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드리히 가이스하르트(Friedrich "Fritz" Geißhardt : 1919년 1월 22일~1943년 4월 6일)
1. 유년기
1919년 1월 22일, 바이에른주의 손네펠트(Sonnefeld)라는 마을에서 교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1차 대전에 참전했다가 입은 부상이 악화되면서 아들이 장성하는 것을 지켜보지 못하고 젊은 나이에 사망했다. 편모 슬하에서 자라났지만 천성적으로 씩씩한 성품을 지녔던 가이스하르트는 15세에 히틀러 유겐트에 가입했고 취미 활동으로 장려되던 글라이더 비행에 몰두했는데 그 솜씨가 일취월장하여 글라이더 조종면허를 따게 된다. 18살이 되던 1937년에 독일 공군에 사병으로 입대한 그는 1939년 7월 1일에 제2교도비행단 제2비행중대(2./LG 2)에 배속되면서 전투기 비행병으로 복무를 시작했다.2. 개전과 함께 포로
폴란드 침공 초반이던 9월 9일, 가이스하르트 상병은 2중대에서 제1비행중대(I. (Jagd)/LG 2)로 파견되어 제4군을 돕기 위해 브롬베르크 근처로 옮겨졌다. 상병 가이스하르트는 최전선 루비카에서 초계 비행을 하다가 폴란드 공군의 복엽기 PWS-26을 격추했는데 이것이 그의 첫 전과였다. 다음날인 10일에는 그가 타고 있던 Bf 109가 구식 PZL P.11 전투기에게 급습을 받아 추락했는데, 동체 착륙하여 도주를 시도했지만 곧바로 폴란드군에게 사로잡혀 포로로 끌려갔다. 그런데 도주하다가 비행복을 벗어던진 그는 독일 공군의 비행복 대신 파란색 니트 스웨터를 입고 있던 탓에 정규군이 아닌 스파이 혐의를 쓰게 되었고, 곧바로 총살대가 끌려갈 위기에 빠졌다.3. 영국 본토 항공전
1940년 2월 27일, 정식으로 제2교도비행단 제1중대로 전속 조치된 그는 배틀 오브 브리튼에 폭격기 엄호를 위해 참가하면서 영국 공군의 전투기 6대를 격추시켰고, 해협 전투가 소강 상태에 빠진 1941년 초에도 6대의 스코어를 더 보탰다. 이제 부사관이 된 가이스하르트는 신참 시절 두 번째 출격에서 구식 전투기에게 격추되고 포로로 잡혔다는 굴욕을 씻어낼 수 있었다.4월 6일, 발칸 반도 전역에 출격한 그는 호커 퓨리 전투기 4기를 격추하고 이어진 크레타 전투에서 호커 허리케인 2대를 해치웠다. 이런 실력을 보이자 부사관으로서는 이례적으로 4월 말부터 중대의 참모가 되었다. 6월 23일부로 20기 격추를 달성한 그는 8월 30일에 기사철십자 훈장을 수상했다. 1942년에도 변함없이 그의 격추 페이스는 늦춰지지 않았다. 2월 3일과 4일에 가이스하르트 상사와 에르빈 클라우젠 중위는 편대 비행을 하면서 3대의 폴리카르포프 R-5와 R-Z를 단숨에 격추했다. 3월 1일에 40번째 승리, 4월 19일에는 50번째 승리를 달성한 그는 다음 날인 20일에는 5대를 순식간에 격추해 1일 에이스(Ace in a day) 호칭도 갖게 되었고, 4월 25일에는 하루에 7기를 포식하는 활약을 펼쳤다.
4. 지휘관이 되다
장교로 진급한 가이스하르트는 제77전투항공단(JG 77) 제I비행단 예하의 제3비행중대장 보직이 주어졌다. 6월 23일, 79대 격추의 무공으로 그에게는 곡엽기사철십자 훈장이 수여되었다. 이 서훈은 6월 28일과 29일에, 라슈텐부르크에 있는 총통의 전용 벙커인 볼프산체에서 히틀러가 직접 가이스하르트와 야간전투기 에이스 헬무트 렌트 소령, 그리고 하인리히 제츠(Heinrich Setz : 1915~1943 / 138대 격추) 대위에게 훈장을 걸어주며 거행되었는데, 가이스하르트는 소환되기 전까지 자신의 격추수를 82대로 만들어 놓고 있었다.곡엽 훈장을 받은 후, 그가 지휘한 3중대가 속한 1그루페는 동부전선을 떠나 지중해의 시칠리아 섬으로 이동했다. 몰타 항공전에 참가하게 된 것이다. 10월 말까지 가이스하르트 중위는 몰타 상공에서 연합군기 9대를 격추하고 북아프리카 전선에서도 9대 이상의 전과를 더하게 된다. 11월 10일에 격추한 스핏파이어는 가이스하르트의 100번째 승리의 제물이었는데, 이것은 독일 공군에서 30번째로 100대 에이스가 되었음을 의미했다.
5. 비행단장으로 승진
이제 대위로 승진한 그는 1943년 1월 11일에 벨기에의 베벨겜(Wevelgem)에서 요셉 프릴러의 지휘를 받으며 둥지를 틀고 있던 제26전투항공단(JG 26)의 제 III 비행단장 직위가 주어지게 된다. 개전 무렵 비행병이었던 그가 이제는 1개 비행단을 휘하에 거느리게 된 것이다. 원래부터 리더 기질이 강한데다 이처럼 고속으로 출세 가도를 달리게 되자 가이스하르트는 점점 주위로부터 시선이 쏠릴 수밖에 없었고, 원래 자기중심적인 경향이 있던 그간의 행적과 맞물려 거만하다는 평을 받게 된다. 특히, 그와 비슷한 시기에 함께 입대했지만 곡엽 훈장을 받지 못한 동료 조종사들은 상관이랍시고 거들먹거리는 가이스하르트가 더더욱 좋게 보일 수가 없었던 모양이다. 이런 알력이 그의 명운에도 영향을 끼쳤을지도 모른다.6. 최후
4월 5일, 항공단 사령관 프릴러가 직접 인솔하고 출격한 임무에서 Fw 190A-4(기체 번호 7051)를 조종하고 있던 3비행단장 가이스하르트는 미 육군 항공군(USAAF) 제306폭격비행대대 소속의 B-17 편대를 요격했고, 폭격기의 대편대 사이를 종횡무진 누비던 그는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방어 총좌에서 날아든 총탄에 복부를 명중당해 심각한 치명상을 입었다. 복부에 총상을 입은 가이스하르트는 마치 분수처럼 피가 뿜어져 나왔고, 부하들 중에서도 캐노피가 피로 물드는 광경을 목격한 이도 있었다. 그는 안간힘을 다해 조종간을 부여잡고 가까운 벨기에 북서부의 신트-데니스-웨스트렘(Sint-Denijs-Westrem) 비행장에 착륙할 수 있었다. 출혈과 고통으로 정신을 잃은 가이스하르트 대위는 곧바로 병원으로 후송되었으나 다음날 아침 일찍 24살의 젊은 나이에 숨을 거두고 말았다.프리드리히 가이스하르트 대위는 전사하기 전까지 제2차 세계 대전에서 8개의 전역을 오가며 642회 출격하는 동안 102기를 격추시켰다. 그중에서 37소티는 근접항공지원 임무였으며, 63기는 동부전선에서 거둔 전과였다. 적어도 17대의 스핏파이어도 포함되어 있다.
7. 서훈
2급 철십자 훈장 (1939년 9월 17일)1급 철십자 훈장 (1940년 7월 10일)
공군 명예컵 (1941년 7월 13일)
독일 황금십자장 (1942년 4월 24일) : 소위 진급 / 제77전투항공단 제I비행단장 임명
기사철십자 훈장 (1941년 8월 30일) : 중위 진급
곡엽기사철십자 훈장 제101호 (1942년 6월 23일)
제2차 세계 대전 전투기 에이스 일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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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156b94> ▲ 67~84위 | ||||
순위 | 이름 | 국적 | 격추 수 | 비고 | |
87위 | 라인하르트 자일러 | 독일 | 109대 | ||
88위 | 에밀 비치 | 독일 | 108대 | ||
한스 한 | 독일 | ||||
베른하르트 베히텔 | 독일 | ||||
91위 | 빅토르 바우어 | 독일 | 106대 | ||
베르너 루카스 | 독일 | ||||
93위 | 귄터 뤼초 | 독일 | 105대 | ||
94위 | 아돌프 갈란트 | 독일 | 104대 | ||
에버하르트 폰 보렘스키 | 독일 | ||||
하인츠 작센베르크 | 독일 | ||||
97위 | 하르트만 그라서 | 독일 | 103대 | ||
98위 | 지크프리트 프라이타크 | 독일 | 102대 | ||
프리드리히 가이스하르트 | 독일 | ||||
에곤 마이어 | 독일 | ||||
막스-헬무트 오스터만 | 독일 | ||||
요제프 부름헬러 | 독일 | ||||
헤르베르트 롤바게 | 독일 | 4발 중폭격기 격추 1위 | |||
104위 | 베르너 묄더스 | 독일 | 101대 |
인류 최초 적기 100기 격추 스페인 내전에서 14기 격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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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돌프 미팅 | 독일 | ||||
요셉 프릴러 | 독일 | 스핏파이어 격추대수 1위 (68대 격추) | |||
울리히 베르니츠 | 독일 | ||||
108위 | 파울-하인리히 데네 | 독일 | 99대 | ||
레오폴트 슈타인바츠 | 독일 | ||||
볼프강 슈페테 | 독일 | ||||
하인리히 바르텔스 | 독일 | ||||
한스 슐레프 | 독일 | ||||
113위 | 호르스트 하닝 | 독일 | 98대 | ||
구스타프 뢰델 | 독일 | ||||
헬무트 뤼플러 | 독일 | ||||
▼116~139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