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바브웨의 수도에 대한 내용은 하라레 문서 참고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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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
1978년 랄리벨라 암굴 교회군 የላሊበላ ውቅር አብያተ ክርስቲያናት |
1979년 파실 게비, 곤다르 지구 ፋሲል ግቢ፣ ጎንደር |
1980년 아와시 강 하류 유역 ታችኛው አዋሽ ሸለቆ |
1980년 티야 ጢያ |
1980년 악숨 አክሱም |
1980년 오모 강 하류 유역 ታችኛው ኦሞ ሸለቆ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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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하라르 주골 역사 요새 도시 ሐረር ጀጎል፣ የተመሸገ ታሪካዊ ከተማ |
2011년 콘소 문화경관 የኮንሶ ባህላዊ የመሬት አቀማመ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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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유산 |
1978년 시미엔 국립공원 የሰሜን ተራሮች ብሔራዊ ፓር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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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세계유산 ||
유네스코 세계유산 ||
<colbgcolor=#000><colcolor=#FFF> 이름 |
[[암하라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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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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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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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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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위치 |
에티오피아 하라리주(Harari) 북위 09° 18′ 32″ 동경 42° 08′ 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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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colcolor=#FFF> 등재유형 | 문화유산 | |
등재연도 | 2006년 | ||
등재기준 |
(ⅱ) 오랜 세월에 걸쳐 또는 세계의 일정 문화권 내에서 건축이나 기술 발전, 기념물 제작, 도시 계획이나 조경 디자인에 있어 인간 가치의 중요한 교환을 반영할 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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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현존하거나 이미 사라진 문화적 전통이나 문명의 독보적 또는 적어도 특출한 증거일 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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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ⅳ) 인류 역사에서 중요 단계를 예증하는 건물, 건축이나 기술의 총체, 경관 유형의 대표적 사례일 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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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ⅴ) 특히 번복할 수 없는 변화의 영향으로 취약해졌을 때 환경이나 인간의 상호 작용이나 문화를 대변하는 전통적 정주지나 육지·바다의 사용을 예증하는 대표 사례일 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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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번호 | 1189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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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라르 성문 | 도시 입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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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시인 아르튀르 랭보 생가 | 구시가지 가옥 |
하라리어 ሀረር [1]
암하라어 ሐረር
오로모어 Adare Biyyo
아랍어 هرر
영어 Har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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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에티오피아 동부 하라리 주의 주도. 하라르는 수도인 아디스아바바에서 동쪽으로 400여 km 떨어져 있으며, 도시에서 다시 동쪽으로 80여 km 를 더 가면 소말리아( 소말릴란드)와의 국경이 나온다. 하라르는 아비시니아 고원의 동쪽 끝자락에, 약 해발 1900m 고도에 조성된 도시이며 연평균 기온은 25도이다.
9세기 무렵부터 이슬람이 전파되었으며 1256년, 아랍인들이 홍해를 건너 대거 이주해오며 아랍식 도시가 세워져 현재에 이른다. 하라르는 정교도가 다수인 에티오피아에서 이슬람 신앙의 중심지로서 독특한 문화를 품고 있으며 악숨, 곤다르[2]와 함께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다. 성벽으로 둘러싸인 구도심 (주골)은 길게는 천년에 달하는 역사 건축물들이 잘 보존되어 있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시가지는 푸른색 계열로 칠해져 있어 모로코에 온 듯한 느낌을 준다. 현재 하라르의 인구는 약 13만명으로, 대부분 무슬림이나 기독교도 상인들도 일부 거주한다. 하라르 지역은 에티오피아인들이 즐기는 마약인 까트와 세계인들이 즐기는 에티오피아산 커피의 원산지로서 유명하다. 하라르는 مدينة الأَوْلِيَاء (마디나트 알 아왈리야), 즉 성자들의 도시라고 불리는데, 동아프리카 무슬림들은 하라르를 메카-메디나-예루살렘에 이은 4번째 성지로 여기고 참배한다.
2. 역사
하라르에는 84개의 이슬람 사원 (마스지드)들이 있다 |
에티오피아는 초창기 무슬림 중 일부가 메카 쿠라이쉬 부족의 박해를 피해 망명한 것으로 일찍부터 이슬람과 교류하였다. 그리고 소말리아, 지부티, 그리고 하라르 일대는 홍해와 아덴만을 사이에 두고 마주한 예멘으로부터 이슬람이 전해졌다. 896년경, 하라르는 이슬람 왕국인 쇼와 술탄국에 소속되었고 모스크가 지어졌다. 한편, 13세기에 히자즈의 405명의 족장들로 구성된 아랍 부족들이 압아디르 우마르[3]의 지도 하에 동아프리카로 이주하며 도시는 크게 확장되었다. 그리고 1277년부터 에티오피아 ~ 소말리아 일대의 무슬림 영주들은 뭉치기 시작하였고 1285년 이파트 술탄국의 성립으로 이어졌다. 이때부터 이슬람 상인들이 동아프리카 무역을 주도하게 되었고 하라르는 그 중심으로서 번영을 누렸다.
하라르는 1520년경에 아달 술탄국의 수도가 되며 전성기를 맞이하였다. 도시는 이집트, 아라비아, 인도의 상인들이 왕래하였고 커피와 직물, 노예 등이 거래되었다. 특히 커피는 현재까지도 하라르를 대표하는 특산물이다. 16세기 중반, 술탄인 누르 이븐 알 와지르는 에티오피아 (솔로몬 왕조)와 케냐에서 북진하던 갈라 족의 침공을 대비하기 위해 성벽을 건립하였다. 현재까지 구도심을 두르고 있는 성벽은 두께가 5m, 높이가 4m에 달하고 5개의 문을 갖추고 있으며 현지에선 주골이라 부른다. 1568년에 아달 술탄국의 수도는 아파르 (현 에티오피아 동북부) 지역의 아우사로 옮겨졌는데, 하라르는 이후 사실상 자유도시가 되어 자체적인 화폐를 발행하기도 하며 경제적, 문화적으로 번영을 이어나갔다.
아달 술탄국은 1577년에 하라르를 포기했고 이후 도시는 무슬림이지만 아달 술탄국과 적대적이던 남쪽의 오로모인들, 그리고 북쪽의 아파르 인들의 침공에 시달렸다. 정치적 혼란은 1647년에 알리 이븐 다우드가 외세를 무찌르고 아미르를 칭하며 종식되었고 이후 하라르는 도시국가 형태로 오스만 제국과 친교를 맺으며 200여년간 안정을 찾는다.
2.1. 근현대
1875년, 하라르는 근대화를 이룩한 이집트 군대에 의해 점령되며 독립을 잃었다. 1885년에 영국이 이집트를 속국화하며 이집트 주둔군이 철수했지만 도시는 전성기 시절 5만 인구에서 1만으로 줄어들 만큼 쇠락해 있었고 1887년 1월 9일, ( 에티오피아력의 성탄절) 하라르 군대는 첼렌코 전투에서 패배하며 에티오피아 제국의 황제 메넬리크 2세에게 점령되었다. 이후 에티오피아의 근대화가 추진되며 아디스아바바 ~ 지부티 간 철도가 부설되었는데, 하라르 대신 북서쪽으로 50km 떨어진 디레다와[4]를 자나가게 되었다. 하라르는 1937년에 이탈리아 군대에 점령되었다가 1941년에 해방되었고 에티오피아 영토로 현재에 이른다.
3. 주민
2007년 국세조사에 따르면 하라르에 거주하는 최대 민족은
암하라인(40.6%)이고
오로모인(28.1%), 하라르인(11.8%) 등이 10% 넘게 거주한다. 모어로는 시민의 49%가
암하라어를 사용한다. 이슬람교의 성지이지만 시민의 48.5%는
에티오피아 정교회 신자이며, 무슬림 44.6%, 개신교도 6.1% 등이다.
4. 기타
- 하라르의 5개 성문 중 하나인 상가 문 밖에선 밤에 하이에나들에게 먹이를 주는 전통이 있는데 관광 상품화 되고 있다. EBS 세계테마기행에서도 소개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