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2-07 14:23:47

필로(축구선수)

필로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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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FA 월드컵 우승 멤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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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Filó.jpg
이름 앙필로키우 구아리시 마르케스
(Amphilóquio Guarisi Marques)
생년월일 1905년 12월 6일
사망년월일 1974년 6월 8일
국적 파일:브라질 국기.svg 브라질 | 파일:이탈리아 국기.svg 이탈리아
출신지 브라질 상파울루
포지션 포워드
신체조건 172cm / 70kg
등번호 -[1]
소속팀[2] 포르투게사 (1922~1924)
CA 파울리스타누 (1925~1928)
SC 코린치안스 (1929~1931)
SS 라치오 (1931~1936)
SC 코린치안스 (1937)
파울리스트라 이탈리아 (1938~1940)
국가대표 4경기 1골 ( 브라질 / 1925)
6경기 1골 ( 이탈리아 / 1932~1934)

1. 개요2. 생애
2.1. 클럽
2.1.1. 브라질2.1.2. SS 라치오2.1.3. 브라질 복귀
2.2. 국가대표팀
3. 수상
3.1. 클럽3.2. 국가대표
3.2.1. 브라질3.2.2. 이탈리아
3.3. 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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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최초로 쥘 리메 컵을 든 브라질리언
필로는 브라질과 이탈리아 이중국적의 전 축구선수였다. 브라질에서는 필로(Filó)라는 별명으로, 이탈리아에서는 구아리시라는 이름으로 알려졌었다.

2. 생애[3]

2.1. 클럽

2.1.1. 브라질

필로는 그의 아버지 마누에우 아우구스투 마르케스가 회장으로 있던 포르투게사에서 데뷔했다. 필로의 어머니가 이탈리아인이었는데 이는 나중에 필로가 이탈리아에서 뛸 때 큰 도움이 되었다.

1925년에 필로는 CA 파울리스타누로 이적했는데, 당시 파울리스타누에는 브라질 축구계 최고의 슈퍼스타였던 아르투르 프리덴라이히가 현역으로 뛰고 있었다. 필로는 CA 파울리스타누의 유럽 투어에서 첫 선을 보이며 성공적인 데뷔를 했다.

필로는 파울리스타누에서 총 2회의 우승을 차지했고, SC 코린치안스에서도 연속 우승을 차지했다. 그리고 이탈리아 SS 라치오에서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2.1.2. SS 라치오

이곳에서 그는 구아리시 또는 안필로지노 구아리시로 불렸고, 당시 라치오는 브라질 선수들이 매우 많아 라 브라질라치오라는 별명으로 불릴 정도였다. 감독부터 브라질 축구계 초기의 영웅 아미우카르 바르부이였고[4], 그 외에도 페페, 니니뉴 등 브라질 선수들이 있어 적응은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여기서 세리에 A 우승과 인연을 맺지는 못했다. 라치오에서 구아리시는 총 137경기에 출전하여 43골을 기록하였다.

2.1.3. 브라질 복귀

브라질에 복귀해서는 SC 코린치안스와 파울리스트라 이탈리아에서 뛰었고, 여기에서 4시즌 동안 2번의 우승을 더 맛보았다.

2.2. 국가대표팀

2.2.1. 브라질

필로는 1925년의 남아메리카 챔피언십에서 국제 대회에 데뷔하였다. 그는 데뷔전이던 파라과이전에서 브라질의 선제골이자 대회 첫 골을 기록하였고, 4경기 1골을 기록하여 브라질의 준우승에 공헌하였다.

그 외에도 정식 경기는 아니지만 SC 코린치안스 뉴웰스 올드 보이스와의 시합에도 참가한 적이 있다.

2.2.2. 이탈리아

어머니가 이탈리아인이었기 때문에 필로는 라치오에서 뛸 동안 이탈리아 국가대표팀에도 소집되었다. 그는 예선전에서는 그리스를 상대로 선제골을 넣어 이탈리아의 본선 진출을 이끌었고, 이탈리아의 첫 경기였던 미국전에 출전했지만 득점을 기록하지는 못했다.

결국 이탈리아가 우승을 차지하여 최초로 월드컵에서 우승한 브라질인으로 기록에 남게 되었다. 하지만 월드컵 이후로 브라질과 이탈리아 어느 쪽에도 다시는 대표팀에 소집되지 못했다.

3. 수상

3.1. 클럽

3.2. 국가대표

3.2.1. 브라질

3.2.2. 이탈리아

  • 월드컵 우승 1회: 1934
  • 중유럽 인터내셔날 컵 우승 1회: 1933-35

3.3. 개인



[1] 이 시대에는 등번호가 존재하지 않았다. [2] 출처는 포르투갈어 위키백과. 이탈리아어 위키백과에서는 포르투게사 산치스타에서 1938년부터 2시즌을 뛰었다고 기록되어있다. [3] 출처: 위키백과 [4] 아미우카르 바르부이는 당시 38살의 노장이었고, 선수 겸 감독으로서 1931-32시즌에 마지막 불꽃을 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