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10-26 22:08:45

1969년 옐로우리버 드래그스트립 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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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사고 당시3. 사고 이후4. 유사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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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69년 3월 2일 미국 조지아주 커빙턴의 옐로우스트립 드래그레이싱 경기장에서 열린 드래그 레이스 도중 일어난 사고.

2. 사고 당시

옐로우 리버 드래그 스트립은 당시 개조 차량과 퍼니카들의 드래그 레이싱 장소로 유명한 곳이었다. 사실상 성지 취급 받아 수많은 드래그 레이서들과 차량 매니아들이 이곳에 모여들었다. 수많은 레이싱이 열렸고, 사람들은 맥주와 안주를 먹고 마시면서 레이싱을 구경하며 즐겼다.

하지만 그렇다고 시설이 좋은 곳이었냐면 그건 또 아니었다. 트랙이 좁고, 관람객과 트랙 사이를 구분하는 가드레일이나 철망이 없었다. 그나마 작은 펜스가 있긴 했으나 차로 넘어갈 수 있는 크기였다. 트랙에선 최대 시속 305km의 레이싱카가 달리곤 했으니 굉장히 위험한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관람객들은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서 구경하려고 트랙에 가까이 붙었다. 트랙에서 겨우 3m 거리에 사람들이 모여있는 경우도 많았고, 한 사람은 너무 가까이 붙어 차가 지나가며 분 바람에 맥주를 떨어뜨리기까지 했다.너무 트랙 가까이에 서서 경기장 내 아나운서가 경고하는 일도 잦았다.

1969년 3월 2일, 빅 고(Big Go) 레이싱이 열렸다. 레이서 휴스턴 플랫은 1969 카마로를 타고 참여했다. 해당 카마로는 미시간주에서 개조차량으로 유명했던 마운트 클레멘스에서 만들어진 퍼니카로, 427 체비 엔진이 달려 있어 엄청난 속도로 달릴 수 있었다. 플랫과 팬들은 플랫의 차량을 '딕시 트위스터(Dixie Twister)라 불렀다. 이러한 휴스턴의 상대는 프랭크 오그레스비(Frank Oglesby), 니콜슨즈 SOHC 쿠거(Nicholson's SOHC Cougar) 차량을 타고 레이싱에 참가했다.

경기장에 5,000여명의 사람들이 모인 가운데, 휴스턴과 오그레스비는 출발선에 섰고, 오전 2시 20분에 신호가 울리자 두 차는 출발했다. 둘은 엄청난 속도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 순간 갑자기 휴스턴 차량에서 이상한 큰 소리가 났고, 휴스턴은 재빨리 차량 감속용 낙하산을 폈다. 그런데 차량은 감속하면서 갑자기 트랙 밖으로 방향을 틀었다. 트랙 바로 옆에서 구경중이던 관람객들은 갑자기 들이닥치는 차량을 피할 틈이 없었다. 결국 차량은 그대로 사람들에게 돌진했다.

차에 치인 사람들은 차에 깔리고, 날아갔다. 낙하산 줄에 베인 사람도 있었다. 수십명이 순식간에 부상을 입었다. 충격에 빠진 관람객들이 공황 상태에 빠져 구급차를 부르는 게 사실상 불가능했다. 부상을 입지 않은 관람객들은 부상자들을 자기 차에 태워 급히 인근 병원으로 갔다.

사고로 12명이 사망하고 40명 이상이 부상을 입었다. 11명은 현장에서, 1명은 애틀란타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다가 사망했다. 드래그 레이싱 차량의 낙하산 줄에 그대로 감겨 몸이 잘려나가 사망한 사람도 있었다. 가장 어린 사망자는 당시 겨우 3살이었다. 사고는 미국 모터스포츠 역사상 가장 많은 목숨을 앗아간 사고로 기록됐다.

3. 사고 이후

목격자들은 휴스턴의 잘못은 없었고, 그가 사고를 막을 수도 없었다 증언했다. 사고의 원인은 운전자도, 차량도 아닌 레이싱 트랙 그 자체의 문제였다.

사고 이후 드래그 레이스 경기장 안전 문제가 불거졌다. 옐로우리버 드래그스트립 외에도 비슷하게 트랙과 관중석 사이를 구분짓는 펜스가 거의 없다시피 한 곳이 많았다. 이후 관중들은 트랙 가까이에 가지 못하도록 법적으로 지정되어 관중석과 트랙 사이에 거리를 두게 됐고, 혹여나 사고를 대비해 큰 가드레일과 펜스를 세우게 됐다. 또한 트랙 넓이도 넓혀 갑작스런 사태에 운전자가 대비할 시간이 더 커졌다. 경기장 내 아나운서 박스는 트랙 가까이 설치되어 트랙 상황을 파악하기 쉽게 됐고, 드래그레이스 경기장은 책임 보험에 가입해야만 오픈할 수 있게 됐다.

옐로우리버 드래그스트립은 사고 이후 레이싱이 열리지 않았다. 이후 레이싱 관련 시설들이 철거되고 트레일러 파크로 바뀌었다. #

조지아주 레이싱 전당에는 사고 이후 많은 안전규정이 세워져 사람의 목숨을 살렸다는 이유로 딕시 트위스터 차량 이름이 새겨졌다. 하지만 운전자였던 휴스턴 프랫은 당시 사건에 대한 트라우마로 인해 자신의 이름이 올라가는 걸 거부했다.

휴스턴은 부상을 입지 않았으나 큰 충격을 받았고,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겨우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충격이 컸던 휴스턴은 드래그 레이싱을 그만뒀다. 그리고 충격 때문에 한동안 치료를 받아야 했고, 사망하기 전까지 사고를 무서워했다. 휴스턴 프랫은 2011년 11월 30일, 79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파일:딕시 트위스터 현재.jpg
딕시 트위스터는 이후 캐나다로 팔려나갔다. 수십 년이 지나고 캐나다 노바스코샤에서 발견됐고, 사고 당시 휴스턴 프랫과 같이 일했던 랜달 대이비스(Randall Davis)가 80,000달러를 주고 차량을 다시 찾아와 고친 뒤 다시 드래그레이스 차량으로 활약하게 됐다.

4. 유사 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