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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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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colcolor=#fff> 강철환
姜哲煥 | Kang Chol-hwan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225px-Kang_Chol-Hwan_(WMF_February_21,_2014).jpg
출생 1968년 9월 18일 ([age(1968-09-18)]세)
평양시 중구역 경림동[1]
본관 진주 강씨
국적
[[북한|
파일:북한 국기.svg
북한
]][[틀:국기|
파일: 특별행정구기.svg
행정구
]][[틀:국기|
파일: 기.svg
속령
]] (1968 ~ 1992)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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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틀:국기|
파일: 특별행정구기.svg
행정구
]][[틀:국기|
파일: 기.svg
속령
]] (1992 ~ )
학력 한양대학교 ( 무역학 / 학사)
가족 조부 강태휴, 여동생 강미호
배우자, 슬하 2남
경력 조선일보 기자 (2001~2012)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평양 24시) |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강철환 TV)

1. 개요2. 생애3. 저서4. 기타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의 탈북민 출신의 언론인, 사회운동가. 주성하 동아일보 기자와 함께 가장 유명한 탈북자 출신 기자다. 북한의 강제 수용소인 요덕수용소에 수용되어 있다가 1992년에 탈북하여 남한으로 입국하였고, 조선일보에 입사하여 기자가 되었다.

2. 생애

1968년 평양 출생으로 본관은 진주 강씨이다. 그의 할아버지 강태휴가 재일교포 조총련 출신 간부였다고 한다. 1959년 재일교포 북송 사업 당시, 할아버지가 가족들과 함께 북한으로 넘어갔다고 한다. 넘어가기 전에 막대한 재산을 가지고 북한에 들고 갔으며 수용소로 들어가기 전까지 평양시 보통강 구역 아파트에서 부유하게 살았다고 한다.

그의 할아버지가 김일성, 김정일 후계 문제로 사회주의에 맞지 않는 봉건사회라고 비판 후 여러 관련된 문제[2] 연좌제가 적용됨에 따라 1977년 일가족이 북한 요덕수용소로 끌려갔다. 그가 수감될 당시 9살의 어린이였고, 당연히 아무 범죄도 저지른 게 아님에도 수감된 것이다. 그의 할아버지가 후임 조총련 회장을 비판한 것 뿐임에도 민족반역죄란 죄를 덤탱이 쓰는 바람에 온 가족이 수감되어 끌려간 것이다. 10여 년을 수용 생활을 하다가 당시 일본 조총련들이 가족을 찾는 과정에서 북한의 재일교포들이 수용소에 끌려가서 찾을 수 없자 조총련의 막대한 대북 지원금이 줄어들었다. 강철환도 일본에 친척이 있는 가족 중 한명이었기 때문에 이 시기에[3] 풀려나서 요덕군에서 고모의 지원으로 근근히 생활하였다. 그러다가 다시 수용소로 끌려가게 될 상황[4]에 처하자, 동료인 안혁과 함께 중국으로 탈북하여 6개월 동안 칩거하면서 일본에 거주하던 고모의 도움으로 한국으로 들어올 수단을 찾다가 결국 밀항이라는 방식으로 대한민국으로 들어왔다.

저서로 ' 수용소의 노래'[5]가 있다. 정치범수용소에서의 생활에 대한 수기다. 참고로 '대왕의 제전'이라는 책을 각색해서 2004년경 출판한게 수용소의 노래다.

한양대학교 무역학과를 졸업하고 3년 간 한국전력에서 근무하다가 조선일보 기자로 11년간 근무 후 현재 북한전략센터 대표로 있으면서 유튜브 '강철환 TV' 채널을 운영했다. 2022년 12월부터는 '평양 24시'라는 채널로 이름을 바꿔 운영 중이다. 전 언론기관 출신 편집자, 북한학 박사, 북한의 전 최고위층 엘리트, 핵심 전문가들의 자문을 구하여 분석과 보도를 한다고 한다. 다만 주관적 해석도 포함된 경우가 많다.[6][7]

북한에 남은 그의 여동생인 강미호는 남편과 함께 2010년대 초반에 재수감되었다는 얘기가 나돌았는데 확실치 않다.

뜬금없이 지만원이 2019년에 강철환을 '탈북 광수'라고 지목을 했는데,[8] 정작 1980년 당시 강철환은 고작 12살의 나이로 요덕수용소에 수감되어 있었다는 점을 보면 명백한 명예훼손에 해당된다.[9] 이에 강철환은 하태경 새로운보수당 책임대표[10]가 주최한 기자회견에서 "5.18 민주화운동은 북한에서도 민주 혁명 의식을 일으킨 민주화 혁명[11]이었는데, 지만원이 광주 정신을 왜곡하고 있다"며 지만원의 사죄를 촉구하였다.

3. 저서

  • 《대왕의 제전》, 1993.
  • 《평양의 어항》(Aquariums of Pyongyang) , 2000.
  • 《수용소의 노래》, 2003.
  • 《아! 요덕》, 2006.

4. 기타



[1] 남한 형식으로 표기하면 평양특별시 중구. 이북 5도 기준으로는 평안남도 평양시 죽전리, 진향리, 이향리, 아청리, 육로리, 박구리 일대. [2] 당시 조총련 내부에서는 전임자와 후임자간의 파벌 다툼이 존재했는데, 실제로 수기 중에서 강철환의 할머니가 당시 조총련 후임자( 한덕수)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악담을 퍼붓기도 한 것으로 보아 이러한 대립구도 하에서 숙청된 것으로 추정된다. [3] 1987~1989년인데, 그의 수기에서는 1987년으로 추측했으나 최근 그에 따르면 1989년이 맞다고 한다. [4] 기존 서술에 의하면 친한 자들과의 술자리에서 한국 노래를 부르고 이 노래의 출처를 대북 라디오에서 들었다는 식으로 이야기했는데, 술자리 동료들 중 하나의 밀고로 체포될 뻔했다가 보위부원에게 뇌물과 같은 성씨라는 점을 이용해 한 번 모면했지만 결국에는 위의 사안으로 체포 명령이 하달되었음을 뇌물을 준 보위부원에게서 몰래 들은 것이다. [5] Aquariums of Pyongyang(평양의 어항)이라는 제목으로 영문판도 발간. [6] 물론 이렇다고 그의 정치범수용소 증언을 신동혁 같은 거짓말로 보면 절대 안 된다. 적어도 강철환의 정치범수용소 증언이 절대 거짓이 아니란 것은 그가 요덕수용소 혁명화구역에 수감되었을 때 김일성 생일마다 북한의 모든 어린이들(물론 완전통제구역 수감자들은 제외)처럼 사탕, 과자를 받았다고 증언한 것에서 확인할 수 있다. 강철환의 증언에 따르면 이는 혁명화구역 수감자들이 북한 내에서 '정치적 생명'이 살아 있다고 여겨지는 증거이자 "당연히 죽어 마땅한 죄인들의 가족이지만 당과 수령의 은혜는 이토록 깊다"는 뜻이라고 하는데, 강철환이 신동혁마냥 대중들 구미에 맞을 자극적인 내용 위주의 날조된 정치범수용소 경험담을 전파하려 했으면 '혁명화구역에 있을 때 사탕, 과자를 전혀 받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이 더 자연스러웠을 것이다. 혁명화구역에서 김일성의 '은덕'으로 김일성의 생일마자 당과류를 받은 것까지 거짓 경험담이라고 한다면 강철환이 북한의 실태를 광적으로 정밀하게 분석한 후 날조 주장을 했다는 것 아니면 거짓 경험담이라는 주장이 거짓, 즉 실제 경험담을 얘기했다는 것 둘 중 하나로만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는데, 당연히 후자가 훨씬 자연스럽다. # 물론 완전통제구역의 생지옥을 전한 안명철 김용의 경우 완전통제구역에도 위장용으로 보여주기식 상점을 만들고 수감자들에게 쥐꼬리 만큼이나마 월급을 준다는 것도 전했으니, 거짓말을 했을 가능성은 0을 넘어 마이너스다. [7]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그는 사실 여부도 알 수 없는 찌라시를 퍼트린 것이 아니라 실제로 있었던 사건을 보도, 현재 일어나는 일을 여러 사람들과 함께 추측하여 분석한단 것을 알아야 한다. 즉 주관적인 해석이 나올 수 밖에 없다는 것. [8] 아이러니하게도 지만원이 지목한 강철환은 강경 보수 성향이다. [9] 더구나 지만원 말마따나 강철환이 5.18 민주화운동에 개입했다는 게 사실이라면 강철환은 겨우 12살밖에 안 됐는데도 지옥 같은 정치범수용소를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은 채 몰래 탈출한 뒤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은 채 남한의 광주로 넘어가 시위를 선동한 후 다시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은 채 북한으로 넘어간 후 정치범수용소로 '자발적으로' 돌아와 스스로를 재수감"했다"는(...), 한마디로 도저히 인간으로서는 상상할 수가 없는 정신나간 결론에 다다르게 된다. 다만 지만원이 민주화 운동과 관련해서는 가장 신뢰성 높은 정보의 출처라고 생각하는 북한은 7살도 되기 전의 김일성 3.1 운동을 이끌고 김정일이 3살이 되기 전에 군인들에게 공격 명령을 내렸으며 김정은이 3살 때 총을 쏘고 운전을 했다고 주장하는 나라라는 것을 감안하면 지만원 입장에서는 충분히 사실이라고 믿을 만한 소리이긴 하다. [10] 하태경 의원은 과거 열린북한방송 대표를 맡은 바 있어 강철환 기자와 매우 친한 사이이다. [11] 당시 북한의 386세대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남조선처럼 북에도 이런 민주화 혁명을 일으킬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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