스튜디오에서 녹음했다.
[5]
생전 빅토르 초이는 일본에 방문한 적이 있으며, 일본에 대한 호감을 표시한 적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대부분의 서양인들처럼) 일본과 한국을 포함한 동양 전체에 호감을 가지고 있었다. 한국에서는 한국계 혈통이라는 이유로 그를 한국과 연관짓는 경향이 보이지만, 본인은 철저히 러시아적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다.
[6]
10번 트랙인 "Дальше Действовать Будем Мы"(이제부터 우리는 행동해 나갈 것이다)를 말한다. (번역자 주)
[7]
게오르기 구리야노프의 별명
[8]
이 노래는 1985년경 작곡된 것으로 추정된다. 1986년 레드 웨이브 스튜디오, 1987년 모스필름 녹음 등 유난히 스튜디오 녹음이 많이 남아 있는 노래이기도 하다.
[9]
당시 소련군부터 현 러시아군까지 소매 위가 아닌 윗주머니 덮개 쪽에 혈액형이 적힌 패치를 붙이고 다녔다.
이런 식으로. 따라서 이 곡이 단순히 아프간 전쟁에 대한 반전 가요로 볼 수만은 없다는 주장도 있다.
[10]
키노의 노래 중 "별"이라는 단어가 부정적 대상을 지칭하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 따라서 이 곡을 반전 가요가 아닌 "지쳤으나 또다시 길을 나서야 하는" 전사의 노래로 해석하기도 한다. 위에서 언급된 "소매" 부분과 함께 언급되는 대표적 근거 중 하나.
[11]
추후 1996년 모로즈 레코트 재발매판 밤(Ночь)의 보너스 트랙으로 수록 되었다.
[12]
배우이자 가수였던 세르게이 '아프리카' 부가예프(Сергей 'Африка' Бугаев, 1966년생를 의미. 영화 '아사'(Асса)의 주인공으로 출연했다.
[13]
아크바리움의 보컬인 보리스 그레벤시코프(Борис Гребенщиков)를 의미. 실제로 한국의 특목고와 비슷한 수학특별학교를 졸업했다.
[14]
레닌그라드의 락밴드 첸트르(Центр)의 언급. 실제로 이 가사 부분의 반주는 밴드 첸트르의 음악 스타일을 카피했다.
[15]
우리는 함께다(Мы вместе)는 생전 초이와 친했던 가수 콘스탄틴 킨체프(Константин Кинчев)의 밴드 알리사(Алиса)의 당시 히트곡 제목이기도 하다.
[16]
당시 길거리에서 간간히 볼 수 있었던 표지판 «Опасная зона: работа Мосгаз»(위험 구역: 모스크바 가스공장(Московский газовый завод) 관할)을 약간 비튼 문장.
[17]
한 인터뷰에서는 '중국어에서 유래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나도 잘 모른다'라고 말한 적 있다.
[18]
기록에 따르면 UB40은 1986년 레닌그라드를 방문했다.
[19]
병음: Bùshì chūmài. 본인들도 중국어를 알던 건 아니었고, 회화책에서 본 대로 읽었다고 한다.
[20]
'룸바'(Румба)와 '셀바'(Сельва)라는 레게 혹은 레게 스타일의 노래가 둘 있긴 한데, 라이브에서 한 번 부르고 만 노래라 인지도가 극히 떨어진다. 특히 '룸바'의 경우 2024년 현재까지 앨범에 수록되어 발매된 전력이 없고 카세트 테이프에 녹음된 것만 남아 있다.
[21]
라트비아에 위치한 빅토르 초이 기념비에 이 가사가 새겨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