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라쿠사 참주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FF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font-size: 0.95em; letter-spacing: -1.4px" |
겔론 1세 | 히에로 1세 | 트라시볼로스 | 대 디오니시오스 | 소 디오니시오스 |
디온 | 칼리포스 | 히파리노스 | 니사이오스 | 소 디오니시오스 | |
티몰레온 | 아가토클레스 | 히케타스 |
티니온 소시트라토스 |
피로스 1세 | |
히에로 2세 | 겔론 2세 | 히에로니무스 | 아드라노도로스 |
에피키데스 히포크라테스 |
}}}}}}}}}}}} |
<colbgcolor=#00bfff><colcolor=black> 히에로니무스 Ἱερώνυμος |
|
|
|
생몰년도 | 기원전 231년 ~ 기원전 214년 |
출생지 | 시칠리아 시라쿠사 |
사망지 | 시칠리아 레온티니 |
지위 | 시라쿠사 참주 |
국가 | 시라쿠사 |
가족 |
히에로 2세(할아버지) 겔론 2세(아버지) 네레이다(어머니) |
시라쿠사의 참주 | |
재위 | 기원전 215년 ~ 기원전 214년 |
전임 | 히에로 2세 |
후임 | 아드라노도로스 |
[clearfix]
1. 개요
시라쿠사 18대 참주.2. 생애
시라쿠사 17대 참주 겔론 2세와 피로스 1세의 딸 또는 손녀 네레이다의 아들이다. 아버지 겔론이 216년 사망한 후, 히에로 2세는 손자인 그를 후계자로 지명했다. 기원전 215년, 히에로 2세는 임종을 눈앞에 뒀다. 티투스 리비우스 파타비누스에 따르면, 히에로는 죽기 전에 15살밖에 안 된 어린 아들에게 참주를 맡기는 것보다는 민주정을 회복하는 게 나을 거라 여기고 진지하게 고민했지만, 그의 딸 데마라타와 헤라클레아, 사위 아드라노도로스와 조시포스의 설득으로 마음을 바꿨다고 한다.히에로는 죽기 전에 사위 아드라노도로스와 조시포스를 포함한 고명대신 15명을 지명해 어린 손자를 보좌하게 했다. 그러나 아드라노도로스는 얼마 후에 성년식을 치렀으니 이미 성인이라는 이유로 섭정단을 해산하고, 또다른 사위 조이포스를 히에로니무스의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동생들과 함께 알렉산드리아로 보냈다. 그리고 칸나이 전투에서 참패한 로마가 곧 망할 거라 보고 고대 카르타고와 손잡고 시칠리아를 석권하고자 했다. 히에로 2세 대부터 정계에서 활약한 프라손이 반대하자, 아드라노도로스는 프라손이 왕을 암살하려는 음모를 꾸몄다는 누명을 뒤집어씌우고 처형했다.
아드라노도로스의 설득에 넘어간 이후 한니발에게 동맹 의사를 타진했다. 한니발은 시라쿠사에 사절을 즉각 파견하여 자신과 손을 잡으면 시칠리아를 시라쿠사에게 넘기겠다고 제안했다. 한니발이 보낸 사절단 중 절반의 혈통이 시라쿠사인이었던 히포크라테스와 에피키데스는 한니발의 대리인으로써 시라쿠사 궁정에 남았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로마의 시칠리아 행정관 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 풀케르는 히에로니무스에게 사절을 보내 조부의 뜻을 받들어 로마와 우호관계를 이어가라고 요청했다. 이에 시칠리아 왕국이 히메라 강으로 확장하는 걸 동의하고 히에론 2세가 로마에 바쳤던 모든 공물을 돌려달라는 등 무리한 요구를 했고, 결국 로마는 설득을 포기했다.
기원전 214년 여름, 히포크라테스와 에피키데스가 지휘하는 2,000명의 군대는 로마 수비대로부터 이웃 도시들을 해방시키기 위해 진군했다. 15,000명의 본대를 이끌고 시칠리아 내륙에서 가장 큰 도시 중 하나인 레온티니를 공략했다. 그러나 이 무렵 히에론 가문의 독재에 반감을 품은 무리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레온티니의 좁은 길을 따라 아고라로 향하고 있을 때, 경호원 한 명이 그를 따라가던 신하들을 멈춰 세웠다. 그 직후, 골목에 숨어있던 공모자들이 뛰쳐나와 히에로니무스를 단검으로 난자해 살해했다.
레온티니 장병들은 처음에는 암살자들을 처단하려 했지만, 돈을 후하게 나눠줄 것을 약속받은 데다 평소에 권력을 남용했다는 이야기를 듣자 입장을 바꿔서 히에로니무스의 시신이 거리에서 썩게 방치했다. 이후 아드라노도로스가 참주를 칭했다가 곧 살해되었고, 궁중 암투 끝에 한니발의 사절이었던 에피키데스와 히포크라테스가 권좌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