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09 17:40:54

부여고(아착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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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국 제후왕
부여고 | 扶餘古
<colbgcolor=#4eae47><colcolor=#fbe673> 출생
(음력)
미상
백제
사망
(음력)
미상 (향년 불명)
백제
작위 팔중후(八中侯) ➝ 아착왕(阿錯王)
직위 건위장군(建威將軍)
➝ 영삭장군(寧朔將軍)
성씨 부여(扶餘)
고(古)

1. 개요2. 생애3.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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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웅진 천도 이후 영산강 유역의 세력을 흡수하는 데 공을 세운 백제 왕족 장군.

2. 생애

동성왕 시기 건위장군 팔중후(建威將軍八中侯)에 봉해진 뒤 지금의 전라남도 나주 지역 담로장으로 재임하였다. 재임 중 왕권 강화에 기여한 공을 인정받아 490년 동성왕의 요청에 의하여 남제로부터 영삭장군 아착왕(寧朔將軍阿錯王)에 책봉되었다.

그의 승진과 책봉의 명분을 “약관(20살)에 왕을 잘 보좌하여 충효가 일찍부터 뛰어났다.” 에 두고 있지만, 실제로는 웅진 천도 후 왕권 의 동요를 틈타 이탈한 영산강 유역의 세력을 흡수하는 데 발휘한 역량을 인정받은 것이다.

3. 여담

  • 부여고의 기록은 국내 기록에는 없고 중국 남조 측 기록인 《 남제서》에서 등장한다.
  • 부여고가 팔중후에서 승진•전봉(轉封)된[1] 아착왕(阿錯王)의 ‘아착(阿錯)’은 지금의 목포군도로 비정된다.[2]
  • 동성왕 시기 인물 중 이름에 고(古)를 포함하는 인물로 고이해 막고해가 확인되는데 둘 중 한 명과 동일인물인지는 불명.

[1] 제후의 영지를 딴 곳으로 옮기다. [2] 백제 멸망 후 웅진도독부 휘하의 노산주(魯山州)의 6현 중 하나가 아착(阿錯)이라 이와 연관있는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