Шпитальный-Владимиров Авиационный Крупнокалиберный, ШВАК
Shpitalnyi-Vladimirov Aviatsionnyi Krupnokalibernyi, ShVAK
시피탈니-블라디미로프 항공용 대구경 기관포
1. 개요
1930년대 후반부터 제2차 세계 대전 동안 소련 공군에서 20mm 항공 기관포의 대명사로 여겨졌던 무기였다. 소련의 총기 설계자인 보리스 슈피탈니(Борис Гавриилович Шпитальный : 1902~1972)와 세묜 블라디미로프(Семён Владимирович Владимиров : 1859~1956)가 함께 설계하여 1936년부터 생산이 시작되었다. 두문자의 순서와는 반대로, 실제로는 개발의 주도권은 블라디미로프가 쥐고 시피탈니가 보좌하는 체제로 만들어지게 된다. 그러므로 ShVAK라는 명칭은 개발자의 이니셜을 따서 슈피탈니-블라디미로프 항공용 대구경 기관포(Шпитальный-Владимиров Авиационный Крупнокалиберный)의 두문자가 붙여져 명명된 것이었다.2. 프로토타입에 그친 중기관총
사실 이 무기는 처음에는 12.7mm 탄을 이용하는 중기관총으로 먼저 선보였지만 그 생산수가 적어 그다지 알려져 있지 않다. 12.7mm ShVAK는 소비에트 연방정부로부터 개발 허가를 1931년 2월 9일에 받아냈는데, 실은 그 몇 년 전부터 툴라 조병창에서 DShK(ДШК) 기관총을 위한 12.7×108mm 탄약을 생산하던 국내 제조사들에 의해 그 필요성은 제기되고 있었다. 설계자 세묜 블라디미로프는 1,246mm 길이의 총신에 전체 길이 1,726mm나 되는 ShKAS 기관총의 대구경 모델을 만들기 시작했다. 첫 시제품은 1932년 5월 28일에 준비되어 시험을 받았지만, 좀체로 양산 허가는 떨어지지 않고 있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12.7mm ShVAK은 1934년부터 생산 준비가 완료되었으나 실제로 양산이 시작된 것은 이듬해인 1935년에 코브로프 공장[1]에서 만들어낸 INZ-2부터 였다. 하지만 이 신형 중기관총은 제작 공정이 복잡하고 숙련공을 필요로 했던 탓에 생산 진도는 더뎌지고 있었다. 소련측 기록에 따르면, 이 무기는 1935년에 항공용으로 410정, 전차 탑재용으로 40정이 만들어질 계획이었으나 겨우 86정과 6정밖에 완성되지 못했다.중요한 문제는 ShKAS 매커니즘을 12.7mm ShVAK에 적용시키려면 탄피에 림이 돌출된 12.7mm 탄약이 필요하게 된 것이었고, 결국 DShk 기관총에 쓰이는 림이 없는 12.7×108mm 탄은 쓸수가 없게 되었다. 따라서 중기관총 계획은 다른 무기로 대체하도록 결정되며 자연스럽게 다음 단계로 넘어가게 된다. 바야흐로 소련 공군의 관심은 이즈음 항공용 기총의 새로운 총아로 불리고 있던 구경 20mm 기관포에 쏠리고 있었다.
3. 운용
이런 과정에 태어난 ShVAK 기관포는 폴리카르포프 설계국의 I-153과 I-16, I-185, 야코블레프 설계국의 Yak-1과 Yak-7B, 라보츠킨 La-5, La-7, LaGG-1, LaGG-3, 미코얀-그레비치 설계국의 MiG-3 같은 전선 전투기는 물론이고 장갑 돌격기 일류신 Il-2의 초기형과 쌍발 전폭기인 Pe-2, 그리고 영국으로부터 공여받은 호커 허리케인 Mk.II에 달린 .303 브라우닝 기관총을 내리고 대신 탑재될 정도로 실로 여러가지 다종다양한 군용기에 탑재되어 사용되었다.ShVAK는 개전으로 인해 증산이 들어간 탓에 그 생산수는 폭발적으로 늘어나게 되는데, 1942년에는 34,601문, 1943년 26,499문, 1944년에는 25,633문, 1945년부터는 생산량을 줄여 13,433문, 그리고 종전 후인 1946년에 출고된 754문까지 합치면 100,920문이나 만들어졌다. 이 숫자는 이른바 날개 탑재형(Крыльевой)과 포탑 거치형(Турельный), 그리고 모터캐논(Мотор-пушка)과 기타 형식을 모두 합한 수량이지만, 동급 기관포 중에서 가장 많이 만들어진 것 중에 하나이다.
뿐만 아니라 소련 육군의 수륙양용 전차 T-38의 일부와 정찰 전차 T-60에도 이 기관포가 주무장으로 실리기도 했으므로 원래의 용도인 항공 기관포로만 사용되는데 그치지 않았다. 육군에서 대전차포 용도로 쓰인 파생형은 TNSh(Танковая Нудельмана Шпитального : ТНШ)라고 불리며, 원본에 지상군이 쓰기 편하도록 살짝 개수를 더한 것일 뿐 그 성능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4. 구조
앞서 밝힌대로 ShVAK 기관포는 기본적으로 항공 기관총인 ShKAS의 구경을 키운 확대형이라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설계의 모태가 된 ShKAS 기관총은 1934년부터 생산이 시작되었으나, 통짜 강철을 깎아내고 다듬어내는 부분이 너무 많아서 당시 소련의 낙후된 공업기술 수준으로는 대량 생산에 알맞은 병기는 아니었다. 제조에 요구되는 허용 공차도 기존의 기관총에 비해 작고 높은 정밀도를 요구했던 탓에 완성된 ShKAS는 공장에 따라 품질이 일정하지 않았고, 바로 이것이 운용 초기에 제기된 여러가지 문제점이나 악평의 주된 원인이 되었다. 게다가 급탄 걸림이 일어나면 그 자리에서 곧바로 조치하는 것이 쉽지 않은 로터리 방식 급탄 시스템의 구조는 신뢰성면에서 문제가 많았던 탓에 이에 따라 ShKAS는 1936년에 일단 생산이 중지되었다.[2]ShVAK는 이런 제반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 구경을 키우는 동시에 ShKAS와 같은 가스압으로 작동하는 급탄 벨트는 그대로 도입했지만 탑재한 항공기가 어떤 자세를 취하고 있더라도 확실하게 포탄을 약실에 공급해주게끔 압축공기 봄베를 추가하였다. 이 조치는 분명히 급탄 걸림 문제의 상당 부분을 해소해주긴 했지만, 화기와 함께 공기 봄베를 따로 보급해야만 해서 일선의 정비, 무장사들이 불평을 했으며 공기호스의 연결부가 파손되어 새기라도 하면 곧바로 기관포 자체가 먹통이 되기 때문에 또다른 문제를 낳고 있었다.
5. 불량 포탄 문제
이 기관포에 쓰이는 20x99mm 포탄은 보통탄에서부터 소이탄, 철갑탄, 고폭탄, 예광탄 등이 준비되었으나 나중에는 그 기능들을 통합시켜 주로 탄두중량 96그램의 소이유탄(ОЗ)과 99그램의 소이철갑탄(БЗ) 2종류가 이용되었다. 이런 조치는 초기형 기관포탄들에 달린 민감한 신관이 뜨거워진 약실 내부에서 폭발하는 증상이 있어서 기피된 탓도 있지만, 결과적으로는 보급의 일원화와 일선 운용에서의 편리함을 추구한 탓이다. 소련 공군은 이 기관포의 탄약이 안고 있던 문제점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신관 기술이 한 단계 발전하게 되는데 그만큼 전쟁 초기에 생산된 20x99mm 포탄은 문제가 많았었다.소련군은 원래 적군 보다 한 단계 큰 구경의 포탄을 쓰려고 하는 사상이 지배하고 있었던 탓에 공군 역시도 ShVAK의 위력에 만족하지 못하고 업건을 계획하게 된다. 1952년에 서방측에서 발간된 보고서에 의하면 이 기관포는 "동급의 서방제에 비하면 확실히 가볍고 위력도 좋지만, 재질의 문제 때문에 그 수명이 극단적으로 짧다"고 평가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 무기는 기관포의 대명사처럼 여겨지던 위상이 금세 바래어 곧 베레진 B-20이나 NS-23 같은 신형 기관포와 NS-37 같은 훨씬 대구경, 고위력의 중기관포로 대체되어 갔다.
6. 제원
전장 : 1,679mm (날개 탑재형) / 1,726mm (포탑 거치형) / 2,122mm (모터캐논)중량 : 40 kg (날개 탑재형) / 42 kg (포탑 거치형) / 44.5 kg (모터캐논)
사용탄종 : 20x99mm
탄두중량 : 91~99g
급탄방식 : 벨트 급탄
작동방식 : 개스압 작동식
연사속도 : 700~800발/분
포구속도 : 750~815 m/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