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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사범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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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구제전문학교단기대학 · 고등전문학교 과정에 상당하지만 공식 학위가 나오지 않는 고등교육기관.
구제대학 학부를 누적 수학 연령으로 따지면 신제 석사와 동일.

[1] 중학교 진학에 실패한 경우 재학한다. [C] 일반적으로 구제중학교가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통합해서 운영했다. [A] 구제중학교가 남자학교이니 고등여학교는 구제중학교의 여학교 버전이다. 교육과정은 동일하다 [B] 소학교 졸업자들 대상으로 중학교 과정에 해당하는 교육을 제공함. 재정 문제로 일반화되지는 못했다. [B] 소학교 졸업자들 대상으로 중학교 과정에 해당하는 교육을 제공함. 재정 문제로 일반화되지는 못했다. [C] [A] 구제중학교가 남자학교이니 고등여학교는 구제중학교의 여학교 버전이다. 교육과정은 동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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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상세3. 목록4. 여자고등사범학교

1. 개요

일본제국에서 사범학교 졸업생들을 대상으로 구제중학교 구제고등여학교 등 중등학교 교원 양성교육을 실시하는 학교였다. 따라서 일반적인 사범학교( 중등교육기관)의 상급학교로 구제전문학교에 상당한다고 평가되는 지위에 있었지만, 구제전문학교의 근거법령인 전문학교령(1903년)에 의거해 설립된 교육기관이 아니고 사범학교령(1886년)과 사범교육령(1897년)의 해석과 실행을 통해 설립 운영되었기 때문에 엄밀하게 따지면 구제전문학교는 아니었다.

2. 상세

수업연한은 3년으로 구제고등학교와 동일했다. 다만 고등사범학교는 기본적으로 사범학교(5년제)[1]를 졸업한 초등교원 자격자를 대상으로 3년간 중등교원 양성교육을 실시하던 곳이었고,[2] 구제고등학교 구제중학교(5년제) 졸업자를 선발해 제국대학 관립의과대학 예과 교육을 시키던 곳이므로 직접 비교는 불가능하다.[3] 사립 구제대학의 고등사범부/고등사범과와 동격이었으나, 실제 인식은 고등사범학교가 우월했다.[4]

사범학교는 졸업 후 교직 종사를 전제로 하여 수업료가 면제되었을 뿐만 아니라 취업도 보장되어있었기 때문에, 가난한 집안 환경으로 인해 구제중학교 구제고등학교로 진학할 수 없는 우수한 학생들의 구제 기능도 수행했다. 사범학교 → 고등사범학교 → 문리과대학이라는 코스를 밟으면 구제중학교 구제고등학교 제국대학이라는 일본제국 최고 엘리트 양성코스에 버금가는 교육을 학비 부담 없이 받을 수 있었고, 경제적 이유로 상급학교 진학을 단념할 수밖에 없는 우수 인재를 많이 흡수했다. 도쿄고등사범학교 출신 최규하 대통령은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며 입시를 치러 경성제국대학 예과와 도쿄고등사범학교에 동시합격했는데, 가세가 기울고 있었기 때문에 학비가 면제되는 도쿄고등사범학교를 택했다고 한다.[5] 위키백과(일본어) 사범학교 항목에서는 그러한 예시로 박정희 백선엽을 꼽고 있다.

다만 구제중학교가 고등학교 입시의 압박에 시달렸던 것을 제외하면 구제고등학교(대학예과)와 제국대학은 상당한 자율성과 학원자치를 향유한 데 반해서, 사범학교-고등사범학교-문리과대학 코스는 구타와 기합, 심각한 군기 문제로 악명이 높았다고 한다. 기숙사 생활은 일본제국 육군의 내무반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이 상급생에 대한 하급생의 '절대 복종'을 강조하며 하급생에게 이지메와 기합을 가하는 것이 다반사였고, 고사기의 내용을 정사라며 맹목적으로 주입시키는 등 교육 내용에도 문제가 많아서 졸업생들이 군국주의 교육의 주역이 되어 중등학교에서 가르친 제자들을 전쟁터에 계속 보내고 왔다는 비판이 나왔다. 이러한 이유로 형식주의, 권위주의, 맹목적 복종강조조, 융통성 결여와 획일적 교원을 양성한다는 비판을 받아 그러한 사람은 사범학교 타입이라고 불리기도 했다고 한다.[6]

다만, 문리과대학은 원래부터 존재하던 것은 아니고, 1918년 대학령이 반포되며 복수의 학부(기존 분과대학)으로 구성된 종합대학인 제국대학 외에도 의과/공과/상과 등 단과 관립대학 설립이 가능해졌고 와세다대학, 게이오기주쿠대학 등 여러 사립대학 설립도 이뤄지면서 고등사범학교에서도 대학승격운동이 벌어져 그 결과로 고등사범학교의 졸업생을 대상으로 2년간 추가교육을 실시하던 '전공과'를 모체로 고등사범학교의 직속 상급학교인 문리과대학을 창설한 것이다. 그러나 고등사범학교 자체가 문리과대학으로 승격된 것은 아니며, 고등사범학교는 문리과대학의 부설학교가 되어 패전 이후 1949년 신학제가 실시되어 신제대학으로 고등교육기관이 통폐합될 때까지 존속하였다.[7]

그리고 고등사범학교 전공과를 모체로 대학을 설립할 때에도 사범학교의 연장선상에서 교원교육에 전념하는 사범대학 주장이 탈락하고 상대적으로 교양교육에 방점을 둔 문리과대학 주장이 채택되면서 갈등을 빚었으며, 상급학교인 문리과대학과 그 부설학교인 고등사범학교의 관계도 상당히 미묘했다고 한다.

3. 목록

4. 여자고등사범학교

제도상 별개 학교로 분리되었지만, 고등여학교 등 여자중등교원을 양성한다는 점에서 고등사범학교와 동일한 고등교육기관이었다. 특히 제국대학 예과 구제고등학교가 남학교라는 점에서 해당 경로 진출이 봉쇄되어있던 여성들에게 여자고등사범학교는 정규 과정에서 진학할 수 있는 최고의 엘리트 교육기관이었다.


[1] 예과 1년 + 본과 4년. 1928년까지는 4년제. [2] 고등사범학교 제도가 정착된 이후 사범학교 졸업자에게 3년 교육을 실시하는 제1부 외에 구제중학교 졸업자에게 1~2년 교육을 실시하는 제2부를 설치하기도 했다. [3] 1918년 이전까지 구제고등학교 구제중학교 5년 졸업생을 대상으로만 입시를 실시했다. 1910년대 이후 이뤄진 교육연한 단축논의 끝에 1918년 반포된 개정 고등학교령에 의거해 구제 중고등학교가 합쳐진 7년제 고등학교를 세우기 시작하면서 기존의 고등학교의 입시 수험자격을 중학교 4학년 수료자에게도 부여하였으나, 실제로 구제고등학교 신입생 중 4학년 수료자는 소수에 불과하고 대부분을 여전히 구제중학교 5년 졸업생이 차지했으며 심지어 졸업 후에도 1~2년씩 재수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리하여 중고등학교 교육기간을 이전의 8년에서 1년을 단축하려던 일본 정부의 정책 목표 달성은 실패로 끝났고, 최초의 7년제 고등학교로 설립된 도쿄고등학교가 12년만에 구제중학교에 해당하는 심상과(4년)를 폐지하는 것을 시작으로 나니와고등학교, 대만총독부 다이호쿠고등학교, 도야마고등학교 등 관공립 7년제 고등학교들은 도쿄부 부립고등학교 1곳을 제외하고 전부 심상과를 폐지하여 기존 스타일의 3년제 고등학교로 개편되고 말았다. 3년제 고등학교들이 7년제로 이행하지 않고 기존의 학제를 패전 때까지 유지했음은 물론이다. 위키백과(일본어) 구제고등학교 항목을 참조. [4] 공립 사범학교와 달리 고등사범학교는 4곳 모두 관립이었다. [5] 19세 되던 이듬해, 경성제일고보를 졸업한 兄은 東京고등사범학교 영문학과에 진학한다. 兄은 경성제대 예과와 東京고등사범 두 학교를 모두 합격했으나, 학비면제였던 東京고등사범을 선택했다. 당시 농사를 지었던 삼광형 집은 가세가 기울어 가고 있었다. 링크 참조. [6] 그리하여 패전 후 연합군 최고사령부는 일본의 군국주의 교육의 온상이었다고 평가되는 사범학교 제도 자체를 해체하고 복수의 학부로 구성된 종합대학의 일부로 신제대학 교육학부, 학예학부를 설치했다. 고등사범학교와 문리과대학에서도 '사범학교'가 아닌 '교양학교'의 성격이 강조되었다. [7] 도쿄고등사범학교와 히로시마고등사범학교의 대학승격운동 결과 그 전공과를 모체로 1929년 도쿄문리과대학과 히로시마문리과대학이 세워졌다. 도쿄문리과대학은 패전 후 신제대학의 문학부와 이학부의 모체가 되어 부설 도쿄고등사범학교(교육학부), 도쿄농업교육전문학교(농학부), 도쿄체육전문학교(체육학부)를 흡수해 1949년 도쿄교육대학을 출범시켰고, 도쿄교육대학은 1973년 출범한 현재의 쓰쿠바대학에 흡수되어 1978년 폐교되었다. 히로시마문리과대학 역시 문학부와 이학부를 구성하며 부설 히로시마고등사범학교(교육학부) 등을 포함한 관공립학교 8개교를 흡수해 1949년 신제 히로시마대학으로 출범하게 된다. [8] 1872년 설립된 사범학교가 전신으로 1873년 오사카, 미야기, 아이치, 히로시마, 나가사키, 니가타에도 사범학교가 설립되면서 도쿄사범학교로 개칭. 구제중학교 숫자가 늘어나며 교원 수요 증가에 따라 1875년 중학사범학과를 설치했으며 1885년 도쿄여자사범학교를 흡수해 전국 유일의 관립사범학교가 됨. 1886년 고등사범학교/(보통)사범학교로 나뉘며 도쿄사범학교가 고등사범학교로 개편. 1902년 히로시마에 제2관립 고등사범학교가 설립되면서 도쿄고등사범학교로 개칭. [9] 1874년 설립된 히로시마사범학교를 모체로 하여 1902년 서일본의 중등교원을 양성하는 제2관립 고등사범학교로서 설립. [10] 1929년 설립된 관립 히로시마문리과대학을 중심으로 히로시마고등학교, 히로시마고등사범학교, 히로시마여자고등사범학교, 히로시마사범학교, 히로시마청년사범학교, 히로시마공업전문학교를 합병하고 히로시마시립공업전문학교를 흡수하여 1949년 문학부, 이학부, 정경학부, 교육학부, 공학부, 축산학부 등 6학부 구성으로 창립. 1953년 공립 히로시마현립의과대학을 흡수해 의학부 설치. [11] 1925년부터 전개된 가나자와 고등사범학교 유치운동 끝에 1944년 설립. [12] 1949년 구제 관립의과대학인 가나자와의과대학을 중심으로 제4고등학교, 가나자와공업전문학교, 가나자와고등사범학교를 합병하고 이시카와사범학교 및 이시카와청년사범학교를 흡수하여 의학부, 약학부, 법문학부, 공학부, 이학부, 교육학부 등 6학부로 구성된 신제 가나자와대학 설립. [13] 1945년 8월 12일 창설. [14] 패전 직전인 1945년 8월 12일 창설되었고, 1949년 나고야제국대학 제8고등학교를 교양부, 나고야 고등상업학교를 법경학부 경제학과/경영학과로 흡수할 때 교양부 분교로 흡수되었다. [15] 1874년 창설된 도쿄여자사범학교가 1885년 남녀사범학교 통합시 도쿄사범학교에 통합되어 여자부로 편제되었다가, 1890년 여자고등사범학교로 독립하였다. 1908년에는 2번째 여자고등사범학교인 나라여자고등사범학교가 설립되면서 도쿄여자고등사범학교로 개칭했다. 참조 [16] 1890년 도쿄미술학교 캠퍼스 계획을 추진하던 나라시가 1900년경 제2관립 여자고등사범학교 유치로 경로를 변경하여 1908년 도쿄여자고등사범학교에 이어 서일본의 여자중등교원을 양성하기 위해 설립. [17] 패전 이후인 1946년 나라여자 제국대학으로의 승격을 시도했으나 당연하게(?) 실패하고, 1949년 신제 나라여자대학이 나라여자고등사범학교를 모체로 설립. 이후 나라사범학교와 나라여자사범학교가 모체가 된 나라학예대학을 흡수. [18] 1887년 설립된 사립 히로시마고등여학교를 기부받아 1944년 관립으로 이관하며 이를 모체로 1945년 4월 1일 히로시마고등여자사범학교를 창설하고, 부속 고등여학교로 삼았다. 첫 수업이 있었던 8월 6일 히로시마에 원폭이 떨어지면서 교사와 학생이 거의 전멸했다고 한다. [19] 1929년 설립된 관립 히로시마문리과대학을 중심으로 히로시마고등학교, 히로시마고등사범학교, 히로시마여자고등사범학교, 히로시마사범학교, 히로시마청년사범학교, 히로시마공업전문학교를 합병하고 히로시마시립공업전문학교를 흡수하여 1949년 문학부, 이학부, 정경학부, 교육학부, 공학부, 축산학부 등 6학부 구성으로 창립. 1953년 공립 히로시마현립의과대학을 흡수해 의학부 설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