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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 Hol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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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부터 크리스틴 파프 · 패티 스킴멜 · 코트니 러브 · 에릭 얼랜드슨 | ||||
국적 | 미국 | |||
결성 | ||||
1989년 | ||||
미국 캘리포니아 주 로스앤젤레스 할리우드 | ||||
데뷔 | 1990년 4월 | |||
Retard Girl | ||||
해체 | 2002년 | |||
재결성 | 2009년 ~ 2012년 | |||
멤버[1] | ||||
코트니 러브 ( 보컬, 기타) | ||||
에릭 얼랜드슨 ( 기타) | ||||
사만다 말로니 ( 드럼) | ||||
멜리사 아우프 데어 마우어 ( 베이스) | ||||
장르 | 그런지, 얼터너티브 록 | |||
레이블 | Sub Pop · Caroline · DGC · Mercury |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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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재결성 당시[2] |
미국의 얼터너티브, 그런지 밴드. 멤버 상당수가 여자라는 점이 특징이다. 위키백과 등 각종 문서에서는 코트니 러브가 페미니스트라고 적시되어 있으며, 가사 색깔에서도 페미니즘적 성향이 묻어나곤 했다.
프런트맨인 코트니 러브는 전설적인 밴드 너바나의 리더 커트 코베인의 아내로도 유명하기 때문에 코베인의 후광이라는 등 여러 폄하와 악성 루머도 존재해왔다. 그러나 이들의 작품이 90년대 그런지에 한 획을 그었다는 점은 각종 평론단의 인정을 받는 사실이며 롤링스톤지 선정 500대 명반에도 그런지 록의 대표로 이름을 올린다. 코트니 러브에 대한 폄하와 억측을 부당하게 여기는 이들은 홀을 그런지의 유산을 훌륭히 쌓아올린 주요한 록밴드로 받아들인다.
2. 역사
범상치 않은 성장배경을 가진 코트니 러브와 기타리스트 에릭 얼랜드슨을 중심으로 로스앤젤레스에서 결성되어 언더 그라운드를 기점으로 활동하기 시작한 것이 시초로서, 드럼과 베이스의 숱한 교체 속에서 활동을 이어갔다. 홀이 발표한 1집 앨범 'Pretty on the inside'[3]는 평론가들의 호평을 받았으나 1집 이후 밴드의 리더 코트니 러브가 너바나의 커트 코베인과의 결혼을 하게되자 밴드는 잠시 휴식기를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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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집 Live Through This'의 오프닝 트랙 'Violet' |
크리스틴 파프는 2집 녹음을 마친 후 밴드를 탈퇴했으며 밴드는 이내 베이스 멤버로 '멜리사 아우프 데어 마우어'를 영입하여 큰 공백없는 활동을 이어나갔다. 멜리사 아우프 델 마우어는 스매싱 펌킨스의 리더 빌리 코건의 여사친[4]으로 빌리가 코트니에게 소개시켜 준 것이라 한다.
그러나 밴드의 2집 작업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았던 베이시스트 크리스틴 파프가 2집을 발표한지 2달만인 1994년 6월 16일, 갑작스레 사망하면서, 커트 코베인의 사망건 까지 얹은 각종 음모론의 대상이 되었던 코트니 러브와 밴드는 상당한 혼란기를 겪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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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집의 오프닝 트랙 'Celebrity skin'[5] |
해체한 뒤에 코트니 러브는 별도의 문서가 먼저 생겨날 정도로 솔로 커리어와 배우 활동에서 굵직한 활동을 이어나갔으며, 기타리스트 얼랜드슨 또한 솔로 프로젝트 등으로 활동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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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집 수록곡 'Pacific Coast Highway'[7] |
이후로는 계속 해체된 상태이나 러브가 다들 건재하다는 인터뷰를 남겼고 재결성 떡밥도 어느 정도 있는 상태다.
3. 디스코그래피
- Pretty on the Inside (1991)
- Live Through This (1994)
- Celebrity Skin (1998)
- Nobody's Daughter (2010)
4. 이야깃거리
캡틴 마블(영화)에서 홀의 Celebrity Skin이 앤딩 크레딧에서 나온다. Celebrity Skin이 삽입된 이유는 아마도 캡틴 마블(영화)가 90년대 배경이어서 그런 듯 하다. 홀의 노래 뿐만 아니라 너바나(밴드)의 Come as You Are, No Doubt의 Just a Girl, 엘라스티카의 Connection 등이 영화에 나온다.
[1]
해체 전 기준
[2]
에릭 얼랜드슨 - 패티 스킴멜 -
코트니 러브 - 멜리사 아우프 데어 마우어
[3]
앨범의 프로듀서가
노이즈 록의 대가였던
소닉 유스의 멤버
킴 고든이었다. 훗날까지도 이어지는 '그런지'스러운 음색 또한 여기서 기인했을듯 싶다.
[4]
1991년, 멜리사와 친구들이 스매싱 펌킨스 공연을 관람하다 친구들 중 한명이 무대에 맥주병을 던지는 등 소란을 피웠고(이때 빌리 코건은 잠시 공연을 중단하고 멜리사의 친구와 싸움을 벌였다고 한다.) 멜리사가 이를 사과하기 위해 스매싱 펌킨스의 대기실에 찾아간 것이 계기가 되어 서로 친구가 되었다고 한다.
[5]
참고로 영상에서 등장하는 드러머는 '사만다 말로니'인데, 기존의 드러머 스킴멜과 3집의 프로듀서 마이클 베인홈(Michael Beinhorn) 사이의 갈등 심화로 인해(마이클 베인홈은 스킴멜의 드러밍을 파워가 부족하다며 싫어했다고 한다.) 3집의 모든 드람 트랙을 세션맨의 녹음으로 대체하는 등의 진통을 겪다 결국 스킴멜은 밴드를 탈퇴해 버리고, 사만다로 멤버가 교체되어 투어활동을 함께하게 된다. 그래도 세월이 흘러 성격이 유해진 코트니와 스킴멜은 화해를 선언하며 재회하기도.
[6]
이 앨범의 주요 프로듀서는
레드 핫 칠리 페퍼스,
사운드가든과의 작업으로 유명한 마이클 베인홈(Michael Beinhorn)과 코트니의 전 남자친구이자 스매싱 펌킨스의 리더로 유명한 빌리 코건이다. 빌리 코건과 코트니 러브는 코베인 생전 몰래 단둘이 여행을 하는 등 서로의 배우자를 나두고(당시 빌리 코건은 크리스 퍼비언과 결혼 생활 중이었다.) 바람을 피웠고 홀은 빌리가 추천한 Triclops Sound Studios (스매싱 펌킨스의 2집
Siamese Dream을 해당 스튜디오에서 녹음했다.) 에서 2집 'Live Through This'를 녹음했다.
[7]
새로운 멤버들의 얼굴이 보인다.
[8]
롤링스톤에서는 그 해의 음악 재앙 1위로 홀의 컴백을 뽑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