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2010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벌어진 재미교포 한인회장 선거에서 발생한 논란.2. 사건 진행 과정
스칼렛 엄의 사진.
스칼렛 엄 LA 한인회장[1]은 2010년 5월 제 30대 LA 한인회장 선거에서 회장에 재선되었는데 회장에 당선된 과정에 상당한 문제가 있는 사람이다. 한인회장 선거관리위원회 위원 9명을 임명하는 과정에서 5명을 현 한인회장이 직접 지명하도록 하고 나머지 4명은 추천을 받아 현 한인회장이 지명하도록 규정을 바꾸어 버렸다.
이에 대해 박요한 당시 후보가 발끈하자
이런 일이 일어나자 결국 LA에 사는 교포들이 강력하게 반발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스칼렛 엄과 선관위는 돌연 잠적해버려 더 거센 비난을 받았다. 그러다가 며칠 뒤에 모습을 드러내 스칼렛 엄의 당선을 멋대로 확정지어 버렸다.
스칼렛 엄은 결국 무투표 당선이 확정되었는데 당선되고 나서 하는 한마디가 "선거 관리규정을 공명하게 지켜준 선관위원들의 노고에 감사를 표한다. 물의를 일으킨데에 대해선 죄송스럽게 생각하지만, 선관위는 법을 잘 이행했기 때문에 당선증을 당당하게 받을 수 있는 것이다."로 정말 뻔뻔한 할머니다.
선관위는 전혀 선거를 할 준비가 돼 있지 않았는데 후보자들 포스터조차 준비해 놓지 않았다고 한다. 즉, 처음부터 선거를 치를 생각 따위 전혀 없었던 것이다.
결국 박요한이 새로운 한인회를 구성해 LA에 두 개의 한인회가 존재하는 상황이 생기기도 했다.
이 블로그를 참고해도 좋다.[2] 2편
3. 사건 이후
2011년 4월 28일 두 한인회들은 한 자리에 모여서 기자회견을 갖고 한인회가 통합할 것이라고 발표를 했으나 발표 전날 스칼렛 엄은 또 연락이 두절되고 잠적해서 무산되었다. 농담이 아니라 진짜로 이 할머니의 특기는 "연락 끊고 잠적하기"라고 해도 될 만하다.마침내 2011년 5월 16일 두 한인회들은 호텔에서 공동 합의 기자회견을 갖고 1년여만에 다시 통합되었다. 박요한이 자신의 한인회를 포기하고 모든 직책을 받지 않기로 하면서 합의가 되었다. 하지만 LA 교포들이 그들을 보는 시선은 이미 차가워진 지 오래였다.
4. 위험성
이 사건이 왜 문제가 되었냐면 2012년 총선 및 대선부터 재외선거가 도입되기 때문이다. 만일 이런 방법을 동원해서 한인회를 특정 정파가 장악하고 조작 투표를 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현실적으로 선관위가 재외국민 투표까지 감시할 수는 없으며 투표권을 가진 한국 국민이 한인회에 생각보다 많다.5. 계속된 추태
불행히도 스칼렛 엄의 추태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물론 이미지를 많이 말아먹었지만 그래도 이후에 어느 정도 자숙하고 정신을 차렸다면 비난이 수그러들었을텐데 1년 후 스칼렛 엄의 한인회는 이보다도 더한 대형 사고를 치고 말았다. 2012년 5월 26일 한인회 50주년 행사 출연료 수표 부도 사태가 그것이다. LA 한인 교포를 대표한다는 사람들이 한국에서 먼 길을 날아온 가수들에게 출연료를 제 때 주지도 않았고[3] 출연료 수표를 고의로 부도내는 사기 행각을 저지른 것이다! 이후의 대처도 가관인데 스칼렛 엄은 자신의 주특기를 발휘하여 다시 오랫동안 잠적하였고 돈을 받으러 온 직원들을 한인회 사무실 직원들이 폭행하려고까지 하는 모습이 뉴스에 보도되기도 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은 "돈이 없는데 어떻게 하라고?"였다.이렇게 거듭된 사건으로 인해 LA 한인회에 대한 이미지는 바닥으로 떨어졌다. LA 한인 교포들은 이미 LA 한인회를 한인 사회의 대표로 인정하지 않은 지 오래이며 심지어 LA 한인회라는 단체가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사람도 많고 한인회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들도 "한인회는 그냥 할 일 없으면서 자기들이 대단한 사람들이라고 착각하는 노인네들이 모여 자기들끼리 자리 따먹기 하고 돈잔치하는 단체"라는 비난을 퍼붓기도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사건으로 인해 애꿎은 LA 한인 교포들은 물론 미국의 한인 교포 전체에 대한 이미지가 안 좋아졌다고 할 정도로 망신을 당했기 때문이다. "LA 한인회라는 단체는 있어야 할 이유가 없다. 이 사람들의 욕심 때문에 열심히 살고 있는 다른 한인 교포들이 피해를 본다. 지금이라도 한인회 간판 내리고 다들 자숙하며 조용히 사는 것이 좋겠다"는 진심어린 충고를 보내는 사람들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