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르그나와 수도 코랄 사이에 위치해 있다. 영주인 세리에 경은 국왕 월 그리크를 인정하고는 있지만 승산이 불확실하다는 이유(정확히는 자신의 가신들을 개죽음시킬수 없다는 이유였다.)로 국왕군 참가를 보류[1]했지만 정작 국왕이 떠난직후 라모나 기사단과 로아군으로 결성된 국왕군이 진짜로 나타나 자신을 방문하자 국왕에게 말했던 대로 가신들과 사병들을 소집해 국왕군에 합류한다.
합류한 후 첫 전투인 마레바 전투[2]에서 매복해 있다가 반국왕파 영주부대를 기습해 격파[3]했다.
그후 언급이 별로 없었지만 세리에 경은 탄가방면에 투입된 라모나 기사단을 대신해 비르그나의 수비를 맡았지만 파라스트군의 계략에 넘어가 방심했다가 기습을 당해 비르그나를 뺏겼다.
한편, 월 그리크는 포트남에서 타우를 사칭하는 도적들과 싸우다가 소꿉친구인 이븐을 만나고 타우산맥의 실체를 알게 된다. 또한 타우인들 역시 '꽤나 탁 트인 국왕'인 월 그리크와의 연결고리를 만들고자 3천의 병력을 파병하여 앞뒤로 포위당하여 위기를 맞은 월 그리크 이하 국왕군[4]을 위기에서 구해냈고 코랄 공략에서도 험준한 파키라 산맥을 넘어 코랄 왕궁을 후방에서부터 공격해 '개혁파 정부군'을 대 혼란에 빠뜨렸다.
[1]
말로만이 아닌 실제로 국왕군이 결성되어 코랄로 진군한다면 자신도 합류하겠다고 했다.
[2]
틸레든 기사단의 본거지였으나 틸레든 기사단은 단장이하 주요 지휘관들이 연금되어 무력화된 상황이었고 근위병단 대부분은 코랄에서 움직이지 않았음에도 친개혁파(개혁파에 적극 충성하기보단 대부분 이해득실을 따져 개혁파의 승산이 더 높다고 판단했다.)영주들의 병력이 주력이었으나 그수가 2만에 달했다. 참고로 국왕군은 총병력이 대략 6천명 정도였다.
[3]
이때문에 직후에 다른 방향에서의 훼이크(실질적인 병력없이 깃발만 잔뜩 올려 수천의 병력이 매복해 있는 것처럼 위장했다.)에도 넘어가 그 방향의 반 국왕파 군도 전의를 잃고 도주했다.
[4]
개혁파와의 협상에 따라 정예 주력군이 아닌 2천명의 영주군만으로 코랄 근교까지 데려왔으나 개혁파는 수틀리면 이들을 몰살시키기 위해 3천의 '정부군'외에
페르젠 후작의 사병 5천까지 동원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