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color=#fff><colbgcolor=#0047a0> 본관 | 청주 한씨[1] |
출생 | 1912년 9월 13일 |
함경남도
북청군 덕성면 서장내리[2] (現 함경남도 북청군 나하대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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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973년 6월 14일 (향년 60세) |
서울특별시 | |
묘소 |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5묘역-63호 |
상훈 | 건국훈장 애족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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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2. 생애
1912년 9월 13일 함경남도 북청군 덕성면 서장내리(現 북청군 나하대리)에서 아버지 한홍륵(韓洪玏, 1883 ~ ?)과 어머니 태원 이씨(太原 李氏)[3] 사이의 3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북청군 대성(大成)중학교에 재학 중이던 1930년 광주학생항일운동 동조 시위에 참가해 격문을 살포하면서 가두시위를 전개했다. 이후 1932년 북청군에서 한상두(韓相斗) 등 여러 동지들과 함께 덕성(德城)농민조합 지부를 조직한 뒤 하부조직의 결성에 힘쓰는 한편, 10여 종의 출판물을 발행하여 항일농민운동을 전개했다.
그러나 이후 경찰에 체포되었고, 1935년 1월 28일 함흥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 6개월,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아 곧 출옥했다. 그 뒤 고향 북청군에서 은거하다가 8.15 광복 후 월남했고, 1973년 6월 14일 서울특별시에서 별세했다.
1990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독립운동 공적을 인정받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그의 유해는 2014년 12월 20일 배우자 정범구의 유해와 함께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5묘역에 이장되었다.[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