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6-03 04:20:31

고조선-연 관계

고조선 대외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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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역사적 관계
2.1. 초기2.2. 후기
3. 관련 사건4. 관련 문서

1. 개요

고조선 연나라의 대외관계를 다루는 문서.

2. 역사적 관계

2.1. 초기

기원전 323년 연나라의 왕 역왕 희퇴가 칭왕하고 동쪽으로 진출하자 조선왕 1세는 주나라 왕실을 받든다는 명분으로 칭왕하고 연을 치려 하였다.

그러나 대신 대부례가 조선왕 1세에게 간언하여 조선왕은 전투태세를 중지하였고, 대부례를 연에 보내 설득하게 하여 전쟁을 일으키지 않았으면 하는 뜻을 내비쳤다. 그 결과 연나라의 고조선을 향한 공격은 중지되었다.

2.2. 후기

기원전 281년 무렵 연나라 장수 진개가 고조선과 전쟁을 하고 승리해서 2000리 정도의 영토를 개척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사기에 의하면 기원전 281년에는 이미 연이 요동을 장악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1] 고로 연도의 경우 기원전 281년이 아니라 그 이전에 발발하였음을 알 수 있는데, 추정해보자면 대략 기원전 300~282년 사이에 발발했다고 할 수 있다.

《동북아역사지도》에서는 진개의 활동시기를 기원전 281년이라 추측 하였는데( 지도 사진), 지도 사업이 유사역사학자들의 농간으로 인해 폐기되는 바람에 비정 근거가 알려질 수 없었다.

다만 진개의 활약 시기를 기원전 300년에서 282년 사이의 시기로 추정하는 이유는 어느정도 일리가 있는데, 이러한 정황 증거들이 있기 때문이다.
  • 진개의 손자이자 형가의 진시황 암살시도로 알려진 형가의 동료, 진무양(秦舞陽)은 진개의 손자라고 한다. 그리고 진무양은 이때 형가가 진시황 암살을 위하여 고용한 장사였다고 하는데, 나이는 알 수 없으나 적어도 노인은 아니었으리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 사기 흉노열전에서는 조무령왕이 조나라 북부에 군을 설치하고 요새를 쌓은 이후, 진개가 흉노들을 격퇴했다고 적으며, 진개 이후에 조나라의 명장 이목이 흉노를 또 다시 무찔렀다고 한다. 그런데 이목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이목의 활동시기는 아무리 빨라도 272년 전후로 추측된다. 조무령왕은 기원전 300년 즈음에 요새를 쌓았으며, 이목이 흉노를 격퇴한 시기는 조나라의 기록[2]과 그의 사망년도가 기원전 229년임을 생각하면[3] 기원전 272년~265년 즈음으로 추측된다.

따라서 진개의 활동시기는 기원전 300년에서 270년 사이로 추측되는데, 이는 연나라의 전성기이자 연나라 최고의 군주로 꼽히는 연소양왕의 제위시기와 일치하므로, 연나라의 상황을 고려한다면 시기도 적절하다. 왜냐하면 연나라는 연소왕의 즉위 전까지는 자지이상한 생각하지 말자가 날뛰는 등 매우 혼란한 시기였기 때문.

또한 연소왕의 아들인 연혜왕은 명장인 악의를 쫓아내는 삽질에 집권하자마자 제나라와 전쟁을 벌였고 한, 위, 초 3개국 연합군의 공격을 받는 등 연혜왕 집권기엔 연나라 입장에서도 흉노에 신경쓸 시기가 아니기도 했다.

다만 이러한 정황증거만 있을 뿐, 분서갱유로 인해 연나라의 사서가 타 국가들의 사서와 같이 소실되어 구체적인 기록이 남지 않아서 전쟁의 시기와 경과 등은 알 수 없다.

이 전쟁 이전의 고조선은 한반도 북부와 만주 지방의 패권을 차지하고 전성기가 오래 이어지던 강성한 국가였지만 이 전쟁의 패퇴로 (고고학적 자료 등을 종합해보면) 요녕 지방을 상실하고 한동안 평안도와 황해도 일부 지방만을 차지하는 소국으로 전락했다는 설이 학계에서 제기된다.

3. 관련 사건

4. 관련 문서



[1] 사실 사기의 기록에서 1년, 2년 차이나는 것 정도나 각 나라측의 기록에 따라 내용이 바뀌는 것은 흔한 일이긴 하다. 사마천부터 분서갱유 초한쟁패로 사료를 수집하는데 애먹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2] 조나라의 기록에 마지막으로 흉노가 등장한 것은 사기 조세가 조혜문왕 편에서 기원전 272년, 흉노의 부족 중 하나였던 동호의 변경 불모지를 개간했다는 내용이 전부다. 그 이후로는 흉노가 등장하지 않아 이 시기를 전후하여 이목이 흉노와 전쟁을 벌였다는 추측이 가능하다. [3] 이목은 심지어 자연사도 아니고, 당시 전쟁에서 싸우던 장수였으나 모함을 받아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