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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국 제후
해예곤 | 解禮昆 |
|
<colbgcolor=#4eae47><colcolor=#fbe673> 작위 | 불중후(弗中侯) |
직위 | 무위장군(武威將軍) |
주군 | 동성왕(東城王) |
가문 | 대성팔족 중 해씨(解氏) |
성씨 | 해(解) |
이름 | 예곤(禮昆) |
생몰연도 | 미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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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백제 왕조의 제후. 백제 불중(弗中) 지역을 분봉 받았다. 제24대 동성왕 시대의 후작이다. 백제의 대귀족 가문인 대성팔족 해(解)씨 출신. 해씨는 한성백제 시기부터 대귀족이었으며 웅진성으로 천도한 이후에도 여전히 위세를 떨쳤다.2. 생애
2.1. 남제서 기록
해예곤은 삼국사기나 삼국유사 등 한국의 사서에 나오지 않는다. 대신 중국 사서 《남제서》에 등장한다.해예곤은 해씨 귀족이고 분명히 백제의 뛰어난 장수였을 것이다. 또한 불중의 후작이었던 만큼 정치적으로도 큰 영향을 줬겠지만 아쉽게도 매우 단편적 기록 밖에 없다.
2.2. 북위를 무찌르다
서기 490년 북위가 백제를 침공하자[1] 해예곤은 동성왕의 명을 받아 사법명, 찬수류, 목간나와 함께 북위군을 대파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겼는지는 알 수 없다.2.3. 제후에 봉해지다
백제의 동성왕은 천자(天子)처럼 종실 및 공신에게 작위를 하사해 분봉(分封)을 실시했다. 하지만 남제 등 중국 왕조들에겐 제후국을 자처했음으로 그들에게 백제가 내린 작위를 인정해달라는 제스처를 취했다.즉 '내가 내린건 임시로 한거니까 님이 허락 해주셈!' 같이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으로 작위를 봉했다. 그리하여 해예곤은 '무위장군 불중후(武威將軍 弗中侯)'의 관작을 제수받았다.
2.3.1. 관작의 의미
무위(武威)은 '무력이 위엄을 떨치다'란 의미. 불중은 구 마한 지역의 땅 이름으로 현 전라남도 보성군 일대로 추정된다. 무위장군은 중국의 잡호장군 중 하나이다.사씨 귀족 사법명, 구 마한 지역 토착 귀족으로 보이는 찬수류에 비해 관작이 낮은데, 이는 한성지역에 기반을 둔 해씨가 웅진-사비 지역 토착세력인 사씨 등에 밀린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웅진시기 해구의 전횡을 생각하면 한성출신 귀족들이 웅진-사비 토착세력에게 완전히 밀려났다고 보기도 어렵다. 해씨 세력이 이전만 못해진건 사실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