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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C5AA65> 상평통보와 평양전[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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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892년부터 1894년까지 당시 평안도 관찰사 민병석의 주도로 평양에서 다량 주조되었던 조악한 엽전이다. 최후의 상평통보이기도 하다.2. 상세
민병석은 민씨 외척으로 1889년 평안도 관찰사로 부임하여 정부를 구워삶아 화폐 주조기관이었던 전환국을 평양에도 설치하게 하고 화폐를 주조하라는 명을 받아내었는데 1890년부터는 당오전을 주조하였으며 1892년부터 문제의 ' 상평통보'를 다량 주조하기 시작하는데 기존에 유통되던 상평통보보다 작고 주물과 모양이 조잡했으며 재질도 초기에는 상평통보와 비슷한 재질로 만드는 듯 했으나 점차 납, 아연, 철 등 저질의 재료를 써서 겉만 구리색이 나도록 만드는 등 일반 상평통보와 확연히 구분되는 조악한 저질의 주화였으며 백성들은 이 주화들을 일반 상평통보와 구분하여 평양전(平壤錢), 신전(新錢)이라고 불렀다.민병석과 주변 일당들은 일본으로부터 다량의 구리를 수입하면서도 최대한 구리를 적게 쓰는 방법으로 엄청난 수량의 저질 동전 '평양전'들을 만들며 폭리를 취하였다.
민병석의 악화 남발로 조정 내에서도 주조 정지를 시킬 것과 징벌에 대한 논의가 있었으나 청일전쟁으로 평양이 전쟁터가 되면서 자연스럽게 주조가 중단되어 평양전 건은 그렇게 흐지부지되었다.
그러나 이미 주조된 양이 엄청나서 시장에 광범위하게 돌아다녔고, 당연히 가치는 일반적인 상평통보보다 낮게 평가되었다고 한다. 2년 동안 얼마나 많이 주조되었으면 지금도 잔존하는 상평통보의 약 15%가 평양전일 정도라고 한다.
3. 같이보기
[1]
사진의 평양전도 비교적 이른 시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그나마 양호한 것으로 일반적으로 재질과 주물이 아주 조악해서 모양도 엉망이고 글자조차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 상태가 대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