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000><colcolor=#fff> 호아킨 소로야 Joaquín Soroll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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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호아킨 소로야 이 바스티다 Joaquín Sorolla y Bastida |
출생 | 1863년 2월 27일 |
스페인 왕국 발렌시아 | |
사망 | 1923년 8월 10일 (향년 60세) |
스페인 왕국 마드리드수도주 세르세디야 | |
국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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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
아버지 호아킨 소로야 가스콘(1833년 — 1865년)[1] 어머니 콘셉시온 바스티다 프렛 (1837년 — 1865년)[2] 여동생 콘셉시온 “콘차” 소로야 바스티다(1864년 — 1934년) |
아내 클로틸드 가르시아 델 카스틸로(1865년 — 1929년) 장녀 마리아 클로틸드 소로야 가르시아(1890년생) 장남 호아킨 소로야 가르시아(1892년생) 차녀 엘레나 소로야 가르시아(1895년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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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 | 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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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스페인의 인상주의 화가.2. 생애
1863년에 아버지 호아킨 소로야 가스콘과 어머니 콘셉시온 바스티다 프랫 사이에서 1남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러나 1865년, 부모님 모두 콜레라에 걸려 사망했고, 고아가 된 호아킨은 여동생과 함께 이모 이사벨과 이모부 호세의 손에서 자라나게 된다.9살 때부터 미술 교육을 받기 시작해 18살에는 마드리드의 프라도 미술관에서 명화를 공부했다. 군복무를 마친 후, 22세의 호아킨은 이탈리아 로마에서 그림을 공부할 수 있는 4년 임기의 보조금을 받아 생활했으며 25살이 되던 1888년까지 아버지의 작업실에서 일했다.
그리고 같은 해, 호아킨은 1879년부터 만남을 지속해오던 2살 연하의 여인 클로틸드 가르시아 델 카스티요와 발렌시아에서 결혼한다. 이후 호아킨은 클로틸드와 마드리드로 이주해 1남 2녀를 낳았고 계속해서 예술가로써의 행보를 걷는다.
그의 작품들은 수많은 전시회에 소개되며 큰 찬사를 받았고, 여러 상들을 수상하였다.
3. 특징
호아킨 소로야의 대표작은 바다의 찬란한 빛을 부드러운 색채로 담아낸 그림들이다. 빠른 붓 터치로 찰나의 순간을 포착해낸다. 빛과 자연의 인상을 표현하는 데 탁월했을 뿐만 아니라 사진처럼 생생하게 대상을 그려내는 섬세함으로 당대에 큰 사랑을 받았다.
소로야의 초기 작품에서는 사실주의적인 경향을 보인다. 그는 당시 어둡고 슬픈 분위기로 사회의 소외된 사람들을 사실적으로 그렸다. 프란시스코 고야와 외젠 들라크루아를 연상시키는 과감한 붓 터치와 어두운 색채로 보아, 미술 공부를 하는 동안 당대 스페인 화가들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이후 소로야는 프랑스 여행에서 프랑스 인상주의 화가들의 루미니즘에 크게 감명 받게 된다. 그리고 고향인 발렌시아로 돌아와, 지중해 바닷가의 따스한 빛을 담은 그림들을 창작해 나간다. 그렇게 소로야는 사실적이면서도 빛의 효과가 두드러지는 자신만의 화풍을 만들어 나가기 시작한다.
호아킨 소로야의 작품 중 유명한 작품은 뭐니 뭐니 해도 바다를 배경으로 한 그림이다. 그는 자유로운 붓 터치와 경쾌한 색채로 이베리아반도와 지중해의 인상을 포착하여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 이후 바쁜 화가 생활에도 소로야는 틈틈이 고향을 찾아, 그곳의 바다를 화폭에 담아냈다.
4. 대표작
바닷가 산책 |
오렌지 축제 |
배를 끄는 소 |
5. 여담
- 고향 발렌시아의 기차역에 그의 이름이 붙었다. 마드리드를 오가는 AVE를 탈 경우 발렌시아 호아킨 소로야 역(Estación de Valencia Joaquin Sorolla)에서 승하차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