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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2261c><colcolor=#ffffff> 타이강 호크스 No. 2 | |
훙이중 洪一中 | I-Chung Ho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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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61년 5월 14일 ([age(1961-05-14)]세) |
타이완 성 가오슝시 | |
국적 |
[[대만| ]][[틀:국기| ]][[틀:국기| ]] |
학력 | 중국문화대학 |
포지션 | 포수 |
투타 | 우투우타 |
프로입단 | 1990년 슝디 엘리펀츠 |
소속팀 |
대만 공군 야구단 (1983~1985) 슝디호텔 야구단 (1985~1989) 슝디 엘리펀츠 (1990~1996) TML 가오핑 레이공 (1997~2002) |
지도자 |
라뉴 베어스 (2004~2009) 라미고 몽키스 (2011~2019) 푸방 가디언스 (2020~2021) 타이강 호크스 (2023~) 대만 야구 국가대표팀 (2008, 2017, 2019~20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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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만 프로야구 타이강 호크스의 감독. 라미고 몽키스와 푸방 가디언스 감독을 역임하며 CPBL 최다 우승(7회), 최다 승수(991승)를 기록하고 있다.1961년 5월 14일 대만 가오슝에서 태어났으며 현역시절 포수로 활약했다. 은퇴 직후인 2004년 감독 취임 이래 지도자로 야구 경력을 이어나간 인물이다.
2. 선수 시절
1985년 군 제대와 동시에 대만 실업 야구 슝디호텔 야구단에 입단하였다. 1990년 프로리그가 출범하면서 슝디호텔을 계승한 슝디 엘리펀츠에서 활약한다. 슝디에서는 총 7시즌을 뛰었는데 이후 타이완 메이저리그(TML)가 출범하면서 TML로 이적하였다. 고향인 가오슝을 연고로 하는 첫 야구팀인 가오핑 레이공에서 1997년부터 6시즌을 활약하고 2002년 은퇴를 선언한다.선수 시절의 훙이중은 통산 2할 후반에 OPS 0.7 전후로 스타급 선수는 아니었지만, 어느 팀에도 가도 주전을 맡을 수 있는 실력이었다. 1993~1996년 시즌은 포수임에도 전 경기 출장을 했었고, 1992~1994 시즌 팀의 3연속 우승의 주역이었다. 골든글러브를 7회 수상(CPBL 3회, TML 4회)하였으며, 중신 시절에는 매 해 올스타로 선발되었다. 1999년 시드니 올림픽 서울 예선(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 및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등의 대회에서 국가대표에 선발된 경력이 있다.
3. 지도자 시절/CPBL
3.1. 라뉴 베어스
은퇴 후 해설자와 대표팀 코치를 맡았던 훙이중은 2004년 후기리그 고향팀인 라뉴베어스의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현역시절 몸 담았던 TML 가오핑을 계승한 팀으로 CPBL 합류 이후 선수단 뎁스가 얕아지면서 꼴찌를 도맡아 하고 있었다. 그 또한 2004 후기, 2005 전기에 꼴찌를 하였으나 2005년 후기리그를 2위로 마감하였다. 만년 하위팀이었던 라뉴는 2006 시즌 전/후기 1위 및 타이완시리즈까지 석권하였고 훙이중 감독 또한 일약 주목을 받게 된다.2007, 2008 시즌에는 후기리그에서 1위를 기록하지만 타이완시리즈 제패에는 실패하였다. 4팀 체제로 개편된 2009시즌에는 전기리그 2위를 차지하였으나, 후기리그에서 꼴찌를 하면서 2군 감독으로 물러나는 수모를 겪는다. 라뉴 베어스라는 이름으로 감독을 지낸 건 이 때까지 였다.
3.2. 라미고 몽키스
훙이중 감독이 최고의 영광을 누리던 시절이다.2011 시즌 라뉴는 타오위안으로 연고 이전을 하며 이름을 라미고 몽키스로 변경한다. 그리고 훙이중 감독도 1군 감독직으로 복귀한다. 2010 시즌 성적이 전년보다 더 추락하자 감독을 한 시즌 만에 경질하고 훙이중을 다시 불러왔다.
이 때 부터 라미고는 막강 포스를 보여주는데 2013, 2016 시즌을 제외한 전 시즌 타이완시리즈에 진출하였으며, 2011 시즌 단 한 차례만 준우승을 기록하였고 나머지 시즌은 모두 우승을 차지한다. 2017, 2018 시즌은 전/후기 모두 제패하는 등 그야말로 라미고의 무적 시대를 열었다.
그러나 중견기업에 불과한 모 그룹은 타 팀에 비해 자금 사정이 원활하지 않았고 그룹에 위기가 찾아오자 야구단을 매각한다. 일본 라쿠텐으로 매각을 공식 발표하던 시기 훙이중 감독은 푸방 가디언스 이적을 발표하게 된다. 1997년 선수로 가오핑에 입단한 이후 사실상 쭉 한 팀에 몸 담아온 사람이었던지라 라미고 팬들의 충격은 컸다. 그러나 7회 우승의 업적도 있었고 리그의 큰 손 푸방이 거액을 제시했으니 비난하기도 축하하기도 애매한 분위기 속에 팀을 떠난다.[1]
3.3. 푸방 가디언스
2016 시즌 우승팀 EDA 라이노스를 인수한 푸본그룹은 꽤 큰 규모의 대기업으로 리그에 뛰어든 이래 아낌없는 투자를 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년 연속 가을야구 진출에 실패하였다. 특히 2019 시즌은 종합승률 1위를 기록하였음에도 전/후기 모두 1위 획득에는 실패하여 가을야구 진출이 좌절되자, 1년만에 감독을 갈아치우기로 결정하고 명장 훙이중을 거액에 영입한다.그러나 그 또한 푸방에서는 어쩔 수 없었는지 두 시즌 연속 종합승률 4위에 그친다. 특히 2021시즌 후기리그 신생팀 웨이취안 드래곤스에 1게임차로 뒤져 공동 4위가 된 것이 결정타가 되어 자진 사임하게 된다.
3.4. 타이강 호크스
2022년 가오슝을 연고로 하는 타이강 호크스가 창단하자 연고지 출신의 훙이중이 감독으로 물망에 오르게 된다. 그리고 세간의 예상대로 2023년 타이강의 감독으로 취임한다. 푸방에서 실패가 안 좋은 쪽으로 임팩트가 컸던지라 신생팀에서는 어떤 결과를 낼 지 많은 이들이 주목하고 있다.CPBL 역대 감독 중 통산 승수가 압도적으로 가장 많으며 큰 이변이 없다면 팀이 1군에 진입하는 2024 시즌 초 1000승 돌파가 유력하다. 참고로 통산 2위는 작고한 쉬성밍 감독의 715승이다.
5월 15일 라쿠텐 몽키스와의 원정경기에서 5:0으로 승리하며 통산 1000승을 달성했다.
4. 지도자 시절/국제대회
2017 아시아 프로야구 챔피언십 CPBL 선발팀 감독 시절 |
4.1. 아시안 시리즈
2006년과 2012년 아시안 시리즈에 참여하여 두 차례 준우승을 기록한다. 두 번 모두 삼성 라이온즈를 격파하고 결승에 올라갔기에 한국에서는 꽤 충격을 받았다. 더구나 2012년은 사직 야구장에서 개최된 대회라서 충격이 더 컸다.4.2. 국가대표팀
대만 야구대표팀은 2007년 아시아야구선수권 대회 3위팀 자격으로 최종 플레이오프에 참여하였고, 대표팀을 이끌 수장으로 훙이중이 선임된다. 캐나다에게 6:5로 패배하는 등 우여곡절이 있었으나 5승 2패로 올림픽에 진출하게 된다. 그리고 올림픽 본선에 참여하는데 네덜란드, 일본을 만나 1승 1패로 시작한다. 그러나 3번째 경기에서 중국에게 패배로 본인 커리어에 가장 큰 오점을 남기게 된다. 이후 쿠바와 한국에 한 점차로 패배 후 캐나다에게 겨우 한 점차로 승리하며 대회를 마감한다.올림픽 중국 전 패배의 영향인지 수 차례 리그 우승에도 불구하고 대표팀 감독에 선임되지 못하다가 2017 아시아 프로야구 챔피언십 CPBL 선발팀 감독에 선임되었다. 이 대회에서는 2패로 마감하였으나 대회 자체가 성적에 큰 비중을 두지 않았기에 비난을 받거나 하지는 않았다.
2019 WBSC 프리미어 12 대표팀 감독으로 취임하면서 11년 만에 성인대표팀을 맡게 되었다. 일본, 베네수엘라, 도미니카 공화국과 한 조에 편성되었는데 예상대로 2위를 차지하며 슈퍼라운드에 진출하게 된다. 독특한 대회 운영 방식으로 1패를 안고 시작한 슈퍼라운드에서 멕시코에게 패배하면서 올림픽 티켓에서 상당히 멀어지게 된다. 다음 경기인 한국전에서 7:0으로 대승을 거두며 기사회생 하는 듯 했으나 2승 3패 성적으로 슈퍼라운드에서 5위를 기록하며 대회를 마감하였고 올림픽 본선 티켓 획득에 실패하였다. 이듬해 도쿄 올림픽 최종 플레이오프에서 본선 진출권을 노리는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대만 내 코로나 확산으로 최종 예선 직전 대회 참여를 포기에 따라 대표팀 감독으로서 행보를 마감한다. 이후 WBC 대표팀 감독으로는 선임되지 않았다.
4.3. 한국 대표팀과의 전적
한국 야구 팬들에게는 여러차례 쓰라린 패배를 가했던 까다로운 적장으로 기억되고 있다.대만프로야구 우승팀 자격으로 출전한 2006 코나미컵에서 한국프로야구 우승팀인 삼성 라이온즈를 이기는 대이변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2] 당시까지만 해도 한국의 야구계에서는 대만을 한 수 아래로 여겼기 때문에 당연히 대만 팬들은 열광했고, 한국팬들은 경악을 금하지 못하였다.[3]
이 때의 활약에 힘입어 훙이중 감독은 2008년 대만 야구 국가대표팀의 감독으로 임명,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대만 국가대표의 지휘봉을 들게 된다. 올림픽 조별리그에서 대한민국을 상대로 9-8로 1점차 접전을 벌이며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의 간담을 서늘케 했다.
2012년 라미고 몽키스를 우승시키고 참여한 아시아 시리즈에서 또 다시 삼성라이온즈의 덜미를 잡으며 한국 야구팬들을 놀라게 했다. 심지어 경기 장소가 부산 사직 야구장이었고, 삼성라이온즈는 전 대회 우승팀이었다.
2019 프리미어12 에서는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의 에이스 김광현을 공략하며 소위 지바 쇼크로 일컫는 영봉패를 선사하기도 했다.
이렇다 보니 훙이중 감독을 한국의 천적처럼 기억하는 한국 야구팬들도 있는데, 클럽팀간 대결에서는 2전 전패였지만 대표팀과 대결에서는 한국이 4승 1패의 전적이므로 그가 한국에게 늘 강했던 것은 아니다. 다만 그를 상대로 기록한 세 차례의 패배가 유독 인상에 깊었던 것도 사실이다. 사실 현역 선수 시절 그가 참가한 한국전 전적은 1승 3패에 불과했고 포수인 점을 감안해도 개인 타격성적도 특별히 뛰어나지는 않았다. 훙 감독 개인이 유독 한국에 강했다기 보다는, 야구 국제대회의 복병이자 다크호스로서 대만의 입지를 더 반영한 것으로 해석하는 편이 더 정확하다.
참고로 그의 현역선수 시절 후반기부터 프로선수들의 국제대회 참가가 허용되었는데, 노장 포수인 그가 참여한 국제대회는 1999년 서울에서 개최된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와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이다. 그리고 그가 몸 담았던 TML리그가 갑작스럽게 사라지면서 한국과의 아시안게임 결승전이 그의 현역 마지막 경기가 되었다. 즉, 현역 마지막 게임을 한국에서 치른 셈으로 한국과 남다른 인연이라 할 수 있다.
5. 기타
- 현역 데뷔 이후 지도자로 활동하는 지금까지 줄곧 등번호 2번을 달고 있다.
- 연고 이전이 잦은 대만 프로야구임에도 선수와 감독으로서 모두 로컬보이에 가깝다. 심지어 가오슝 연고지 외 팀 감독으로 갔던 푸방은 이전 연고지가 가오슝이었다. 훙이중 감독뿐만 아니라 타이완 시리즈 우승 횟수 상위 4명은 모두 가오슝 출신이다. (2위-뤼원성[4], 3위- 쉬성밍, 린이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