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06-19 23:20:56

한국 고대국가명의 일본식 독음


1. 개요

일본의 전통적 훈독 중 한국의 고대 국가명은 여러 모로 특이하다. 그 유래를 알기 어려운 것도 있는데, 여기선 중요하면서도 굵직한 것들만 소개해 본다.

2. 고구려

보통 한자로 高句麗라 쓸 때는 'コウクリ'(코ː쿠리)라 읽으며, 高麗는 'コウライ'(코ː라이)라 읽는다. 이들은 모두 음독으로 이상한 점은 없다. 그러나, 특이한 경우로 高麗 혹은 狛(박)라 쓰고 'コマ'(코마)라 훈독하는 경우가 있는데, (예를 들어 고구려 멸망 후 유민들이 일본에 가서 세운 高麗神社를 "고마진자"라고 읽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용례는 《 일본서기》가 최초이다. 이러한 용례의 기원에 대해서는 논의가 많으나, 고구려와 원수지간이었던 백제인들이 고구려에 대한 멸시의 뜻으로 "狛"이라 쓰고 곰의 뜻인 "고마"라 읽은 데에서 유래했다고 보는 설이 있다. 그러나 비하나 멸시의 뜻으로 짐승 이름을 붙였다면, 사이타마 현 위치에 정착한 약광 등 고려 유민들이 스스로 코마신사(高麗神社, こまじんじゃ), 코마명신(高麗明神, こまみょうじん) 같은 이름을 붙였을 리 만무하다. 고구려를 지칭하는 일본어 고유명사 'コマ'(코마)가 먼저 존재하였고, 문자로 표기할 경우에 '高麗' 혹은 '狛' 등의 몇 가지 방식 중에서 선택하였을 가능성이 크다.

가끔 고구려와 유관한 일본의 고유명사에서는 "駒(구;コマ)"같은 글자로도 나타난다.

3. 백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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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는 百濟를 "ヒャクサイ"(햐쿠사이)라 음독하는 경우도 드물게 있으나, 전통적으로는 "クダラ"(쿠다라)라 훈독하고 있다. 이렇게 훈독되는 이유는 지금도 불가해하여 정설이 없는데, 일본의 학자 아유가이 후사노신이 경남 거창(居昌)의 옛 이름인 "거타야(居陀耶)"에서 유래하였을 가능성을 제기한 이래, 한반도의 지명에서 유래하였다고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クダラ"의 후보지로는 경남 거창 말고도 경북 고창(古昌: 고대의 古陀耶. 현 안동) 등이 있다. 문제는 위 두 지역이 백제와 아예 관계가 없거나 변경 지역이었던 곳이라는 것이다. 거창은 무왕시기 신라를 압박하며 거창에 진출한 적은 있으나 신라와 대치하는 접경 지대였으며, 안동의 경우 백제가 멸망할 때까지 진출한 적이 없는 곳이다.

일본의 우에다 마사아키 교수가 쿠다라의 어원이 "큰 나라"에서 온 것로 해석하기도 하였다. '백제어 어휘 연구'의 저자인 도수희에 의하면, 쿠다라는 충남 부여군에 있는 지명인 '구드래 나루터'에서 온 것으로 보고 있다. 구드래는 '근(큰)과 어라(백제 지배층이 왕을 칭하는 단어 어라하)가 변형된 것으로 보는데, 직역하면 구드래 나루터는 대왕의 나루터라는 뜻이 된다. 즉, 쿠다라는 대왕을 뜻하며 이를 국명으로써 칭한 것은 고대 일본이 백제(百濟國)를 ' 대왕의 나라' 혹은 '대왕국'이라고 불렀던 것을 의미한다고 해석하고 있다.

우에다 교수의 주장에 근거하여 한때 일본에서도 "대단하지 않다"란 뜻의 일본어 "クダラナイ"( 쿠다라나이)가 "下らない"가 아닌 "百済無い"에서 비롯 된 것으로 아닌가 하는 주장이 고개를 들기도 했다.[1]

하지만 미즈노 슌페이 교수 및 우익계열 비롯 일부 일본 학자들은 쿠다라나이라는 표현이 고어에 없다는 점을 들어, 일제강점기 당시 조선을 의도적으로 무시하기 위해'백제는 없다, 백제는 하찮다'라는 의미로 만들어진 것이 그 시작이라 보고 있다. 그랬던 것이 현대에 들어 우에다를 비롯한 친한파 역사가, 호사가들에 의해 다시 왜곡되어 한일 양측에 퍼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미즈노 슌페이의 입장, 미즈노의 책을 읽은 어느 넷우익의 블로그

4. 신라

신라에 대해서는 新羅라 적고, "シラギ(< シラキ)"(시라기/시라키)로 읽는데, 이건 그다지 어려운 것이 아니다. 신라의 본래 이름인 斯羅를 그대로 일본식으로 읽은 シラ에 キ(城의 뜻)를 더한 것이다. 마쿠라고토바에서는 "栲衾新羅(タクフスマシラキ)"(타쿠후스마시라키)라고도 하는데, 이는 특산물인 종이의 원료 "닥(タク, 타쿠)"과 "シラ"에서 연상되는 백색의 이미지가 이불(フスマ, 후스마)과 연상되어 이루어진 명칭이다.

5. 가야

《일본서기》에서는 일반적으로 加羅( 가라)라 적고 "カラ"(카라)라 읽는데, 이것은 "加耶"와 동일한 단어를 적은 것으로 여겨진다. 이 명칭은 일본에서 외국의 대명사가 되어, 한(漢) 당(唐) 그리고 한(韓) 또한 모두 "カラ"라 훈하였다. 이 외에도 가야 지역의 통칭으로 任那(ミマナ, 미마나, 임나)가 사용되는데, 임나는 근현대 일본의 임나일본부 사관 때문에 한국에서는 부정적인 의미가 내포되어 버렸지만, 가야연맹의 별칭이자 대가야의 이름이다. 대표적으로 고구려 금석문인 광개토대왕릉비에 任那加羅(임나가라)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任那를 ミマナ로 읽는 이유는 아직 미상.


[1] 이 주장을 지지하는 대표적인 인물로는 김용운 교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