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17 20:34:42

헨더슨 소령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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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더슨 소령 사건
Major Henderson Incident
파일:major henderson.jpg
북한군의 집단 폭행을 당해 의식을 잃고 바닥에 쓰러진 헨더슨 소령
<colbgcolor=#000><colcolor=#fff> 일시 1975년 6월 30일
장소 경기도 파주군 진서면 선적리
공동경비구역
원인 헨더슨 소령에 대한 북한 기자 배성동의 도발
부상 1명 (유엔군 소속 W,D.헨더슨 소령)[1]
영향 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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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상세3.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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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파일:nwse-kr-13778_18223_3621.jpg
북한군이 쓰러진 소령을 구타하는 장면
벤치의 등받이에 앉아 있는 남성이 문제의 배성동 북한 기자다.
1975년 6월 30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서 유엔군사령부 소속 미 육군 소령 W.D.헨더슨이 북한 측 군인들에게 심하게 구타당한 사건.[2]

당시 수십 명의 대한민국 군인과 유엔군들이 겨우겨우 북한군들을 말리는 데 수십 명의 북한군들이 더 달려오고, 이에 대한민국 측 장병들도 수십 명이 몰려와 굉장히 험악한 분위기 속에 집단 난투극이 벌어질 뻔했다고 한다. 참고로 위 사진은 80년대 전두환 정부에서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 사진과 함께 국민학교 교실마다 붙여놓고 반공 교육에 쓰이기도 했다.

2. 상세

때는 북한의 대남도발이 끊이지 않았던 유신 시절. 당연히 남북한 최정예 군인들과 미군이 코앞에서 서로 정렬해 있는 판문점 JSA에는 긴장이 감돌았다. 이날은 유엔군사령부 군사정전위원회의 제364차 본회의가 진행 중이었다.

JSA에 유엔군 소속으로 근무하던 헨더슨 소령은 본회의 회담장 인근의 벤치에 앉아 정모를 벗은 채 휴식을 취하던 중이었다. 그러던 중에 북한의 기자 배성동이 다가와 헨더슨 소령에게 "자리를 비키라", "이 놈 나보다 키가 작다", " 간나새끼 빨리 니네 나라로 돌아가라우"라는 불손한 말을 내뱉는다. 그리고선 의자 등받이 위로 올라타 헨더슨 소령의 머리를 만지거나 때리는 등의 약을 올렸다. 헨더슨 소령은 "불손한 태도를 삼가라"라고 주의를 주거나, 머리를 만지려는 그의 손을 쳐내는 등 별다른 저항 의사를 보이지 않았다.

이후 배성동이 헨더슨 소령에게 침을 뱉었고, 그가 발끈해서 일어서자 이내 그의 배에 주먹을 두 차례 날린다. 이에 헨더슨 소령도 반격하며 싸움이 벌어졌고, 근무교대를 위해 근처에 모여 있던 북한군 여러 명이 이를 보고선 헨더슨 소령에게 달려들어 바닥에 밀쳐 넘어뜨린 뒤, 쓰러진 그를 발로 짓밟고 걷어차는 등 심한 구타를 가했다. 집단구타의 주도자는 북한군 박철 중위로 1년 뒤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의 주도자이다.
파일:T2.jpg
인민군과 헌병 간의 실랑이가 벌어지는 장면

현장 인근에는 30여명의 유엔군 병사들도 있었는데, 이들은 헨더슨 소령을 구타하는 북한군 무리를 말리려다 싸움에 휘말리게 된다. 이후 국군 병사와 유엔군, 헌병들이 뒤섞여 한바탕 소동이 일어났고 진행 중이던 군사정전위원회 본회의도 약 5분간 일시중단 되었다. 헨더슨 소령은 후두부 두개골 경추가 골절되고 중태에 빠지는 등, 치명상을 입게 된다. 난투극은 남북 양측 소속의 경비장교들의 개입으로 곧 중단되었다.
파일:T1.jpg
국군병원으로 긴급 호송되고 있는 헨더슨 소령

이후 헨더슨 소령은 헬기 국군병원까지 후송되어 수술을 받았으며, 이후 고국인 미국으로 송환되어 메릴랜드 주에 위치한 월터 리드 국제 군사 의료 센터(Walter Reed National Military Medical Center)에서 회복을 거친 뒤 기적적으로 살아남아 명예 전역하게 된다. 이때 그는 잠깐동안 언어 구사 능력을 상실하는 후유증도 얻게 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사건이 일어날 수 있던 것이, 당시에는 공동경비구역 JSA 내에서 상호간의 자유로운 왕래가 가능했다. 그래서 당시에는 남한군과 북한군이 대화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남북 화해무드가 무르익었을 때[3]는 서로 형 동생하며 통일되면 서로의 집에 놀러가자고 주소를 교환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그래서 당시에도 미군 소령이 두들겨 맞을 때 남한 병사들이 "형, 왜 이래."라고 하면서 뜯어 말렸다고. 이러한 자유왕래는 판문점 도끼만행사건 이후 완전히 구역이 나눠지면서 불가능하게 된다. 이 당시 북한군과 대화한 남한 병사들의 증언이 반공교육 자료로 활용되기도 했다. # 이 자료에는 휴전선에서 대화한 것과 JSA에서 대화한 내용이 섞여있다.

북한 측은 사후 회의에서도 "핸더슨 놈은 살아서 자기네 소굴을 밟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다행으로 알아야 한다."라고 뻗대며 난동을 부렸고 유엔군 측이 제시한 경비병력의 감축과 비무장, 군사분계선을 따른 분할 요구도 씹어버렸다.

3. 영향

이 사건으로 인해 안 그래도 엉망인 북미관계는 더 악화되어, 결국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이 일어나는 데도 영향을 끼친다. 양국 군인들끼리 벌어진 구타사건일 뿐이지만 중소 분쟁같은 대형 사건도 비슷한 사건을 통해 일어난 사건인 만큼 역사적으로 꽤나 비중 있는 사건이다.


[1] 미 육군 소령 [2] 해당 사건은 영문 위키피디아에도 기록될 정도로 외국에선 꽤나 비중있게 조명되었던 사건이나, 한국에서는 인지도가 많이 없는 편이다. [3] 7.4 남북 공동 성명 당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