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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80/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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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8월 쿠데타3. 1993년 러시아 헌정위기4. 체첸 사태5. 돈바스 전쟁6.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7. 바그너 그룹 반란

1. 개요

T-80의 실전 기록을 정리한 문서.

2. 8월 쿠데타

파일:Agony of the Soviet Union, August 18-21, 1991. August coup. T-80UD.webp
8월 쿠데타 당시의 소련 육군 제4근위전차사단 소속 T-80UD
1991년 소련 보수파의 쿠데타 당시 소련군 최정예 기갑사단이자 모스크바 근교에 주둔해 있던 제4근위전차사단 "칸테미롭스카야" 의 T-80UD 전차가 보수파 측에 붙어 옐친파 소련군 T-72 전차와 대치했으나, 별다른 유혈사태 없이 보수파 측 쿠데타가 실패한 것을 끝으로 철수했다.

3. 1993년 러시아 헌정위기

파일:external/www.rospisatel.ru/image017.jpg
국회의사당에 포격을 가하는 제4근위전차사단 소속 T-80UD
1993년 또 다시 제4근위전차사단 '칸테미롭스카야'의 T-80UD가 이번엔 국회의사당에 투입되었다. 보리스 옐친이 러시아 상원인 최고회의에서 다수당인 러시아 공산당에게 불만[1]을 느끼고 해산시키자 최고회의에서는 옐친을 탄핵해버리고 국회의사당을 점거, 대통령에 맞서 농성을 벌였다. 이에 극대노한 옐친은 전차사단을 투입하여 대륙의 기상이 어떠한 것인지 다시 보여줬다. T-80UD 일제 사격으로 인해 국회의사당은 반파되고 결국 공산당은 항복했다. 참 아이러니하게도, 칸테미롭스카야 사단은 불과 2년 전만 하더라도 옐친에 맞서는 공산당을 지지했지만 이때부터 옐친 편으로 돌아서서 자신들이 보호했던 공산당을 항복시켰다.

4. 체첸 사태

파일:t80-825x543.jpg
제2차 체첸 전쟁 당시 체첸군을 향해 중기관총을 발사하는 러시아 육군 소속 T-80BV
T-80U가 서방의 3세대 전차와 대적가능한 강력한 전차였던 것과 달리, 냉전 종료 후 1990~2000년대 러시아 전차 전력의 중핵인 T-80BV는 체첸 사태에서 T-72보다 낮은 생존성을 보여주었다. 또한 당시 투입된 많은 부대가 애초에 T-80을 운용한 경험이 부족한 후방의 군관구 소속이었으므로 병참과 운용에서 많은 문제점을 노출하였다. 대부분의 전차병은 정차 및 대기중에도 디젤 엔진 탑재 전차를 운용했을 때처럼 그대로 시동을 켜두었고, 그래서 공회전시에도 부하시와 별 차이없이 연료를 대량 소비하는 가스터빈 엔진은 안그래도 부족한 러시아군의 병참능력에 더 큰 부담을 지웠다. 여기에 T-80의 코르지나나(바구니) 자동장전장치는 탄약 탑재위치의 문제 때문에 T-72에 비해 측면피격시 더 위험[2]하다는 약점이 실전에서도 드러났다. 덤으로 가스터빈연료(등유)는 디젤연료(경유)에 비해 인화성이 높다. 무엇보다 일부 차량은 반응장갑이 제대로 설치되어 있지 않았고 그 자리에 보관용 나무상자를 대강 집어넣는 등 중구난방으로 전투에 임했으며 또한 시가전에서 과거 소련군 출신이라 T-80의 약점을 속속들이 알고있는 체첸 반군들이 겨눈 RPG-7을 피할 생각않고 느릿느릿 기어다니다 피격당해 전소하는 사례가 속출했다. 제1차 체첸전쟁 당시 4개 대대분의 T-80B(V) 150대 가량이 그로즈니에 투입되었다.

비록 1차 체첸 분쟁에서의 총체적인 실패는 개별 무기체계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소련 붕괴 여파 때문이지만, 이때의 실패는 T-80 계열의 프리미엄 이미지에 먹칠을 했다. 이는 부분적으로 T-72 계열의 우랄열차공장이 유일한 차기 러시아 주력전차 생산자로 지정되는 결과에 기여했다. 물론 T-72라고 훨신 우월한 성과를 낸 것은 아니기에 크게 보면 큰 영향을 준 것은 아니라는 의견도 있고 일설에 따르면 오히려 1991년 쿠테타 당시 T-80UD를 운영한 칸테미롭스카야 사단이 소련 보수파 측에 붙으면서 옐친의 눈에 띄었고, 이는 훗날 정권을 잡은 옐친이 정치적 보복으로 우랄바곤자보드를 대신 밀어준 것으로 보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3]는 내용도 있지만 애초에 1980년대 소련 시절부터 가스터빈 엔진의 비싼 가격 때문에 물량 양산이 안된다는 보고서가 쏟아져 나왔고 이에 따라 하리코프가 T-80U 대신 T-80UD 같은 디젤엔진 전차를 만들 수도 있었기 때문에 소련이 쪼개지며 우크라이나의 하리코프가 떨어져나간 이후 돈이 없던 러시아로서는 어쨌건 T-90을 뽑는 방법밖에 없었을 것이다.

제2차 체첸-러시아 전쟁에서는 1차 전쟁의 작전실패를 본보기로 삼아 폭발반응장갑을 충실히 장착했으며 보병부대 등과 충분한 협동[4]아래 고속기동을 하며 적과 맞서서 피해를 줄이고 성공적으로 임무를 수행했다.

5. 돈바스 전쟁

6.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파일:russian Naval infantry T-80BV at Donetsk Region, Ukraine May 22, 2022.jpg
도네츠크주에서의 러시아 해군 제155해군보병여단 소속 T-80BV "로시야"
파일:220511120116-vid-thumb-bunny-4.jpg
우크라이나 육군 T-80BVM "Bunny"
러시아군과 우크라이나군 양군이 운용중이며 현재 러시아의 손실은 826대이며 우크라이나의 손실은 57대이다. #

이 전쟁에서 확인된 첫번째 전차 에이스도 T-80이 배출했다. 주인공은 하르키우 방면에서 우크라아나 육군 제93기계화여단에게 T-80BVM "BUNNY".[5] # BUNNY는 이듬해 2023년까지 건재하게 살아남아 활약하다 4월 바흐무트에서 진창에 빠지자 자폭처리 되었다.

우크라이나 전차 지휘관 인터뷰에 의하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차 통틀어 가장 방호력이 우수한 기종이 T-80BVM이고, 2번째가 T-90A, 3번째가 T-72B3 계열 이라고 한다. #

노획한 T-80BVM을 운용하는 우크라이나 승무원들의 평가는 호평 일색이다. 강한 화력과 넓은 시야, 최대 80km까지 올라가는 고출력 가스터빈 엔진이 제공하는 빠른 속력과 조작 편의성을 겸비해 먼저 도착해서, 쏘고, 즉히 이탈할 수 있다며 매우 강력한 차량(Very powerful vehicle)이라는 극찬을 내렸다. # 우크라이나 전차병들이 꼽은 단점은 연비뿐이었다.[6]

7. 바그너 그룹 반란

파일:Rostov-on-Don_Wagner_Group_T-80.jpg
바그너 그룹 소속 T-80BV "시비리"


[1] 옐친의 민영화 정책으로 물가가 폭등하고 복지 시스템이 박살나자 러시아 공산당은 이를 이용해 자신들의 지지 세력을 모았다. [2] 이 부분이 애초에 T-72가 케로젤 장전기를 채택한 이유중 하나였다. T-64와 T-80의 코르지나는 장약을 세워두기 때문에 자동장전기가 차지하는 면적이 더 넓고 유사시 차체의 운전수와 포탑의 전차장/포수가 전차 내에서 서로 돕는 것도 매우 어려웠는데 케로젤은 이 부분에서 코르지나보다 더 안전하다. [3] 일례에도 T-80 전차를 개발한 키로프 공장은 니키타 흐루쇼프 시절에도 T-10 중전차 양산에 관해 정치적으로 보복을 받은 적이 있었다. 키로프 공장 전차 설계국장 및 T-10 수석 설계자인 조제프 코틴은 정치적으로 라브렌티 베리야의 후원을 받고 있었고, 나중에 흐루쇼프가 정권을 잡으면서 이전에 자신의 정적이던 베리야가 밀어주던 키로프 공장과 ChTZ를 눈엣가시로 보고 고의로 T-10 양산을 중지시키는 등 보복을 가했다. [4] 제병과 연합. [5]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군의 것을 노획한 것이다. [6] 물론 이는 가스터빈 엔진 특성상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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