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05-10 00:37:15

AW.52


암스트롱 휘트워스 AW.52 (Armstrong Whitworth AW.52)

1. 제원2. 세 가지 첨단 기술을 통합시킨 폭격기3. 무동력 비행 실험4. 전익 실험기5. 사고


1. 제원

형식 : 전익 실험기
설계 : 존 를로이드(John A. Lloyd : 1888~1978)
제작 : 암스트롱 휘트워스(Armstrong Whitworth Aircraft)
초도 비행 : 1947년 12월 13일
승무원 : 1명
전장 / 전폭 / 전고 : 11.40 m / 27.40 m / 4.40 m
에어포일 : NPL.655-3-218 / NPL.655-3-118 / NPL.654-3-015
중량 : 8,919 kg ~ 15,492 kg
동력 : 롤스로이스 닌 터보제트 엔진 (추력 5,000 lbf ) 2기
최대속도 : 804.7 km/h
상승고도 : 10,972 m
상승률 : 1,464 m/min.
항속거리 : 1,577 km ~ 2,414 km
제작수 : 2대

2. 세 가지 첨단 기술을 통합시킨 폭격기

잉글랜드 북동부의 고스포드(Gosforth)에서 1912년에 설립된 항공기 제작사인 암스트롱 휘트워스(Armstrong Whitworth Aircraft) 사는 2차 대전이 한창이던 1943년에 전익기 형태의 층류익을 갖추고 4개의 제트 엔진으로 추진되는 고속 폭격기 영국 공군성에 제시했다. 이 세 가지 요소는 당시만 해도 첨단 영역에 속하고 있었으며, 한 가지씩만 도입해도 큰 효과를 보게 되는 첨단 기술들이었다. 주익에 층류익을 도입한 P-51과 제트 엔진을 쌍발로 설치한 글로스터 미티어는 당대 항공기의 성능을 능가하는 모습을 보여주긴 했지만 전익기 형태는 아직 항공기 설계자 보다는 공기역학 전문가들의 손을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게다가 암스트롱 휘트워스는 영국 북부에서 가장 큰 항공기 메이커이긴 했지만 전간기에 영국 공군이 도입한 쌍발 폭격기 휘틀리(Armstrong Whitworth A.W.38 Whitley)와 1940년에 발표해 수송기로 채용된 앨버말(Armstrong Whitworth A.W.41 Albemarle) 외에는 그다지 눈에 띄는 실적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어 한물 간 업체로 여겨지던 선입견도 선뜻 AW.52라 이름 붙여진 이 첨단 폭격기에 관한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을 막게 된다.

3. 무동력 비행 실험

공군은 시험 삼아 예정된 크기의 1/2 스케일로 축소하여 만든 무동력 전익 글라이더 A.W.52G를 넘겨 받아 날려보았는데, 뜻밖에 비행 성능이 좋고 안정적이었다. 그렇지만 결국 전투와 부족한 예산에 쫓기던 영국 공군은 이 전익 폭격기를 발주하지 못했고, 그대로 2차 대전은 끝나게 된다. 전쟁이 한창일 때 공군은 예산이 부족해 쩔쩔 맸지만, 전쟁이 끝나자 불어온 군비 축소의 바람으로 인해 이번에는 의회로부터 감시를 받으며 압박을 받게 된다.

4. 전익 실험기

그렇지만 영국 공군성은 제트 시대가 성큼 다가온 지금 연구 개발에 손을 놓는다면 미래가 어두워질 것을 염려했고, 암스트롱 휘트워스 사로 하여금 장거리 우편기라는 명목으로 2대의 원형기를 만들어달라는 발주를 넣게 된다. 첫 번째 프로토타입인 TS 363호기는 롤스로이스 닌 엔진을 장착한 상태로 1947년 12월 13일에 첫 비행을 실시했다. 이것을 뒤따라 만들어진 2호기에는 추력을 줄이고 연비를 높인 롤스로이스 더윈트(Rolls Royce Derwent)를 장착시켜 1948년 9월 1일에 비행했다.

원형 1호기는 1949년 5월 30일에 시도된 시험 비행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이상 증상으로 인해 추락하고 말았는데, 다행히 타고 있던 조종사는 개발진들이 새롭게 설치한 마틴 베이커 사출좌석으로 긴급 탈출하여 생명을 건질 수 있었다. 이것은 영국 조종사가 처음으로 사출좌석을 이용한 사례로 남게 된다. 프로토타입 2호기는 1954년까지 판보로(Farnborough)에 있는 영국 공군성 산하의 실험 비행장인 RAE(Royal Aircraft Establishment)에서 계속 작종 시험비행과 테스트 프로그램을 소화하게 된다.

5. 사고

1949년 5월 30일에 테스트 파일럿 조 O. 랭커스터(John Oliver Lancaster : 1919~2019)는 순항 비행을 하다가 515 km/h의 속도로 완만하게 하강 조작을 했다. 갑자기 승강타가 펄럭이며 떨리는 플러터 현상이 일어났고, 곧바로 수직 방향으로 기체가 떨리는 진동이 발생했다. 이 진폭은 점점 커지고 빨라져 처음에는 초당 2회 정도였으나 갑자기 기동 불능이 될 만큼 미친듯이 떨렸다. 조종석에 앉아 있던 랭커스터 비행사는 동체가 부서지는 구조 파괴의 징조로 여겨지는 파열음이 여기저기서 들리자 기체가 금방이라도 공중 분해될 것으로 생각했다. 찰나의 판단 아래 랭커스터는 사출 레버를 당겼고, 마틴 베이커 Mk.1 사출좌석은 로켓 부스터가 점화되면서 기체를 벗어났다. 이것은 영국 출신 조종사가 실험이나 테스트가 아닌 실제 상황에서 사출좌석을 이용한 첫 번째 사례였으며 그는 캐터필러 그룹의 제1호 멤버로 등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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