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color=#fff><colbgcolor=#0047a0> 본관 | 청주 한씨[1] |
출생 | 1869년 |
함경도
장진도호부 하남사 고토리[2] (現 함경남도 장진군 황초노동자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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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919년 3월 14일 |
함경남도 장진군 신남면 | |
상훈 |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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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 202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2. 생애
1869년 함경도 장진도호부 하남사 고토리(現 함경남도 장진군 황초노동자구)에서 아버지 한선희(韓宣熙, 1828 ~ ?)와 어머니 청주 이씨[3] 사이의 3형제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1919년 3월 14일 한계유· 한면각· 한승풍· 한영태· 박두국(朴斗國)· 이우승(李愚昇) 등 주민 200명과 함께 장진군 신남면 고토리(現 장진군 황초노동자구)에 모여 만세를 부르고 시가 행진을 하다 일본군 헌병주재소 앞에 이르러 독립만세를 외쳤다. 이에 주재소장 시마모토 신하치(島本新八)가 해산을 명령했으나 이에 굴하지 않고 유치 중인 노석규(盧錫奎)를 석방할 것을 요구했다. 이때 일본군 헌병들은 시위대에 칼과 몽둥이를 휘두르며 마구 폭행을 가했고, 격분한 군중들도 이에 맞서 돌과 장작을 던지고 기물을 파손하는 등 큰 충돌이 벌어졌다. 헌병들은 군중들에게 무차별 사격을 가했는데, 이 과정에서 한규문은 그 자리에서 순국했다.
2020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독립운동 공적을 인정받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