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명
아래의 셋 모두 표기는 Plymouth.1.1. 영국 본토의 도시
{{{+1 Plymouth}}} 플리머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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깃발 | 문장 | |
국가 | 영국 | |
지역 | 사우스웨스트 잉글랜드 | |
주 | 데번주 | |
시간대 | UTC+0 | |
인구 | 264,695 | |
면적 | 80 km2 |
사우스웨스트 잉글랜드, 데번 주에 위치한 항구도시로 런던 남쪽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영국 도시이다.
1.1.1. 어원
플리머스라는 이름의 유래는 풀림강의 입(Plym Mouth)을 축약한 것이다.플림은 자두나무란 뜻이다.
1.1.2. 역사
원래 플리머스라는 도시의 옛 이름은 옛날 영어로 남쪽 마을이라는 뜻의 서튼(Sutton)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헨리 3세시기 플림턴 수도원이 이 일대에 시장을 열고 장사를 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면서 발전하기 시작했다. 시장이 열리니 자연스럽게 사람이 모이게 되면서 점차 플리머스의 규모는 커져갔다. 그리고 1440년 헨리 6세시기 공식적으로 이 도시가 인정받았고 대항해시대가 시작되자 바다의 중요성을 깨달은 잉글랜드 왕실에 의해 이 곳에 항만과 조선소가 들어서게 된다.그 영향인지는 몰라도 잉글랜드인 최초로 대서양 노예 무역에 가담한 존 호킨스와 칼레 해전을 승리로 이끈 사략선 선장 프랜시스 드레이크가 플리머스에서 태어났다.[1] 플리머스는 영국 해양무역의 중심지였으며 식민지 개척대의 출발지이기도 했다. 하지만 산업혁명으로 점차 영국 대외무역의 중심지가 플리머스에서 맨체스터나 리버풀로 옮겨지면서 점차 쇠퇴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곳에 있는 조선소 덕분에 스캐퍼플로와 함께 영국 해군의 중요한 기지가 되었다. 양차대전 시기 이 곳은 독일의 주 목표였으며, 영국 본토 항공전 당시 루프트바페가 플리머스를 폭격해 1,000여명이 사망하고 3,700여채가 넘는 가옥이 파괴되기도 했다. 하지만 전후 플리머스에 20,000여개가 넘는 새로운 주택이 건설되었으며, 영국의 항공모함과 핵잠수함을 건설하는 등 여전히 영국 해군에게 있어 중요한 도시로 남아있다.1.1.3. 경제
플리머스는 해안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전통적으로 해양, 특히 국방 분야에서 12,000명 이상이 고용되고 약 7,500명이 군에 종사하고 있습니다. 특히 해군이 많아 그들을 위해 진을 증류하는 플리머스 진 증류소는 1793년부터 영국 해군에 의해 전 세계로 수출된 플리머스 진을 생산하고 있다.1930년대에는 가장 많은 나라에서 팔린 진이었다. 그리고 데본포트 조선소는 영국에서 유일하게 핵잠수함을 건조하는 조선소로, 이 조선소가 플리머스 경제의 약 10%를 차지한다.1.1.4. 출신 인물
- 존 호킨스 : 영국의 해적이자 해군 사령관
- 프랜시스 드레이크 : 영국의 해적이자 해군 사령관
- 로버트 스콧 : 영국의 해군 장교이자 남극 탐험가
- 그레이엄 고어 : 영국의 해군 장교이자 북극 탐험가
- 윌리엄 헨리 윌스 : 영국의 소설가 찰스 디킨스의 편집자이자 저널리스트
1.1.5. 자매 도시
1.1.6. 여담
- 이곳을 연고로 하는 축구 팀으로 플리머스 아가일 FC가 있다.
- 청교도들이 박해를 피해 종교적 자유를 찾아 미국으로 출항한 메이플라워호가 이곳에서 출발하였다. 그리고 현재 서튼이라 불리는 플리머스 초기 항구 근처에는 이를 기념하는 기념비도 존재한다.
1.2. 미국 매사추세츠주의 도시
1620년 청교도들이 제일 먼저 상륙한 그곳이다. 17-18세기에는 중요한 도시였으나, 19세기 들어 한적한 어촌으로 남았다. 그나마 조선업이 발달하여 도시로 유지되었고, 현재는 인구 약 6만의 중소 도시이다. 도시는 케이프 코드 (대구 곶) 만의 서쪽, 플리머스 만에 자리한다. 해안에는 메이플라워 호의 모조품과 첫 상륙지의 상징인 '플리머스석', 정착촌 복원 세트장, 필그림 기념비 등의 볼거리가 있다.
1.3. 중남미 영국의 속령 몬트세랫의 도시
법적으로는 몬트세렛의 수도지만 아무도 살지 않는 유령도시다. 이 지역을 포함한 남부 지역이 화산폭발 때문에 출입금지 구역으로 묶여버렸기 때문.
[1]
참고로 프랜시스 드레이크는 1581년부터 약 1년간 플리머스 시장을 역임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