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19 04:49:41

한장석

대한민국의 배구인
파일:attachment/hanjangseok.jpg
<colbgcolor=#eeeeee,#191919> 한장석
韓壯錫
출생 1962년 7월 1일 ([age(1962-07-01)]세)
인천광역시 강화군
국적
[[대한민국|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대한민국
]][[틀:국기|
파일: 특별행정구기.svg
행정구
]][[틀:국기|
파일: 기.svg
속령
]]
신체 188cm
직업 배구 선수 ( 아포짓 스파이커 / 은퇴)
배구 감독
학력 인하대학교사범대학부속중학교 (졸업)
인하대학교사범대학부속고등학교 (졸업)
인하대학교 (학사)
실업 입단 1986년 대한항공 배구단
소속 <colbgcolor=#eeeeee,#191919> 선수 대한항공 배구단 (1986~1994)
감독 대한항공 배구단 (1996~2001)
코치 대한항공 배구단 (1994~1995 / 플레잉 코치)
대한항공 배구단 (1995~1996)

1. 개요2. 선수 경력3. 지도자 경력4. 여담5.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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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前 배구 선수 출신 감독.

인천 대한항공 점보스의 프로화 이전이었던 대한항공 배구단을 이끈 스타 출신이다.

2. 선수 경력

인하대학교 재학 시절이었던 1980년대 후반 왼손잡이 세터로 맹활약했다. 당시 대한민국의 세터 중에 장신이었던 188cm의 키를 가졌고, 라이트 세터로써 왼손잡이라는 유리함을 지녔기 때문에 1988년 서울 올림픽의 유망주로 지목되었다. 라이트로 전향한 인하부고 3학년 때부터 12년간 국가대표 스타 출신 공격수로 지냈다.

3. 지도자 경력

동기들보다 이른 1994년에 플레잉 코치직을 시작했다. 1996년에는 은사인 유석철 대한항공 배구단 감독의 뒤를 이어 감독이 되었다. 이 때 나이가 34세로 당시에는 국내 실업 배구 사상 최연소 감독이었다. # 그리고 이 때 배구 국가대표팀 코치로 발탁되면서 1996 애틀랜타 올림픽 진출 티켓을 따내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2001년까지 대한항공의 감독직을 맡고 물러났다. 하지만 물러난 과정이 그다지 개운치 못했다. 2001년 당시 슈퍼리그(세미프로리그)에서 프로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이경수 드래프트 파동이 일어나 이에 불만을 드러낸 대한항공이 팀 해체도 불사하며 강경대응으로 일관하던 도중, 팀원들을 모아 놓고 회식하면서 선수들에게 의견을 묻다가 박석윤의 의견에 발끈해 컵을 집어던져서 선수의 귀가 찢어지는 사고가 나면서 이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 이 사건으로 최천식이 감독 대행을 잠시 맡았다. 한장석은 이후 20년이 넘게 현장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4. 여담

  • 슬하에 아들이 있는데, 한장석 본인보다 키가 작아서 조건에 미달해 배구가 아닌 다른 종목을 시켰다. 그 작은 키가 185cm인지라 투수로서는 준수한 체격. 그리고 이 아들의 정체가 바로 현재 한화 이글스 투수 한승혁. 한승혁이 입단 당시 KIA의 감독은 한장석의 인하대 선배인 조범현이었다. 한승혁의 강속구는 아버지의 스파이크 스윙을 물려받았다 하는 드립이 나오곤 한다. 그래서 한장석은 KIA 타이거즈의 팬들에 힘입어 다시금 주목을 받게 되었다. 참고로 여담이지만 아들 사랑이 대단하다. 성장에 악영향을 미칠까 콜라 등 탄산음료도 못 마시게 했으며, 교육열도 대단했는데, 한승혁이 다녔던 학교 근처로 매번 이사를 다녔다고 한다.[1] 프로 입단 후 한승혁의 약해진 멘탈을 보고 따끔하게 혼내면서 다 잡게 도와줬다. 그리고 연차가 쌓여 기숙사에서 나와야 해서 광주광역시 아파트를 얻어주기도 했다.

5. 관련 문서



[1] 운동 특기생은 집과 학교 간 거리가 상당한 경우가 있으며, 그 때문에 대체적으로 합숙을 하는 경우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