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대한민국의 노동운동가, 정치인.2. 생애
1955년 3월 전라북도 익산에서 태어나 이리고등학교, 전북대학교 건축공학과를 졸업하고 이리설계사무소에서 건축사로 일했다.19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이리설계사무소 노조위원장 자격으로 전북지역노동조합연합(이하 전북노련) 산하 익산시건축사노조의 제2대 위원장을 맡아 노동운동에 투신했고 이후 전국건축사노조 위원장, 전북노련 제2대 의장을 지냈다. 이 시기 익산수출입공단에 자리한 한국아세아스와니 노동자들이 일본 본사를 상대로 폐업 철회 및 체불임금, 퇴직금 지급을 요구하며 일본 원정투쟁에 나서자 이를 지원했고, 익산 창인동 성당에 있던 '노동자의 집' 소속 활동가들과 함께 익산과 전북지역 노동운동을 주도했다.
1990년 전국노동조합협의회 결성 후 부의장을 맡았고, 단병호 의장이 구속과 석방을 반복하면서 직무 수행이 어려운 상황이 되자 1991년 의장 직무대행에 임명됐다. 같은 해 6월 사전구속영장이 발부된 상태에서 명동성당에서 농성한 후 탈출을 시도하다 경찰에 검거돼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당시 사건 보도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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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시법 위반 등 혐의로 사전구속영장이 발부됐던 범국민대책회의 상임공동대표 현주억씨(36·전노협 의장 직무대행)가 14일
상오 경찰에 붙잡혀 서울
동대문경찰서에 구속수감됐다. 현씨는 이날 상오 4시15분께 은신중이던
명동성당 구내 교육관 뒤쪽 담을 넘어 국제빌딩으로 숨으려다 잠복중이던
서울시경 특수대 경찰관 4명에게 붙잡혔다.
현씨는 경찰에서 『전국임금인상투쟁 공동본부장으로 단위노조의 임금협상을 마무리하고 한진중공업 박창수 노조위원장 의문사 진상규명 등 노동계 현안을 해결하기 위해 대책회의 관계자와 상의없이 혼자 성당을 빠져나왔다』고 말했다.
전노협의장 직무대행 현주억씨 붙잡혀 구속, 1991년 6월 15일 한국일보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등 혐의로 사전구속영장이 발부된 전노협 의장 직무대행 현주억(36·범국민대책회의 상임공동대표) 씨가 14일 새벽 경찰에 붙잡혀 서울 동대문경찰서에 구속수감됐다.
현씨는 이날 새벽 4시15분께 범국민대책회의 간부들과 함께 농성중이던 명동성당 가톨릭회관 부근 주택가 담을 넘어 성당을 빠져나오다 잠복근무 중이던 서울시경 특수대 소속 경찰관 4명에게 붙잡혔다.
현씨는 지난 4월 20일 임금인상 투쟁과 관련한 파업을 주도하고 임금인상 지침을 작성, 배포해 각종 쟁의를 배후조종했다는 등의 혐의로 사전구속영장이 발부됐다.
현씨는 또 한상렬 상임공동대표, 이수호 집행위원장 등 범국민대책회의 간부 19명과 함께 5.9 시위 등 최근의 잇단 전국규모 시위를 주도한 혐의로 지난달 30일부터 경찰의 집중적인 추적을 받아왔다.
현씨는 경찰에서 "이날 오전 열리는 전노협 중앙위원회에 참석하기 위해 성당을 나오려고 했다"고 말했다.
한편 전노협은 이와 관련, 성명을 내고 "현 의장직대의 구속은 정 총리서리 봉변사건 이후 남발되고 있는 쟁의사업장에 대한 공권력 투입과 맥을 같이하는 민주노조 탄압책동일 뿐 아니라 범국민적 투쟁을 이끌어온 범국민대책회의에 대한 탄압"이라고 비난하면서 현씨를 즉각 석방하라고 촉구했다.
현주억씨 구속수감...어제 성당 나오다 붙잡혀, 1991년 6월 15일 한겨레
출소 후 후배 건축사의 사무소에서 일하며 건축사 자격증을 취득한 후 수건축사사무소를 운영했다.
2000년 민주노동당 창당발기인으로 참여했고 2002년 민주노동당 전북도당 창당 당시 초대 익산지구당 위원장을 맡았다. 이후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익산시 을 지역구에 민주노동당 후보로 출마했으나 3위로 낙선하였다. 민주노동당 분당 이후에는 진보신당과 정의당에서 당직자로 활동했다.
2023년 7월 14일, 폭우에 휩쓸려 향년 68세로 사망했다.[1] 자택 옆 수로가 부유물로 물길이 막혀 범람하자 인근 마을의 피해를 우려해 물길을 막은 부유물을 제거하려다 물살에 휩쓸려 수로 밑으로 빨려들어갔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