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차 천하오절 | ||||
중신통 | 동사 | 서독 | 남제 | 북개 |
왕중양 | 황약사 | 구양봉 | 단지흥 | 홍칠공 |
2차 천하오절 | ||||
중완동 | 동사 | 서광 | 남승 | 북협 |
주백통 | 황약사 | 양과 | 단지흥 | 곽정 |
사조영웅전의 등장인물 | |
신조협려의 등장인물 황약사 黃藥師 / Huáng Yàoshī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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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라마 〈
사조영웅전 2017〉의 황약사(미우키우와이(苗侨伟) 분)[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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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9CA5AA,#021D2D><colcolor=#053D5F,#F0F0F0> 별칭 | 동사(東邪) |
성별 | 남성 |
민족 | 한족 |
자택 |
도화도(桃花島) ( 송나라 양절동로 소흥부) |
소속 | 도화도 (도주) |
기술 |
탄지신통[2], 벽공장[3], 선풍소엽퇴법[4], 낙영신검장[5], 난화불혈수[6], 옥소검법[7], 점성술, 병략 등 |
장비 |
옥소(玉簫)[8], 부골침[9] |
가족 |
풍씨[10] (배우자) 황용 (장녀) 곽정 (사위) 곽부 (외손녀) 곽양 (외손녀) 곽파로 (외손자) |
등장작품 |
- 소설 《
사조영웅전》 (원작 1) - 소설 《 신조협려》 (원작 2) - 각종 2차 창작 작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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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黃藥師소설 《 사조삼부곡》의 등장인물.
천하오절 중 한 명으로, '동사(東邪)\'라 불린다. 황용의 아버지이다.
2.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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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white> 《사조영웅전》의 황약사 일러스트 |
별호 그대로 대륙의 동쪽 바다[11]에 떠 있는 도화도란 섬에 기거하는, 다소 괴이하고 종잡을 수 없는 성격을 지닌 무학 종사다. 무공이 매우 초절한 수준이며, 그 때문에 천하오절 중 한 자리를 차지했다.
또한 문학, 음악, 그림, 병략, 바둑, 서예, 천문, 수학, 의술, 점술, 기문오행술, 심지어는 기술이나 경제 등의 실무적인 분야까지 못하는 게 없는, 사조삼부곡을 통틀어 가히 원탑이라 부를 만한 재사다.[12] 김용 문학 작품 전체를 통틀어도 다방면에 능통하기로는 손꼽히는 수준이다.[13] 그나마 수영 실력만큼은 본인이 위일 것이라고 황용이 자신있게 말한적이 있다. 또 홍칠공이나 황용의 부상을 치료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단황야(일등대사)라는 언급도 몇 번 나오는데, 이로 미루어볼 때 의학 분야와 같이 일부 다른 사람에게 못 미치는 분야가 있는듯하다.[14]
그리고 이토록 놀라운 지식과 지성 위에 개차반같이 더러우면서 어떤 잔혹한 일이라도 거리낌없이 저지를 수 있는 성격을 장착했다. 자신의 잣대가 매우 강하고 세속의 번다한 예의범절이나 인의도덕을 하찮은 것으로 여기는 데다 다혈질에 행동력이 강하고 절세고수이기까지 하니, 이만큼 무서운 조합도 따로 없다. 한 번 마음먹으면 사람 죽이는 일 정도는 식은 죽 먹기로 해치우는 데다, 당대의 도덕과 관념을 제멋대로 무시하는 정도를 넘어 일부러 세속적 원칙의 엇박자를 타고 다닌다. 이렇게 살다 보니 천하오절을 기리는 자리에서 붙게 된 별호가 동사(東邪), 즉 동쪽의 사악한 자라는 별명을 갖게 되었다.[15] 보통 사람이라면 싫어할 만도 하건만 이 양반은 '그래, 내가 동사다! 나는 조때로 산다! 어쩔거냐!' 하는 마인드로 좋아라 한다. 사손뻘 항렬인 윤지평이 면전에서 자기 욕을 해댔을 때도 그 녀석 욕 한번 찰지게 잘하는구나 하고 웃었을 정도. 그런 면에서 서독(西毒)이라는 호칭을 기꺼이 받아들인 구양봉과 죽이 맞는 편.[16] 실제로 애지중지한 외동딸 황용과 구양봉의 조카를 맺어 주지 않겠냐는 혼사 제안을 기꺼이 받아들이기도 했다. 단순히 기행을 좋아하는 정도가 아니라 정말로 제 기분 내키는 대로 남을 해하는데 거리낌이 없는 양반이다. 구음진경을 매초풍과 진현풍이 훔쳐 달아났다는 이유로 죄도 없는 나머지 제자들을 불구로 만든 다음 섬에서 쫓아내버렸다. 자기 나름으로는 아낀다고 하는 제자들한테도 하는 짓이 이 모양이다. 나중에 너무 심한 짓을 했다고 내심 후회하기는 하지만.
정작 실제 사위가 되는 곽정은 썩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다. 황용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지만, 지나치게 순박하고 고지식하며 황약사가 쌓은 방대한 학문 지식의 태반에 깜깜무지한 촌부형 인물이라 다재다능 박학다식한 황약사로서는 심기가 불편해지는 것이 자연스럽다.. 곽정을 사위로 받아들이고 도화도에 기거하게 하면서 무공도 전수해 줬지만 사람됨이 잘 안 맞는 것은 해결이 안 되는 문제인 듯하다.[17] 그래서 그런지 사조영웅전 중반까지는 오히려 구양극에게 자기 딸을 내주고 싶은 마음을 내심 비췄을 정도다. 신조협려부터는 아예 도화도를 떠나서 방랑하면서 굉장히 똑똑하고 잔머리가 잘 굴러가던 10대 후반 양과와는 연배와 무공의 차이에도 죽이 잘 맞았고, 둘째 손녀 곽양의 별명이 '소동사'란 걸 알게 되자 이 동사의 후계자가 생긴 격이다라고 좋아하는 걸 보면
신조협려에서 전진교 3대 제자의 제자뻘인 양과와 친구를 맺음으로써 무림의 배분서열을 개판으로 만드는 인물이기도 하다. 파괴한 항렬의 단수만 따지자면 왕중양의 사제로 전진칠자의 제자뻘인[18] 곽정과 의형제를 맺은 주백통보다 한 급이 높다. 사실 동사 본인은 무림의 배분이라든지 사제간의 법도를 나름대로 따지는 편이나 양과와 워낙에 죽이 잘 맞아서 호탕하게 저질러 버린 것. 심지어 주백통도 곽정과 의형제를 맺었는데 자기는 왜 안되냐는 이유를 달기도 할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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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무림의 배분이나 사제간의 법도에 대한 황약사의 입장은 다소 모호하여 일종의 경계선에 걸쳐있다고 볼 수 있는데, 곡영풍의 백치 딸
곡사고가 황용에게 스스럼없는 말씨를 쓰자마자 '고모라고 불러야지!' 라고 꾸짖는 등 최소한 자신의 도화도 문파 내에서의 규칙은 엄격하게 적용하는 듯 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절대로 어겨서는 안 될 중요한 규칙으로 여기는 것처럼 보이지도 않는 것이, 스승을 아내로 맞이하겠다는(
=당대의 법도로 보면 엄마를 아내로 맞이하겠다는 것과 같다) 양과를 보고 얼마전에 그에게 목숨을 구함받고서도 되려 "짐승같은 놈"이라 까댄
무돈유&무수문이나 자식같이 키운 조카가 짐승만도 못한 놈으로 전락하는 꼴을 보느니 차라리 자기 손으로 때려죽이려 했던
곽정과는 달리 "한 번 사문을 배신했는데 두 번 못 할 것은 뭐냐"면서 "내 문하에 들어와서 소용녀와 떳떳히 결혼하라" 라고 해결책을 만들어주려 하기 때문이다[19]. 말하자면 일단 지켜야 할 원칙으로 보기는 하지만 예외없이 철저히 지켜야 할 규칙이라기보다는 적당한 선에서 유연하고 융통성있게 대응할 수 있는 영역으로도 여기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양과는 "조까세여. 저 더러워서라도 걍 스승하고 제자인채로 결혼까지 할거임"이라고 막나가며 황약사의 호의를 거절하지만 황약사는 "와... 나도 평생 내멋대로 살았지만 넌 나보다 더 화끈하네!" 라며 오히려 양과를 더 마음에 들어하여 친구까지 먹게 된 것이다.
이는 두 가지 측면에서 해석할 수 있을 것인데, 먼저 황약사의 행동원칙은 사회의 무수한 규범중에서 자신이 허례허식과 위선이라 여기는 것들은 경멸하지만 도덕적 원칙 자체를 무시하는 것은 아니며, 대의라고 인정하는 것은 존중한다는 점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당연히 지켜야 할 대의와 무시해도 상관없는 허례허식을 구별하는 황약사의 기준선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사제지간의 법도'는 대략 이 경계선에 걸쳐있는 것이 아니겠느냐는 것. 그렇기 때문에 "절대 해서는 안 될 짓까지는 아닌 것 같은데, 그렇다고 선뜻 해도 괜찮다고 인정하지도 못하겠다. 그러니 일단 내 도움을 받아 명분을 만든 뒤 떳떳히 하는 게 어떻겠느냐?" 고 도움을 주려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측면에서 보면, 물론 황약사는 영웅적인 기상을 가진 인물이고 옳고 그름도 나름 명확히 가리는 인물이지만 공정하다고 말하기는 도저히 힘든 인물이라는 점도 생각해야 한다. 예컨데 그는 자신의 도하도 문하에 대해서는 사제간의 항렬과 명분을 엄히 지키게 하는데, 또 문하제자들을 대하는 그의 태도를 보면 자신은 분노를 참지 못하고 자기 제자들을 불구로 만들고 내쫒는 짓도 아무렇지 않게 저지르면서도 남이 자기 제자를 우습게보거나 괴롭히는 짓은 절대로 용납할 수 없다는 식의 집착적인 자기중심성을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황약사에게는 곽정과 같이 "내가 해서 옳은 일은 누가 해도 옳은 일이고, 남이 해서는 안되는 일은 내가 해서도 안되는 일이다"는 식의 공정함을 기대하기 어렵다. 양과를 대하는 태도 역시 마찬가지로 일관적인 도덕적 원칙에 따른 판단이라기보다는 '이 녀석이 마음에 드니까' 편을 들고 감싸준 것일 가능성이 없어보이지는 않는다는 것.
그가 사는 도화도는 기화요초가 만발한 무릉도원 같은 장소이며, 벙어리 하인들 몇몇만을 부려 아름다운 풍경과 살림살이를 거뜬히 유지하고 있다.
괴팍한 걸 넘어서 꽤나 급한 성격으로 딸이 죽었다는 말만 믿고 마음에 상처를 입고 하인으로 일하는 벙어리들을 모조리 죽이거나,[20] 화가 나서 자기도 모르게 사람을 때려죽이는 일도 서슴치 않는다. 그런 반면에 가까운 사람에 대한 애착이 굉장해서 제자들을 용서한 후에는 곡사고를 보고 바보임에도 불구하고 도화도 문하라는 이유로 데려다가 무공을 만들어서 가르쳐줬다. 황약사는 지성도 뛰어나지만 예술가적 감성도 풍부한 사람이라 애정을 표시할 때는 굉장히 자애롭지만 분노를 표출할 때는 활화산 같이 통제가 되지 않는 면모를 갖고 있다. 스스로도 자신의 이러한 감정을 전혀 컨트롤하려 하지 않으며, 오히려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놓는 것을 삶의 철학으로 삼고 있어서 개차반 같은 성격이 더 도드라진다. 제자들에게도 거의 친자식처럼 애정을 듬뿍 쏟았었을 것임을 작중 묘사를 통해 간접적으로 짐작할 수 있는데, 자신들의 다리를 꺾어 불구로 만들어서 쫓아내었음에도 제자 중 단 한 명도 그를 원망하지 않았고 도리어 그의 은혜에 보답하지 못했음을 애석하게 여겼으며 그 변덕 죽끓는 듯한 개차반 성격을 알면서도 그의 문하로 되돌아가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한다. 심지어 그 악독한 매초풍조차도 황약사에게는 무한한 죄책감을 갖고 있고 결국 자신의 목숨을 바쳐서 은혜에 보답했다.
애착도는 대략 가족(부인, 딸, 손녀)⋙ 넘사벽⋙제자⋙또 넘사벽⋙다른 사람 수준이다. 부인과 딸, 손녀중에서 누구를 더 아끼는지는 황약사를 그걸 저울질해야 할 정도의 상황까지 몰아넣을 수 있던 인물이 없었기에 정확히 구별하기는 힘들고, 여하간 중요한 것은 자신에게 가까운 이와 그렇지 않은 이를 대놓고 다르게 대하는 인물이라는 것. 무조건적으로 아끼는 가족은 말할 것도 없고, 제자의 경우 자신은 제자들을 함부로 대할 때도 많지만 또 다른 이가 자기 제자들을 함부로 대하는 것은 절대로 참지 못하는 면모도 보여주는 것이다.
이렇듯 엄청난 재능과 배경을 지닌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그 종잡을 수 없는 괴팍한 성격 탓에 별호를 "사악할 사(邪)"자로 장식하게 되었다. 실제로 소설 속에서도 기인틱한 면모를 꽤 많이 보여주는 편이고, 작중에서는 그의 이러한 면을 경원시하거나 마음에 안 들어하는 사람들도 꽤 많다.
마음에 드는 사람에게는 잘 대해주지만 싫어하는 사람은 서슴없이 죽이고 자신이 기분나쁘면 거침없이 사람을 죽여서라도 화풀이를 한다. 도화도에 있는 벙어리 하인들의 혀도 그가 자른것이고[21], 매초풍 등 자신의 제자들을 잔인하게 내친 면모를 보면 선 혹은 악이라는 평가는 황약사한테는 무의미하다.[22]
"내가 서역을 떠나 한 서원에서 쉬고 있는데, 썩어빠진 유생놈이 학생들에게 강의를 하고 있습디다. 무슨 충신, 효자니 하는 말을 들으니 구역질이 나서 참을 수가 있어야지요. 그래서 죽여버렸지요. 당신과 나는
동사서독이니 참으로 뜻이 잘 맞습니다. 하하...!"
"내가 평생 존경하는 자는 충신과 효자요!"
"황노사란 이름도 다 허명일 뿐 예법에 얽매이는 사람이었구려."
"천하의 흥망은 필부에게도 책임이 있지. 충효는 인간의 도리이지 예법이 아니오!"
사조영웅전 中
사회 전반의 예교세속에 대해서는 무시하는 태도를 보이지만, 전형적인 악당형 캐릭터인
구양봉과는 달리 그는 허례허식이 아닌 개인의 신념에 기반한 원칙만은 존중하는 편이다.[23] 그의 이러한 면모는 진충보국의 영웅 악비를 존경한 점과
신조협려에서 양양성을 침공한 몽고병을 상대할 때의 개결한 태도를 통해 엿볼 수 있다. 수많은 무고한 사람들을 해친 이막수를 처치하려고 한 것이나, 벙어리나 귀머거리로 만들어 놓고 수틀리면 죽여 버리는 도화도의 하인들도 일단 죽어 마땅한 죄를 지은 것을 끌고왔던 것이니 나름대로의 일관성은 있다고 하겠다. 따지고 보면 문파간의 규율 같은 것도 허례허식이라고 부를 수 있겠지만 도화도 문하 제자를 건드리면 죽어도 용서하지 않고 사승간의 배분도 엄격히 구분한다. 요약하자면
조때로 행동하지만 스스로 그은 선은 넘지 않는 남자."내가 평생 존경하는 자는 충신과 효자요!"
"황노사란 이름도 다 허명일 뿐 예법에 얽매이는 사람이었구려."
"천하의 흥망은 필부에게도 책임이 있지. 충효는 인간의 도리이지 예법이 아니오!"
사조영웅전 中
사조영웅전의 속편 격인 신조협려에서도 나름대로 왕성한 활동을 보이는 꾸준한 캐릭터로, 1차 화산논검 때로부터 무려 50여년 후에 벌어진 3차 논검에서도 천하 오절의 자리를 당당히 차지하는 노익장을 과시한다.
2006년에 전북 익산에서 황 약사(황씨 성을 가진 약사)가 살해당한 사건이 보도되어, 팬들이 댓글란을 잠식했다. 무림고수 황약사가 무림의 무뢰배들에 의해 죽어버렸으니, 황약사를 아는 이들은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
일신의 무공이 정말 다양한데, 가장 즐겨 사용하는 절기인 탄지신통을 시작으로 선풍소엽퇴, 도화낙영장[24], 난화불혈수, 벽공장, 벽파장법, 오행장법, 영오보, 낙영검법과 옥소검법 등 다채로운 무공들을 사용한다. 황약사도 인간인 이상 가문으로부터 물려받았다거나 한 게 있겠지만 대체로 도화도주로서 독창해 낸 무공들이 태반인 듯하다.[25] 성질을 부려 제자들의 다리를 부러뜨린 것을 후회하고 고작 몇 해만에 다리 불구를 고칠 수 있는 내공심법을 만들어내기도 하는 것으로 보아 영웅문 세계관의 창의력 대장이라 불러도 될 것이다. 하룻밤 동안 전진칠자의 천강북두진과 겨뤄본 후 자율학습을 통해 천강북두진의 원리에 완전히 통달해서, 다음 대결에서 진을 거의 깨뜨리는 지경까지 이르기도 했다. 신조협려 시점에서는 아예 전진파의 천강북두진처럼 집단으로 무공을 발휘하는 진법을 만들고 싶다는 이유로 이십팔수대진을 완성시킨 상태. 심지어 무림 고수들 몇몇이 집단전을 하기 위한 이십팔수대진을 즉석에서 군진으로 어레인지하는 능력을 보여준다. 이처럼 무궁무진한 무공들을 바탕으로 당당히 천하오절의 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신조협려 시점에서도 점점 깊어가는 공력으로 천하오절 타이틀 유지에 성공.
간판 절기인 탄지신통은 지법으로 운용하기도 하지만 작중에서 가장 많이 활용된 사례는 소매 속에서 손가락으로 돌이나 암기를 퉁기는 용도였다. 그래서 그런지 합마공이나 항룡십팔장 같은 압도적인 위압감은 별로 없고 좀 소박하다 싶을 정도로 남발된 절기에 속한다. 하지만 도화낙영장으로 대적하기 힘든 암연소혼장의 기세를 허공에 튕긴 탄지신통으로 막아내는 것을 보면 그 진정한 위력은 절기라는 이름이 아깝지 않은 듯하다.[26] 사실 죄다 양민학살인 감이 있지만 두고두고 많은 장면에서 활약한 무공. 작은 돌멩이를 튕겨 금륜을 맞췄는데도 돌멩이가 산산조각으로 가루가 나고 금륜법왕이 그 강한 경력을 경계할 정도의 위력이 있다. 컨트롤도 신의 경지에 이르러 있어서 주백통과 구슬치기를 하다가 주백통의 구슬은 다 박살내고 본인 구슬만 골인시킨 일화가 있었다고. 매초풍을 멀리서 도울 때도 한 발은 늦게 쏘고 다음 발은 더 빨리 쏴서 공중에서 충돌 및 파괴시키는 신기를 보였다. 황용이 던진 돌이 코스를 가로막아도 부수고 그냥 날아가는 파워는 덤.
출판까지 된 동인지인 화산논검에서는 젊은 시절 미남이었다고 묘사하고, 원작에서도 호리호리한 체형에 학식이 넘쳐 보이는 의연함과 늠름한 풍채, 신선과도 같은 청아함이 풍겨났다고 꽤나 길게 묘사한다. 황용을 본 홍칠이 황약사와 황용이 눈과 코가 닮았다고 인증했고. 이래저래 사조영웅전에서 중년으로 나온 게 조금 아까울지도 모르는 일이다.
3. 작중 행적
3.1. 《사조영웅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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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사조영웅전 2017〉에서의 모습 (미우키우와이(苗侨伟) 분) |
소설 《 사조영웅전》에서는 도화도에 찾아온 주백통을 속여서 아내에게 구음진경을 보여주게 하고, 아내가 그것을 모두 외워서 필사했기 때문에 구음진경 하권을 얻게 된다. 하지만 구음진경 하권을 제자 진현풍과 매초풍이 훔쳐서 도망쳐버렸고, 아내는 하권의 내용을 다시 쓰려다가 임신 팔개월의 몸으로 너무 신경을 쓴 나머지 황용을 조산하고 죽어버리게 된다. 분노한 황약사는 다른 제자들도 다리의 근맥을 자르고 쫓아내버린다.
도화도에 홀로 틀어박혀 중원에는 잘 나오지 않았으나, 가출한 딸 황용을 찾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이러한 묵계를 깬 바람에 사조영웅전에서 주요 등장 인물로서의 지위를 누리게 되었다.
매초풍을 추적하다가 제자 육승풍이 살고 있는 귀운장에 나타난다. 매초풍에게는 부골침을 찌르고 1년 이내에 구음진경을 되찾아오고, 자신이 쫓아낸 4명의 제자들을 구해오고, 그 후에는 스스로 무공을 폐하라는 하라는 명령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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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사조영웅전 2017〉에서의 모습 (미우키우와이(苗侨伟) 분) |
하지만 주백통의 농담 때문에 곽정이 구음진경 하권을 의도적으로 매초풍에게 강탈하고 수련했다고 오해하게 되어, 곽정과 주백통을 배에 태우고 수장시켜서 자신의 아내에게 구음진경 하권을 공양하려는 음모를 꾸민다.
황용이 곽정을 구하러 배를 타고 나갔다는 것을 알고 다시 딸을 찾으러 바다로 나갔다가, 완안홍열의 배에서 영지상인에게 곽정과 황용을 비롯한 그 일행이 모두 바다에 빠져죽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망연자실하게 된다. 증오가 극에 달한 황약사는 곽정의 스승인 강남칠괴를 죽여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뭍으로 돌아와 이리저리 돌아다니게 되자 육관영이나 전진교의 윤지평 등이 곽정을 찾아 피하라는 소식을 알려주기 위해 우가촌으로 가게 되었다.
우가촌에 있는 곡영풍의 객잔에서 곡영풍의 딸을 만나고, 그녀가 양자옹과 싸우는 모습을 보면서 자신의 문하와 관련이 깊다는 것을 알자 객잔에 나타나 도와주게 된다. 그녀를 도와 양자옹을 망신준 다음, 완안홍열 일행이 가랑이 사이로 기어가게 해서 도망치게 한다. 윤지평은 뒤에서 자신을 욕한 것을 들었기 때문에 벌을 주려 했는데, 그가 벌벌 떨지 않고 꿋꿋하게 계속 욕하자 그 배포가 마음에 들었다면서 놓아주었다.
정요가와 육관영이 서로를 마음에 두고 있는 것을 알고 그 자리에서 당장 약식으로 혼례를 올리도록 한다. 그리고 구양봉과 주백통이 경공 승부를 하고 있는 것을 보자 자신도 끼어들기 위해 달려나간다. 주백통이 홍칠공을 버려두고 온 것이 마음에 걸려서 황궁으로 돌아가버리자 우가촌에 돌아왔다가 양강과 구천장의 거짓말 때문에 황약사가 주백통과 곽정을 죽였다고 오해하고 있던 전진칠자와 대결하게 된다. 그때 기회를 노리고 있던 구양봉에게 암습을 당해 목숨이 위험했지만 매초풍의 희생으로 살아난다.
전진칠자가 뭔가 오해하고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냉소적인 성격이라 변명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자리에 나타난 강남칠괴와 싸우다가 겨우 치료를 마치고 나온 곽정과 황용을 만나 그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게 되었다. 그리고 곡영풍의 최후를 알고 그 딸을 제자로 거둬들이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구양봉과 만나 구양극이 죽었다는 사실을 전하고 " 전진교 무공도 배우고 도화도의 무공도 배운 놈이 죽였다."고 했는데 양강을 의미하고 한 말이었지만 구양봉은 곽정이 죽였다고 오해하게 된다.
완안홍열 일당의 음모로 인해 곽정에게 강남칠괴를 살해했다는 오해를 받고, 전진칠자에게는 담처단과 주백통을 살해했다는 오해를 받아 연우루에서 결투를 벌이게 된다. 그 동안 천강북두진을 연구하여 그 약점을 깨우치고 있었고 단신의 몸으로 천강북두진을 파해하게 된다. 또 오해받고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원래 자존심이 강해서 일일이 해명하려 하지 않았다.
홍칠공의 제지로 싸움이 중단된 다음, 완안홍열 일당이 습격해오자 관심없는 척 물러나 있다가 탄지신통으로 가진악을 돕는다. 안개가 짙게 끼고 구양봉이 뱀을 풀자 가진악의 인도를 받아 빠져나간다.
홍칠공을 도화도로 데려가 정양을 시킨 다음, 딸을 찾아서 돌아다니다가 화산으로 온다. 화산에서 홍칠공과 공정하게 대결하기 위해 두 사람이 한번씩 곽정과 싸워서 곽정을 쓰러뜨리는데 몇 수나 걸릴지 재어보기로 한다. 그런대 대결을 끝마친 후, 갑자기 완전히 미쳐버린 구양봉이 나타나고 홍칠공이 싸우다가 구양봉의 광기어린 무공에 패배를 인정하자 자신도 구양봉을 이길수 없다고 인정했다.
구양봉이 미쳐서 어디론가 가버리자 황용, 곽정, 황약사와 함께 화산에서 내려온 다음 하루이틀 더 지내고 헤어졌다.
3.1.1. 신수판의 추가 및 변경 내용
황약사의 가정사가 추가되었는데, 황약사의 조부는 악비가 억울함을 밝히며 조정에 항의하였다가 진회에 의해 처형당하고 남은 가족들도 운남으로 유배당한다. 이러한 가정사 때문에 황약사는 조정에 불만을 가지고 반항아 기질이 생기게 된다.여제자 매초풍에 대하여 사랑의 감정을 품고 있었으나 당시 사회상으로 생각했을 때 이는 천하의 황약사조차도 건드릴 수 없는 금기였고, 이러한 마음을 곡영풍에게 들켰기 때문에 곡영풍을 불구로 만들고 파문시킨다. 하지만 아내를 맞이한 후 술김에 곡영풍을 그리워하는 얘기를 했고, 그 얘기를 들은 진현풍은 아무래도 사부님이 곡영풍을 다시 문하로 받아들일 것 같다면서 곡영풍의 보복이 두려워 구음진경을 훔치기로 한다.
이후 진현풍, 매초풍은 구음진경 상권까지 훔치기 위해 돌아왔다가 황약사에게 발견되고, 황약사가 어린 황용을 걱정하는 틈을 타서 도망치게 된다. 하지만 황약사는 둘을 추격할 생각이 없었고, 목숨을 부지하는 것이 중요하니 구음진경은 더이상 수련하지 말라며 충고까지 해준다.
귀운장에서 주총은 매초풍의 구음진경을 훔쳤다가 돌려주었고, 매초풍은 다시 구음진경을 황약사에게 반납한다. 황약사는 매초풍, 육승풍을 재입문 시켰고, 매초풍이 그동안 고생한 것을 측은하게 여겨서 육승풍의 귀운장에 얹혀살게 한다.
또 황약사의 부인이 암기해서 적은 구음진경은 불완전한 판본이었고[27] 곽정은 주백통에게서 원본을 전수받았기 때문에 더 정확하게 외웠다. 하여 황약사는 자신의 부인이 하늘에서 사위감을 점지해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또 이때문에 '곽정이 매초풍을 속여서 구음진경을 읽었다'는 주백통의 거짓말도 빈틈이 생겨서 황약사가 뒤늦게 깨닫는다.
3.2. 《신조협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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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신조협려 2014〉에서의 모습 (리밍순(李铭顺) 분) |
소설 《 신조협려》에서는 곽정 부부와 얼마간 지내다가 육지로 떠나서 강호를 떠돌게 되었다.
이막수에게 목숨을 위협받던 정영을 구해주고, 그녀를 돌봐주다가 제자로 삼았다.
또 온전한 정신이 아닌 곡영풍의 딸에게 그녀 전용으로 아주 단순하게 3가지 초식만으로 만들어진 무공인 이루어진 장법과 차법(叉法)을 전수했다. 괜히 천재가 아니라는걸 보여주듯이 그걸 배운 그녀는 이막수를 당황하게 만든다. 이후 이막수가 다시 곡사고를 기습하는데 성공하지만 본인도 그녀의 반격에 큰 부상을 입고 도망친다.
정영이 사촌여동생 육무쌍을 찾아 떠난 후, 이막수가 양과, 육무쌍, 정영을 위협하고 있을때 나타나 그들을 구해주고 금륜법왕과 싸우다 입은 양과의 부상도 치료해준다. 이 때 이막수가 음공으로 현을 다 끊어먹고 딱 한 줄만 남은 금으로 궁, 상, 각, 치, 우의 오음계를 몽땅 연주하면서 음공으로 이막수를 주화입마 직전까지 몰아가는 신기를 선보였다. 애초에 이막수를 음공으로 죽여버릴 작정이었지만 곡사고가 방해해서 실패.[28]
황약사는 양과가 세속의 예교에 사로잡히지 않는 점을 마음에 들어했는데, 그래서 양과에게 너 사문 배반하는 게 특기인 거 같은데 고묘파를 생까고 내 제자가 돼라라는 권유를 날린다. 고묘파를 때려치우면 소용녀가 사부가 아닌 셈이니 결혼을 해도 떳떳하지 않겠냐는(?) 논리. 하지만 양과는 세상 사람들이 이렇게까지 핍박을 해대니 기필코 소용녀를 사부로 두고 결혼을 하고 말겠다고 선언하고, 황약사는 그 기상이 자신보다 한 수 위라고 칭찬해 주며 양과를 벗으로 두게 된다. 처음에는 양과가 제자는 못 되더라도 친구로 지내면 된다고 하자 내가 노완동 주백통도 아닌데 너 같은 애송이랑 무슨 친구를 하냐라고 벌컥 화를 냈지만, 그러면서도 주백통 이야기를 좔좔좔 들려주고 결국 공식적으로 양과와 친구를 먹어서 무림의 배분을 개차반으로 만드는 데 기여하고 만다. 주백통이 곽정을 의동생 삼은 걸로 족보가 망가졌는데, 황약사도 족보를 꼬이는데 한 수 거들었다.
이후 이막수가 근처에 머물러 있다는 소식을 듣고 양과, 정영, 육무쌍을 데리고 찾아가지만, 이막수가 '도화도주는 제자들이 많은 걸 믿고 다대 일로 사람 핍박하고 다니는 거냐'는 도발을 날리자 그냥 돌아와 버린다. 대종사로서 일부러 불리한 처지에도 도망치지 않은 이막수에게 출수할 수 없을 뿐더러, 자신이 신세를 망가뜨려 버린 옛 제자들이 생각나 심히 울적해진 것. 하지만 양과의 내공이 어느 정도 경지에 이른 것을 알아차리고 양과와 정영에게 탄지신통과 옥소검법을 전수해준 뒤, 몇 해 있으면 이막수를 능가하고도 남을 테니 그 때 자신을 위해 이막수를 죽여 주면 족하다고 다독여 준다. 이에 감격한 양과는 황약사를 위해 복수한다는 명분을 위해 제자로서 예를 갖추고, 황약사는 '네가 이막수와 싸울 때는 내 전인이지만 그 외에는 내 친구이니 무슨 일이 있으면 반드시 도와줄 것이다'라고 공식 친구 인증을 때린다.
16년 후에는 정영, 육무쌍과 가흥에 머무르고 있다가 다시 강호로 나와 유람을 하는데, 동정호 인근에서 연파조수라는 고수가 신조협이라는 자의 부름을 받아 양양으로 간다는 이야기를 듣고, 연파조수가 성질이 괴팍하니 딸이나 손녀들에게 해코지하려는 것이 아닌가 싶어 양양의 영웅대회장까지 따라왔다가 가족들 및 양과와 오래간만에 재회하게 된다. 그 뒤 양과와 함께 길을 떠나서 이야기를 하다가 "남해신니"에 대해 묻는 양과에게 "그게 누군가?"라고 대답해서, 16년 전에 했던 황용의 거짓말이 들통나게 된다.
그 뒤 또 유람을 하다가, 익숙한 큰 수리의 소리를 듣고 곽정 부부가 근처에 있는가 해서 절정곡으로 가본다. 그리고 금륜국사를 보자 오랜만에 천하오절급의 호적수를 만났다고 생각하여 탄지신통으로 가로막으며 나선다. 하지만 금륜국사는 황약사까지 나서서 오절급의 고수가 3명이나 적으로 나타나자 좌절하여 항복.[30]
곽양이 다시 금륜국사에게 납치되자, 다른 일행들과 함께 양양성에 돌아온다. 그리고 곽양이 몽골군에게 인질이 되자 자신이 만들어낸 이십팔숙진을 펼쳐서 몽골군과 싸워 곽양을 구하려 한다.
후에 매초풍이 구음진경을 대충 수련하다가 주화입마에 걸린 것을 애석하게 여겨 구음진경을 바탕으로 주화입마의 염려없이 속성으로 익힐 수 있도록 구음백골조와 백망편을 개량했고, 곽정과 황용이 도화도에 무공 비급과 병법서를 숨겨두었다.
주지약이 익힌 이 무공은 겨우 몇 달이면 속성으로 익힐 수 있는 주제에 무지막지한 위력을 발휘했다. 역시 천재답다.[31]
4. 제자[32]
황약사의 제자들은 진현풍과 매초풍을 포함해 애꿎은 진현풍과 매초풍의 도주 탓에 불구가 되고 무공도 폐했음에도 황약사에게 무한한 존경을 바치고 있다. 복수같은 건 언감생심이라도 원망은 할 법도 한데...- 진현풍 - 아내인 매초풍과 함께 흑풍쌍살 동시철시라는 이름으로 강호를 휘젓고 다녔으나 어린아이였던 곽정의 손에 사망.[33]
- 매초풍 - 항목 참조. 그래도 제자들 중에서는 (나쁜 의미로) 가장 유명한 편.
- 곡영풍 - 황궁의 보물을 훔치다가 위사들의 손에 사망. 곽정과 양강의 부모들이 살던 고향 마을에서 주막 주인이었다.[34]
- 육승풍 - 유일하게 살아생전 사부의 용서를 받았던 제자. 덕택에 유일한 마음 속의 짐도 덜고 아들에게 자신의 무공을 전수할 수 있었다. 가장 편히 죽은 편.
- 무천풍 - 제자들 중에서도 가장 언급이 적다. 육승풍이 황약사와 재회할 때, 무천풍은 이미 죽었다고 말할 정도. 곡영풍은 곽정과 양강의 아버지들과 교류라도 있었고 풍묵풍도 신조협려에서 나름의 활약이 있었는데... 신수판에서는 이름이 무강풍(武罡風)으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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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묵풍 - '풍'자 돌림 제자들 중에서는 막내 제자. 다른 제자들과 달리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한쪽 다리만 분질러졌다. 그 후 대장장이로 일한 듯
헤파이토스?. 신조협려에서는 난적 이막수와 호각으로 겨루는 등 활약했다. 애초에 그는 나이도 어려 배운 것도 얼마 없고 오랜 세월 동안 실전으로부터 멀어져 있었음에도 이막수와 상대가 된 걸로 보면[35] 황약사가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 후로도 몽골군에게 징발되어 영내에서 대장장이 일을 했지만 귀신 같은 솜씨로 장교들을 암살하고 있었다. 들키지 않고 계속 그럴 수도 있었겠지만 곽정과 양과가 몽고군 영내에서 위험에 처한 것을 목격하고 금륜국사와 대신 싸우다 사망했다. - 곡사고 - 아버지의 죽음을 보고 정신줄을 놓았기 때문에 이름도 알려져 있지 않다.[36] 황약사가 과거의 일을 후회하면서 그녀를 제자로 받아 들였기에 직계제자지만 미친 탓에 제대로 된 무공을 배우지는 못했다. 그래도 약간은 배우긴 한 듯. 역시 이 여자도 황약사에게 배운 극히 간단한 초식만으로 이막수를 당황케 한 전적이 있다. 과연 황약사.
- 정영 - 문서 참조. 황약사의 막내 제자.
- 황용 - 제자는 아니지만 딸이므로 황약사로부터 무공을 배웠다. 하지만 황용 본인이 무공 수련을 귀찮아 한 편이라서 많이 배우진 못했다고 한다. 오히려 사부인 홍칠공의 무공에 더 능숙하다. 그래도 나중에는 좀 제대로 배웠는지 난화불혈수 같은 무공은 아주 뛰어나서 이막수를 단번에 제압하기도 하였다.
5. 개정판
김용은 사조영웅전과 신조협려를 개정하면서 황약사의 신상 내력과 황약사가 매초풍에게 가지고 있었던 감정에 대한 새로운 설정을 제시했다.
황약사의 할아버지는
송고종 시대의 조정 관리였는데, 그는 수 차례나 악비가 무고하다는 탄원서를 올리다가 벼슬이 강등되고 말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악비의 무고함을 백성들에게 알리고 악비를 지키기 위해 계속 싸우다가 결국에는 붙잡혀서
운남으로 쫓겨나고야 말았다. 황약사는 그 곳에서 자랐고 문무를 모두 익혔는데, 학문은 조부의 가르침을 받았지만, 무공은 누구에게 배웠는지는 불명확하다. 황약사가 장성했을 때 그는 관직을 잃고 쫓겨났음에도 여전히 황제에 충성해야 한다고 믿고 있는 조부의 생각이 틀렸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그로인해 조부, 부친과 종종 언쟁을 벌이곤 하였다. 아버지의 바람과는 달리 과거시험을 보지 않고 점점 엇나가다 결국 급기야는 아버지에게 의절당하고 집에서 쫓겨나고야 말았다. 그 후 황약사는 전국을 떠돌아 다니며 온갖 반역적인 시와 글들을 조정 관청에 써붙이고 다니곤 했다. 조정에서는 그를 잡기 위해 사람을 보냈으나 그것은 헛수고였다. 매약화는 어렸을 때 부모를 잃고 삼촌의 밑에서 자랐는데, 삼촌도 형편이 어려워 그녀를 기를 수 없게 되자 그녀를 장씨 성을 가진 부잣집에 노비로 팔았다. 12세가 된 그녀는 아름답게 성장했고, 주인인 장씨는 그녀를 마음에 들어했다. 장씨는 그녀를 추행하였는데, 이 광경을 목격한 장씨의 부인은 그녀가 자신의 남편을 유혹한다고 오해였고, 그녀를 학대하다 급기야는 그녀를 죽여버리려고 하였다. 이 때 마침 지나가던 황약사가 그 광경을 목격하고는 장씨의 부인의 버릇을 고쳐주고 매약화를 사갔고, 매약화는 그렇게 황약사의 세 번째 제자가 되었고, 황약사의 제자들은 모두 풍자 돌림이기에 이름을 매초풍으로 고치게 되었다. 후에 매초풍은 성장할수록 더욱 아름다워지면서 사부인 황약사와 사형들인 곡영풍과 진현풍은[37] 모두 매초풍의 미모에 미혹 되었다. 그러나 곡영풍은 당시에 나이가 이미 30을 넘었고[38], 더군다나 이미 딸[39]을 가진 홀아비였다. 그는 더 이상 사랑에 대해 생각하는걸 원치 않았기 때문에 그의 감정을 엇눌렀고, 더군다나 사부인 황약사가 매초풍을 비밀리에 마음에 두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일찍 마음을 접었다. 황약사는 자신이 어린 제자를 사랑하는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 좌절스러워 했고 슬퍼했다. 그는 이러한 닿을 수 없는 사랑에 대한 시를 간혹 썼는데, 물론 황약사는 자신의 감정을 남에게 전달할 의도는 전혀 없었지만, 제자들 가운데 가장 총명했고, 가장 공부를 많이 한 곡영풍은 황약사의 시를 읽고 황약사의 감정을 눈치 채었다. 그러던 어느 날 곡영풍은 진현풍과 매초풍의 밀회 장면을 목격하고 말았고, 그는 진현풍과 매초풍이 사부를 배신했다고 여겼기에 분노하였고 결국 싸움이 벌어지고 말았는데, 싸움은 당연히 곡영풍의 승리로 끝났지만, 싸움의 이유를 알게 된 황약사는 오히려 곡영풍에게 분노하여 곡영풍의 다리를 부러뜨리고 곡영풍을 쫓아 내었는데, 그는 매초풍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들킨 것에 대해 열등감과 모욕감을 느꼈던 것이다. 그렇게 곡영풍은 어린 딸 사고와 함께 멀리 떠나가고 말았다. 또한 그 때부터 황약사는 진현풍과 매초풍을 무시하고 그들에게는 더 이상 아무 것도 가르쳐 주지 않았다. 어느 날 황약사는 도화도를 몇 달 떠나있다가 돌아왔는데 놀랍게도 그는 새 신부를 데려왔는데, 그 새신부는 심지어 매초풍 보다도 나이가 몇 달 어렸다. 이 새 신부가 바로 황용의 엄마다. 그러고 또 어느 날 술에 만취한 황약사는 “누가 감히 동사가 어린 여제자를 사랑한다더냐, 령풍은 헛소리를 지껄이는구나. 그는 어디있느냐, 나는 그를 용서하겠다, 그를 데려와라." 라고 외쳤는데, 이 말을 들은 진현풍과 매초풍은 곡영풍이 돌아오는 것을 극히 두려워 했기에 함께 구음진경의 후반부를 훔쳐서 도망쳤고, 구음진경의 후반부를 훔쳐 익히기 시작했는데, 어린 매초풍을 노비로 사서 학대했었던 장씨 일가가 구음백골조의 잔혹한 수련법의 첫 희생양이 되고 말았다. 진현풍과 매초풍이 도망친 후 황약사는 심한 좌절감과 우울함을 느꼈는데, 육승풍과 무천풍(무강풍)이 황약사를 위로하다 말 실수를 하여 황약사의 비위를 건드리고 말았고, 분노한 황약사는 육승풍과 무천풍(무강풍)의 다리를 부러뜨리고 그들을 추방하였다. 유일하게 남은 막내 제자 풍묵풍은 이 일이 비합리적인 일이라며 항의하다가 역시 다리가 부러져 쫓겨났다. 쫓겨난 육승풍은 진현풍과 매초풍을 잡기 위해 열 명이 넘는 무림 고수를 초빙하였고, 초빙된 고수들 중에는 가진악의 형제 가벽사도 있었다. 가벽사는 가진악에게도 합류를 요청하였지만 당시는 강남칠괴가 이평과 곽정 모자를 찾아 다니고 있었던 때였고, 또 가진악은 십여 명이 넘는 무림고수가 있는데 설마 형에게 무슨 문제가 있겠냐는 안이한 생각에 형과 합류하지 않았다. 그러나 진현풍과 매초풍은 육승풍의 포위망을 탈출했을 뿐 아니라 가벽사 등 몇 명의 고수마저 죽였다 그러나 그들 역시 심한 중상을 입었고 지신들이 전진칠자 에게도 수배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숨어버리게 된다. 한편 형의 죽음을 알게 된 가진악은 그로부터 2년 후 진현풍, 매초풍과 처음 만나게 된다. 황약사는 종종 한숨을 내쉬며 슬퍼 보였고, 그의 딸 황용이 왜 슬퍼하냐고 물을 때면 "너에게 화내는게 아니란다. 난 단지 내 자신과 하늘에게 화내고 있단다”라고 말하곤 했다." |
가히 충격과 공포. 이 설정으로 인해 기존 황약사의 이미지는 심하게 훼손되고 말았다. 이 설정이 황약사가 아끼는 제자들을 몽땅 다리를 분질러 쫓아버린 자초지종을 설득력 있게 만들어 주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뜬금없이 매초풍을 향한 연심을 집어넣은 이유는 무엇이란 말인가? 황약사는 아내를 지극히 사랑한 사람으로, 아내 영전에 구음진경을 바치겠다는 일념으로 주백통을 도화도에 잡아 두고 15년간이나 줄다리기를 했고 언젠가 바다 한가운데로 나가 아내 곁으로 가기 위해 가라앉는 배를 만들어 두기도 했으며 수십 년이 지난 신조협려 시점에서조차 곽양이 자신의 아내를 빼닮은 것을 보고 한탄하기까지 한 천하의 집착남이다. 그런데 사실은 매초풍에게 연심이 있었다는 설정을 집어넣으니 정이 깊고 성격이 불같으며 괴팍한 황약사의 아내를 향한 사랑이 삐끗하게 된 것이다. 기존 설정에 익숙한, 즉 그 설정을 하나의 세계로 인식해온 팬들은 일제히 반발하는 분위기.
그러나 개정판에 찬성하는 의견도 존재한다. 존경받는 스승이 사실은 어린 여제자를 좋아했다는 반전은 개연성이 높고 김용 소설에서도 딱히 괴상한 설정은 아니다. 인간이 느끼는 본능적인, 어쩌면 추하다고도 볼 수 있는 감정과 내면 도덕의 충돌은 황약사라는 인물에 깊이감을 더한다. 김용 작품이 오랫동안 인기있을 수 있었던 이유는 픽션인 무협의 무공과 힘자랑 때문만은 아니다. 누구나 공감이 갈 수 있는 등장인물의 갈등을 그렸기 때문이다.
또는 일장일단이 있다고 볼 수도 있다. 황약사에게 '감정적이고 충동적인 면모'나 '편협한 성격'과 같은 인간적 약점이 있다는 점은 초기 판본부터 공공연히 드러나있던 내용이지만 한때 매초풍(매약화)를 사랑했다는 과거사가 추가됨으로써 그런 얀간적인 약점이 생동감을 갖게 되어 황약사의 캐릭터성에 더욱 입체적인 생동감이 부여되었다. 그리고 아끼는 제자들의 다리를 몽창 부러트려서 내쫒는 것과 같이 극단적이고 잔인한 행동을 한 이유에 대해서도 구체적이고 납득하기 쉬운 이유가 제시됨으로써 독자들이 황약사의 캐릭터를 이해하기 더 편해졌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황약사라는 캐릭터의 다른 측면에는 '수십년이 지나도 변하는 기색이 없는 아내에 대한 사랑'과 같이 올곧고 강인한 면모도 있고, 많은 독자들이 황약사라는 캐릭터에 매력을 느낀 것은 단지 픽션인 무협에서 강한 무공을 사용하는 인물이기 때문이 아니라 한편에는 많은 인간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지만 다른 한편에는 보는 이를 감탄시킬만큼 올곧고 결백한 면모 역시 가지고 있는 입체적인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새로 추가된 설정에서 황약사와 아내의 관계가 마치 '어린 여제자를 좋아한다는 속마음을 숨기기 위해 맞아들인 신부'처럼 재정립됨으로써 황약사라는 캐릭터의 또 다른 측면에 대해서는 오히려 독자들이 이해하고 공감하기 어려워졌다고 할 수도 있는 것.
6. 2차 창작
6.1. 〈 동사서독〉의 황약사
"인간이 번뇌가 많은 까닭은 기억력 때문이라 한다. 그래서 난 많은 일을 잊고 복사꽃을 좋아한 것만 기억했다."
배우는 양가휘.
영화 이름 그대로 서독 구양봉에 대비되는 인물로 등장. 매년 경칩 즈음에 구양봉과 술 한 잔 하려고 찾아온다고 한다. 동사서독 때에는 자기가 직접 술을 한 병 들고 왔다. 어떤 여인에게서 받은 '취생몽사'라는 술인데, 마시면 지난 일을 깨끗이 잊어버리게 되는 신기한 효능이 있다고 한다. 현실적인 성격인 구양봉은 이 술의 효능에 대해 의심하며 입에도 안 댔지만 황약사는 그것을 마시고 많은 것을 잊어간다.
동사서독에선 바람둥이 기질을 가진 인물처럼 묘사되는데 한때는 친구였던 맹무살수( 양조위)의 아내와 불륜을 저질렀고 이 사실을 알게 된 맹무살수는 황약사를 다시 만나면 반드시 자기 손으로 죽이겠다고 벼르고 있었지만 둘이 다시 만났을 때 황약사는 취생몽사 때문에 둘이 한때 친구였단 것도 잊어버린 상태였고 맹무살수는 시력이 몹시 나빠져 고수 중의 고수인 황약사와 대결해도 승산이 없었던 터라 둘의 재회는 냉랭하고 짧게 끝나버렸다.
이 밖에도 이 바람둥이 기질 때문에 최강의 검객 독고구패를 탄생케 하는데 일조한 인물이라는 설정도 붙었다. 어느 날 모용언이라는 사람과 함께 술을 마시다가 느닷없이 그의 뺨을 어루만지며 모용언에게 혹시 여동생이 있다면 부인으로 맞이하겠다는 말을 하는데 모용언은 황약사의 이런 제안을 단 번에 받아들인다.
사실 모용언은 영화에서는 밝혀지지 않는 모종의 이유로 남장을 하고 다니는 여인이었고, 본인도 황약사에게 반했다. 모용언은 황약사가 자신이 남장을 하고 다니는 여인이란 사실을 알고 이런 식으로 우회하여 자신에게 청혼한 것이라 여겼던 것이다.
하지만 약속 장소에 황약사는 나타나지 않았다. 모용언과의 약속을 애초에 진지하게 생각하지도 않았던 모양이다. 하지만 황약사와는 달리 이 약속에 진심이었던 모용언은 견딜 수 없는 배신감과 실연의 상처에 해리성 정체감 장애까지 일으켜 황약사를 자기 여동생을 배반한 원수로 여기는 '오빠 모용언'과 여전히 황약사를 사랑하며 오빠에게서 벗어나고 싶어하는 '여동생 모용연'이라는 두 가지 인격을 가진 사람이 되고 말았다.
그래서 살인청부 중개자 일을 하던 구양봉에게 각각 모용언의 인격과 모용연의 인격으로 찾아와 황약사를 죽여달라는 요구와 황약사를 죽이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협박을 반복하는 짓을 했다. 하지만 구양봉이 황약사인 척 연기를 하며 모용연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자 모용언도 황약사에 대한 비뚤어진 집착을 버리게 됐다.
그 뒤 그는 은둔 생활을 하며 물가에 비친 자기 모습을 상대 인격으로 여기고 끝없는 검술을 펼친 끝에 독고구패라는 절대 강자의 경지에까지 오르게 됐다는 이야기이다.
이야기 후반부에는 황약사가 왜 매년 경칩 때마다 구양봉을 찾아왔는지에 대한 얘기가 나온다. 원래는 구양봉의 옛 연인이었지만 지금은 형수가 된 자애인( 장만옥)을 사랑했지만, 그녀의 마음 속엔 오직 구양봉 밖에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고 그 때문에 구양봉에게 질투를 느끼면서도 자기 마음을 표현하지 못했다.
자애인은 구양봉에게 단 한 번도 사랑한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어 화가 난 나머지 구양봉의 형과 혼인하여 구양봉에게 앙갚음을 했다고 여기는데 황약사는 이 얘기를 듣고 "사랑에 승부가 있다고 해도 그녀가 이겼다고는 생각 안 한다. 하지만 난 처음부터 졌다"며 씁쓸해 한다.
그래도 자애인은 구양봉의 소식을 늘 궁금해 했고 그래서 구양봉에 관한 소식을 전해준다는 이유로 매년 빠짐 없이 그녀를 찾으며 그녀 곁을 맴도는 정도로 만족했다. 이 때문에 황약사는 매년 봄마다 구양봉을 찾아갔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복사꽃을 좋아하게 됐다고 한다. 매년 복사꽃이 필 무렵이면 자애인을 만날 수 있기 때문에.
하지만 자애인은 중병으로 인하여 세상을 떠나고 말았고 죽기 전에 황약사에게 취생몽사를 건네주며 구양봉에게 전해줄 것을 부탁했다. 구양봉이 이 술로 자신을 잊어주길 바랐던 것이다. 황약사는 이 술을 구양봉에게 전해주긴 했지만 자애인이 죽었다는 얘기는 하지 않았고 그에게 취생몽사를 전해준 뒤로는 구양봉의 사막 산채에 발길을 끊었다.
이후 자애인이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전갈을 받고 충격에 빠진 구양봉은 그제서야 황약사가 왜 자신을 찾아오곤 했는지 그 이유를 알게 되었고 자애인을 잊어보고자 취생몽사를 꺼내 마셔보지만 황약사와는 달리 그는 아무것도 잊지 못하고 또다시 현실로 돌아가야 했다.
이러한 차이가 있었던 이유는 간단하다. 서로 같은 여자를 사랑하였고 또 그것에 실패해 고통스러워 하지만, 황약사는 최소한 그 모든 것을 잊어버릴 용기는 있었던 반면, 구양봉에겐 그것조차 없었던 것이다. 고통스런 현실도 잊지 못할 만큼 찌질했던 구양봉은 또다시 냉혈한의 가면을 쓰고 현실로 돌아가는 수밖에 없었고. 황약사는 그보다는 낫지만 그것을 긍정적으로 수용할 만한 사람은 아니었기에 아픈 기억을 망각함과 동시에 덤으로 사회의 도덕이니 윤리 같은 많은 것을 동시에 털어내버린다.
사조영웅전에 등장하는 광오한 황약사와 음험한 구양봉을 생각해볼 때 제법 그럴듯한 전개가 아닐까 싶기도 하지만 원작의 황약사는 평생 자기 아내를 못 잊었고, 심지어 아내가 구음진경 때문에 죽었다며 구음진경을 알고 있는 사람을 모두 죽여버릴 생각마저 했던 걸 보면 원작의 황약사하고는 확실히 다르다. 이런 절절한 마음은 세월이 흘러도 바뀌지 않아서 16세가 된 곽양을 처음 봤을 때도 바로 자기 아내를 떠올릴 정도였다.
원작의 이야기는 자신의 기억을 완전히 지운 이후의 일로 볼 수도 있고, 그가 그렇게 맹목적이고 또한 불가해한 사랑을 하는 것도 영화속의 사건이 있었기에 가능하다고 볼 수도 있다. 다른 것보다 황약사라는 인물에 대해 원작에선 너무 똑똑해서 이상한 사람이라는 막연한 설명만이 붙을 뿐이었지만, 동사서독에서는 멀쩡한 사람이 정신줄 놓는 과정을 납득할 수 있게끔 설명해준다.(물론 영화 자체의 서사는 뒤죽박죽이다.) 원작의 골수팬들에겐 이런 나약한 인물상이 뭐든지 할 수 있는 황약사라는 캐릭터에 누가 된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글쎄.
[1]
미우키우와이는
홍콩의 배우로,
1983년에 방영한 〈사조영웅전 1983〉에서
양강 역을 맡았다.
[2]
彈指神通
[3]
劈空掌
[4]
旋風掃葉腿法
[5]
落英神劍掌
[6]
蘭花拂穴手
[7]
玉簫劍法
[8]
이 악기로 '벽해조생곡(碧海潮生曲)'을 연주하며 음파로써 정신을 혼미하게 만든다. 《
의천도룡기》의 등장인물인
사손에 비슷한 느낌이다.
[9]
附骨針.
암기이며, 뼈와 관절에 스며들어 매일 6번씩 극심한 통증을 준다.
[10]
馮氏
[11]
황해나 남중국해라고 추측하기도 하는데 황해가 더 맞을 것이다. 황용이 죽었다는 거짓말에 상심하는 황약사를 본 구양봉이 "산동성 (
燕人의 기질을 가진) 사람답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나온다. 그러나 개정판의 내용에 의하면 황약사의 고향은
운남이다.
[12]
왕중양은 도학에 대한 이해는 깊었고 의병을 이끌기 위해 군사 지식도 섭렵했지만, 그 외 분야에 대해 박학다식한 정도는 아니었다. 황용이나 양과도 총명하기로는 알아주지만 지식의 방대함은 황약사에게 비할 바가 못 된다. 애초에 황용은 황약사의 온갖 기예들을 거의
수박 겉핥기로만 배웠는데, 그 정도로도 여기저기 다니며 여러 사람 놀래키게 하기 충분했다.
[13]
황약사를 넘을 다재다능한 기재는
천룡팔부의
소요파 3인인
무애자,
천산동모,
이추수 정도 밖에 없을 것이다. 이는 소요파의 비전인지
허죽도 소요파에 입문하고 나서 순식간에 초월적인 의술을 겸비하게 되었다.
[14]
홍칠공, 황용의 부상은 심각한 내상이었기 때문에 그 내상을 치료하려면 일양지와 같은 심법이 필요했음을 고려해야 한다. 부러진 다리까지 걸을 수 있을 정도로 치료하는 방도를 만들어 내는 정도라면 의학 지식이 부족하다고 절대 말할 수 없다.
[15]
실제로 워낙 이미지가 안좋아서
강남칠괴는 그의 딸이라는 이유만으로
황용을 싫어하고 곽정이 그녀와 다니는걸 반대했다.
[16]
구양봉과 공통점은 위선자를 대단히 싫어한다. 그러나 구양봉은 자신의 악행을 정당화하기 위해 자기 비위에 거슬리면 그냥 선한 사람도 위선자라고 뒤집어씌우는 반면 황약사는 순수히 위선자를 혐오한다.
[17]
곽정이 아예 백치처럼 우둔한 것은 아니지만, 말조리가 없고 재치가 부족해서 좋은 대화 상대라기엔 상당히 덜떨어진 인물이다. 몽골 씨름이나 용병술, 무공에 대해서는 전문가라고 할 수 있겠지만 말로 풀어서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버퍼링이 걸린다. 반면 황약사는 딸이 죽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삼국시대의 대시인 조식이 딸을 잃고 쓴 시를 읊으며 비탄에 빠질 정도로 문예에 밝고 감수성이 풍부하다. 하다못해 곽정이 아는 게 없어도 감성이 예민했다면 죽이 맞을 여지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외에도 세련되고 옷도 잘 입고 다니는 귀공자 타입인 구양공자와 북부 고원에서 살다 온 촌놈 곽정은 외모에서도 비교가 안된다. 더구나 곽정은 황약사가 싫어하는 우등생 타입이기도 하고.
[18]
어디까지나 제자 뻘이지 제자는 아니지만 과거 곽정은 마옥에게 내공심법을 전수받은 적이 있다보니 전진칠자를 매우 존경하고 있다.
[19]
황약사의 논리에 따르면 양과가 고묘파를 떠나 자신의 문하에 들어오면 소용녀와 사제의 연도 끊어지니 결혼해도 더이상 패륜은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그 대신 사문을 떠나는(=배신하는) 것은 다른 의미의 패륜이지만 그건 양과가 과거에 전진교를 떠나면서 이미 한번 했던 짓이니, 같은 짓을 한번 더 한다고 더 나쁜놈이 될 것도 없지 않느냐는 것. 물론 이 '해결책' 자체가 황약사의 성격을 보여주는 장치라 보아야 할 것이, 이 논리가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 인간이 작중에서 황약사 단 한 사람 말고는 더 있을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엄마랑 결혼하겠다는건 패륜이야" 라고 했더니 "그럼 딴집에 양자로 들어간 다음에 결혼하게 호적 파서 나갈게요" 하는 논리가 그럴싸하다고 여기는 인물이 그리 많을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패륜행위 하나에 겉보기 명분을 만들기 위해 다른 패륜행위 하나를 더 저지르겠다는 것이니, 양과를 때려죽이려다 차마 못 죽인 곽정이 "음... 역시 때려죽여야겠다..." 하고 마음을 바꿔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엄청난 만행인 셈. 말하자면 사(邪)자가 별호에 들어간 인물답게, 표면적으로라도 예교의 금기를 지키야 한다고 여겨야 하는 지점에서도 그것을 자기 마음대로 재해석하는 면모가 있다는 것.
[20]
사람을 화풀이로 죽이는거 자체는 분명 옳지 못하나 작중 이 벙어리 하인들이 선천적으로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거나 사고로 그렇게 된 사람들이 아니라 각지에서 살인이나 약탈을 저지르던 악인들을 잡아다가 혀를 자르고 귀를 먹게해서 부리고 있던 것이라고 나온다. 즉, 아무리 사람이 괴팍해도 넘지 않는 선은 있다는 의미.
[21]
이들은 원래 극악한 범죄자들인데 황약사가 잡아다가 하인으로 데리고 있는 것이다.
[22]
굳이 성향을 말하자면 중립이나 혼돈 중립에 가깝다.
[23]
구양봉이 충효가 어쩌고 하는 게 보기 싫어 죽여버린 유학자의 머리를 보여주며 웃자 정색하고 "내가 평생 존경하는 이가 충신이고 효자요!"라고 일갈하며 머리에 절을 하는 장면이 있다. 이를 본 구양봉이 황약사도 고루한 예법에 얽매여 있다며 비웃자 황약사는 "충효란, 대의(大義)를 위해 죽음으로 지키는 절개(節槪)라 예법과는 다른 것이오!" 라고 버럭 화를 낸다.
[24]
舊 낙영신검장
[25]
이하의 '개정판' 문단에서 확인할 수 있는 설정에 따르면, 집안이 선비 집안이라 무공을 어디서 배웠는지 몰라도 가문에서 배운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도화도 문파를 강조하고
황용이나
곡사고에게 사조니 뭐니 하는 것은 일언반구도 않는 것을 보면, 대부분 독학으로 무공의 일가를 이루었다고 보는 편이 합리적이다.
[26]
사실 합마공이나 항룡십팔장은 위력을 중시하는 무공이며 작중에서 합마공이나 항룡십팔장과 비교하는 무공은 벽공장이라고 한다...그러나 장법의 위력으로 양과에게 발리면서도 정작 벽공장을 사용하는 모습은 보여주지 않았다.
[27]
황약사의 부인이 아무리 머리가 좋아도 마지막 범어를 음차한 부분은 의미를 알 수가 없기 때문에 오류가 생길 수 밖에 없었고, 진현풍과 매초풍이 강호에서 험하게 굴렀기 때문에 지워지거나 어지러워진 글자들이 생겼으며 매초풍이 후회의 심경을 토로하는 문구들도 적혀졌다.
[28]
양과를 양강의 귀신으로 착각해 비명을 질러 황약사의 음공이 멈춘 틈에 이막수가 탈출했다.
[29]
다만 친구관계는 나이나 배분과 상관 없이 얼마든지 맺을 수 있는 것이다. 진정한 족보 브레이커는 곽정과 공식적으로 의형제를 맺고 자기 손자뻘 나이의 소년을 제자로 받아들인 주백통이며 황약사는 그런 점에서는 주백통에게 한참 못미친다.
[30]
사실 자신에 필적하는 천하 제일의 고수들이 하나도 아니고 셋씩이나 있는 상황에서는 저항을 그만두는 편이 더 자연스럽다. 당시 무림의 법도로는 명백히 승산이 없는 상황에서는 알면서 발버둥치는 것보다 이길 수 없음을 인정하는 경우가 많았다.
[31]
다만 역시나 원본인 구음신조(최견신조)에 비하면 손색이 있어서 양과와 소용녀의 후손인 황삼미녀에게는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32]
제자 서열로는 진매곡육이지만 나이로는 곡육진매다. 그리고 후술되겠지만 서열도 곡진매육으로 바뀌었다.
[33]
원래 진현풍은 온몸이 강철 같은 강도의 피부를 가지고 있었지만 한 군데 약점이 있었는데, 곽정이 지닌 아주 날카로운 단도에 그 약점을 찔려버리는 바람에 사망했다. 이건 어린아이라고 방심한 채 급소를 방어하지 않은 탓도 있었다.
[34]
곡영풍은 황약사의 제자들 중 가장 나이가 많았다고 한다. 서열은 진>매>곡>육이었지만 나이는 곡>육>진>매.
[35]
무려 공력을 논하자면 양자가 비슷했다는 묘사가 나올 지경이다. 단 이막수는 강호를 떠돌며 쌓은 실전 경험이 무척 풍부한 데 반해 풍묵풍은 남과 더불어 다퉈 본 일도 거의 없어 점차 밀리는 묘사를 보였다. 무기가 불에 달궈진 것들이 아니었다면 일찌감치 패했을지도. 풍묵풍 역시 이막수의 추궁에 계속 싸웠다면 자신이 그녀의 상대가 되지 못했을 것이라고 인정한다.
[36]
소설 내에서 이름이 알려져 있지 않아 황용 등이 바보 소녀(傻姑, 한국식 독음으로 사고)라 불렀으며 이후 각종 영상/게임화 작품에서도 그냥 바보 소녀라 불린다. '사고'가 이름인 것으로 알고 있는 국내 독자들도 있으나 傻姑는 고유명사가 아니다.
[37]
구판에서는 진현풍이 대사형이었지만 최근에 수정 되면서 곡영풍이 대사형이 되었다.
[38]
황약사를 대신해 진현풍, 매초풍 등에게 학문과 무공을 가르치기도 했다고 언급된다고 한다.
[39]
사조영웅전, 신조협려의 그 바보 소녀다. 결국 그 바보 소녀는
황용 보다도 몇 살 언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