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18 04:18:26

현대미술/논란 및 비판


1. 개요2. 예술적 가치에 대한 논쟁
2.1. 작품의 기술적 수준
2.1.1. 반박
2.2. 미술품 평가의 객관적인 기준 부재2.3. 엇나간 수요와 공급2.4. 현대예술과 대중예술 사이 장벽
3. 공정한 평가 수단의 결여로 인한 부패
3.1. 투기와 탈세 수단3.2. 소수의 고액 후원자에 의한 과대평가3.3. 부조리한 주종 관계3.4. 자질 검증의 노력 부족3.5. 위작3.6. 과도한 학벌주의3.7. 빈부격차 방관
4. 오해
4.1. 단편적 비난
4.1.1. 반론 의견
4.2.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4.3. 상업주의 관련

1. 개요

파일:현대 미술.gif
종이에 코피가 좀 튄 걸 3만 유로에 사요?
언터처블: 1%의 우정

현대미술에 대한 논란, 오해를 서술한 문서.

2. 예술적 가치에 대한 논쟁

2.1. 작품의 기술적 수준


파일:현대미술 vs 4살 아이 낙서.jpg

현대미술과 4살 아이가 물감으로 아무렇게나 칠한 낙서를 구분하기. 일부러 낙서 느낌이 유난히 강한 작품과 비교적 예술적으로 보이는 낙서만 가져왔을 가능성도 있다. 다만 그렇다고해도 4살 아이의 낙서와 비교될 정도면...

일반인은 거칠게 말하면 어린아이 그림을 들고와서 이빨만 잘 까면 가치가 생기는 것을 현대미술이라고 생각한다. 현대미술에는 늘 이런저런 설명이 있고 어떠한 의도로 만들었다고 하지만, 반대로 막 그려놓고 그럴 듯한 의미를 말빨로 창조해냈을 것이라는 추측 또한 있다. 여기에 더해서, 레디메이드 이후로는 더 양심없는 작가가 남이 만든 걸 자기가 찍었으니 예술이라고 우긴다고 생각하기도 하며, 자질론을 거론하며 비판하는데 급기야 조영남 대작 사건이 터지기도 했다.

설령 반박 문단에서 처럼 "할수 있지만 일부러 하지 않았다"는 변론을 한다 해도 작품을 보고 평가하는 대중들에게는 결국 4살 짜리의 마구잡이 낙서나 "자질이 넘쳐나는" 화가의 현대 미술이 거기서 거기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예술은 그 의미나 의도 이전에 예술 그 자체 로서 기능하고 평가 하는것이 기본이며, 애초에 4살짜리의 물감 낙서와 거의 동일한 작품을 들고 와서 자신들은 "자질이 있어서" 그냥 낙서와는 다르니 다르게 보고 평가해달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낙서 같은 작품을 해왔으면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을 낙서로 이해하고 평가하지, 그 작품의 숨은 의도나 의미를 알아야 한다는 의무를 가지지는 않는다. 아무리 집에서 공부를 했다 해도 시험에서 0점을 맞으면 공부를 아예 안한 학생의 0점 시험지와 결과적으로 다른게 없다는것.

아무리 좋은 의도가 있다 하더라도 괴상하고 끔찍한 디자인으로 거리의 풍경을 해치고, 행인들의 눈쌀을 찌뿌리게 하며, 종종 실제로 피해를 주기도 하는 설치미술 작품 역시 결이 같은 문제다.

2.1.1. 반박

미술 감상이란? - 음악미술 개념사전

현대미술가는 날로 먹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특히 추상화에 이런 비판이 많은데, 위에서 설명한 것처럼 '예술가 자신이나 평론가도 어린 애들의 낙서와 구분하지 못하면서 그게 무슨 예술인가?' 식으로 따진다.

공력을 들여 꼼꼼하게 현실 대상을 묘사했다면 좋은 작품이고, 그냥 물감을 칠해놓은 것 같은 추상화는 덜떨어진 작품이라는 생각이다. 현실을 재현할 방법이 사람의 손뿐이던 시절에는 경제적 수요상 그랬을지 모르지만, 위에서 서술한 것처럼 사진으로 사실적 묘사가 흔해진 오늘날에는 다르다. 장 뒤뷔페가 일부러 어린이의 그림을 모으고 이를 따라한 이유는, 경제적으로 설명하면 '어린아이의 순수성'이라는 가치가 더 희소해졌기 때문이다. 피카소가 어린이처럼 그리는 게 더 힘들다고 말한 것도 그런 맥락이다.

오늘날 사실적인 그림은 사진으로 쉽게 제작할 수 있고, 이미 과거에 그린 사람이 많아서 희소성이 떨어졌다. 인상주의 이후로 고흐같이 '왜곡'해 그린 그림이 나오기 시작한 것도 그 때문이다. 추상도 같은 맥락으로, 사실적 묘사보다 조형 실험이나 비물질적 표현이 강조되기 시작했다. 추상이 한때 각광 받았던 것도 그 때문이다.

본격적으로 자질론 문제를 파고 들자면 이를 섣불리 운운하는 것은 대한민국 입시미술을 너무나도 우습게 보는 시각이다. 해외라고 별 다를 게 없다. 입시미술 문서에 들어가보면 비판적인 대중이 그토록 고대하는 고전미술의 기초 묘사를 미술학도는 기본으로 깔고 들어간다. 여러 묘사를 하는 스킬을 터득해야 하는데, 단지 사장된 미술 양식이라고 가르치지 않는다면? 비판적인 대중이 말하는 대로 이빨만 잘 까면 개나 걸이나 다 화백이 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전체적인 평판이 떨어지는데 어느 바보가 기초 묘사를 안 가르칠까? 게다가 필요에 따라 그러한 기법을 활용해야 할 때도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므로 학력위조 위작 같은 사례를 제외한다면 당연히 현대미술가들도 고전미술을 한다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 고전미술풍 묘사를 못 쓰니 안 쓰고 괜히 성의없어 보이는 그림 그려놓고 허세 부리는 게 아니라 굳이 그런 기법을 쓸 필요가 없어서 그런 거다.

하는 게 아니라 하는 거다.고전미술이 훨씬 귀찮으니까 카메라의 발명으로 사실성으로는 사진을 못 따라가기에 사실주의에서 현대미술로 전환한 것은 맞지만 르네상스 시대를 거치며 실물을 꼭 닮게 그리는 기술은 거의 완성단계에 도달했다.

2.2. 미술품 평가의 객관적인 기준 부재

일반인이 오늘날 현대미술에 거부감을 느끼는 원인은, 일반인이 상식적으로 보기에 예술가가 '괴상한 짓'을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현대미술계에서는 예술과 난잡한 행위가 뒤엉켜 있다. 이런 막장에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은 '그럼 모든 것이 예술이 된다는 말이냐'라고 반감을 품게 되었다. 심지어 살인이나 폭력도 말이다.

한국인 대부분은 서구의 모더니즘 건축이나 모더니즘 디자인은 이해하면서 모더니즘 현대미술은 이해하지 못한다. 일반인도 모더니즘 건축이나 디자인이 오늘날 아파트 문화나 소비상품들에 영향을 끼쳤고, 한국 사회를 매우 크게 바꿨다는 걸 안다. 하지만 모더니즘 예술만은, 한국 대중이 건축이나 디자인만큼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정작 그 건축이나 디자인에 모더니즘 예술이 큰 영향을 끼쳤음에도 말이다.[1] 이렇기에 다분히 문화사대주의적으로 한국보다 먼저 앞서간 나라들에서 나온 예술이니 한국에도 도움이 될 거라 막연히 믿기도 하고, 모더니즘이나 현대미술같은 '새로운 것'을 막연히 배척하기도 한다.

2.3. 엇나간 수요와 공급

안타깝게도 예술계의 빈부격차는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 예술품의 수요는 딱히 커지지 않고 있는데 예술가의 길에 들어서는 인력이 과잉공급되고 있다. 시각미술 쪽에 한정해서 보면, 한국에서만 예술을 취미가 아니라 직업으로 삼으려고 전공하고 졸업하는 사람이 한해 5천여 명에 달한다. # 디자인 계열까지 합치면 1만 5천 내외라고 한다. # 행정고시나 사법고시 합격자가 매년 1,000명인 것을 따지면 확실히 많은 편이긴 하다. 이 때문에 미술학과의 교육 커리큘럼이 졸업생 수를 많이 내는 쪽보다 질을 따지는 쪽으로 가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 이와는 별개지만 최근 정부에서는 출산율 감소로 대학 구조조정을 진행중인데, 이로 인해 취업률 등의 지표에 낮은 점수를 받게 되는 예술 관련 학과는 불이익을 받는다. # 이는 인문학도 마찬가지. 그렇다고 예술 관련 학과를 한두 개만 남기고 다 없앨 수도 없다. 천재 혼자만 활동하는 분야는 제대로 돌아갈 수 없다. 그 천재를 평가해주고 인정해주는 사람, 그 천재를 지원해주는 사람, 그 천재의 업적을 후대에 전해주는 사람이 있어야 그 분야가 유지되는 것이다.

게다가 이들 중 전업작가로 성공하는 사람은 한 해 졸업생 중 한두 명에 그친다. 전업작가는 공모전이나 비엔날레 같은 판에서 활동할 수밖에 없는데, 전 세계적으로 봐도 공모전이나 비엔날레가 잘 돌아가는 나라는 기껏해야 서유럽 몇몇 나라 정도밖에 없다. 유럽 이외 국가에서 '블록버스터급' 관람객 동원이 가능한 미술관이나 전시행사는 그리 많지 않다. 한국처럼 산업 구조가 제조업 위주인 공장 국가에서, 사람이 여유롭게 문화를 즐기길 기대하는 건 무리일지도 모른다는 비관적인 시각도 있다. 게다가 국내에서 성공해서 해외로 나가서도 성공한 작가는 사실상 없다. 한국이 자랑하는 백남준이나 이우환은 일본, 독일, 미국에서 공부한 해외파다. 전통을 곧이곧대로 파면 외국 사람이 좋아할 거라는 주장도 있지만, 이국풍으로 통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가볍고 쾌락에 호소할 때 뿐이다. 일본이 성공한 이유도 그와 같은 맥락이다.

사실 이는 사진이 등장하고 공장 자동화가 이루어지면서 더 이상 초상화나 조각을 사람이 일일이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예술가도 최소한 생계는 유지 되어야 후속 작업이 가능하다는 것. 하지만 일반인의 인식은 '가난하지만 예술혼을 불태우는 예술가'라는 식으로 미화하거나, 아니면 '예술 따위에 목숨거는 멍청이' 정도로 비하하는 것이 고작이다. 정말 절실한 대책을 마련해주기 위해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은 드물다.[2] 이 때문에 예술가가 일부 유명 예술가의 전시를 보이콧하는 사태도 일어난다. # 그리고 예술가도 궁여지책으로 노동조합을 만들기도 한다. 국내에는 예술인 소셜 유니온이 대표적.

2.4. 현대예술과 대중예술 사이 장벽

(현대예술 vs 순수예술) vs (대중예술 = 상업술)?

현대예술과 대중예술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유리장벽이 존재한다. 현대미술, 또는 순수미술은 흔히 ' 교양'에 필요한 것, 바람직한 것으로 여겨지고, 대중예술이나 상업예술은 그렇지 않다고 보는 시각이 이것이다. 현대미술계에 종사하는 종사자가 그렇게 만든 것인지, 일반인은 현대미술이 고상하고, 어려우며, 그렇기 때문에 난해하며 '우리 서민'과는 상관없는 '고상한 상류층, 그들만의 리그'라고 생각한다. 이는 회화, 조소 같은 시각예술 분야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공연예술 가운데서도 연극, 오페라, 클래식 음악 연주회는 고상한 상류층의 전유물로 여겨지고, 반대로 개그 프로그램, 사진, 영화, 만화, 애니메이션, 최근에는 게임 같은 것은 저속한 것으로 여기는 사람이 있다.

① 현대예술, 순수예술은 대중예술, 상업예술보다 가치있다는 시각(가치: 현대예술,순수예술>대중예술,상업예술)에는 여러 가지 잣대가 혼재되어 있다. 첫째는 '예술은 순수성을 추구하기 때문에 대중성을 추구하는 대중예술보다 순수예술이 가치가 높다'라는 주장이다.(순수하게 예술성을 추구하는 측면: 순수예술>대중예술) 둘째는 순수예술은 자본, 경제논리, 쉽게 말해 돈에 따라 가치평가가 좌지우지되지 않기 때문에 대중예술보다 가치가 높다는 주장이다.(돈에 좌지우지 되지 않음: 순수예술>상업예술) 셋째는 순수예술이 대중예술보다 '현대성', 즉 현대를 대변하는 '시대정신' 같은 것을 찾으려 더 노력하고 실제로 더 잘 반영하기 때문에 가치가 높다는 주장이다.(시대상을 더 잘 반영: 현대예술>대중예술) 그리고 이런 시각들에는 일반인은 이러한 가치를 찾아내는데 노력하지 않기 때문에, 순수예술을 하는 예술가는 일반인을 위해 대중적, 통속적인 작품을 만드는 예술가보다 우월하다는 사고가 반영되어 있다.

반대로, 이러한 논리가 역으로 뒤집어지면 ② 현대예술, 순수예술이나 대중예술, 상업예술이나 그게 그거라는 시각, 또는 ③ 현대예술, 순수예술은 대중예술, 상업예술보다 못하다는 시각(가치: 현대예술,순수예술<대중예술,상업예술)이 된다. 첫째로, 순수예술이 추구한다는 소위 예술의 순수성, 또는 예술의 자율성(autonomy)은 사실 한갓 쓰잘데기 없는 것이라고 평가절하하는 태도가 있다.(순수하게 예술성을 추구? 예술성이란 기준이 뭐냐?) 둘째로, 순수예술이 수천에서 수억 원에 거래되는 점을 들며 현대예술도 돈에 좌지우지된다고 이야기하는 태도가 있다.(돈에 좌지우지 됨: 순수예술 ≥ 상업예술) 셋째로 현대예술이 시대성을 반영한다는 주장이 넌센스라 보는 시각이 있다.(시대상을 더 잘 반영: 현대예술 ≤ 대중예술) 도리어 동시대에 유행하는 영화나 대중가요가 더 시대상을 잘 반영한다는 등의 주장이 그렇다. 특히 이와 연관되어 추상화가 자주 거론된다. 그리고 이런 시각들에는 순수예술을 하는 예술가보다 일반인을 위해 대중적, 통속적인 작품을 만드는 예술가가 우월하다는 사고가 반영되어 있다. 인터넷상에는 후자의 생각을 반영한 글이 종종 올라온다. 현대미술에 대한 일침

어떠한 의견이든 지지하는 것은 각자의 판단에 따라 자유롭게 할 수 있지만 이러한 지적을 하는 대다수의 대중은 현대미술 전시를 단 한 번도 보지 않은 사람이 대다수이다. 우리나라에서 자주 열리는 반고흐, 모네, 피카소 등과 같이 잘 알려진 작가의 전시는 더 이상 현대미술이 아니다. 하지만 이러한 전시가 널리 알려지면서 현대미술을 심층적으로 다루지 않지만 많은 관객을 끌어야 하는 대형 미술관이 그나마 알려져 있을 뿐이다. 큰 광고판에 노출되는 대형 전시가 아닌 다양한 미술전시 관람을 원한다면 네오룩, 뮤움 또는 도두바 같은 사이트를 방문해 보는 것이 좋다. 한결같이 예산이 부족한 미술 전시는 비용절감의 1순위가 홍보비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러한 사이트에 전시기간 동안 게재하는 홍보방식이 일반화 되어 있다.

3. 공정한 평가 수단의 결여로 인한 부패

3.1. 투기와 탈세 수단

일반인들 사이에서 현대미술은 별 그림 같지도 않은 걸 대충 그려 놓고 돈만 잔뜩 챙긴다는 이미지나 뒷돈 세탁용, 재벌2세의 상속세 절세용 등이라는 좋지 않은 이미지가 있는 편이다. 크게 문제점으로 지적 받는 건 투기수단으로 전락한 미술품, 학연, 지연, 혈연으로 얽힌 그들만의 리그, 이와 연관되어 따라오는 각종 밀거래와 비리, 차별 등이 있겠다. 이건 해외도 마찬가지지만, 그렇다고 국내 예술계 상황을 두둔해줄 것도 아닌 것이 당연지사. 구체적으로 미술계에서 있었던 주요 문제만 봐도, 작가의 유족까지 연루된 이중섭 위작사건, 박수근 <빨래터> 진위공방, 신정아 경력 위조 사건, 천경자 미인도 위작 사건, 삼성 X파일 사건과 행복한 눈물 #, 미협 주최 미술대전 심사비리 사건 등 #의 문제가 있겠다.

이건 현대미술에 국한되는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형태가 없는 연극이나 뮤지컬, 취급이 불편하고 꽤 큰 부피를 차지하는 조각이나 전시물, 비디오아트 따위와는 달리 회화는 그림을 고정할 프레임과 유리만 있으면 되며 보관과 거래가 매우 용이하다. 투기와 세금탈루로는 현대미술작 만한 것이 없다.

3.2. 소수의 고액 후원자에 의한 과대평가

공정하게 평가받기보다는 특정 집단 내에서 취향과 주관에 따라 평가받기 때문에 부패와 결탁하기 쉽다. 현대미술은 소수를 겨냥한 취향이 담긴 작품이 많은데, 이러면 그 취향을 보장해주는 소수가 결정권을 쥐게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소위 스폰서가 얼마나 빵빵하냐에 따라 작가의 역량이 달라진다는 말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3]

미술시장은 그 특유의 주관성 때문에 각종 공정성 문제가 제기되는 분야이다[4]. 2014년에 한 아트페어에서는 총 230억 원어치 미술품이 팔렸다고 나왔지만, 정작 대부분의 화랑은 언제 그런 미술품이 팔렸냐고 반문하기도 한다. 소비자가 다수의 대중이 아니라 소수의 부유한 수집가 층에 한정되다보니, 얼마나 우수고객과 연줄을 유지하고 작품을 사도록 유도하느냐가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이는 그만큼 미술시장 안의 화랑들도 빈부격차가 극심하다는 뜻인 동시에, 거래내역이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는 데에 따른 부작용이기도 하다. #

영국에서는 대표적으로 찰스 사치(Charles Saatchi)가 후원자로 유명하다. 성공한 광고회사 임원이었던 사치는 YBA 대표 작가들을 발굴하고 띄워주었다. 이 과정에서 데미안 허스트가 상어를 표본처리해 수조에 담가 <살아 있는 누군가의 마음 속 죽음의 물리적 불가능성>이란 작품을 만들기도 했다. 특성만큼이나 반박도 거세서, 지금도 YBA를 '광고로 만들어진 작가들'일 뿐이라고 평가절하하는 사람이 많다.

미국에는 모마, 솔로몬 R. 구겐하임 미술관 등의 뒤에 재벌이 있다. 구겐하임은 이름 그대로 솔로몬 R. 구겐하임 재단 산하고, 모마는 록펠러 가문의 후원을 받는다고 알려져 있다. 이 외에도 미국에서는 재벌이 예술 재단을 설립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단순히 기부하면 돈이 어디에 사용되는지 모르는데, 이렇게 재단을 만들거나 미술관, 대학 재단에 기부하면 관리가 잘 된다나?

한국에서는 과거에 군사정권과 미술 간의 연관관계가 지적받기도 했다. 시공사는 미술 관련 서적을 많이 출판하는 편인데, 이 시공사의 주인이 전두환 전대통령의 장남인 전재국씨다. 미술품을 많이 사둔 것으로 알려져 있다. # # # 스스로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고.[5] 한편 노태우 전대통령의 딸인 노소영씨는 미디어 아트 전문 아트센터인 아트센터 나비를 운영하고 있다. 그래서 기사에는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으로 직함이 표기되어 있다. 또한 진보세력이 집권하면 민중미술 계열의 힘이 비정상적으로 강해져서 민중미술 계열이 아닌 미술가들 상당수가 외국으로 떠난다.

삼성은 이병철 회장 때부터 예술을 후원했다. 이병철 회장의 호인 호암을 따서 호암미술관을 짓기도. 이건희 회장이 경영권을 잡은 뒤에는 리움(Leeum)을 지었다. 이씨의 Lee와 미술관의 Museum을 따온 합성어라고 한다. 삼성 X파일 사건에서 로이 릭턴스타인의 행복한 눈물이 비자금 관련 재산 목록에서 나오기도. # 이 과정에 개입했다고 알려져 있는 서미 갤러리 홍송원 대표는 2014년 9월에도 다시 구속됐다. # 홍송원 대표는 이혜경 동양그룹 부회장과도 연관을 맺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로 수배되었다가 죽은 채로 발견된 유병언 세모그룹 회장도 아마추어 사진작가로 활동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병언은 아해라는 예명으로 활동했는데, 자신의 예술성을 증명받는 대가로 프랑스의 유명 큐레이터들을 상대로 10억 단위로 돈을 뿌리며[6] 루브르 박물관의 행사와 공개 전시회에[7] 자신의 사진을 독점게시한 과거사[8] 르몽드 지를 통해 폭로되었고, 그것이 알고싶다에 의해 실체가 드러났기 때문이다.

실제로 유병언, 유대균 두 부자의 작품은 예술적 가치가 거의 없다고 평가받는다.( #1, #2, #3)

르몽드지의 폭로 이후로 유병언의 과거 행적이 공개되면 공개될수록, 프랑스 예술계의 평판이 추락하고 있다. 예술가라면 인생의 목표라할 수 있는 콧대 높기로 유명한 루브르 박물관의 독점게시 행사나, 베르사유 궁전의 단독 전시회의 값어치가 고작 10억으로 열 수 있는 싸구려(?) 행사로 전락하는 것을 우려하는 것이다. 결국 카트린 페가르 베르사유궁 박물관장은 이에 항변하는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다. # 그러나 루브르 박물관도 책임론에서 벗어나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 이 때문에 프랑스 경찰은 타 국가의 수사협조에 대해 콧대높은 자존심을 세우며 비협조적인 자세로 나오기로 유명한데[9] 유병언 일가의 수사에는 매우 적극적으로 협력하는 특이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3.3. 부조리한 주종 관계

우리는 상식적으로 미술가가 미술계의 주인이라 말하고, 실제로 그렇게 되어야 하는 것이 맞지만, 실제로 현대미술에서 미술가 큐레이터, 갤러리스트[10]와는 상하관계고, 다시 이들은 소수의 소비자나 아트 딜러와 상하관계다. 대강 권력서열을 따진다면 수집가 갑부[11] > 유명 미술관[12] > 유명 미술 언론[13] > 예술 경매 회사[14] > 관객 > 큐레이터 > 갤러리스트 > 평론가 > 미술가 순의 피라미드가 형성된다고 봐야 할 것이다. 오른쪽에 있는 사람일수록 왼쪽의 눈치를 보고 휘둘리게 된다.[15] 물론 일부 소수 유명 미술가는 이 상하관계를 쌈싸먹지만 이런 슈퍼 을은 언제나 가뭄에 콩 나듯 나오는 아웃라이어니 예외로 쳐야한다. 관객의 영향력이 갑부, 미술관, 미술 언론, 경매 회사보다 떨어지는 것으로 적은 이유는, 갑부, 미술관, 미술 언론, 경매 회사는 사실상 일반인 관객의 반응을 그렇게 크게 신경쓰지 않기 때문이다. 갑부나 경매 회사, 갤러리스트는 대중성보다는 돈을 따라 움직이고, 미술관이나 미술 언론은 자기 설립 취지에서 크게 벗어나는 운영을 하지 않고 그냥 마이웨이를 간다. 전시 관람자수에 목매는 건 큐레이터나 미술가다. 얼핏 생각하면 미술가는 현대미술의 핵심으로 우대받아야 할 것 같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이미 떴거나 연줄있는 작가 외의 예술가는 수백-수천만 원씩 사재를 써 가며 개인전을 연다.

사실상 갤러리와 개인 작가는 거의 갑을 관계를 이루고 있으며, 이로 인한 부조리도 만만치 않다. # 따지고 보면 정말 일부 갑부 소비자나 성공한 몇%의 인사들을 제외하면 미술계 종사자 중 열에 아홉의 수입은 평균이하다. 이건 외국도 마찬가지다. 한스 애빙 암스테르담대 예술사회학과 명예교수에 따르면 "예술가의 94%는 일반 노동자의 평균 수입 이하인 생계비만 가지고 산다"라고 단언한다. 고작 예술가의 6%만이 예술계에서 명성과 부를 얻는다고 한다. # 예술가뿐 아니라 관련 주변 종사자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평론가 반이정은 미술잡지가 원고료 지급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고 비판하는 글을 싣기도 했다. #[16]

3.4. 자질 검증의 노력 부족

이외에도 미술계의 인물 자질 검증 노력도 비판받는다. 대표적인 사건이 신정아 경력 위조 사건. 금호그룹 산하의 금호미술관 알바생이었던 신정아는 당시에 미술관 수석 큐레이터가 금호그룹 측과 갈등을 빚고 사임하자 채용되었다고 한다. 신정아를 채용한 것은 큐레이터를 단순한 박물관 관리자로 여기던 금호그룹 고위층의 무지의 결과라고 한다. 이후 2001년에 금호그룹 측에 허위 경력이 들통나서 잘렸으나, 아무도 신정아의 허위경력을 본격적으로 검증하려 노력하지 않았고, 금호그룹도 허위경력으로 자르기는 했어도 이를 발표하지 않았다. 결국 신정아는 다시 위조된 경력으로 성곡 미술관에 큐레이터로 취직하였다. 이후 2005년에 동국대 미술사학과 조교수로 임용되고 2007년 7월에는 광주 비엔날레 감독으로 발탁되기까지 했다. 이후 결국 들통났지만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는 그간 신정아의 비리가 잘 알려지지 않았거나 지금도 관련된 많은 사람이 입을 다무는 것을 두고 신정아가 고위층의 여러 비밀과 비리들을 알고 있고 그로 인해 관련인사가 자신들의 치부가 드러나는 것이 두려워 신정아의 비리를 문제삼지 않아 이것이 그의 사기행각을 지속하는 데 도움이 된 것이 아닌가 추측하기도 하였다. 실제로 뒷배가 있는지 2014년 8월 15일에는 MBN 아궁이에 출연하기도 하는 등 계속 복귀하려는 시도를 하였다.

비엔날레 등 주요 미술 관련 행사가 시원찮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대중매체가 전파하는 상업예술의 홍수 속에서 미술계 종사자가 원하는 가치를 전파하고 싶으면 그만큼 신경쓰고 노력해야 하는데 점점 더 그러지 못하고 있는 것. 여기에 지역자치단체는 예술에 대해 공부하지도 않고 대강 그럴듯한 행사기획서만 보고서는 비엔날레에 예산을 지원하고 있다. 그 결과 부실 미술행사가 넘쳐나고 있는 것. #[17] 덧붙여 앞서 적었던 갤러리 부조리와 마찬가지로 비엔날레도 전시참여 작가들에게 정당한 댓가를 지불하지 않는 사례가 많다. 관람객 수를 봐도 광주비엔날레[18], 부산비엔날레, 서울국제미디어아트비엔날레 등의 나름대로 자리잡은 대형 비엔날레조차 관람자가 수십만 명 선에 그친다. 보통 이런 비엔날레는 두 달 넘게 개최되는데, 영화제 지스타 등의 다른 행사가 일주일 미만에 비슷한 수의 관람객이 찾아오는 것을 보면 확실히 관중동원력이 뒤처지는 것이다. 그나마 여기서 학생 관람객과 공무원 등을 빼면 관람자 수는 더 줄어들 것이다. 그렇다고 상업적으로 가거나 지역미술잔치로 만들 수도 없으니 이런 비엔날레 주최위원회 입장에서는 진퇴양난인 상황.
착각하는 사람이 있을 것 같아 덧붙이자면, 혹자는 광주비엔날레에 광주 출신 작가가 적고, 부산비엔날레에 부산 출신 작가가 적다고 따지는건, 이건 왜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에 한국/인천 출신 선수가 적냐고 따지는 꼴이나 다를 바 없다. 비엔날레는 전세계의 다양한 작가와 작품을 선보이자고 여는 행사다. 비엔날레는 전국체전처럼 지역작가들 동네잔치 하자고 여는 게 아니다. 마찬가지로, 비엔날레는 최근의 다양한 예술 작품과 경향을 소개하는 자리인데, 이걸 무시하고 대중성이 없다 따지는건 말이 안 되는 것이다. 비엔날레를 고전주의나 인상주의 작가들의 작품으로 도배해야 대중성 있다고 말할 건가? 이는 예술가들에게 그냥 과거의 예술을 답습하라고 강요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결국 대중의 무관심 + 미술계 내부의 연고 중시 + 염불보다는 잿밥에 더 관심이 많은 작전 세력 이 삼박자가 들어맞으면서 한국미술계는 성장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이는 대중이 현대미술의 '자질'을 의심하고, 현대 미술을 전부 버블이 낀 막장이라고 여기고, 이를 정당화하며 관심이 더욱 멀어지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3.5. 위작

국내 작가들의 위작 사건도 문제로 지적받는다. 위조지폐와 마찬가지로 위작은 예술가와 예술작품의 신뢰성을 떨어트려 미술 시장 전체에 악영향을 미치는 중대한 범죄이다. 주로 근현대화가들의 작품을 대상으로 위작이 많이 제작, 유통되고 있다. 이는 관련 데이터베이스가 제대로 구축되지 않았기 때문에 감정에 객관성이 부족하다는 비판을 받는다. # # # # #

대표적으로 이중섭의 둘째 아들 이태성(야마모토 야스나리)이 2005년 3월 16일에 첫 공개해서 경매에 내놓은 그림 8점이 2005년 10월에 가짜로 밝혀져서 파장이 일어났다. 이를 기점으로 이중섭 작품에 대한 위작 논란이 있었다. 한국미술품평가원에 따르면 이중섭이 위작이 가장 많은 작가라고 한다. 감정 187건 중 무려 108건이 위작이고 진작은 77건, 감정 불능 2건이었다. 의뢰받은 작품의 58%가 가짜였던 셈이다. #

박수근의 작품들 중에도 위작이 많다고 알려져 있다. 2009년에는 <빨래터> 위작 논쟁 등이 벌어져 재판까지 벌어지기도 했다. #

김환기도 단순한 그림 양식 때문에 쉽게 위작이 나오는 작가 중 한명이다. 지난 10년간 한국미술품감정평가원에서 감정한 김환기의 작품 262점 중 24%인 63점이 위작이라고 한다. #

천경자의 케이스는 상당히 심각해서, 국립현대미술관 측까지 연루되는 대형 스캔들로 번졌다. 천경자 미인도 위작 사건 문서 참고.

이우환은 국내 유통 작품 13점이 위작 판정을 받았다. #

이에 결국 정부에서 미술 유통 구조를 손보겠다고 나선 상태이다. #

외국에서도 이런 일이 많았기 때문에 일부 작가는 위작 방지를 위해 침, 머리카락, 혈액을 캔버스에 강박적으로 발라버리기도 한다.

3.6. 과도한 학벌주의

학벌 중심인 예술계판 구성도 문제로 지적받는다.[19][20] 최근에는 국립현대미술관이 서울대와 홍익대 출신만을 우대한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이전 서울관 개관 기념 전시 '자이트가이스트 시대정신' 전에서도 서울대 출신 작가들의 작품을 주로 전시해 한국미술협회에서 반대시위를 열기도 하였다. 결국 정형민 관장은 직위해제되었다. 그렇다고 미협 쪽이 깨끗한 것도 아니다. 이쪽도 지연과 학벌에 좌지우지 되기는 마찬가지다. 대표적으로 미협은 이전에 미술대전 심사비리 의혹이 제기되어 논란이 된 적이 있다. 이런 학벌위주 전시 관행을 타개한다고 시도된 공장미술제에서도 작가 지원금 무지급 논란 문제가 벌어져 논란이 일었었다. 국내 미술계에서는 지금도 학벌, 파벌에 따른 알력다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아트 스타 코리아 프로그램에도 이와 관련된 내용이 올라오기도 했다. 아마 과거 사례까지 치면 더 있을 것이다.

학벌 중심인 미술계 내의 성폭력 관련 문제도 은폐되고 있을 뿐, 만연해 있을 것이란 추측이 우세하다. 한 트위터 이용자는 '아트리크스'를 만들어 제보를 받기도 했다.

3.7. 빈부격차 방관

상술했듯 결과적으로 현대미술계의 빈부격차는 심해지고 있다. 연줄있는 작가는 금전 지원과 이론 지원을 받아 잘 나가게 되는 반면, 그렇지 못한 작가는 현대미술계를 떠나게 되는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한스 에빙 교수의 주장에 따르면, 이는 "예술이 지닌 높은 가치 때문에 예술가는 희생하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이 있어서"라고 한다. "예술은 좋으니까 작가라면 (돈, 생계, 목숨 걱정은 하지 않고) 무조건 헌신해야 한다는 예술 분야의 ’에토스‘(ethos·기풍)가 머리에 너무 깊게 박혀 있다"라는 것이다. 또한 "(이렇게 부조리한 구조에 항의하기는 커녕)예술가는 낮은 수입에도 열심히 예술 활동을 이어가려는 성향이 있다. 경제학자 입장에서는 이렇게 하면 안 된다, 돈으로 (예술 활동을) 환산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그럴 수가 없는 구조인 것이다."라고 말한다. # 이는 현대미술계 스스로 상업미술, 대중미술과는 뭔가 다르다는 '구별짓기'를 하는 것 때문이라는 점도 생각해야 한다. 음악, 문학 등 다른 예술도 마찬가지지만, 이른바 순수예술, 혹은 인디예술을 한다는 사람은 상업성, 대중성과는 다른 그 무언가를 추구한다고 자부하는 경향이 있고 어느 정도는 사실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순수예술에 몸담은 사람이 자기 작품으로 돈을 벌지 않느냐 하면 그건 결코 아니다. 돈을 덜 벌 뿐이지 돈을 안 벌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당연한 얘기이지만 돈을 벌려고 하는 것은 예술노동의 당연한 댓가이지 나쁜 것이 아니다. 적어도 작품이 판매될 때마다 작가에게 이득이 돌아가는 추급권 보장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1970년대 이후로 아트 옥션에서 수십 억~수백 억을 호가하는 미술 작품 거래가 시작되면서, 일반인들의 반감도 비례해서 커졌다. 수십 만 원도 부들부들 떨면서 다뤄야 하는 일반 서민들에게, '점 하나 찍은 그림 한 점'이 수천에서 수억 원에 거래되는 모습은 위화감을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그래서 이를 빈정거리는 글이 인터넷에 떠돌기도 한다. 현대미술 작품의 흔한 가격(有) 현대미술 쥐뿔 이탈리아판 김선달…'투명 조각상' 2천 만원에 낙찰

문제는 일반인은 현대미술의 필요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어 현대미술을 키워야 한다는 인식이 없다는 것이다. 디자인, 영화, 광고 같은 대중예술이나 상업예술로 나가지 않고 자기 소신을 지키려는 예술가는 외골수처럼 비친다. 일반인들의 인식 속에서 현실과 타협하지 않는 예술가의 모습은 다분히 미화되어 있다. 세잔, 고흐, 고갱에 대한 인식이 신화처럼 미화된 것처럼 말이다. 결국 이는 다시 위에 적힌 문제들을 양산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모더니즘이나 현대미술을 이해해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앞으로 한국의 사회문화 변화를 예상하고 대처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서구 사회에서 살았던 예술가는 서구가 거쳐갔던 여러 문제들을 경험했을 가능성이 높고, 이를 고민했을 가능성도 높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국 사회는 점점 서구화되고 있다. 또한 단일한 집단을 강조하던 과거와 달리, 점점 개인의 개성과 창의성이 필요한 사회로 변해가고 있다.

하지만 사진이나 공장 자동화 같은 대량생산 체제 때문에 비슷비슷한 이미지 결과물이 증가하면서, 예술가가 뭔가 새로운 것을 시도하기는 더 어려워지고 있다. 오늘날에는 웬만한 사람들도 상당량의 이미지에 노출되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몸의 자세를 튼다든지 좀 더 세밀하게 그린다든지 하면 통했지만, 이젠 쉽게 이미지 수정과 조작이 가능해지면서 그런 기술은 별로 눈에 띄지 않는 평범한 테크닉 수준으로 인식이 떨어지게 되었다.[21]

경쟁자는 많은데 사실적 재현으로는 예술적 가치가 먹히지 않으니, 예술가는 뭔가 눈길을 확 끄는 새로운 것을 시도하거나, 일반인이 놓친 것을 다시 상기시키는 쪽으로 가는 수밖에 없게 된다. 그런데 이를 알아보려면 예술가가 그런 시도를 한 맥락을 알아야 하고, 그런 맥락을 알려면 관련된 내용을 '공부'해야 하니, 현대미술은 더 어려워지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그 과정에서 안목을 가지고 인정해주는 사람들끼리만 모이게 되고, 이것이 일반인의 눈에는 '그들만의 리그'처럼 보이게 되는 것이다. 일반인의 눈에는 새로워 보이는 것이 예술가나 전문가의 눈에는 식상한 것, 이미 누군가 했던 것으로 보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게 세대차와 연관되면, 젊은 예술가/애호가가 기성 예술가/애호가를 까는 일이 (혹은 그 반대가) 벌어지게 된다.

사실 만화, 애니메이션, 게임도 이 과정을 거치고 있다고 여겨진다. 소설이나 회화나 연극은 고상하고 만화, 애니메이션, 게임은 저급하다는 인식이 대표적인 예이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소설, 회화, 연극도 오랜 옛날에는 저급하다고 여겼다. 역으로 시대가 지나면 만화, 애니메이션, 게임도 기성예술매체가 되어 기득권 자리를 차지할지도 모른다.[22]

예술계에 한정해서 보면, 예술 생산자인 예술가와 소비자인 관객 사이의 갈등이 있고, 예술 생산자 및 종사자(화상, 평론가 등) 사이의 갈등이 있다. 앞의 경우 난해한 현대미술을 까는 원동력이 된다. 꿈보다 해몽이라는 말처럼, 그냥 노력도 안 하고 대강 뭔가 해놓고 장황한 헛소리를 갖다 붙여 그럴듯하게 꾸미려 든다 여기게 되기 때문. 뒤의 경우, 이미 대학 교수 자리를 꿰찬 작가들을 신진 작가가 까는 현상이 일어나게 된다. 기본적으로 세대가 다르다 보니 사고방식이나 취향도 다른데다, 근본적으로 앞사람이 떨어져야 뒷사람들에게 기회가 올 테니까.

4. 오해

4.1. 단편적 비난

심층적인 문제는 현대미술을 까는 사람들의 배타적인 태도다. 댓글을 봐도 모더니즘이나 현대미술을 이해하려 시도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확연히 구분이 된다. 구체적인 사례를 들고, 특정한 논리를 들어가며 비판한다면 그나마 이해하려 시도한 것이다.

현대미술 반응
현대미술에 멘붕먹는 사람들을 위한 안내서

여기서 중요한 건 왜 게르하르트 리히터가 하필 거울에다 물감을 칠했는지, 그것도 왜 하필 검붉은 물감을 칠했는지 등 위 글에서도 다루지 않은 여러가지 부분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렇게 단편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당연히 저 작품을 '허접쓰레기에 값만 올려 붙인 것' 정도로 치부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저 글의 예를 들어, 리히터가 서독 출신 작가이고 나치 독일과 분단 독일[23]을 경험했던 작가라는 걸 아는 사람이라면 이 작품도 다르게 보일 것이다.
예술가는 작품을 만들면서 상대적으로 중시하는 가치를 가질 수 있다. 예술가들의 사명 중 하나가 이런 문제 제기이다. 이런 전체주의 같은 것은 묻어두고 묵인할 수록 더 위험해지기 때문이다. 유감스럽게도 대중은 이런 문제를 껄끄럽게 생각해 아예 언급하지도 생각하지도 않으려는 경향이 있는 게 사실이다.

추상 운동은 가치중립을 지키려 시도한 사조가 된다. 추상화가는 보통 "점선면색은 가치중립적"이라고 인식한다. 위풍당당하게 군복을 입은 나폴레옹과는 달리 점선면색으로 구성된 추상화 화면은 어떤 선전, 선동도 하지 않기 때문이다.

현대미술 특유의 의미전달방식[24]을 이해하지 못하고 단순히 고상하거나 난해하다고 매도하는 건 타인을 존중하는 자세와는 거리가 먼 것이다. 예술은 취향과 결부된다.

이해하려고 하지도 않고 무작정 보기에 마음에 안 든다고 욕부터하는 것은 옳지 않다. 대부분의 대중은 현대미술이 관념, 철학이 되었다는 사실도 모르고 현대미술을 비판하는 게 현실이다.

하지만 그림을 보기 전에 작가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사상을 가지고 있는 지 사전에 파악하고 그림을 감상해야 한다는 건, 그림을 보고 작가를 평가하는 게 아니라 작가를 보고 그림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도 있다. 어린이가 그린 낙서도 어린이가 옆에서 "이거는 ~를 그린거고, 또 이거는 ~를 생각하면서 그린거고..."라고 하면서 설명해주면 이해할수 있는 그림이다. 직관적으로 작품의 가치를 알아볼 수 있는 고전미술과 달리 현대미술의 접근법은 다소 진입장벽이 높을 수 밖에 없다.

아래 반론 부분에서는 '점 하나 찍은 걸로 21억에 낙찰된 것으로 유명한 이우환 화백의 조응 시리즈도 그 제작과정과 실물을 보고 나면 결코 만만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라는 서술이 있다. 그러나 작품을 보고 갚은 인상을 받고 그 작품이 왜 그렇게 되었는지 이해하기 위해 배경지식을 찾는 것이 아니라, 배경지식이 없으면 작품에 대한 이해가 안된다면 그건 훌륭한 주객전도다.

영화, 소설등 다른 여러 예술분야에서도 나타나는 것이지만, 모호한 것을 보여주고 최소한의 설명도 넣지 않은 상황에서 이를 이해려고 하지도 않느냐고 항의하면 시쳇말로 마이너 부심, 스노비즘이란 비판을 듣기 십상이다. 현대미술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전문가나 수집가, 전공자라면 그 의미와 가치를 이해하겠지만 평범한 일반인의 입장에서는 이해하지 못할 작품에 가치를 부여하기 어렵다. 가치를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에 크게 의미를 둘 필요도 못느끼는 것이다. 결국 이해도 못하는 작자가 잘못되었다는 식의 태도는 일반인들을 배제하고 소위 예술에 대한 조예가 있는 사람들만 누리는 그들만의 리그가 될 수도 있다.

무작정 이해하려 들지 않고 욕하는 것도 옳지는 않지만, 일반적인 시선으로 이해하기 힘든 것을 보여주고는 왜 이해하지 못하냐며 업신여기는 것도 건전하게 예술을 즐기는 방식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4.1.1. 반론 의견

상술했듯 인터넷 상에서 현대미술 작품을 평가하는 글은 대개 충분한 배경지식 없이 무지성으로 비난한다.

당연히 현대미술 전공자나 애호가는 이런 글에 분개한다.

이런 소위 '현대미술을 까는 자료'는 다음과 같은 형식을 따른다.
  1. 형식이 단순한 작품을 보여 준다.( 추상화, 미니멀리즘, 개념미술)
  2. 아니면 미친 짓으로 보이는 작품( 예술가의 똥, 샘(마르셀 뒤샹), 나체 퍼포먼스 등)
  3. 경매에 비싼 값에 팔렸다는 이야기가 덧붙어 있다.
  4. 사실주의 회화가 그보다 싼 가격에 거래된 사실을 열거한다.
  5. 예술가의 명언( 백남준의 " 예술은 사기다." 등)이 따라붙는다.

문제는 '현대미술'이라는 용어를 사용했고, 이를 비판의 대상으로 삼았다는 것. 현대미술은 매우 다양한 사조들을 포함하는 대범주이다. 백남준은 비디오아트를 했다. 이런 현대미술의 다양한 사조들을 간과하고 멋대로 백남준의 말을 '현대미술'을 비판하는 데 인용해서는 안된다. 심지어 그래피티 같은 것도 현대미술이다. 백남준 이외에도 앤디 워홀의 "유명해져라. 그러면 당신이 똥을 싸도 사람은 박수를 보낼 것이다"도 자주 인용되는데 이것은 사실 앤디 워홀이 말한 적 없는 가짜 명언이다.

이런 오류는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의 한 예이다. "고전미술은 가치있지만 현대미술은 그렇지 않다"는 주장은 "고전스포츠는 가치있지만 현대스포츠는 그렇지 않다"는 주장만큼이나 터무니없는 것이다. 다른 명제들도 마찬가지.

그나마 "내가 본 일부 현대예술가들의 예술은 형편없었다. 다만 다른 현대예술가들의 예술이 어떤지는 모르겠다."라고 말하는 것이 옳은 접근방식이다.

그러나 고전미술의 연장선에 현대미술이 있다는 말도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가 된다. 이미 스스로 구축한 자신만의 미학적 표현이 기존 미술의 범주를 넘어선 전혀 다른 새로운 표현 방식이 되길 바랐던 백남준의 발언을 현대미술에 대한 선문답인양 인용하는 것도 옳지 못하다.

이런 글을 쓰는 사람은 작품의 크기, 전시장 환경, 작품과 관련된 이야기 등 제반 조건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위의 사이 톰블리 작품 크기를 봐도 사람 키보다 훨씬 큰 3~4미터에 달한다. 일반적인 추상화가들의 작품들도 대부분 굉장히 크다. 게다가 미술관 전시장에서 이런 작품은 대부분 벽 한면에 한두 작품만 걸리도록 구성되어 있다. 루브르 미술관도 한 면을 한 작품을 위해 할애하지 주렁주렁 걸어놓진 않는다. 이런 전시 환경에서 작품을 보게 되면 단순한 점선면색으로 된 그림도 굉장히 큰 임팩트를 내게 된다. 한국인의 작품도 마찬가지다. 점 하나 찍은 걸로 21억에 낙찰된 것으로 유명한 이우환 화백의 조응 시리즈도 그 제작과정과 실물을 보고 나면 결코 만만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모네 <수련> 전시 모습

일반적으로 그러한 글은 작품을 접하는 모니터나 스마트폰 화면으로 보이는 조그만 모습으로 작품을 평가한다. 상술했듯이 마주하는 작품의 크기나 규모에 따른 임팩트는 굉장히 큰 영향을 끼친다.

4.2.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

미술 감상이란? - 음악미술 개념사전

현대미술은 다 고상한 척한다는 오해가 있다. 당연히 이런 해석은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문제점 또한 존재한다. 하지만 이런 썰도 나름대로 가치가 있다. 이렇게 작품을 보면서 해석하는 동안 '관람자는 자기 나름대로 생각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냥 그게 좋아서 하는 것이다.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예술가는 자기 아이디어를 작품으로 만들고, 관람자는 그 작품을 보면서 예술가의 아이디어를 짐작한다. 이 과정에서 예술가는 자기 작품을 타인에게 선보일 때 뿌듯함을 느끼고, 자기 작품을 높게 평가해주는 사람들을 만날 때 보람을 느끼는 것이다. 관람자는 작품을 보면서 '저건 대체 뭔 생각으로 만들었을까' 생각하게 되고, 이를 통해 색다른 경험을 하게 된다.

이우환 작가의 '점' 에 대해 설명해보겠습니다!
이우환 부연설명 + 댓글 답변 + 작품을 보는 방식!

두 글은 모더니즘에 기반한 어느 작품을 소개하는데, 이런 노력없이 단순히 '저거 너무 없어보여', '나도 하겠네' 같은 이유로 까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현대미술이 추구하는 가치 중에는 소박함이나 소소함이 많다. 현대미술가 중에는 과거 미술의 선정적, 선전적, 선동적인 성격을 거부하고 일상에서 우리가 놓친 즐거움을 되살리고자 하는 의도가 많기 때문이다. 음식도 마찬가지로 지나치게 자극적인 맛에 길들여지면 이전에는 자연스럽게 먹었던 맛도 맛없는 것처럼 느낄 수 있다. 미술도 마찬가지다. 지나치게 자극적이고 멋들어진 이미지에 길들여지면, 흥미로운 작품도 볼품없는 것처럼 여기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환경 속에서 현대미술은 권력을 쥔 머조리티가 아니라 힘없는 마이너리티다. '권력이 있는 소수 상류 계층의 전유물'이라고 현대미술을 오해하는 건 그 상류계층이 다른 분야에도 '투기'를 벌인다는 사실을 완전히 간과한 것이다.

현대미술을 난해한 것으로 일단락시키는 이들도 있는데, 현대미술 중에도 난해하지 않고 대중친화적인 접근법을 추구하는 사조가 있다. 팝아트, 민중미술, 미디어 아트 등의 예가 그렇다. 팝아트는 당대 광고나 주요 이슈들을 차용해 예술 작품으로 만든다. 민중미술은 당대 주요 역사적, 사회적 사건을 예술 작품으로 만든다. 미디어 아트는 테크놀로지를 활용해 예술 작품으로 만든다. '대체로' 이런 사조는 어렵지 않고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이런 사조는 상대적으로 서브컬쳐를 폭넓게 수용하는 모습을 보인다. 앤디 워홀은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엘범 자켓을 디자인하기도 했다. # 호불호는 심하게 갈리지만, 무라카미 다카시는 아예 일본 '오타쿠 문화'를 주소재로 차용하여 새로운 예술로 승화시켰다. 행위예술가 로리 앤더슨이 발표한 '오 수퍼맨 O Superman'은 1982년 영국의 워너 브라더스 사에서 출시되어 영국 팝 차트 2위에 오르기도 했다. #

현대미술을 다 막장으로 치부하는 사람도 있다. 상식적으로 세계에 현대예술가만 수만 명이고 그들이 만들어내는 작품이 수십만 점은 넘을텐데 그런 작품이 다 막장일 리가 없다. 러버덕 프로젝트처럼 일반 대중들에게 친숙한 형태의 현대예술도 분명히 존재한다. 그리고 괴상해 보이는 작품이라 해도 맥락을 훑어보면 대부분 뭔가 표현 하고자 하는 의미가 있다. 그 맥락을 보면 나름대로 합리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내용도 없지 않다.

기예르모 베르가스의 작품도 논쟁이 되었는데, 갤러리 한켠에 개를 매어놓고 굶겨 죽는 과정을 보여주었다. # 찬반을 떠나 작품이 보여준 의도는 사람들의 위선을 들춰보이는 것에 가깝다.

다른 예로 예술가의 똥은 부자들을 중심으로 미술시장이 과열되는 현실을 비판하고, 이러한 현실에 반대하던 예술가 기존 예술을 조롱하는 뜻 혹은 갤러리에 소장할 수 없는 작품(물질적인 작품은 없고 그 개념만 있는 등)을 목표로 만든 것이다. 이런 사례는 '미치광이를 가장한 정상인'일 가능성이 높다.

애브젝트(abject) 아트 등은 일부러 더러운 오물을 가지고 작업했다. 이런 작업는 결국 그 내용을 보면 '차별하지 말자', '편견을 가지고 남을 대하지 말자'는 이야기가 담겨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역으로 이렇게 다양한 것들로 배울 건 배웠기 때문에 현대미술이 식상해지지 않고 다양성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기도 하다. 고갱이나 피카소가 추구하기도 했던 원시주의 역시 이런 맥락이다. 당시로는 원시인, 야만인으로 취급받던 지역의 공예나 토산품을 예술로 인정하고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다만 현대미술이 다 막장은 아니라는 말이 현대미술가는 전부 옳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좀 더 나은 사진을 찍기 위해 몇백 년 된 소나무를 무단으로 벌목하거나, 예술을 빙자해 타인을 성추행하는 짓까지 옹호해서는 안 된다. 다만 어느 정도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가치를 담은 예술까지 그저 불쾌하다는 이유로 거부하는 것도 옳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게 막나가는 작업은 같은 현대미술계에서도 배척된다.

4.3. 상업주의 관련

상업적인 작품도 많아졌기 때문에 돈을 추구하는 상업적인 작품은 예술이 아니며, 비상업적으로 예술가의 의도를 표현한 작품만이 예술이라는 인식이 대중에 자리잡게 되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예술은 돈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잘 알려진 과거의 유명한 미술가/음악가/건축가 중 돈을 목적으로 삼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었다.[25]그렇기에 현대에는 그런 상업예술가와 순수예술가의 구분이 확연히 나뉘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는 서로 남의 떡을 탐내는 관계가 되었다. 순수예술은 상업예술의 돈과 흥보능력을 탐내고, 상업예술은 순수예술의 '특이하고 자유로운 시도'와 '예술에서 우위에 있다는 지위'를 탐낸다.

예술에 표면적으로 매겨지는 가치를, 예술가의 의도를 비롯한 예술의 본질적 가치와 연관짓는 것은 오류로, 판단의 기준이 될 수 없다. 미학적 기준으로 수익성은 대부분 미적 기준으로 삼지 않는데다 개념상으로도 질적 가치의 대표개념인 예술과 양적 가치의 대표개념인 돈을 같은 기준으로 판단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상업성은 예술성과 평행적이다. 회화나 연극이 돈을 벌어들인다고 그것이 예술이 아닌 것은 아니다. 상업적으로 성공을 거둔 것이 예술적으로 인정받기도 하고, 그 반대도 있다. 게다가 일부 예술가는 상업예술을 하다 전업작가가 되기도 한다. 르네 마그리트 앤디 워홀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상업성 부분과 마찬가지로, 대중성 역시 예술성과는 관련이 없는 척도이다. 예술적으로는 허접해 보이는 영화가 박스오피스에서는 성공하는 일은 얼마든지 있다. 결국 대중의 환호를 받는다든가 잘 팔린다 하는 문제는 예술성에 따라 결정나는 문제가 아니라는 뜻이다.

마치 '게임성'이란 말에 사운드, 그래픽, 모션, 동선 설계, 시나리오 설계 등의 잣대가 다 들어가듯 말이다. 어떤 예술은 순수하게 조형미를 탐구해서 예술일 수 있고, 어떤 예술은 새로운 개념을 탐구해서 예술일 수 있고, 어떤 예술은 불의로운 것에 저항해서 예술일 수 있다.

다만 지나친 상업주의가 예술의 다양성을 저해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은 분명하다. 잘 팔리는 작품을 만들려다 보면 예술가가 자기 기량을 펼치기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물론 이는 사실 현대에 와서 부각된 점이 아니라 인류역사 내내 그랬던, 새롭다고 하기도 힘든 이야기다. 후원자와 의견이 맞지 않아서 작업을 망친다는 이야기는 너무나 오래되었고, 현재에도 이어지는 사례다.

사실 대부분의 고전 예술가들 조차 왕족이나 귀족 같은 후원자의 지원을 받으면서 예술활동을 이어갔다. 예술이라는 행위가 전반적으로 돈벌이기 쉽지않은 빈곤한 일이다보니 생계를 보장해줄 후원자가 필요할 수 밖에 없었다. 사실상 자본가의 도움을 받지 않고 성취된 예술은 거의 없었다. # 기껏해야 민속품이나 민중미술 정도.

결국 중요한 건 '비싼 예술 작품'이 문제가 아니라, '예술을 비싸게 뻥튀기 하는 작전세력'이 문제인 것이다. 주식처럼 특정 작가의 작품 가치를 부풀리고 유지하려는 사람이 있고, 일부 작가가 이에 영합하고 있어서 문제인 것이지, 예술 그 자체가 문제인 것은 아니다.


[1] 사실 핸드폰으로 나무위키질 하면서 전기, 반도체나 프로그래밍을 이해할 필요가 없는 것 처럼, 현대 문물 디자인에 현대미술이 사용되었다고 현대미술을 꼭 이해하라는 법은 없다. [2] 아트 스타 코리아 프로그램에도 이와 관련된 내용이 올라오기도 했다. [3] 다만 이는 '현대미술'의 특성이라고 하기는 곤란하다. 현대인들이 좋아하는 고전미술을 그린 수백년 전의 옛날의 미술가도 왕족이나 귀족, 부자의 물직적 후원을 받았다. 그리고 당연히 그들의 취향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다. 위대한 예술이라며 감동하는 사실적인 묘사의 고전미술도 그 당시 '소수의 취향'에 맞춘 예술인 것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소수의 고위층, 자산가의 취향에 맞추려는 노력은 그리 달라진 것이 없다고 볼 수 있다. [4] 조금 다른 맥락이지만, 진품가품의 감정도 이런 문제가 제기되곤 한다. 한 작품을 두고 한쪽에서는 가품, 한쪽에서는 진품이라 하는 일이 허다하기 때문. 난도가 높고, 사실 타임머신이라도 나오지 않는 이상 명확하게 가부를 결정지을 수 없어 감정실패는 유명한 교수들조차 서넛씩은 안고 있다. [5] 그런데 프랜시스 베이컨을 모작한 것처럼 보인다. [6] 루브르 박물관에 110만 유로(약 15억 원), 베르사유 궁전에 (정원 복원 프로젝트 비용을 겸해서) 140만 유로(약 19억 7천만 원)을 후원금으로 지급했다. [7] 루브르 박물관 본관이 아니고 분관에 전시되었지만, 루브르 박물관이 연루된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전시한 공간이 본관인지 분관인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8] 이 때 전시와 관련된 장소 대관과 전시물 설치비용 등 모든 비용을 지출했다고. [9] 대표적으로 서래마을 영아 살해 사건이 있었다. [10] 쉽게 설명하자면 미술관에서 일하면 큐레이터, 일반 상업 갤러리 화랑에서 일하면 갤러리스트다. 물론 갤러리스트들 중에도 큐레이터 자격증을 가진 사람이 많지만, 업무 특성상 전시를 기획하는 것보다 작품을 파는 게 우선시되기 때문에 성격이 상당히 다르다. [11] 유명 컬렉터들 [12] 뉴욕현대미술관, 테이트모던, 솔로몬 R. 구겐하임 미술관 등. [13] 해외의 아트 오브 아메리카, 국내의 월간미술, 아트인컬처 등의 잡지 [14] 소더비, 크리스티 등 [15] 미술가: "난 미술을 한다. 미술에 대한 나의 열정을 무시하지 말라고!" 평론가: "근데 식상하네요. 좀 새로운 걸 시도해보시죠?" 갤러리스트: "작가님, 작품이 안 팔렸어요. 평론가님, 전시 서문 좀 싸게 써주시죠?" 큐레이터: "작가님, 전시 명단에서 뺄까요?" 관객: "아, 이거 작가도 평론도 전시도 다 왜 이래." 경매 회사: "이 작품은 유찰되었습니다." 미술 잡지: "이 작가 별로인데 기사에서 빼죠?" 미술관: "컬렉션에 이 작가의 작품을 넣어야 하나?" 갑부: "전시에 작품을 대여해달라고?" [16] 참고로 이 글에 언급된 잡지 '아XXX처'와 '퍼XXX트'는 각각 ' 아트인컬처'와 '퍼블릭아트'를 말한다. [17] 다만 이 기사에서 비엔날레'만' 가지고 한국 미술행사가 과잉이라고 주장하는 건 오류다. 전세계 비엔날레는 200여 개 뿐일지 몰라도, 미술제나 기타 다른 미술 행사를 감안하면 수천여 개는 넘을 것이기 때문. 한국 미술행사는 솔직히 해외와 비교하고, 국내에서 배출되는 미술전공자 수와 비교하면 상당히 적은 편이다. 더 문제인 건 여기서 미술 행사의 수를 늘려도 대중이 이를 수용할 여력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18] 광주비엔날레는 아시아 지역에서 최초로 열린 비엔날레였다. 휘트니 비엔날레에 참여했던 백남준이 선구안을 가지고 광주비엔날레를 추진하도록 종용했다. [19] 국내 미술판에서는 국내파만 따지면 서울대, 홍익대, 국민대[26], 한예종 정도가 지배적이다. 한국 미술계에서 위 대학들 출신 작가들의 영향력은 굉장히 강하다. 물론 지방대학 출신이나 해외파 출신이면서 성공한 작가를 찾아보기는 어렵지 않지만, 미술계 카르텔의 영향력은 못 미치는 것이 사실이다. [20] 미술계만이 아니라 음악, 체육 등 한국 예체능계는 학지혈을 중시하는 경향이 매우 짙으며 실제로 출세에도 강력하게 작용한다. [21] 적어도 프로페셔널의 영역에서는 그렇다. 오늘날 그냥 평범한 작품을 가지고 예술이라 한다면 '그게 뭐?' 같은 소리를 듣기 딱 좋다. 스포츠 등 다른 분야의 프로들과는 달리 예술분야의 프로는 '남들이 안 했던 것'을 해야 하기 때문에 어려운 것이다. [22] 사실 이런 경향은 세대불문 충분히 나타날 수 있다. 근거도 없이 자기 취향만 옳고 남의 취향은 그르다고 주장하며 취향을 무시하는 사람은 어느 곳에나 있기 마련이다. [23] 독일연방공화국( 서독) vs 독일민주공화국( 동독) [24] 의미는 명확히 고정되어있지 않고 모호하지만 대신 관객이 해석하는 데 자유도는 높다. [25] 절대다수의 화가와 음악가는 돈을 받고 작품을 만들어 주거나 작품을 팔아서 돈을 벌었다. 돈없이 먹고 살 수는 없으므로 당연한 노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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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디자인 계열이 좀 더 강세로 평가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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