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8-06-17 08:12:03

프랭클린 피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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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 초상화
풀네임 Franklin Pierce
출신정당 민주당
생몰년 1804년 11월 23일 ~ 1869년 10월 8일(64년 10개월 15일)
재임기간 1853년 3월 4일 ~ 1857년 3월 4일
서명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237px-Franklin_Pierce_Signature2.svg.png
178cm
1. 초기 생애2. 불운한 가정사3. 임기4. 평가5. 그 외

1. 초기 생애

뉴햄프셔에서 주지사를 지냈던 벤자민 피어스[1]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어렸을 때 부터 나다니엘 호손 등과 친분을 쌓았다. 대학 시절은 처음엔 성적이 좋지 않았지만, 나중에는 3번째로 좋은 성적으로 졸업할 만큼 좋아졌다고 한다.

대학을 마치고 미국 민주당에 입당한 그는 1828년 하원의원으로 선출된 것을 시작으로 정치적 성장을 거듭하여 30세에 상원의원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정치를 싫어하던 부인에 의해 1842년 상원 자리를 사직하게 된다.

그 후 미국-멕시코 전쟁이 터지자 자원하여 참전하여 사병에서 준장까지 오르게 되..지만 특별한 활약을 보여주진 못했다. 여간 전후 정계에 복귀, 1852년 어렵사리 대통령 후보에 지명된다. 하지만 당시 피어스는 대통령이 될만한 인물인지 검증을 받지 못한 상태였고 이로 인해 말이 많았다. 여담으로 이 소식을 들은 부인은 기절했다. 당시 상황에 대통령이 돼봤자 좋을게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고. 그리고 뜻밖에도 큰 표차로 당선된다. 망했어요 투표에서는 1,607,510표(50.8%), 27개 주에서 승리, 선거인단 254석으로 윌리엄 스콧(휘그당) 1,386,942표(43.8%), 4개주 승리, 선거인단 42석을 안드로메다로 날려버리고 만다.(...)

2. 불운한 가정사

가족관계는 미국 역대 대통령 중 가정사가 제일 불행한 인물이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그의 자식들은 모두 요절하였고, 부인도 자기보다 먼저 죽었고, 본인도 불행한 말년을 보냈다. 그의 자식들은 모두 12세도 못 넘기고 죽었는데, 마지막 남았던 아들 벤저민도 11세의 나이에 피어스의 눈 앞에서 벌어진 기차 탈선 사고로 죽고 말았다. 특히 이 기차 사고는 대통령 당선자 상태에서 기차 여행을 가던 도중에 일어난 것이었고, 피어스 부부 모두 부상을 당했다. 그리하여 프랭클린 피어스의 백악관은 역대 가장 음울한 백악관으로 남게 되었다. 그야말로 여러모로 불운을 부른 당선(...).

개인적인 인물됨은 사교적이고 밝은 성격이라 친구가 많은 편이었으며, 앞서 말했듯이 유명한 소설 주홍글자 큰 바위 얼굴 작가인 동갑내기 나다니엘 호손과 어릴적부터 절친한 친구였다고 한다. 호손은 그의 대통령 선거 당시 연설 문구를 써주기도 하고 피어스 자서전을 쓰기도 했다. 대통령이 된 테일러는 호손을 정계에 입문시키기도 하여 호손은 영국 영사로 재임했지만 3년만에 사직했다. 1864년, 투병중이던 벗 호손과 같이 여행을 요양 차 갔는데 그만, 호손이 이 여행 도중 59세로 피어스보다 먼저 죽어 피어스는 상심을 이기지 못하고 로 하루하루를 달랬다고... 뭔가 끝까지 안습하다...

남편 대통령이 되자 기절했다는 일화를 남긴 영부인 제인 피어스는 사교적인 남편과는 달리 어려서부터 수줍음이 많고 내향적인 인물이었다고 한다. 남편에게 정치를 하지 말라고 여러 번 말렸지만, 상황은 그녀의 뜻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백악관에 입주하기 전에 아들들을 모두 잃은 충격에서 끝내 헤어나오지 못했고, 영부인 재임 중에는 우울증에 시달렸으며, 백악관 위층의 자신의 방에서 거의 틀어박히다시피 한 채로 살았고, 죽은 아들들에게 편지를 쓰며 눈물로 생활했다고 한다. 정말 어쩌다가 한 번 공식 석상에 얼굴을 비추는 정도였다고 한다. 남편 피어스가 대통령 임기를 마친 후 남편보다 6년 전인 1863년 결핵으로 사망했다. 미국의 역대 영부인들 중 가장 불행한 영부인이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3. 임기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501px-Franklin_Pierce.jpg
대통령이 된 그는 노예제 문제를 어떻게든 피하려 했지만, 1854년 통과된 캔자스-네브래스카 법은 피할 수 없었다. 캔자스는 미주리 타협에 의하면 원래 자유주가 돼야 했던 곳인데, 졸지에 투표로 결정하게 된 것이었다. 이로인해 캔자스 헬게이트가 열리게 되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피어스가 1820년의 미주리 타협을 깨고 새로 가입하는 주들의 자유스러운 결정을 옹호한다는 논리로 이 법안이 효력을 발휘하게 된 것. 결국 남부 편을 들어준 꼴이 되었다.

하지만 피어스 정권의 진정한 흑역사는 다름아닌 오스텐드 선언

이 선언의 계기 당시 쿠바에서 노예 해방운동이 터지게 된 것에서 비롯된다. 이 것이 확산될 것을 우려한 남부의 압력을 받아[2] 피어스는 오스텐드 선언을 발표하게 되었는데 그 내용은...
스페인[3] 쿠바를 1억 2천만 달러에 매각하지 않을 경우, 쿠바를 점령해도 정당하다! 라는 내용이었다. 목적은 당연히... 더 이상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이러한 사실이 알려지자 북부는 물론이요 세계 각국도 반대의사를 밝히고 스페인 또한 "너님 미쳤음?" 이러면서 매각을 거부한다. 결국 이 선언은 그대로 흑역사로... 하지만 결국 미서전쟁으로 40년후 쿠바는 점ㅋ령ㅋ

이러한 그의 도페이스doughface[4]적인 성향은 결국 북부의 지지를 잃고 재선을 위한 당내 후보 지명에 실패하게 된다. 결국 같은 당인 뷰케넌 전 국무장관에게 후보를 내주게 된다.

퇴임 이후에도 이러한 성향은 바뀌지 않은 듯 한데, 대표적으로 링컨의 노예해방 선언을 강하게 비판했다.

말년에는 알코올 중독과 씨름하다 세상을 떠났다.

4. 평가

먼나라 이웃나라에서는 '가장 잘 생긴 대통령'이라고 평가했는데, 사실 이 표현은 33대 대통령 해리 트루먼이 피어스를 평가했던 (부정적인) 말에서 유래한 것이다.
그의 초상화는 백악관에 전시된 역대 대통령 초상화 중 제일 잘생겼다. 그러나 대통령으로서의 그는 미인대회에 승리할 때 필요한 요소와 같은, 바로 그런 재능만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완전한 실수의 전형이며 나라에서 무엇이 진행중인지 알지도 못했고 설사 알았다고 해도 그 문제에 대해 뭘 해야 할지 몰랐을 것이다.

26대 대통령인 시어도어 루스벨트는 더욱 신랄하게 깠다.
작고, 능력도 보잘것없으며, 비천한 환경에 둘러싸인 정치인이며 강자에게 침묵하고 약자에게 비열하게 구는 작자였다. 노예제를 찬성하는 지도자들이 자신에게 어떤 일을 요구해도 그들에게 맞추어지도록 준비되어 있었다.

이쯤 되면 너무 까이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 안습. 이 평가는 오늘날에도 그대로 이어져서 대통령 인기 순위나 업적 평가에서도 링컨 이펙트 때문인지 전반적으로 바닥을 기고 있다. 그나마 뷰케넌과 앤드루 존슨, 워렌 하딩 등이 꼴지를 달려주고 있지만 존재감이 아예 없는 편이라 별로 위안이 되는 건 아닌 것 같다.

5. 그 외

재직 시절 엣라 추장에게 땅을 팔라고 편지를 보낸 인물(1854)이다. 그 유명한 시애틀의 유래가 된 그 추장 맞다.

19세기에 태어난 최초의 대통령. 또한 취임 당시 나이가 48세였기에 최연소 대통령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지금은 깨졌지만.
[1] 조지 워싱턴과는 지인관계였고 앤드루 잭슨과는 친구사이였다고 한다 [2] 참고로 그는 이 선언을 하기 전에 미국에서 파견한 각국 대사들에게 조언을 구했는데 그 중에는 당시 영국 대사였던 제임스 뷰캐넌도 끼어있었다. [3] 당시 쿠바는 스페인 식민지였다. [4] 북부 출신이면서 남부에 우호적인 사람을 뜻함. 참고로 줏대없는 사람이라는 뜻도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