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BADFDF><colcolor=#000000> 헤센카셀의 명목상 방백 & 핀란드 왕국의 국왕 프리드리히 카를 Friedrich Karl, Landgraf von Hessen-Kasse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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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독일어 |
프리드리히 카를 루트비히 콘스탄틴 (Friedrich Karl Ludwig Konstantin) |
핀란드어 |
프레드리크 카를레 (Fredrik Kaarl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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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868년 5월 1일 | |
프로이센 왕국 플뢴 판커 성 | ||
사망 | 1940년 5월 28일 (향년 72세) | |
나치 독일 카셀 | ||
재위 | 핀란드 왕국의 국왕 | |
1918년 10월 9일 ~ 1918년 12월 14일 | ||
배우자 | 프로이센의 마르가레테 공주 (1893년 결혼) | |
자녀 | 프리드리히 빌헬름, 막시밀리안, 필리프, 볼프강, 크리스토프, 리하르트 | |
아버지 | 헤센카셀 방백 프리드리히 빌헬름 | |
어머니 | 프로이센의 아나 공주 | |
형제 | 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 엘리자베트, 알렉산더 프리드리히, 프리드리히 카를, 마리 폴릭세네, 지빌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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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헤센 가문의 당주. 마르가레테 폰 프로이센의 남편이자 프리드리히 3세의 막내 사위로 독일 황제 빌헬름 2세의 매제다.친가쪽으로 덴마크 왕비 헤센카셀의 루이제의 조카이며, 프레데리크 8세, 덴마크의 알렉산드라, 요르요스 1세, 덴마크의 다우마, 덴마크의 티라의 사촌이다.
사촌들(고모 루이제의 자녀들)이랑 나이차이가 많이 나는데 이는 아버지 프리드리히 빌헬름이 첫번째 아내 알렉산드라 니콜라예브나 여대공이 아이와 함께 사망한 충격으로 10년 가까이 재혼하지 않았다가 겨우 프로이센의 아나 공주와 재혼해서 낳았기 때문.
1918년 독일 제국의 보호국인 핀란드 왕국이 생겼을 때 핀란드 국왕으로 있었지만 1년도 안 돼서 동맹국이 망하면서 왕위에서 내려왔다. 사실 프리드리히 본인은 애초에 핀란드 왕위에 관심도 없었다고 한다.
2. 생애
1868년에 프리드리히 빌헬름과 프로이센의 안나의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위에 형들이 있었지만 자녀 없이 사망해서[1] 헤센카셀 가문의 당주가 되었다.2.1. 결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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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센카셀의 카를 공자와 프로이센의 마르가레테 공주. |
프리드리히 3세의 막내딸인 프로이센의 마르가레테 공주와 결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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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필리프, 크리스토프, 막시밀리안, 프리드리히, 리하르트, 볼프강 |
슬하에 6남을 두었으며 그 중 3, 4남과 5, 6남은 쌍둥이다.
2.2. 가정사
먼 친척들인 헤센다름슈타트 가문 못지 않게 이쪽도 가정적으로 비극을 겪었다.1차 세계 대전 때 본인은 큰 부상을 입고 장남과 차남[2]은 전사하고 5남은 2차 세계 대전 때 전사했다. 6명의 아들들 중에서 자녀를 낳은 아들은 2명으로 3남 필리프와 5남 크리스토프이다.[3]
사후 3명의 며느리 중 3남 필리프의 부인인 사보이아의 마팔다[4]와 4남의 부인인 바덴의 마리 알렉산드라[5]는 전쟁 중에 폭격으로 죽었다. 전후에 막내 며느리인 그리스와 덴마크의 소피아는 마르가레테의 조카손자[6]와 재혼했다.
2차 세계 대전 이후에는 연합군이 프리드리히쇼프 성을 점령하여 살던 곳에서 나가서 지내게 되었다. 성을 점령했던 미국인 장교 3명이 헤센 가문의 보석을 훔쳐 한 때 가문의 재정 상황이 이전보다 악화됐었다. 헤센 보석 도난 사건 참고.
차이점이 있다면 헤센다름슈타트 가문은 아예 단절됐지만 이쪽은 현재까지 후손들이 이어지고 있다.
2.3. 사망
1940년 제2차 세계 대전이 한창일 때 카셀에서 향년 72세의 나이로 사망했다.사후 헤센카셀 가문은 요절한 장남과 차남 대신 3남 필리프가 계승했다.
3. 가족관계
3.1. 자녀
자녀 | 이름 | 출생 | 사망 | 배우자 / 자녀 |
1남 |
프리드리히 빌헬름 공자 (Prince Friedrich Wilhelm) |
1893년 11월 23일 | 1916년 9월 12일 | |
2남 |
막시밀리안 공자 (Prince Maximilian) |
1894년 10월 20일 | 1914년 10월 13일 | |
3남 |
헤센 방백 필리프 (Philipp, Landgrave of Hesse) |
1896년 11월 6일 | 1980년 10월 25일 |
사보이아의 마팔다 공주[7] 슬하 3남 1녀 |
4남 |
볼프강 공자 (Prince Wolfgang) |
1896년 11월 6일 | 1989년 7월 12일 | 바덴의 마리 알렉산드라 공녀[8] |
5남 |
크리스토프 공자 (Prince Christoph) |
1901년 5월 14일 | 1943년 10월 7일 |
그리스와 덴마크의 소피아 공주 슬하 2남 3녀 |
6남 |
리하르트 공자 (Prince Richard) |
1901년 5월 14일 | 1969년 2월 11일 |
3.2. 후손
프리드리히 카를의 장남과 차남이 전부 자녀는 커녕 결혼도 못하고 죽은터라, 헤센카셀 가문을 이어받은 건 삼남 필리프로 사보이아의 마팔다와 결혼해 슬하 3남 1녀를 두었다. 한편 헤센 대공가인 헤센다름슈타트 가문른 게오르크 도나투스의 남동생 루트비히가 1968년 자녀 없이 죽어서 단절되었고, 헤센 대공국의 (명목상) 대공위는 필리프로 넘어왔다.
필리프의 장남 모리츠는 슬하 2남 2녀를 두었다.
현재 헤센가문의 당주인 도나투스는 슬하 2남 1녀를 두어 현재까지 이어진다. 참고로 장녀와 장남은 쌍둥이 남매다.
4. 대중매체
Hearts of Iron IV의 모드 카이저라이히에서는 대전쟁에서 동맹국이 승전했기에 왕국이 된 핀란드의 왕이 되어 있다. 호칭은 프레드리크 카를레. 다만 핀란드의 반독 감정이 점점 강해지고 있어서 왕실이 존속할 수도 있고 몰락할 수도 있다. 왕실이 존속한 상태에서 시간을 흘려보내다 보면 사망하고 사남 볼프강이 배이뇌 1세라는 왕호로 즉위한다.
[1]
사실 둘째 형은 1945년까지 살아서 그보다 오래 살았지만 귀천상혼이어서 그런지 아버지가 죽자마자 바로 그에게 작위가 주어졌다.
[2]
장남 프리드리히는 적군의 총검에 의해 목이 잘렸으며 가슴이 칼에 찔렸다. 차남 막시밀리안은 영국군의 기관총에 부상을 입어 치료 중 영국군에게 잡혔다. 영국 야전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동안 그는 의사에게 자신이
빅토리아 여왕의 증손자라고 말했고, 독일에 있는 그의 어머니에게 보낼 라켓을 주었다. 영국인 의사는 라켓을 보내겠다고 약속했으며 몇시간 이후에 막시밀리안은 사망했다. 영국에 있는 의사의 부인이
영국의 메리 왕비에게 전해주어 마르가레테는 아들의 라켓을 받게 되었다. 막시밀리안은 사망한 마을에서 묻혔다. 하지만 독일인에 대한 반감 때문에 마을이 막시밀리안이 묻힌 위치를 알려주지 않아 1926년에서야
조지 5세의 도움을 받아 독일로 이장할 수 있었다.
[3]
그럼에도 손주들은 모두 9명이었다.
[4]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의 차녀. 2차 세계 대전에서 이탈리아가 항복하자 그에 대한 보복으로 부헨발트 강제 수용소에 수감되어 있다가 연합군의 폭격으로 사망했다.
[5]
막시밀리안 폰 바덴의 딸. 7명과 함께 여성 적십자 활동을 하던 중 1944년 1월 29일부터 30일까지 프랑크푸르트에서의 폭탄 공격으로 사망했다. 그들이 피신한 지하실은 건물의 무게로 무너져 마리 알렉산드라의 시신은 거의 알아볼 수 없었다.
[6]
조카
브라운슈바이크 공작부인 빅토리아 루이제의 차남 게오르크 빌헬름.
[7]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의 차녀.
[8]
막시밀리안 폰 바덴의 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