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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의 역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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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게 왕국의 도성이던 차파랑 유적(현 티베트 자치구 아리 지구 자다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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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토번 제국의 붕괴 후 티베트 고원 서부에 세워진 왕국. 11-12세기 카라한 칸국의 침공을 받아 쇠퇴하고 분열되었으나, 14세기 후반 원나라의 간섭에서 벗어난 후 서티베트를 통일하였다. 이로써 시작된 전성기 동안 구게 왕국은 불교 미술을 꽃피웠고, 밀교에 이어 겔룩파 티베트 불교를 후원하였다. 번영하던 구게 왕국은 17세기 중반, 같은 티베트계 국가인 라다크 왕국에게 패하고 멸망하였다.
2. 역사
토번의 마지막 황제 랑다르마의 증손자 키이데 니마곤(吉德尼瑪)이 912년경, 서부 티베트 응아리로 피신, 불과 3백인을 이끌고 일대를 평정하여 건국하였다. 니마곤은 죽으며 왕국을 삼분하여 장남 팔기곤에게 마르율 ( 라다크와 루도크), 차남 트라쉬곤에게 구게-푸랑, 삼남 데축곤에게 잔스카르 (카르길)[1]를 주었다. 따라서 차남 트라쉬곤의 혈통이 구게 왕실을 잇게된다.
2.1. 초기
트라쉬곤의 아들 예셰외(Yeshe-Ö)의 치세에 구게 왕국은 불교의 2차 부흥을 이끌며[2] 통해 인도 학자들이 불교 종교와 문화를 방문하고 전파하는 중요한 중심지가 되었다. 또한 인도에 파견되었다가 돌아온 구법승 리첸 장포(Rinchen Zangpo)의 주도로 밀교가 성행하였다.리첸 장포는 인도 불교를 티베트에 전파하여 불교의 2차부흥을 이끈 아티샤(Atīśa)의 제자로, 이 시기 구게와 라다크에서 활동하면서 금강승 불교를 전파하고, 많은 사원을 건축했다. 이후 구게와 라다크는 아티샤의 법맥을 잇는 까담파(Kadam)가 주류가 되어 훗날 티베트 불교 주류 종파인 겔룩파(Gelug)까지 이어진다.
2.2. 내우외환과 분열
다만 예셰외는 당시 타림 분지를 지배하던 카라한 칸국에 패하여 포로가 되었고, 그는 불교를 버리면 풀어주겠다는 제안을 거부하고 옥사하였다. 예셰외가 사로잡힌 후 동생 코르레가 계승하였고, 다시 후자의 장손 오들데가 뒤를 이었다. 1037년 오들데는 카라한 칸국에 패하여 전사하였고, 카라한 군은 구게 일대를 초토화하였다.이후 출가하여 승려가 되었던 오들데의 동생 브양 춥옷이 왕이 되었다. 1040년 그는 인도의 승려 마하야나 아티사를 초청하였고, 티베트 불교의 치다르 시기를 열었다. 1088년 브양 춥옷은 조카 브당 이데에 의해 암살되었고, 혼란을 틈타 브양 춥옷의 동생들 중 하나가 푸랑의 왕이 되어 구게에서 떨어져나가 구게의 영토는 더욱 축소되었다. 1137년 카라한 칸국은 재차 구게를 침공하여 군주 브크라 쉬스 르체를 전사시켰다.
2.3. 재통합
구게 왕의 대관식에 참가한 다국적 사절들
카라한 칸국은 1212년 호라즘 제국에게 멸망하였고, 호라즘은 다시 몽골 제국에게 멸망하였다. 1240년 구게 왕국은 몽골 제국에 복속하였고, 몽케 칸은 위짱의 드리궁 사원에게 응아리 지역의 지배권을 주었다. 12세기 말엽 분열되었던 구게는 1265년경 그라스 팔데가 야르체 (카사) 왕국을 정복하며 재통합되었다. 그러나 1277년 그라스 팔데의 사후 구게의 실권은 사카야(사캬파) 승려들에게 넘어갔다.[3]
그러던 1363년 사카야 종파의 후원자인 원나라가 붕괴되자, 구게 왕실은 실권을 회복하고 1378년 무스탕과의 경쟁 끝에 푸랑 왕국을 정복하였다. 뒤이어 라다크도 정복한 구게는 10세기 이후 최초로 서티벳을 통일하였다. 15세기 들어 융성한 불교 문화를 꽃피우던 구게 왕국은 1499년 위짱의 린풍파에 복속했고, 겔룩파 달라이 라마에 대한 존경을 담은 여러 건축 활동을 벌였다.
2.4. 라다크의 침공과 멸망
구게 벽화의 한 장면. 승려가 무장하고 싸우고 있다.
1624년 구게를 방문한 예수회 선교사 안토니오 도 안드라데는 황량한 건조 지역에 둘러 쌓였음에도 관개 수로를 통해 비옥한 농지를 개척한 구게 인들에 놀라움을 표하였다. 종교적으로 관대했던 국왕 타쉬 드락빠 데는 예수회 선교사들의 전도와 예배당 건립을 허가하였다. 다만 이에 불만을 품은 일부 장군들이 반란을 일으켰고, 막 세력을 키워가던 라다크의 군주인 '사자왕' 셍게 남걀(Sengge Namgyal )에게 개입을 청하였다. 왕자 시절인 1614년부터 루독, 스푸랑스 등 구게 왕국 서부의 광산 도시들을 점령한 바 있던 셍게 남걀은 본격적으로 구게를 침공하였다. 수년간 이어진 전쟁 끝에 구게 왕국은 승려들까지 무기를 들고 싸우는 등 절박하게 싸웠으나, 결국 1630년 수도인 차파랑이 라다크 군에게 포위되었다.
한 달간 치열한 공성전이 이어졌고, 구게 인들은 무기가 바닥나자 돌을 던지며 저항하였다. 그러나 식량이 바닥나자 국왕 타쉬 드락빠 데는 불교 라마였던 동생의 설득으로 항복하였다. 라다크 군대는 차파랑을 철저히 파괴하였고, 구게 왕실은 라다크로 압송되어 여생을 보내었다.
다만 라다크의 패권도 오래가지 못하여 1680년 달라이 라마 5세의 티베트가 구게를 정복하였다. 이때 잔여 구게 인들이 티베트 주요부 (위짱) 지역으로 이주되어 7세기간 번영하던 차파랑은 폐허가 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구게의 이름은 세간에서 잊혀졌다가, 1930년대 이탈리아 탐사대가 차파랑 유적을 재발견하며 재조명 받게 된다. 그리고 20세기 말부터 불교 유적을 중심으로 간간히 발굴이 이루어지고 있다.
3. 예술
11-17세기에 걸쳐 구게 왕국은 인도의 밀교에 영향을 받은 화려한 불교 미술을 꽃피웠다. 불화의 양식은 둔황석굴의 기법을 기반으로 중세 인도의 육감적인 모티브를 추가한 것으로, 불교 미술에 있어 매우 독특하다고 볼 수 있다.
밀교의 기괴함과 극사실주의에 영향을 받아 구게 왕국 후기의 벽화에는 해골이 적나라하게 그려지기도 한다. 해당 사원에는 또한 구게 고승들과 왕공들의 해골이 안치되어 일종의 카타콤 역할도 하고 있다.
- [구게 벽화들 (부분 누드 & 그로테스크 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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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건축
창파랑 왕궁
997년에 세워진 토링사
구게 왕국은 다른 티베트 지역과 마찬가지로 언덕 위에 흰색과 붉은 색을 칠한 건물을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