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화정의 구성원인 시민에 대한 내용은 시민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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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시민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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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1. 개요
소시민(小市民) 또는 소부르주아는 프랑스어 '쁘띠부르주아(petit-bourgeois)'의 번역어로, 본래 자본가인 부르주아와 노동자인 프롤레타리아 사이에 있는 중산 계급 시민을 가리켰다.2. 정의
2.1. 사회계급이론에서의 '쁘띠부르주아'
소시민(小市民) 명사 사회 일반
노동자와 자본가의 중간 계급에 속하는 소상인, 수공업자, 하급 봉급생활자, 하급 공무원 따위를 통틀어 이르는 말.≒범민 소부르주아 프티부르주아.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발췌)
노동자와 자본가의 중간 계급에 속하는 소상인, 수공업자, 하급 봉급생활자, 하급 공무원 따위를 통틀어 이르는 말.≒범민 소부르주아 프티부르주아.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발췌)
소시민적(小市民的) 관형사
대체로 부동적(浮動的)이며 중간적인.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발췌)
대체로 부동적(浮動的)이며 중간적인.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발췌)
사회계급에서 쁘띠부르주아는 생산수단은 소유했지만, 타인의 노동을 착취만 하지는 않고 스스로 노동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쁘띠부르주아는 부르주아처럼 부유하고 호화로운 삶을 살지는 못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하루하루 생계를 걱정하는 서민과 같다고 할 수도 없는 사람들이다.
농촌의 독립 자영농민 및 도시의 독립 소영업자가 전형적인 쁘띠부르주아의 구성원이다. 의사, 변호사, 교수 등의 전문직 인텔리 계층 역시 여기에 포함된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전문직은 각자의 면허와 학위가 자신의 밥벌이를 할 수 있는 생산수단이지만, 이것을 타인에게 빌려주고 그 대가를 얻을 수는 절대로 없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쁘띠부르주아가 된다. 그런데 대학교수나 로펌 변호사, 대학병원 의사는 완전히 생산수단을 소유했다고 볼 수 없으므로 프롤레타리아적인 성격(...) 또한 갖게 된다고 할 수도 있다.
쁘띠부르주아라는 단어 자체가 그렇듯이 원래는 공산주의 운동가들에게 의해 널리 퍼진 단어였고 부르주아라는 단어가 붙은걸 보듯이 결코 좋은 의미의 단어가 아니다. 전통적으로 자영업자들은 그 어떤 계층보다도 공산주의 운동이나 노동운동에 적대적이었다. 왜냐하면 그들 스스로 타인에게 고용되어 일을 하지 않기 때문에 공산주의에 동감할 수 없으며, 동시에 자신도 노동하고 타인을 고용하고 있으므로 자신들이 바로 공산주의 운동이 잘못된 산증인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미 18세기부터 이들은 반동적인 정당을 지지할 가능성이 매우 높았고 주요 지지층이었다.[1]
또한 프롤레타리아들에게 직접적으로 맞대면하며 그들에게 빵과 우유를 팔면서 이윤을 창출하는 자들이자 농촌에서 농장을 경영하며 그들에게 밀을 팔아먹는 자들이기에 원천적으로 프롤레타리아와 이해관계가 상충되므로 파리 코뮌 등 초기공산주의 운동의 성과가 그들에게 자산압류와 가격통제 등으로 큰 피해를 주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스스로 노동을 제공한다는 측면에서 노동자의 성격이 있으나 그 경계선에 있기에 더더욱 노동자를 가혹하게 착취하려는 성향을 보인다고 하여 공산주의자들이 대놓고 멸칭으로 사용하기 위해 만들어낸 단어다.[2]
2.2. 어휘 '소시민'과 의미 변화
소시민적 생활(小市民的生活) 명사 사회 일반
소시민이 사회 문제에 별다른 관심을 가지지 않고 경제적 안정만을 추구하는 자기 보전적 태도의 생활.
(국립국어원 우리말샘 발췌)
소시민이 사회 문제에 별다른 관심을 가지지 않고 경제적 안정만을 추구하는 자기 보전적 태도의 생활.
(국립국어원 우리말샘 발췌)
원래 소시민은 상술했듯 중간계급에 해당하는 쁘띠부르주아의 한자 번역어였으나, 근래 대한민국에서는 '평범한 시민', '서민'과 유사한 의미로 변하였다. 이는 사회계급이론에서 '실천하지 않는 부동적 쁘띠부르주아'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소시민적 태도'로 부르는 것에서 기인했지만, 이것이 시간이 지나며 '별다른 대의나 철학 없이 먹고 사는 데 집중하는 일반 사람'이라는 뜻으로 와전된 것이다. 현재도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의 해설에서는 이러한 와전을 채용하지 않고 본래 의미만을 표준어로 등재하고 있으나, 이 역시 '모든 국민', '경제적으로 중류 이하의 넉넉지 못한 생활을 하는 사람'이라는 의미의 '범민(凡民)'을 유의어에 등재함으로써 본래 의미와 청중의 언어 사용 간에 발생한 괴리를 반영한 바 있다.
아예 회화적으로는 '소시민'이라는 단어가 주는 어감 때문에 '소소하게 살아가는 평범한 시민', 서민의 의미로 알고 있는 사람도 상당하며, 특히 M세대 이후 세대의 화자는 절대다수가 이러한 의미로 사용한다. 포털 사이트에 '소시민'을 검색해 뉴스에서 어떤 의미로 사용되는지 확인해 보면 바로 알 수 있다. 때문에 본래 의미의 '소시민'이라는 뜻을 전달하기 위해서는 아예 '소부르주아'나 '쁘띠부르주아'로만 표현하는 것이 오해를 피할 수 있다. 오늘날 대형 로펌의 변호사나 피부과, 성형외과 등의 인기과 전문의 등을 생산수단(전문직 라이센스)은 가졌으되 스스로의 노동에 종사한다는 본래의 의미로 소시민이라고 칭하면 사회적 반발을 살 것이다.
사실 이러한 와전은 한국어에 한한 것도 아니고 21세기 이후의 일도 아닌데, '소시민'이라는 한자어는 본래 일본에서 번역한 것이며 일본어의 용례 역시 한국의 그것과 매우 유사하게 변하였다. 두 나라 모두 20세기 중반의 급격한 경제 성장과 20세기 후반의 경제 위기를 겪었으며, 이것이 의미 변화에 영향을 미쳤다. 한국에서 문화적으로 소시민과 서민의 접점이 커진 계기는 1997년 외환 위기와 양극화를 꼽을 수 있다. 외환위기 이전만 하더라도 국민 다수의 경제계층은 명실공히 중산층이자 소시민이었으나 IMF 외환위기 이후 중산층은 사실상 해체되어 극히 일부는 상류층으로 상승, 대다수는 서민층, 심한 경우 빈민층으로 떨어졌고, 그 수가 많은 서민이란 단어가 소시민의 자리를 이어받은 것이다. 또한 남들이 하류로 떨어졌는데 자신이 중산층임을 내세우는 것에 대한 무의식적 죄책감이나 거부감 같은 것도 2000년대 초반 한동안 존재했다. 결국 소시민이라고 해도 힘겹게 하루하루를 버텨나가는 사실상 서민인 시민들이 많아지게 되었다.
그러나 정보와 정보능력의 확산 등으로 2000년대 중반 이후 중류의식, 중산층에 다소 가까운 소시민적 마인드가 나타나면서 서민층, 빈민층과 다소 차이점을 보이고 있다. 간혹 교양 중시, 능력주의적인 소시민적 마인드와 교양보다는 당장의 생존을 중시하는 빈곤층, 저소득층의 가치관 간에 갈등이나 대립, 반목도 곳곳에서 보이는 중이다.
3. 매체에서의 용례
3.1. 2017년작 한국 영화
해당 영화 역시 소시민이라는 단어를 서민이라는 뜻으로 사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