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9-22 14:06:01

요 라 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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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 La Ten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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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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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성 1984년
미국 뉴저지 호보켄
활동 1984년 ~ 현재
현재 멤버 조지아 허블리
아이라 카플라
제임스 맥뉴
탈퇴 멤버 데이브 슈램
마이크 루이스
데이브 릭
스테판 비흐뉴스
장르 인디 록, 노이즈 팝, 슈게이즈, 드림 팝
레이블 Matador, Bar/None, City Slang, Alias, Arts & Crafts México, Three Lobed


1. 개요 2. 상세3. 평가 및 영향력4. 음반 목록5. 여담

1. 개요

Yo La Tengo - Autumn Sweater

미국 인디 록 밴드. 기타리스트 아이라 카플라랑 드러머 조지아 허블리[1]를 주축으로 뉴저지 호보켄에서 결성했다. 참고로 이 두 사람은 부부다.

특유의 절충주의적 음악으로 온갖 장르를 수용하고 후대에도 많은 영향을 미친 밴드로, 페이브먼트 등과 함께 90년대 미국 인디 록을 대표하는 밴드로 대접받는다.[2] 84년에 결성되었음에도 아직까지 왕성히 신보를 내면서 활동한다.

2. 상세

밴드 이름 '요 라 텡고'는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에서의 일화에서 유래한다. 1962년 시즌에서 뉴욕 메츠[3]의 중견수 리치 애시번은 유격수 엘리오 차콘과 외야에서 충돌할 뻔했다. 차콘이 베네수엘라 출신이라 영어를 몰라서, 의사가 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애시번은 "I got it!(내가 잡을게)"에 해당하는 스페인어가 "¡Yo la tengo!"임을 배우게 되었고 차콘과의 충돌을 피할 수 있었다. 그러나 방심한 애시번은 이번에는 좌익수 프랭크 토머스[4]와 부딪혀 버렸다. 토머스는 스페인어를 몰랐을 뿐 아니라, 차콘과의 충돌을 피하려면 "¡Yo la tengo!"라고 외치라고 일러준 팀 미팅에도 참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토머스는 일어나면서 애시번에게 "What the heck is a Yellow Tango? (옐로우 탱고라니 무슨 소리야?)"라고 물었다고 한다.

이외에도 I Am Not Afraid of You and I Will Beat Your Ass는 NBA 피닉스 선즈 커트 토마스 뉴욕 닉스의 스타 플레이어 스테판 마버리를 볼 때마다 했던 말, “너따윈 두렵지 않아, 내가 박살내주지”에서 앨범 타이틀을 가져왔다는 루머가 있다 .아이라 카플라랑 제임스 맥뉴가 야구 뿐만 아니라 굉장한 농구 덕후여서 신빙성 있는 가설.

소프트 보이스 미션 오브 버마를 좋아하는 사람을 찾는다는 광고로 밴드 성원을 모집한 이들은 1985년 첫 EP 녹음 후 1986년 첫 앨범 Ride the Tiger를 내놓게 된다. 버즈 R.E.M., 킹크스, 러브,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영향을 받은 이 앨범은 60년대 포크/컨트리 록과 파워 팝의 영향을 받은 앨범이였고 동시에 그들이 앞으로 이어갈 절충주의적 스타일 일부를 예견하게 하는 앨범이였다. 이후 New Wave Hot Dogs President Yo La Tengo를 통해 음악적으로 성숙해져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때만 해도 전형적인 무명밴드였고, 밴드 성원도 자주 갈리곤 했다. 특히 베이스가 자주 갈려나갔던 편.

기타리스트였던 데이브 슈람이 다시 합류해 내놓은 Fakebook은 자신들이 좋아하던 곡들을 커버한 앨범이였고, 슈람이 떠나고[5] 지금까지 장기 재적중인 제임스 맥뉴가 베이스로 들어온 May I Sing With Me에서 노이즈를 도입하기 시작하면서 슬슬 포크 록 뿐만이 아니라 소닉 유스 벨벳 언더그라운드 같은 노이즈/ 슈게이즈 영역에도 손을 뻗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마타도어 레코드에 정착해 내놓은 Painful에 이르러 아름답게 흩뿌려지는 슈게이즈 스타일의 노이즈가 황금비율의 팝 멜로디가 독특하게 결합했다는 평을 받으며 본격적으로 포텐을 터트리게 된다. 이 앨범으로 단숨에 후배 페이브먼트랑 더불어 마타도어 레코드의 간판 주자가 된 이들은 스타일을 발전시킨 Electr-O-Pura와 그들만의 화이트 앨범이라 할 수 있는 걸작 I Can Hear the Heart Beating as One로 통해 미국 인디 록 씬의 스타가 된다. 이후로도 꾸준히 양질의 앨범을 발표하며 음악 활동을 하고 있다.

2008년 그랜드 민트 페스티벌 내한한 적이 있는데, 음향이 그렇게 좋지 않았고 밴드가 엄청나게 유명하거나 열광적인 음악을 하는것도 아니고 하필이면 마지막이여서 반응이 저조했다는 후문이 들려온다. . 당시 백스테이지에 배두나가 왔다고. 2016년 11월 YES24 무브홀에서 8년만에 내한이 확정되었다. 단독 내한으로는 최초.[6] 반응이 좋았는지 2019년 7월 3번째 내한을 진행했고, 이번에는 이틀 동안 공연하고 갔다.

2022년 1월 6일 데이비드 번과 함께 오노 요코의 Who Has Seem the Wind?의 커버 버전을 공개했다.

3. 평가 및 영향력

음악적 스펙트럼이 넓은 축에 속하는 밴드로, 비틀즈, 킹크스, 비치 보이스 같은 60년대 로큰롤, 버즈 러빈 스푼풀, R.E.M. 영향 아래에 있는 포크/컨트리 록에다 빅 스타, 디비스 같은 파워 팝, 벨벳 언더그라운드 소닉 유스, 슈게이즈의 영향을 받은 노이즈 록에 선 라 같은 프리 재즈도 섭렵하는 모습을 보인다. 음악의 주축인 아이라랑 조지아도 그렇고 제임스 역시 굉장한 음악 덕후인지라 가능했던 일. 그래서 평론가들은 이들의 음악을 절충주의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런 절충적인 모습은 같은 레이블 소속 페이브먼트와 더불어 90년대 이후 미국 인디 록을 정의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4. 음반 목록

5. 여담

  • 현지에서도 인기 밴드라 하긴 힘든데[9], 의외로 한국에서 I Can Hear the Heart Beating as One부터 시작해 Popular Songs까지 앨범이 전부 라이센스 발매 되었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적지만 골수 팬들이 많은 밴드다.


[1] 우파 스튜디오에서 일했던 애니메이터 존 허블리와 페이스 허블리의 딸이다. 때문에 유년 시절엔 부모님 애니메이션에 목소리로 출연한 적이 있다. 형제자매로는 애니메이터 에밀리, 배우 마크, 편집자인 레이가 있다. 존이 재혼후 낳은 자식이라 상당히 늦둥이였다고 하며 (아버지랑 무려 43살 차이가 난다. 참고로 이복형제도 있다.), 조지아가 17살이 되던 해 타계했다. [2] 보통 93년의 Painful 앨범부터 2000년의 And Then Nothing Turned Itself Inside-Out 앨범까지를 절정으로 본다. [3] 실제로 부부가 뉴욕 메츠 팬이다. [4] 1990년대 시카고 화이트삭스에서 활동하던 선수가 아닌 1929년생, 1951년 피츠버그에서 데뷔한 동명의 선수다. [5] 이후 2015년 다시 합류했다. [6] 두번째 내한 인터뷰에서 밝히길 공연 자체를 자주 하지 않는다고 한다. [7] 리메이크곡으로 이루어진 앨범 [8] 리메이크곡으로 이루어진 앨범 2. 더 큐어의 Friday I'm in Love의 리메이크 버전이 히트했다. [9] 최고 차트 순위가 2013년 Fade로 26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