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9-06 16:25:55

권대일

<colcolor=#fff><colbgcolor=#0047a0> 이명 권대일(權垈一)
종오(宗五)
출생 1858년
경상도 안동대도호부 서후면
(현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사망 1896년 (향년 38세)
안동부 안동군 부내면 안기동 안기산
(현 경상북도 안동시 안기동)
상훈 건국훈장 애족장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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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권대일은 1858년 경상도 안동대도호부 서후면(현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에서 안동대도호부 향리(鄕吏)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1895년 을미사변 단발령 발발 소식을 듣고 1896년 1월 초 의병을 일으키기로 결심하고 양아버지의 상중임에도 불구하고 분한 마음을 억제하지 못하여 친아버지께 나가서, “나라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차마 원수의 적과 함께 살 수 없습니다. 아버님께서는 지금 연로하시지만 다행히도 두 형님이 계시니 부디 저를 생각지 말아 주십시오”하고 아뢰어 승낙을 얻고, 앞장서서 통문을 돌리며 인심을 격동시켰다.

이후 1896년 1월 17일 안동향교에서 권세연을 의병대장으로 추대하고, 진용을 편성하니 단발령에 철저하던 관찰사 김석중(金奭中)은 도망하였다. 이 때 그는 의병진과 함께 안동부를 점령하는 데 선두에서 활동하였다. 그 후 의성에서 이만도가 의병을 일으키면서 기세는 더욱 뜨거워졌다. 그러나 1896년 1월 29일 관군이 안동부를 다시 점령하고 안동 의병진이 패하자, 그는 슬퍼 분개하며 손으로 땅을 치며 진영 내에서 말했다.
“장부가 거의하여 죽는 것은 당연하다. 어찌하여 완전한 계책에 따라 병사를 단속하지 않았는가.”

그리고는 선봉이 되어 군사 백여 명을 거느리고 안기역 뒷산에 진을 치고 도망치는 자는 참한다고 엄포하며 관군에 맞서 싸웠다. 그러나 힘이 다해 전투 중에 전사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권대일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