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000><colcolor=#fff> 카토 토모히로 [ruby(加, ruby=か)][ruby(藤, ruby=とう)][ruby(智, ruby=とも)][ruby(大, ruby=ひ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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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82년 9월 28일 |
아오모리현 고쇼가와라시 | |
사망 | 2022년 7월 26일 (향년 39세) |
도쿄도 도쿄구치소 사형장 | |
국적 |
[[일본| ]][[틀:국기| ]][[틀:국기| ]] |
범행 동기 | 묻지마 범죄 |
피해자 수 | 7명 사망, 10명 부상 |
범죄 유형 | 대량살인, 살인미수, 흉기 난동, 테러, 살인예비음모죄 |
사인(처벌) | 교수형( 2022년 7월 26일 집행) |
범행 날짜 | 2008년 6월 8일[1] |
가족 | 부모님, 남동생 카토 유지[2], 외조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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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본의 살인범. 아키하바라 무차별 살상사건의 범인.2. 생애
1982년 9월 28일에 아오모리현에서 첫째로 태어났다. 그의 남동생은 둘째이며 1986년생이다.2.1. 인적 사항
카토 토모히로는 1980년대 일본의 아오모리현에서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는 아들이 공부를 조금이라도 못하면 아동 학대와 인격적인 모욕을 일삼았고, 눈이 내리는 한겨울에 집에서 맨발로 쫓아내는 등 그에게 엄청난 고통을 줬었다고 한다. 폭력의 대물림이라는 말처럼 카토 토모히로의 어머니도 그와 똑같이 유년기 때 학대를 당했을 것이라는 추측과는 다르게 그의 어머니는 굉장히 평범한 가정에서 자랐기 때문에 굉장히 어이가 없다는 반응이 많았다. #1, #2하지만 불행한 환경에서 자란 사람들이 모두 흉악범죄자가 되는 것은 전혀 아니다. 당장 카토 토모히로의 남동생 역시 학대를 받았지만 극복해서 평범한 사회인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오히려 형의 살인 때문에 멀쩡하던 동생의 인생이 망가졌다. 그리고 아무리 불행한 삶을 살았다 하더라도 자신과 아무 상관 없는 무고한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가는 무차별 살인을 저질렀으니 그의 범행은 절대로 정당화될 수 없다.
2.2. 가족
일본은 타인에게 민폐를 끼쳐서는 안 된다고 여기는 메이와쿠 문화가 매우 강한 데다가 한국과 달리 헌법에 연좌제를 금지하는 조항이 없어서 범죄 가해자의 가족이 사회적 매장을 당하는 강도가 한국보다 훨씬 강하다. 일본 유명작가 사카모토 유지의 2011년 드라마 < 그래도, 살아간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 편지> 등 이러한 범죄자 가족의 피폐해진 삶을 다룬 창작물도 있다.그의 가족도 사건 이후 사회적으로 엄청난 압박에 시달렸는데, 외할머니는 충격으로 사망했고, 남은 가족들은 두꺼운 커튼을 치고 전기불도 켜지 못한 채 쉴 틈 없이 이사를 하며 숨어 지냈다.
동생인 카토 유지(가명)도 회사 앞까지 기자들이 진을 치는 통에 직장을 그만둬야 하는 처지에 내몰리자 지방으로 내려가 생계를 유지하려 하였다. 그러나 이미 인터넷에 퍼진 개인정보 탓에 금세 흉악범의 가족이라는 것이 알려져 해고되거나 동료들의 압박 및 싸늘한 시선을 견디다 못해 그만두는 일이 반복되었으며, 고향이나 형제 관계 같은 평범한 질문에도 고통스러움을 느끼며 점차 사람들에게서 고립해 갔다.
정체를 털어놓는 것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지만, 평소에 마시지 않는 술의 힘을 빌려서 제 여러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한 번 말을 꺼내니 나머지는 봇물 터지듯 말이 흘러나왔습니다. 그녀의 반응은 '당신은 당신이니까 상관없다'는 것이었습니다.
1년 후 어쩌다 그를 있는 그대로 바라봐 주는 좋은 여자와 만나 연애를 했지만, 상대 가족의 완강한 반대로 결혼은 무산되었고, 여자 역시 계속되는 반대에 지친 나머지 그에게 작별을 고했다.
제일의 대답은 '가족 모두가 이상해, 당신의 가족은'이라고 선고받은 것입니다. 이건 솔직히 괴로웠습니다. 그녀 덕분에 한순간이라도 사건의 괴로움을 잊을 수 있었습니다. 닫힌 제 미래가 밝게 비춰진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한순간일 뿐이었고, 제 고독, 고립감을 희석시키기에는 불충분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지금에 와서는 역효과였습니다. 들어올려지고 나서 떨어진 느낌입니다. 저는 이제 다른 사람과 깊이 관여하는 것은 그만두자고 반 무의식적으로 결심하고 말았습니다. (중략) 저는 사회와의 접촉도 최대한 피할 방침을 세웠습니다.
그렇게 사건 뒤 처음으로 마주한 따뜻함을 떠나보내야 했던 그는 점차 사람들에게서 마음을 닫고 사회에서 고립되어 갔으며, 그 와중에도 계속 형을 면회하려고 50번이 넘게 편지를 보냈지만 답장을 받지 못했다. 그렇게 6년 가까이를 고통받던 그는 마지막으로 250장 가량의 수기를 작성해 한 잡지사에 보냈다.
죽을 이유를 이겨낼 만한 살 이유가 없다.
형이 어머니의 첫 번째 복제품이라면 나는 두 번째이다. 하지만 나는 형과 같은 짓은 하지 않을 것이다. (중략) 그토록 형을 원망했지만, 내 안에도 분명 '형과 닮은 부분' 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사람을 죽이거나 자살하거나 둘 중 하나다. 그러나 형처럼은 되고 싶지 않다.
피해자 가족들의 아픔에 비할 수는 없겠지만 가해자 가족도 분명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가해자 가족인 주제에 힘든 척하지 마라', '가해자 가족은 고통받을 자격조차 없다' 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마음도 이해한다. 다만, 당사자로서 이 말은 전하고 싶다. 평생 끝나지 않는 고통의 시간을 가해자 가족도 보내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로부터 1주일 후인 2014년 4월 11일 향년 28세에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이 일이 알려지자 동정론이 나오기도 했다. 한국 언론의 기사 비슷한 사례로는 미야자키 츠토무의 아버지와 사세보 여고생 살인사건의 가해자 아버지가 사회적으로 비난을 받자 버티질 못하고 자살했던 것이 유명하다.
동생이 자살한 뒤에도 카토는 사형당할 때까지 단 한 번도 가족을 만나지 않았다. 카토가 사망한 뒤 다시 한 번 가족의 근황이 알려졌는데 그 사이에 부모는 이혼했고 어머니는 정신질환자가 되어 폐쇄병동을 전전하게 되었으며 아버지는 신용 금고에서 해고당한 데다 계속해서 걸려오는 비난 전화를 이기지 못하고 전화는 물론 전기마저도 끊고 은둔 생활을 한다고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