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陜川 海印寺 願堂庵 木造阿彌陀佛坐像. 조선 성종 21년인 1490년에 선왕인 세조의 부인인 정희왕후의 유지에 따라 인수대비와 승려 학조가 왕실발원으로 조성한 아미타불상. 현재 합천 해인사 원당암에 소장되어 있다.본 아미타불좌상 외에도 관음보살상과 지장보살상까지 있어서, 삼존상을 형성한다. 이 세 불상과 불상 안에서 발견된 복장유물은 2020년 '합천 해인사 원당암 목조아미타여래삼존상 및 복장유물'이라는 명칭으로 보물 제2072호로 지정됐다. 또한 복장유물들 중에서도 불경인 '대방광불화엄경 진본', '대방광불화엄경 정원본', '제다라니'는 보물 제2073호~제2075호로 지정됐다.
2. 내용
1483년에 세조의 비 정희왕후가 사망하면서 후세에게 자신이 죽은 후에도 돌아가신 선왕이자 자신의 남편인 세조의 명복을 빌어주기를 간절히 부탁하는 유지에 따라 1490년에 왕실의 발원으로 완성한 불상이다. 세조와 정희왕후의 맏며느리인 인수대비가 주도하고 세조와 함께 간경도감에서 불경간행사업, 한글번역사업을 지휘했던 승려 학조가 합천 해인사에서 작업하였다.동일한 시기(1490)에 동일한 인물들(정희왕후, 인수대비)에 의해 만들어진 합천 해인사 비로자나불 및 복장전적과 함께 세조-성종 시기 한국의 불상 조성 문화에 대해 연구해 볼 수 있으며, 특히 세조 시기에 왕실 가문에 유행했던 숭불 의식에 대해 알아볼 수 있는 자료이다.
3. 고려시대 불경 발견
성불수구대다라니경(1375)
고려대장경 인출 대방광불화엄경 진본 28권 28책
2017년 10월에 해인사 원당암 목조아미타불좌성에서 고려시대 유물들이 무더기로 발견되었다. 네이버 뉴스 : 조선 전기 '원당암 목조아미타불' 복장유물 첫 공개, 해인사 성보박물관, 21일부터 전시 ... "왕실발원에 불사가 이루어져", 서울경제 : 합천 해인사 목조아미타불좌상에서 국내 유일 '성불수구대다라니'경 발견, 고려 우왕시기에 인출된 수진본(소매에 넣을 수 있는 작은 책) 고려대장경에서 인출한 '대방광불화엄경' 및 접철본 사경도 확인 '성불수구대다라니'는 세계적으로도 발견되지 않았던 경전 크고 특이한 변상도는 불교회화사에서 매우 중요한 자료적 가치를 지녀
고려 후기에 찍은 책 29책과 복장 후령통 등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 중 성불수구대다라니경은 현재까지 발견된 적이 없는 세계 유일본으로 이후 국내외에서 만들어지는 여러 진언을 묶은 제진언집들의 원형이라 할 수 있다. 학계에서는 일반적으로 이 불상이 처음 만들어진 1488~1490년 사이에 정희왕후의 유언에 따라 이 유물들이 복장된 것으로 여겨지고 있지만 이번에 1694년, 해인사 승려 숭열, 종안 등이 상을 중수했다는 중수발원문이 함께 발견되었기 때문에 훗날 1694년에 불상을 재개봉하면서 이때 복장했을 가능성도 아주 조금이나마 있을지도 모른다고 여기고 있다.
특히 경전을 소재로 한 그림인 변상도가 독특하고 간행 관련 기록이 분명해 불교회화사 및 불교사상사, 서지학 연구에 중요한 가치를 지닌 것으로 평가된다. 이와 같은 가치를 인정 받아, 2020년 8월 27일 '대방광불화엄경 진본'은 보물 제2073호로, '대방광불화엄경 정원본'은 보물 제2074호로, 성불수구대다라니경은 '제다라니'라는 명칭으로 보물 제2075호로 지정됐다.
4. 외부 링크
- 두산백과: 합천 해인사 원당암 목조아미타여래삼존상 및 복장유물
- 경향신문 : ‘국보급’ 삼국시대 불상·고려 불경 잇단 발견
- 연합뉴스 : 15세기 해인사 목조불상서 국보급 고려 불경 29책 발견(종합)
- 뉴스1 : 해인사 목조불상 배 속에서 14세기 고려불경 무더기 발견, 조계종 "'성불수구대다라니' 전존본 없는 유일본"
- 오마이뉴스 : 조선 전기 '원당암 목조아미타불' 복장유물 첫 공개
- BBS : 해인사 원당암 아미타불 복장유물 최초 공개
- 서울경제 : 합천 해인사 목조아미타불좌상에서 국내 유일 '성불수구대다라니'경 발견
5. 보물 제2072호
‘합천 해인사 원당암 목조아미타여래삼존상(陜川 海印寺 願堂庵 木造阿彌陀如來三尊像)’은 해인사 경내 부속 암자인 원당암(願堂庵)의 보광전(普光殿)에 봉안된 삼존불상으로, 이곳에서 발견된 8건 23점의 복장유물 역시 지정대상에 포함된다.
‘원당암 목조아미타여래삼존상’은 설법인(說法印)의 수인(手印)을 한 아미타여래상과 화불(化佛)을 새긴 보관(寶冠)을 쓴 관음보살, 민머리의 지장보살로 구성된 불상으로, 아미타삼존 도상을 정확하게 구현한 작품이다. 이러한 삼존상 형식은 고려 후기에 새롭게 등장한 도상(圖像)으로 조선 후기까지 지속되었다. 다만, 고려 또는 조선시대 작품으로 삼존상을 주불전에 봉안한 사례는 ‘강진 무위사 극락전 아미타여래삼존좌상’과 ‘금산 신안사 소조아미타여래삼존상’ 등 남아있는 사례가 극히 드물어 희소성이 크다.
조성 시기에 대해서는 불상의 형식과 복장발원문, 1490년 전후 왕실의 지원에 따른 해인사 중창(重創), 이후 1495년 원당암 중창이 이루어진 일련의 과정을 감안할 때, 조선 15세기 후반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아울러 복장유물을 통해 해인사 법보전과 대적광전 목조비로자나불좌상 조성을 후원한 왕실인물들이 관여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 확인된다.
불ㆍ보살상의 얼굴은 통통한 둥근 형상에 조밀하고 섬세한 이목구비, 위엄있고 온화한 표정 등 수법이 서로 비슷해 동일한 작가의 솜씨로 보인다. 특히 삼존상에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앙련(仰蓮)과 복련(覆蓮)이 맞붙은 연화대좌는 명나라 티베트 불교의 영향을 받은 것이어서 당시 중국불교와 교류를 엿 볼 수 있는 요소이다. 나풀거리듯 드리운 목깃 주름과 신체의 유기적인 흐름을 따라 사실적으로 조각된 천의(天衣), 과장되지 않은 양감과 부피감 등 뛰어난 조형미는 ‘영주 흑석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1458년), ‘평창 상원사 목조문수동자좌상’(1466년) 등 15세기 중·후반 왕실발원 불상들과 양식적 연관성을 보여준다.
‘합천 해인사 원당암 목조아미타여래삼존상’은 고려 후기부터 본격화된 아미타여래와 관음, 지장보살로 구성된 아미타삼존 도상을 보여주며, 조선 초 15세기 불상의 양식적 특징을 뚜렷하게 반영하고 있어 당시 불교조각사 연구에 귀중한 사례가 되는 작품이다. 또한 제작 당시부터 오늘날까지 원래의 봉안 장소를 벗어나지 않고 제작 당시 모습 그대로 신앙의 대상으로 보존되고 있다는 점, 복장유물을 통해 제작배경과 참여자 등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삼존상과 복장유물을 함께 보물로 지정해 보호할 가치가 충분하다.
‘원당암 목조아미타여래삼존상’은 설법인(說法印)의 수인(手印)을 한 아미타여래상과 화불(化佛)을 새긴 보관(寶冠)을 쓴 관음보살, 민머리의 지장보살로 구성된 불상으로, 아미타삼존 도상을 정확하게 구현한 작품이다. 이러한 삼존상 형식은 고려 후기에 새롭게 등장한 도상(圖像)으로 조선 후기까지 지속되었다. 다만, 고려 또는 조선시대 작품으로 삼존상을 주불전에 봉안한 사례는 ‘강진 무위사 극락전 아미타여래삼존좌상’과 ‘금산 신안사 소조아미타여래삼존상’ 등 남아있는 사례가 극히 드물어 희소성이 크다.
조성 시기에 대해서는 불상의 형식과 복장발원문, 1490년 전후 왕실의 지원에 따른 해인사 중창(重創), 이후 1495년 원당암 중창이 이루어진 일련의 과정을 감안할 때, 조선 15세기 후반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아울러 복장유물을 통해 해인사 법보전과 대적광전 목조비로자나불좌상 조성을 후원한 왕실인물들이 관여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 확인된다.
불ㆍ보살상의 얼굴은 통통한 둥근 형상에 조밀하고 섬세한 이목구비, 위엄있고 온화한 표정 등 수법이 서로 비슷해 동일한 작가의 솜씨로 보인다. 특히 삼존상에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앙련(仰蓮)과 복련(覆蓮)이 맞붙은 연화대좌는 명나라 티베트 불교의 영향을 받은 것이어서 당시 중국불교와 교류를 엿 볼 수 있는 요소이다. 나풀거리듯 드리운 목깃 주름과 신체의 유기적인 흐름을 따라 사실적으로 조각된 천의(天衣), 과장되지 않은 양감과 부피감 등 뛰어난 조형미는 ‘영주 흑석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1458년), ‘평창 상원사 목조문수동자좌상’(1466년) 등 15세기 중·후반 왕실발원 불상들과 양식적 연관성을 보여준다.
‘합천 해인사 원당암 목조아미타여래삼존상’은 고려 후기부터 본격화된 아미타여래와 관음, 지장보살로 구성된 아미타삼존 도상을 보여주며, 조선 초 15세기 불상의 양식적 특징을 뚜렷하게 반영하고 있어 당시 불교조각사 연구에 귀중한 사례가 되는 작품이다. 또한 제작 당시부터 오늘날까지 원래의 봉안 장소를 벗어나지 않고 제작 당시 모습 그대로 신앙의 대상으로 보존되고 있다는 점, 복장유물을 통해 제작배경과 참여자 등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삼존상과 복장유물을 함께 보물로 지정해 보호할 가치가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