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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504년 ( 연산군 10) |
사망 | 1585년 ( 선조 18) (향년 80~81세) |
재임기간 | 제73대 영의정 |
1574년
5월 1일 ~
8월 25일 (음력 선조 7년 4월 11일 ~ 8월 10일) |
|
본관 | 남양 홍씨(토홍계)[1] |
자 | 퇴지(退之) |
호 | 인재(忍齋) |
부모 |
부: 영의정
홍언필(洪彦弼) 모: 정경부인 여산 송씨 - 영의정 송질(宋軼)의 딸[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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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조선 시대의 문관. 영의정, 좌의정, 홍문관대제학 등을 역임했다. 1535년에 김안로의 전횡을 탄핵하여 유배되었다가 김안로가 죽은 후에 풀려났는데, 이때 자신의 심경을 읊은 <원분가(冤憤歌)>가 전한다.2. 여담
- 영의정 홍언필이 여름에 낮잠을 자는데 뱀이 배 위에 올라가 있었다. 언필은 내심 그걸 쫓고자 했지만 뱀이 놀라 사람을 다치게 할까 걱정되어 목석처럼 감히 움직이질 않았다. 아들인 퇴지(退之)[3]는 6살이었는데 아버지가 계신 곳에 갔다가 그 광경을 보았다. 곧바로 연못에 가서 3~4마리 개구리를 가져와 던지니 뱀이 사람을 버리고 개구리를 따라 가버렸고 언필은 그제야 몸을 일으킬 수 있었다. 홍섬은 어려서부터 재치가 이와 같았고 장성하여서는 이름난 재상이 되었다.[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