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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FC 바르셀로나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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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C 바르셀로나의 감독으로 부임한 2008-09 시즌부터 트레블을 달성하며 통칭 세 얼간이와 메시의 시대로 대표되는 바르사의 최전성기를 열어젖혔다.
선수 시절 주장을 하는 등 바르셀로나의 레전드 출신이었으므로 선수 은퇴 직후인 2007년 바르셀로나 B팀의 감독으로 임명되었다. 과르디올라는 부임 후 곧바로 B팀을 1위로 이끌며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면서 확실한 눈도장을 찍었고, 이를 눈여겨 보고 있던 바르셀로나의 주안 라포르타 회장은 당시 성적 부진으로 경질을 앞두고 있던 프랑크 레이카르트 감독이 사임하자 그의 후임으로 펩 과르디올라가 지휘봉을 잡을 것이라고 선언혔다. 부임 당시 바르셀로나는 리그 3위, 2년 연속 무관이라는 부진한 성적표와 속칭 검은 양 사건으로 팀 분위기가 최악으로 치닫고 있던 상황. 그런데...
1.1. 혁명가의 등장
처음에는 선수로서 은퇴한지 얼마 되지도 않은 초짜 감독 과르디올라가 바르셀로나라는 명문 구단을 잘 맡을 수 있을지 이런저런 우려의 말들이 나왔다. 하지만 막상 1군 감독으로 데뷔하자마자 펩은 과감하게 대개혁을 실행하며 리빌딩 작업을 결정,[1] 호나우지뉴와 데쿠 그리고 두번째 시즌에는 사무엘 에투[2] 같은 핵심 선수들을 팀에서 내보냈다. 그러면서 메시, 이니에스타, 세르히오 부스케츠 등을 중심으로 시즌 초반부터 바르셀로나에 자신의 철학을 구현해내어 좋은 성적을 내더니 결국 감독 데뷔 시즌부터 6관왕 달성이라는 최상의 결과를 만들어냈다.이처럼 펩이 등장과 동시에 트레블을 성공시키며 축구계에 파란을 일으키자 유럽 언론들은 그를 두고 '전술 혁명가'라고 칭하며 요한 크루이프가 꿈꾸었던 이상적인 축구가 펩으로 인해 비로소 실현되었다고 평했다.
1.2. 데뷔 시즌 6관왕
펩이 부임하자마자 FC 바르셀로나는 2008-09 ~ 2009-10 시즌에 6관왕 #[3]이라는 대업을 달성하였으며 그 후로도 매 시즌 최소 2개 이상의 트로피를 들어올리며 4년이라는 짧은 부임 기간 내내 엄청난 성적을 남겼는데 사실 기간 대비 실적만 따진다면 당연히 과르디올라가 이견의 여지없는 역대 최고의 바르셀로나 감독 소리를 들어야겠지만, 현재 라 마시아로 대표되는 바르셀로나의 육성 시스템과 과르디올라가 이상적으로 구현해낸 토탈 풋볼과 티키타카라는 개념을 먼저 클럽의 색깔로 정착시킨 요한 크루이프의 존재 때문에 온리 원탑은 아니고 투탑으로 여겨지고 있다.[4]그 후 바르셀로나는 흔히 티키타카로 불리는 극강의 점유율 패스 축구를 완성하면서[5] 2000년대 후반~2010년대 초반까지 세계를 호령한 역대급 드림팀으로 평가받게 되었고 마찬가지로 바르셀로나 주전 선수들을 상당수 기용한 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 역시 '무적함대'라는 별명을 들을 정도로 2000년대 후반~2010년대 초반 둘째가라면 서러울 세계 최고의 국가대표 강팀이 되었다.[6] 이러한 면에서 과르디올라가 스페인의 계속되는 최강 행보에도 간접적으로 기여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감독으로서 과르디올라의 가장 큰 업적 중 하나는 리오넬 메시의 기량을 만개시킨 것이었다. 사실 정확히 말하자면 메시는 전임 감독 레이카르트 시절부터 이미 떠오르는 유망주로 주목받았고, 호나우지뉴가 막장화된 07/08 시즌에는 팀의 에이스로 활약하며 발롱도르 2위에 오르는 등 이미 슈퍼스타의 반열에 올라있었으므로 메시의 발견이나 활용법을 온전히 과르디올라의 공으로 돌리기는 어려울 수 있다. 다만 그때 메시에게는 여러 약점이 있었는데, 가장 큰 약점은 '도자기 스타'로 불릴 정도로 유리몸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다 과르디올라의 부임 후 체계적인 식이요법과 웨이트 트레이닝을 거치면서 메시는 이후 어떠한 거친 파울과 몸싸움, 혹사에도 부상당하지 않는 금강불괴로 재탄생하게 되었다. 또한 측면 위주의 플레이를 펼치던 메시에게 측면뿐만 아니라 중앙에서도 적극적으로 활동하도록 주문했으며 결국 제로톱의 중심에 메시를 놓으면서 메시의 득점력과 찬스 메이킹 능력을 극대화했으며 메시는 뛰어난 경기력과 가공할만한 스탯을 동시에 거머쥐며 단숨에 세계 최고의 선수로 등극했다.
지금 시점에서 본다면 메시의 실력이 워낙 출중하니 과르디올라가 아니어도 언제, 어느 팀에서라도 빛을 보게 되었을 거라는 가정을 할 수 있겠지만 메시가 유망주에서 한 단계 위로 올라서야 할 중요한 시점에 과르디올라를 만나면서 감독과 선수간에 엄청난 시너지를 낸 것을 보면 과르디올라의 공로가 매우 크다는 걸 알 수 있다.[7]
물론 알렉산드르 흘렙,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의 영입 같은 잘못도 있었지만, 잘못된 선수 영입으로 돈을 날리는 일도 적은 편. 다만 선수를 영입할 때의 보는 눈은 개선할 여지가 보인다. 25M을 허공에 흩뿌린 영입과 같았던 드미트로 치그린스키[8]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이럼에도 불구하고 바르셀로나가 흔들리지 않는다는 건 바르셀로나의 유스가 워낙 튼튼한 이유도 있다. 또한 영입 자체도 위의 두개가 워낙 커서 그렇지 나머지는 꽤 준수한 영입이었다. 특히 하비에르 마스체라노의 영입은 처음에는 돈낭비라고 까였으나 그를 센터백으로 활용하는 신의 한수를 두었다. 마스체라노가 없었다면 얇은 바르셀로나의 수비진으로는 챔피언스 리그와 리그 우승을 동시에 차지할 수 없었을 것이다. 막스웨우, 아드리아누 코헤이아, 알렉시스 산체스의 영입도 제 값 이상은 했다는 평. 다비드 비야나 세스크 파브레가스 같은 경우는 본인 의사만으로 영입한 것은 아니었지만 나쁘지 않은 활약을 펼치는 중이다.[9]
애초부터 선수들의 사생활 문제로 몰락해가는 팀을 살리기 위해 투입된 만큼[10] 일 중독자로 유명했다. 항상 수첩을 들고 다니며 전술과 전략을 연구하고, 선수들 각각 움직일 수 있는 경로나 포지션 같은 걸 따로 연구하며, 온갖 컨디셔닝은 물론 선수단 식단 메뉴까지 하나하나 다 챙기는 극도로 완벽주의적 매니징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완벽주의적 성향을 선수들에게도 요구하는 것으로 악명(?)이 높은데, 가장 유명한 일화가 매일 밤 12시에 아무 선수에게나 전화를 걸었던 사건이다. 선수가 집에서 휴식을 취하다 전화를 받으면 아무 일 없이 넘어가지만 클럽에서 노는 등 집 밖에 있다가 전화를 안 받으면 즉각 불이익이 돌아갔다. 젊은 선수은 잘 따랐지만 앙리나 아비달 같은 고참 선수들은 매우 불편해 했다고. 메시의 식습관을 통제하기 위해 구단 내 탄산음료 자판기를 몽땅 없애버리라고 명령한 적도 있으며 트레이닝 세션에서도 무엇을 먹는 지까지 다 통제해서 미쳐버리는 줄 알았다고 티에리 앙리가 증언한 바 있다. 심지어 헤라르드 피케와 같은 요주의 인물(?)들은 아예 사립탐정까지 붙여서 감시했다고 한다. 이렇게 강한 통제력과 철저한 매니지먼트를 추구하는 그의 성향은 라마시아 시절부터 그를 스승으로 모셔온 대다수의 선수들에게는 익숙한 일이었지만[11] 자유분방한 성향과 극강의 에고를 지닌 즐라탄같은 선수는 이에 적응하지 못했기에 펩과 충돌하게 되었다.
이렇게 일에 매달려서인지 건강이 좋지 않다는 소문이 있다. 과르디올라 감독 본인도 쉬고 싶은지 바르셀로나 감독직을 머지 않아 그만두고, 휴식 후 다른 팀의 감독을 맡는 걸 생각하고 있다고 인터뷰하기도. 그리고 그것은 사실이 되었다.
바르셀로나의 선수진이 워낙 좋아서 선수빨이라는 억까도 듣는다.[12] 그래서 이러한 논란을 없애기 위해서 다른 팀의 감독을 함으로써 능력을 보여야 한다는 소리도 많았다. 그러나 2010년대 바르셀로나 선수단의 압도적인 팀워크와 플레이 스타일을 구현한 것이 과르디올라의 능력임에는 틀림없다. 밥상에 숟가락만 얹었다는 식으로 그의 능력을 폄하하기엔 그 이전 최악이었던 바르셀로나의 상황을 생각하면... 오히려 지금의 밥상 자체를 펩이 직접 차린 것이라고 보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13] 또한 세르히오 부스케츠와 페드로 로드리게스, 제라르 피케 등을 지금과 같은 세계적인 선수들로 성장시킨 것에도 그의 공이 아주 크다.[14]
1.3. 역대 최강의 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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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부임 첫 시즌에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끌며 트레블을 완성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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웸블리에서 다시 한 번 퍼거슨의 맨유를 격파하며 빅이어를 들어올린 과르디올라 |
기자회견에서 1년의 휴식 후 자신의 미래를 결정하겠다고 공식 선언. 그런데 벌써 맨유, 첼시, AC밀란, 인테르와 같은 유수의 클럽으로부터 링크가 나고있다. 2012-13시즌이 끝난후 여름에는 돌풍의 핵이 될 듯. 사실 이전부터 건강에 대한 얘기도 많았고, 감독을 오래 할 생각이 없다는 뉘앙스의 말을 하기도 했었으며, 계약 자체도 매년 1년 단위 계약을 고수해왔기 때문에 대다수의 바르셀로나 팬들은 안타까워하면서도 어쩔 수 없다는 분위기. 결국 4개 시즌 동안 무려 14개의 트로피를 들어올리며 바르샤를 우주 최강팀으로 만든 혁명가 과르디올라는 끝내 작별을 선언하고 쏟아지는 박수갈채와 함께 바르셀로나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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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후 안식년에 들어간 와중에도 바이에른, 첼시, 맨유 등의 빅클럽과 꾸준히 링크가 나던 끝에 마침내 2013-14 시즌부터 바이에른 뮌헨의 감독으로 부임이 확정되었다. 바이에른이 부인기사 낸지 불과 12시간도 안돼서 오피셜이 떴다. 계약기간은 2016년까지라고 한다.
2. FC 바이에른 뮌헨 감독
2.1. 2013-14 시즌
2012-13 시즌 후반기에 다음 시즌 감독으로 부임하게 된다는 오피셜이 발표 되었는데, 이 시즌에 바이에른 뮌헨이 무려 트레블에 성공하며 그 때문에 펩 입장에서는 시작부터 막대한 부담을 안고 사령탑에 오르게 되었다. 펩이 바르사 이후의 행선지로 바이에른을 택한 이유는 클럽의 문화와 전통, 유스 시스템 등 많은 면에서 본인의 축구 철학과 가장 잘 맞는 팀이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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펩은 부임 후 콤팩트한 패스축구를 바이에른에 재현하기 위해 적합한 선수들을 속속 영입해온다. 4월에 이적을 확정한 마리오 괴체 역시 펩이 원했고, 선수 본인도 과르디올라 밑에서 성장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기 때문. 그 외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행이 유력했던 옛 제자 티아고 알칸타라 역시 옛 스승을 찾아 바이에른으로 이적했고, 그 외에 기존 선수들 중에 부진하던 하피냐나 디에고 콘텐토를 재발견하는 한편, 성향상 방출이 예상된 아르연 로번의 활용과 필립 람의 수비형 미드필더로의 포지션 변경 또한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핵심 선수들의 이탈도 만만치않다. 독일의 스트라이커 마리오 고메스는 브라질 월드컵을 1년 앞둔 시점에서 더 많은 출전기회를 위해 ACF 피오렌티나로 이적한다. 루이즈 구스타보 또한 월드컵을 염두에 두고 많은 출전을 위해 VfL 볼프스부르크로 떠났다. 펩은 부임당시 모든 선수들은 공평한 기회를 부여받을거라 밝혔고, 실제로 현재까지도 디에고 콘텐토, 클라우디오 피사로, 하피냐, 다니엘 반 바이텐 등 많은 서브자원들에게 프리시즌/정규시즌을 가리지 않고 출전기회를 부여해줬다.[15] 하지만 월드컵을 눈앞에 둔 시점이다보니 바쁜 주전경쟁속에 있는 구스타보와 고메즈를 눈물을 머금고 보내줄 수밖에 없었다.
부임 후 울리회네스컵, 텔레콤컵, 리가토탈컵, 아우디컵 등 많은 프리시즌 대회들에서 전승을 거뒀다. 하지만 7월 28일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와의 부임 후 첫 데어 클라시커에서 주전들의 부상으로 인해 티아고 알칸타라를 볼란치로 내리는 변형적인 포메이션으로 도박수를 던졌다가 2대4로 패하며 첫 공식경기에서 패하고 말았다.
시즌 초반에는 지난 시즌 유프 하인케스의 바이에른처럼 시원시원한 공격력이나 압도적인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점유율만 높지 득점력이 떨어지는 모습을 보이며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래도 아랑곳 하지않고 더욱 콤팩트한 포지션 플레이와 후방 빌드업을 밀어붙히며 자신의 철학을 녹아들게 하는데 성공했다. 현재 펩의 바이에른은 리가, 컵, 챔스 가리지않고 무패행진을 달리고있으며, 분데스리가 최소 실점행진 또한 이어가고있다.
UEFA 슈퍼컵에서 수많은 엘 클라시코에서 맞붙었던 적장 주제 무리뉴가 이끄는 첼시 FC를 만났다. 경기는 바이에른이 드라마틱한 PK승을 거두며[16] 펩은 바이에른 감독 취임 후 곧바로 첫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개막전 VfL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를 3대1로 시원하게 꺾으며 좋은 정규리그 스타트를 끊었다. 챔스에서도 PFC CSKA 모스크바와 맨체스터 시티 FC, FC 빅토리아 플젠을 압도적으로 털었다. 게다가 맨시티전 3-1 승리는 자그마치 맨시티 원정에서 승리한 것이다.[17] 현재 5승0패 15골 2실점으로 조1위를 확정한 상태다. 하지만 2013년 12월 11일 알리안츠에서 벌어진 對맨시티 전에서는 전반 10분 전후로 뮐러와 괴체가 각각 한 골씩 두 골을 넣으며 쉽게 승리를 챙기는 듯하였으나 실바의 골, 콜라로프의 PK와 보아텡의 삽질로 인한 제임스 밀너의 골로 3:2로 패배하고 말았다. 이 경기에서 ' 토마스 뮐러와 21명의 바보들'이라는 짤이 등장하였다.
분데스리가 12라운드 FC 아우크스부르크와의 홈경기에서 3대0 승리를 거두며 분데스리가 역사상 최다 무패 기록인 36경기 무패를 경신했다.
2013-14 리가 우승의 패권을 건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원정에서 치른 데어 클라시커에서 마리오 괴체와 티아고 알칸타라를 연이어 투입시키는 후반 승부수를 통해 3대0으로 도르트문트를 원정에서 대파했다. 무패행진은 38경기로 늘었으며 현재 11승2무 승점35점으로 리가 단독선두를 이어가는 중.
그리고 3일 뒤 CSKA 모스크바 원정에서 폭설 속에서도 클래스 차이를 보여주며 3대1 승리를 거둔다. 이 승리로 바이에른은 지난 시즌 8강 유벤투스전 승리 이후 챔스 10연승을 달성했고, 2002-03 시즌 FC 바르셀로나가 가지고 있던 기록을 깨뜨렸다.
이후 52경기 무패 행진, 리그 1경기당 2골 이상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으로 3월 26일, 유럽 5대 리그 사상 최단 기간 우승기록을 세웠다.
하지만 2014년 3월 우승 확정 이후 선수들의 미칠 듯한 동기저하가 찾아왔고 최근 10경기에서 4승만을 거두었다. 아우크스부르크와의 원정 경기에서 1:0으로 패하면서 53경기 무패 행진이 깨짐과 동시에 무패 우승에도 실패했고, 전반기에 원정에서 3:0으로 이겼던 도르트문트에게 이번엔 반대로 홈에서 3:0으로 털리고 말았다. 또한 레알과의 챔스 준결승전에서 작년 챔스에서 바르샤를 찢던 포스는 사라지고 레알 마드리드의 역습에 당하며 1차전에서는 1:0, 2차전에서는 4:0으로 통합스코어 5:0이라는 대참사를 겪었다. 이후 인터뷰에서 "볼 소유가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
후에 밝혀진 내용으로는 1차전 패배 후 펩의 전술보다 이전 스타일의 전술로 경기하고 싶다고 말한 몇몇 선수들이 있었고, 펩이 이에 동의해 2차전을 준비했다고 한다. 볼 점유에 관한 위의 인터뷰도 이러한 내용에서 나온 것 같다.
이후 전 시즌 12월부터 급격한 바르셀로나화를 불만족스러하고 팀의 색깔을 잃어버렸다며 펩과 티키타카를 디스했던 프란츠 베켄바워 명예회장의 발언이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레알에게 참패를 당한 후 인터뷰에서 바이에른 선수들의 멘탈을 디스하면서 동시에 펩의 전술을 다시금 디스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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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적으로 바이에른은 월드컵 종료 후 바로 다음 시즌에 아주 처참한 성적을 거둔 경우가 많았는데[18][19], 레전드들과 팀의 높으신 분들도 많은 우려를 하고 있으나 펩은 "이 난관은 이미 헤쳐봤다."라고 이 우려를 종식시키는 인터뷰를 했다. 실제로 펩은 남아공월드컵을 우승하면서 7경기를 모조리 뛰고 돌아온 스페인 국대의 주전들을 이끌고도 바로 다음 시즌인 2010-11시즌 라리가와 챔피언스리그를 우승했다. 바이에른에서도 그의 마법이 통할지 지켜봐야 할 것이다.
2.2. 2014-15 시즌
2014-15 시즌을 앞두고 브라질 월드컵 우승멤버인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 멤버들이 휴가중이어서 리베리, 알라바, 레반도프스키를 빼고는 거의 2군들로 시즌을 준비 중인데도 텔레콤컵 등 프리시즌 모든 경기에서 승리를 거두고 있다.[20] 그리고 바이에른 팬들이 희망에 젖을 발언을 자서전 발간을 위한 밀착취재도중 직접 했는데, 드디어 자신이 완성시키고 성공가도를 이끈 티키타카가 마음에 들지 않으며 새로운 전술을 모색하는듯한 뉘앙스를 풍기는 발언이었다. 2013-14 DFB-포칼 결승전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전에서 썼던 변형3백을 이용한 빠른 템포의 공격을 사용할 수도 있고, 유프 하인케스의 피지컬과 페이스로 찍어누르는 깡패스러운 닥공축구가 재현되기를 많은 팬들이 바라고 있다. 그리고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 사비 알론소, 메흐디 베나티아등의 보강을 통해 유럽 최정상급의 스쿼드를 구성했기에 구단과 팬들의 요구수준역시 매우 높아졌다. 적어도 리가 우승, 포칼 우승,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진출 정도는 해야 불만이 없을 시즌이기에 펩이 어떻게 시즌을 지휘해 나갈지 귀추가 주목되는 중이다.2014년에 바이에른 하면 빼놓을 수 없는 옥토버페스트에 바이에른 선수단과 함께 참여하였다.
2014-15 시즌이 시작, 그가 말한대로 월드컵 징크스따윈 눈씻고 찾아볼 수 없고 여전히 강력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슈퍼컵에서 도르트문트에게 무기력하게 패했으나 이건 월드컵과 휴가로 독일 국대의 주축들이 복귀한 지 1주일도 채 되지 않은 터라 조직력도 끌어올리지 못했기에 크게 문제가 되진 않았다. 그리고 정규리그 경기에서 승리하며 복수하는 데도 성공했다.
현재 리그에서 무패행진을 기록 중인 데다 포칼도 가볍게 8강 진출, 12라운드까지 단 3실점만 허용했을 정도로 승승장구중이고, 챔스에서도 4연승으로 가장 먼저 조별리그 1위를 확정지었다. 5라운드 맨체스터 시티 원정에서 2대 3 역전패를 당하긴 했으나 이른시간 메흐디 베나티아가 퇴장당해 무려 70분동안 10명이서 싸웠으나 머릿수 차이가 느껴지지 않을만큼 팀의 클래스를 여실없이 보여주며 선전한 경기였다. 막판 수비들의 어이없는 연속된 실수가 화를 불러왔을 뿐 오히려 경기력은 칭찬해줘야하는 점이다. 유럽 최정상의 스쿼드 뎁스라는 평이 무색할 정도로 부상신이 강림하여 스쿼드가 반토막이 났지만 펩의 적절한 용병술로 계속해서 승리를 챙기고 있다.그리고 챔피언스리그 16강전에서 만난 샤흐타르 도네츠크 원정은 무재배였으나 홈경기에서 7:0으로 압승하며 가볍게 8강에 진출.
바이에른에서의 2년차 시즌 절반쯤 지난 시점에서, 이번 시즌도 VfL 볼프스부르크전 충격패를 제외하고는 압도적인 위용을 뽐내고 있는 데다 아르연 로번 활용의 극대화, 마누엘 노이어의 스위핑을 겸비한 높은 라인배치로 점유율을 확보하고 수비까지 겸하며 유럽리그 최소실점을 이어가며 호성적을 거두고 있다. 다비드 알라바와 필립 람도 매우 잘 다루는데, 두 선수에게 중앙지향적인 임무를 부여해 점유율 확보와 공-수 양면에서 고루 이득을 보고 있다.
그러나 단점도 적잖게 보이는데, 우선 토마스 뮐러의 장점을 잘 활용하지 못하는게 아쉬운데 뮐러도 스탯을 평타 정도는 쌓고있지만 침투와 공간 확보에 강점이 있는 뮐러가 그냥 2선에서 물러나 볼만 돌리고 있는건 좋은 장면이 아니어서 아쉬움을 자아내고 있다.
그리고 큰 기대를 모았던 슈바인슈타이거 - 사비 알론소 조합도 지금까지 보여준 경기만으로 평가하자면 실망스러움 그 자체인데, 플랫 3백이나 4-1-4-1을 즐겨쓰는 펩의 성향상 둘을 함께 기용하기엔 전술 자체가 맞지 않는 것으로 보는 것이 맞다. 그리고 물론 알론소나 슈슈 중 한 명만 선발로 세울 경우에는 경기력이 확연히 좋아진다. 후반기 샬케전 무재배 이후 4경기 동안 무려 20골을 때려박으며 연승 행진 중인 것에서 증명된다.
그 후 리그에서는 무난하게 양학을 하면서 리그 우승을 빠르게 확정지었다.
하지만 챔피언스리그 8강에서 FC 포르투와의 원정 경기에서 3:1로 패하면서 강한 비판을 받게 된다. 가장 큰 이유는 현재 세계 최고의 명장이라는 감독이 로베리가 부상으로 빠진 상황에서 가져온 플랜B로 한심한 경기력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그러나 8강 2차전 홈경기에서는 다시 6:1이라는 깡패 스코어로 승리하면서 비판을 잠재웠다. 하지만 포칼컵 4강 도르트문트와의 경기에서 경기도 패하고 부상 복귀한 아르연 로번이 다시 부상으로 시즌 아웃되고, 레반도프스키까지 부상으로 나가면서 앞날이 캄캄해졌다.
거기다 다음 챔스 4강 상대는 MSN을 장착한 FC 바르셀로나. 여러모로 관심받는 매치가 성사됐다. 바르셀로나의 전성기를 이끈 펩과 바르셀로나의 대결, 티키타카로 바뀐 바이에른과 반대로 티키타카를 점점 버려가는 바르셀로나라는 점은 많은 축구팬들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1차 캄프누 원정에서 3:0으로 패했다. 전반전에 펩이 들고나온 전술은 무려 3백 대인마크. 그 MSN을 상대로 3백을 세웠으며 바르셀로나 선수단 전원에게 맨마킹을 걸었다. 부상신 강림으로 개박살난 팀으로 이런 전술을 들고 나온 것조차 대단하지만, 문제는 경기 시작 15분 만에 파훼되어 버렸다는 점. MSN이 3백을 상대로 물 만난 고기처럼 뛰어다닌 것도 있지만 결정적으로 펩이 전술에 수정을 가한 이유는 바로 바르셀로나의 골기퍼 테어 슈테겐. 슈테겐의 장기인 정확한 롱패스가 메시의 백헤딩으로 수아레즈가 자리잡은 수비 뒷공간으로 이어지면서 실점 기회를 맞았다. 아마 테어 슈테켄이라는 선수를 분석하지 않은 것 같았지만 어쨌든 이렇게 한방 먹고 나선 다시금 4백으로 회귀, 축구 역사상 손에 꼽을 명경기를 잘 이어나가다가 70분경 원정골을 위해 프레싱을 시도하자마자 메시에게 완벽하게 털렸다. 펩 입장에선 원정골이 엄청나게 중요한 순간이었으니 라인을 높인 것이 이해가 가지만 본인이 메시를 완성했으면서 최악의 수까지 생각을 못한 건 아쉬운 대목이다.[21] 국내 해축팬들 뿐만 아니라 독일에서도 폭풍까임을 받게 된다. 아무래도 팬들의 입장에선 2년 전 7:0으로 바르셀로나를 두들겨 패던 팀이 3:0으로 지는 상황에서 화가 안날 수가 없는 듯하다. 거기다가 국내 몇몇 축구 사이트에서는 펩 광신도들의 쉴드까지 합쳐지면서 펩에 대한 비판이 많아졌다.[22] 그 후 대망의 2차전에서는 베나티아의 선제골로 희망이 생기나 했으나 그 후 네이마르에게 원정 골로 두 골을 먹히면서 사실상 올라갈 가능성이 없어지게 된다. 후반에 루이스 수아레스가 햄스트링으로 인해 교체되고, 바르사가 이후 리그 컵과 리그 경기에 대한 대비차원에서 체력관리를 위해 느긋느긋 경기를 진행한 덕분에 레반도프스키와 뮐러의 추가 득점으로 홈경기는 3:2로 승리하면서 체면치레는 했다.
2014-15 시즌은 리그 우승, 포칼컵 4강, 챔피언스리그 4강으로 마쳤다.
아무래도 2013-14 시즌은 부임 시즌이었고, 리그, 리그컵 더블에 챔스 4강은 나쁜 성과는 아닌지라 큰 비판도 없었고 2년차를 기대하는 시각들이 많았지만, 오히려 부임 시즌보다 못한 성적표를 받게 되면서 독일내에서도 펩에 대한 시각이 많이 비판적으로 바뀌었다. 물론 리그 우승은 빠르게 달성하였지만, 그 바이에른의 리그 연속 우승이 시작되기 전의 우승 팀이 어디인지, 그 팀 에이스들이 어디있는지를 보면 그다지 대단한 성과라고 생각할 순 없고, 차포 뗀 도르트문트에게 일격을 당한 포칼컵 4강과 전 세계 축구팬들의 기대를 모았던 챔스 4강 바르셀로나 전의 패배는 펩이 현재 세계 최고의 명장인지에 대한 의문을 가지게 만든 시즌이었다. 부임 첫 해 만에 트레블을 달성한 바르샤의 루이스 엔리케 감독으로 인해 여태까지의 호성적이 단순 선수빨이 아니냐는 비판도 많아졌다.
2.3. 2015-16 시즌
바이에른 구단에서도 유임이냐 모가지냐에 대한 논쟁이 있었지만 일단 유임으로 가닥이 잡혀가면서 2015-16 시즌에도 바이에른을 지휘하게 됐다. 2015-16 시즌에는 과연 바이에른에서 명예를 회복할 수 있을지 아니면 라이벌의 레알 마드리드 시절과 같이 흑역사가 될지 판가름 할 수 있는 중요한 시즌이 될 것이다.그런데 첫 경기부터 졌다. 한국 시간으로 2015년 8월 2일 오전 3시 30분 폭스바겐 아레나에서 열린 볼프스부르크와의 슈퍼컵 경기에서 1:1(PK 5:4)로 졌다. 덕분에 펩빡이 언제 잘리나며 폭풍같이 까이고 있지만 시즌 전반기가 지난 현재 바이에른 걱정은 쓸데없다는 걸 보여주듯 모든 대회에서 순항중이다.
2015-16 시즌 전반기가 끝나가는 시점에서, 재계약을 하지 않고 있는 데다가 맨시티 등과 계속해서 링크가 뜨면서 앞으로의 행보에 의문이 제기되었지만 시즌 전반기가 끝난 뒤에 구단과 재계약에 대해 의논하겠다고 밝혔다. 영국 타블로이드 발이 전부이긴 하지만 맨유와의 링크가 났다. 현재 감독인 루이 판할이 챔스에서도 떨어지고 본머스에게도 지는 등 똥을 싸지르고 있기 때문에 과르디올라에게 접근하는 듯했다. 하지만 이미 정황상 맨시티는 바르샤 황금세대 당시 보드진[23]을 앞세워 펩과 이야기를 상당히 마무리 지은 상황이다.[24] 더군다나 펩의 형 페레 과르디올라는 이미 2013년부터 런던에서 맨체스터로 본인의 에이전트 회사 오피스를 옮겼으며 소리아노 맨시티 회장 주도하에 시티측과 함께 스페인 세군다 디비전에 있는 지로나 FC의 지분을 공동으로 사들이고 투자하며 뉴욕시티 마냥 위성구단을 만드는 사업을 벌이고 있다.[25] 처음부터 펩의 맨시티행은 정해져 있던 셈이다.[26] 결국 맨유 보드진은 간보다가 포기하고 차기 감독으로는 무리뉴로 선회한 듯 하다.
독일의 '스포르트1'에서 안첼로티가 바이에른과 다음 시즌부터 3년간의 계약에 합의에 도달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빌트와 스카이스포트 등 공신력있다는 언론들도 과르디올라가 바이에른을 떠날 것을 점치고, 안첼로티도 바이에른의 감독이 될 "가능성은 90%다"라는 발언을 한 것으로 보아 펩이 이번 시즌이 끝나고 바이에른을 떠나는 것이 기정사실화되었다. 오피셜은 아니지만, 빌트와 키커에서 펩의 맨시티행을 보도하는 기사가 떴다! 사실상 오피셜만 없을 뿐 맨시티 행이 확실시 되었다.
2015-16 시즌 챔피언스리그 16강에서 강호 유벤투스를 만나서 1차전 원정에서 2:0 리드를 지키지 못하고 2골을 내리 실점하며 2:2 무승부에 만족해야만 했다. 그래도 원정 2:2면 나쁘지 않은 결과고 2차전은 홈인지라 바이에른이 우세하다는 전망이 많았지만 마시밀리아노 알레그리 감독의 판짜기에 말려들어가면서 홈에서 전반을 0:2로 밀린채 마치게 되었다. 감독 커리어에서 처음으로 챔스 16강 광탈을 당할 위기에 놓이게 되었으나 레반도프스키와 뮐러의 헤더골로 극적으로 경기를 2:2 원점으로 만들며 연장전에 돌입, 결국 교체투입한 티아고 알칸타라와 킹슬리 코망의 골로 4:2로 역전하며 구사일생으로 8강에 진출했다. 전반 판짜기에서는 패배했지만 후반전과 연장전에서의 적절한 교체카드 투입과 전술수정으로 만회했다.
챔피언스리그 8강에서는 SL 벤피카에게 1차전 홈에서 1:0 승, 2차전 원정에서 2:2 무승부를 거둬 다시한번 4강에 진출했다. 이로써 감독으로서 참가한 챔피언스리그 7시즌에서 모두 4강 이상의 성적을 내게 되었다.
그리고 4강전에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랑 만나게 되었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는 디에고 시메오네 감독의 지휘하에 라리가 FC 바르셀로나, 레알 마드리드 양강의 독주체제에서 기적적으로 이뤄낸 13/14 시즌 리그 우승, 챔피언스리그 준우승을 바탕으로 명실상부한 유럽 탑클래스급의 강호로 올라섰고, 바이에른 뮌헨과의 공식전은 1974년 유로피언컵 결승전(재경기 포함) 2경기가 전부였기에 매우 흥미로운 매치업. 시메오네 감독과의 지략싸움이 기대된다.
하지만 비센테 칼데론에서 치러진 원정 1차전에서, 다소 의아한 선발 라인업을 보여주면서 팬들로부터 비판을 받고 있다. 특히 올 시즌 팀내 에이스급 활약을 보여주는 뮐러를 벤치에 놓고 코망을 선발로 기용한 점이 중심적인 비판.[27] 이 외에도 부상으로 인해 훈련조차 소화하지 못했다는 리베리를 후반에 교체로 내보낸 것, 알라바를 센터백으로 돌리면서 베르나트를 레프트로 기용한 것[28] 등에 대해서 의문이 나오는 상황이다. 물론 결과론적인 비판이지만, 0:1의 패배를 맞이한 순간부터 펩 역시 그 결과에 대한 책임에서는 자유로울 수 없는 상황이다.
그리고 홈에서 열린 2차전에서 전반전 압도적인 경기력 끝에 사비 알론소의 프리킥 선제골로 기세를 올렸고, 페널티킥까지 얻어내어 2차전 스코어 2:0, 전체스코어를 2:1로 역전시킬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지만 토마스 뮐러의 킥이 얀 오블락의 선방에 막혀버렸다. 결국 후반전에 페르난도 토레스와 앙투안 그리즈만의 역습에 치명적인 원정골을 실점하고 말았다. 그래도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가 희망을 살리는 골을 넣었으며 마누엘 노이어가 토레스의 페널티킥을 막는등 마지막까지 1골 싸움으로 몰고갔지만 결국 2:1로 경기 종료. 승리는 거뒀지만 합산 스코어 2:2, 원정 다득점 우선 원칙에 의해 또다시 펩의 바이에른은 챔피언스리그 4강에서 좌절하고 말았다. 펩 부임후 바이에른은 3번의 챔스 4강에서 레알 마드리드 CF, FC 바르셀로나,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라는 라리가 3강을 만났고 결국 그들을 이겨내지 못했다. 이 부분이 전임 감독 유프 하인케스의 경우, 라리가 클럽에 굉장히 강했고 특히 2011-12 시즌 4강, 2012-13 시즌 4강에서 레알 마드리드와 FC 바르셀로나를 연속으로 꺾고 올라갔기에 여기에 대비되어 더더욱 팬들로부터 지탄을 받았다. 이후, 2015-16 분데스리가 우승을 차지하면서, 바이에른 뮌헨의 분데스리가 역사상 최초의 4연패로 이끌었다.[29] 리그 내 우승 경쟁자인 보루시아 도르트문트가 팀 역사상 최다 승점을 기록하였음에도 이를 따돌리고, 우승을 차지하며 바이에른에게 리그 4연패를 안기고 맨체스터 시티 FC로 떠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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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바이에른 뮌헨 시절 총평
펩 과르디올라의 바이에른 뮌헨 시절은 리그에서의 압도적인 모습과는 달리 챔피언스리그에서의 거듭된 우승 실패로 인해 대체적으로 좋지 못한 평을 받고 있으며, 펩 본인도 2024년 인터뷰에서 자신의 바이에른 뮌헨에서의 커리어는 실패라고 스스로 인정했다. #한때 펩이 바이에른을 떠나며 리그 3연패, 3연속 챔피언스 리그 4강, 포칼 2회 우승을 두고 이것이 성공이냐 실패냐에 대해 많은 기사 및 분석들이 쏟아졌었는데, 챔피언스 리그에서는 단순히 결과뿐만 아니라 경기 내용마저 좋지 못했기에 부정적인 평가가 더욱 우세한 상황이다. 다만 마지막 시즌 챔스 4강에서 맞붙었던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디에고 시메오네 감독은 펩의 바이에른을 두고 자신의 감독 경력 가운데 상대해 본 팀 중 가장 최고의 팀이라고 극찬하기도 했다.
- 박문성 - 과르디올라의 뮌헨은 실패한 건가?
- 키커지의 프랑크 루센 칼럼 - [루센 칼럼] 펩의 뮌헨, 그들의 4연패가 존중받는 이유
- 한준희, 장지현의 원투펀치 - 과르디올라의 뮌헨, 성공인가 실패인가?
펩이 나간 이후 뮌헨은 유프 하인케스 감독이 잠깐 소방수로 부임했던 때를 제외하면 카를로 안첼로티, 니코 코바치에 이르기까지 오히려 펩이 있었을 때보다도 챔피언스 리그에서 더 나쁜 성과를 보여줬기 때문에 일부 펩보이들로부터 3년 연속 4강이라는 펩의 성적이 특별히 못한게 아니라는, 한술 더 떠 오히려 펩이 있었기에 그 정도 성과를 거둔 거라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이후 2019-20 시즌에 바이에른이 트레블을 성공하며 감독이었던 한지 플릭이 저 시절보다 더 얇고 선수 클래스도 좋다고 볼 수 없는 스쿼드로 바르셀로나를 묵사발[30]을 내는 등 엄청난 화력으로 챔스 전승 우승과 트레블을 거머쥐게 되며 옹호 여론은 완전히 사라지고 비판만이 남았다.[31] 단순히 챔스 우승에 실패한 것뿐만 아니라 바이에른의 기록이라고는 생각할 수가 없는 최악의 챔스 토너먼트 원정 성적(1승 4무 4패), 바이에른이 항상 강세를 보였던 스페인 팀 상대로 3연속 챔스 토너먼트 탈락 등 펩이 보여준 끔찍한 내용을 생각하면 참작의 여지가 전혀 없다.
게다가 맨체스터 시티에 부임한 뒤에는 바르셀로나 시절의 위상을 회복한 걸 넘어서 어떻게 보면 그보다 더 성공했다고 볼 여지도 있게 된지라[32] 과르디올라의 해당 시기는 반박의 여지가 전무한 그의 커리어의 오점으로 남게 되었다.
2.4.1. 챔피언스리그
두 시즌 연속으로 챔피언스 리그 결승에 진출했던 팀이자 트레블을 이룬 팀을 그대로 물려받고 챔스 우승은 커녕 결승 진출조차 못했다. 그 과정에서 3년 동안 레알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ATM으로 이어지는 라리가 3대장에게 탈락하고 만다. 또한 3년간 챔스 원정에서 4승 4무 8패로 바이에른이라는 클럽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성적표를 기록한다. 팬들이 기대한 그림은 리누스 미헬스의 아약스 스쿼드를 물려받은 슈테판 코바치가 그랬던 것처럼 펩이 하인케스가 이룩한 역대급 팀을 이어받아 바이언을 유럽의 왕으로 만드는 것이었을 게 자명했다. 헌데 그 높은 기대치에 비해 결승은커녕 3년 연속 4강에서 탈락했고, 심지어 그 과정에서 내용마저 끔찍했으니 펩에 대한 시선이 고울 수가 없다. 특히 펩은 2012-13 시즌에 바르셀로나의 점유율 축구를 7-0으로 깨부순 바이에른을 갖고 바르셀로나 시절처럼 점유율 축구를 하겠다며 막강하던 트레블 스쿼드를 자신의 입맛대로 바꿔버렸는데 결과와 과정을 모두 가져오지 못했으니 엄청난 비판을 들었다.펩 다음으로 바이에른 뮌헨의 지휘봉을 잡은 카를로 안첼로티와 니코 코바치도 엄청난 비판을 듣고 챔피언스 리그에서 대실패했으나 분데스리가 우승만큼은 달성하며 체면치레는 했다.[33]
바이에른에서 챔피언스리그 우승에 실패한 이유로 라리가 3대장이라는 대등한 상대와 붙었기 때문이라고 쉴드를 치려는 시선도 있지만 엄밀히 따져보면 라리가 3대장을 만났다는 점도 면죄부가 될 수 없다. 바이에른 뮌헨은 펩이 감독으로 부임하기 이전까지 스페인 팀들에게 강세를 보여왔었던 팀이다.[34] 이와 더불어 직전 시즌 구단 역사상 최고점을 달성한 팀을 그대로 물려받았고 마리오 괴체와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 아르투로 비달과 같은 수준급 선수들이 추가되었는데도 펩이 부임한 이후로 라리가 3대장에게 차례로 돌림빵을 당했으니 팬들 입장에서는 열불이 나지 않을수가 없다. 그나마 14-15 시즌의 MSN 라인이 버티고 있던 바르셀로나 상대[35]로는 해당 시즌의 부상병동도 고려하면 명백히 약세였던 것은 맞다.[36] 하지만 13-14시즌 레알 마드리드와의 4강전에서의 치욕스러운 5-0 대패를 당한 것과 분명히 전력상 우위를 점하고 있던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를 상대로 탈락한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는 평이 중론이다. 특히 펩 시절 당한 대패를 시작으로 급기야 레알 마드리드에게는 상대전적이 뒤집히게 되었고, 이는 바이에른 팬들이 펩을 싫어하는 대표적인 이유 중 하나로 남게 되었다.
게다가 2019-20 시즌, 니코 코바치 감독이 성적 부진으로 인해 경질되고 감독 대행으로 온 한지 플릭 감독이 중도 부임하고 6관왕을 차지하게 되었다. 헌데 이때 각광을 받고 이후 독일 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한 플릭은 2022 FIFA 월드컵 카타르에서 조별리그 탈락이란 굴욕을 맛보게 되었고, 다시 치른 일본 대표팀과의 리벤지 매치에서 4:1로 패배하며 그는 123년 독일 대표팀 역사상 처음으로 경질을 당하게 된다. 국내 커뮤니티에서는 저런 무능한 감독도 바이에른 역사에 길이 남을 명장의 전술을 따라한 것만으로 중도 부임해서 트레블을 달성했는데, 펩은 3년 동안 자기 전술 색깔만 고집하다가 모든 것을 망쳐버렸다와 같은 식의 강도 높은 비판마저 있었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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펩은 그 점이 마음에 안 들었고 티아고 알칸타라가 부상을 당했을 때 둘의 관계가 극에 달했다. 그 당시 티아고의 에이전트이자 펩의 동생인 페레와 펩은 팀닥터랑 상의하지 않고 치료를 위해 바르셀로나로 보냈다. 이는 팀닥터에 대한 무시를 의미했고 티아고에게도 치명적이었다. 티아고는 몇 달 지나지 않아 같은 부위에 부상이 재발하였고 후에 펩이 당시 바르셀로나에서 받은 치료가 큰 실수였을 수도 있다고 얘기했다. 그리고 레버쿠젠과의 포칼 경기에서 메흐디 베나티아가 부상을 당하자 볼파르트를 항해 박수를 치면서 조롱하는 일도 있었다. 2014-15 챔피언스리그 8강 1차전 FC 포르투 원정에서 3:1로 털렸고[38] 루메니게가 펩한테 뭐라고 하자 펩은 타겟을 의료진으로 돌렸다. 그러자 열받은 볼파르트랑 메디컬 스탭들이 전부 나가버렸다. 그리고 나중에 유프 하인케스가 팀에 돌아왔을 때 다시 바이에른으로 복귀하였다.[39] 볼파르트와의 사건은 후에 펩의 바이에른 뮌헨에서의 커리어를 끝내고 맨시티에서 새로운 도전을 이어나갈때까지 계속 언론에 회자되는 사건이었다.
2.4.2. 새로운 변화
소위 레바뮌 시대의 개막을 알렸다고 봐도 무방한 2012-13 바이에른 뮌헨의 트레블이 의미가 있는 이유 중 하나는, 다른 비교대상인 레알 마드리드나 FC 바르셀로나와는 달리 리오넬 메시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와 같은 역대급 득점력을 가진 크랙이 없는 상태에서 팀 자체가 엄청난 공격력으로 성적을 거두었다는 것에 있다. 그리고 여기에는 분데스리가 역사상 최고의 윙어들이라고 볼 수 있는 로베리 라인[40]과 그 뒤를 받쳐주는 필립 람, 다비드 알라바 풀백 라인으로 대표되는 황금날개진이 한 몫했다. 이들은 빠른 스피드와 측면에서 상대를 썰어가며 수비진을 와해시키는 정교한 플레이를 통해 당시 게겐 프레싱 열풍이 불던 분데스리가의 중원을 붕괴시켰으며 챔피언스 리그에선 제대로 된 압박조차 하지 못하는 타 리그 팀들을 학살했다.그러나 과르디올라 체제의 바이에른은 이미 중원의 뎁스가 충분한 데도 필립 람과 알라바를 중원으로 올려 중원 장악력을 강화하는 선택을 했는데, 그 선수들이야 월드클래스급이라 중원에서도 역대급 활약을 보여주었지만[41] 문제는 그 두 선수의 측면 대체자들이 클래스에 한참 미치지 못하다는 것이다.
이것이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측면의 공격력은 아군 측면의 수비력까지 상승시키는 부가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절대적인 속도[42]를 가지고 있는 윙어진 상대로 상대 수비수가 할 수 있는 일은 속도에서 털리지 않도록 측면 라인을 내리는 것뿐이다. 거기에 람과 알라바 같은 월드클래스 풀백의 지원까지 기대된다면 상대 풀백은 오버래핑을 시도하는 것을 포기하게 된다. 허나 람과 알라바가 중앙으로 이동하며 측면 공격력이 반토막나자 더 이상 풀백의 오버래핑이 위험부담이 크지 않게 되었고, 로베리마저 부상으로 이탈하자 참사가 일어나게 된다. 가장 대표적인 경기들이 14/15 리가 볼프스부르크전 4:1 대패와 14/15 챔피언스리그 바르셀로나 원정 3:0 대패. 람과 알라바의 대체 풀백들은 수비력 조차 바이에른 기준으로 만족스럽지 못한 수준이고 결국 충분한 기량의 윙어를 상대로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며 측면 수비까지 무너지는 효과를 낳고 말았다. 애초에 바이에른이 라리가의 강팀들을 무너뜨릴 수 있던 원동력은 중원의 강력한 압박과 측면의 엄청난 기동력을 활용한 다양한 패턴의 공격이었는데, 람과 알라바를 중원으로 올린 것은 바이에른이 가진 가장 강력한 무기를 스스로 없애버린 꼴이었다. 애초에 예나 지금이나 바이에른은 압박과 측면 공격력을 주무기로 삼는 팀이지, 점유율을 앞세워서 느릿하게 상대를 제압하는 팀이 아니다.
높은 기대치를 충족하지 못하고 챔피언스리그에서 우승을 거듭 실패하자 급기야 국내 커뮤니티에서 과르디올라의 축구가 전술적으로 경직되었다는 비판까지 나오고 있는데, 이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다. 적어도 과르디올라가 시즌 내내 선보이는 시스템은 매우 다양한 편이다. 척 보면 매우 난해한 포메이션을 들고 오거나 선수의 위치를 갑자기 단발성으로 변경한다거나 등등. 문제는 전술의 전체적인 큰 틀은 항상 똑같은 점유율 축구이기 때문에 늘 똑같은 약점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경기마다 조금씩 변화를 줄 지는 몰라도 결국 라인을 끌어올리고 점유율을 지배하는 스타일은 그대로 유지하기 때문에 역습에 취약하다.
압도적인 우승이 가능한 리그에서는 이에 대한 단점이 티가 나지 않았으나 역시 챔피언스리그가 문제였다. 2013-14 시즌에 레알 마드리드를 상대로 매우 압도적인 점유율을 기록했음에도 역습으로 총합 5실점을 허용해버리고 2015-16 시즌에도 아틀레티고 마드리드에게 같은 방식으로 밀린 게 이를 아주 잘 보여주는 대목. 특히 과르디올라가 부임하기 직전 트레블을 이룩했던 바이에른은 모든 면에서 압도적인 능력을 자랑하는 팀이었기 때문에 이를 갈아버린 과르디올라에게 더 큰 비판이 쏟아졌다.
3. 맨체스터 시티 FC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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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한 내용은 맨체스터 시티 FC/과르디올라 체제 문서 참고하십시오. |
[1]
그가 바르셀로나에서 약 12년 동안이나 활약한 레전드 출신이었기 때문에 강력한 카리스마로 바르셀로나 선수들을 통제할 수 있었다. 비슷한 예로
반대편의
지네딘 지단이 있다.
[2]
데쿠와 호나우지뉴는 곧바로 팀에서 방출된 반면, 에투는 과르디올라 부임 첫 시즌만 같이 보내고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와 트레이드되어 나갔다. 원래 펩으로부터 주전 자리를 보장해 줄 수 없다는 통보를 받고 갈등했던 에투는 그래도 남아서 경쟁 해보겠다고 하면서 과르디올라와 면담을 진행했고 한 시즌 더 남을 수 있었다. 그리고 좋은 활약으로 챔피언스리그에서 우승했다. 본래 펩은 호나우지뉴가 잔류하기를 원했으나 호나우지뉴는 어느새 자신을 향한 주변의 험악해진 시선과 팀 내 갈등에 염증을 느끼며 자신이 바르사에 더 이상 남아있다가는 팀 전체 분위기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줄 것이라 여기고 펩에게 바르셀로나를 떠나겠다고 통보를 했다. 이에 펩은 호나우지뉴가 AC밀란으로 이적할수있게 도와주었다고 한다. 펩이 호나우지뉴의 잔류를 원했던 이유는 자신이 꾸며나갈 전술에 어울릴수 있는 선수였기 때문이다.
[3]
6개 대회를 전부 우승했다. 이 기록은 달성 당시에는 유일무이한 6관왕 기록이었으나 2019-20 시즌에
한지 플릭의
FC 바이에른 뮌헨도 이 기록을 달성했다.
[4]
흔히 바르셀로나를 대표하는 레전드가 누구냐고 할 땐 선수로서는 역대 최고의 실력을 겸비했으며 현대 바르셀로나의 상징과 같은 선수인
리오넬 메시가 넘사벽, 그 다음으로는 메시 이전 시대의 에이스였던
호나우지뉴, 수비진에는 최고의 리더십과 수비 실력까지 갖춘
카를레스 푸욜과 그 시대 최고의 라이트백이였던
다니 알베스와 샌터백인
제라르 피케 미드필더로서 최강자였던
차비 에르난데스,
안드레스 이니에스타,
세르히오 부스케츠 등이 따라붙고 감독으로서는 유스 시스템을 정비하고 토탈풋볼과 티키타카를 정착시켜 클럽의 기틀을 다진
요한 크루이프와 그 토탈풋볼이란 개념을 이상적으로 구현하고 완성시킨 과르디올라가 손꼽힌다. 그리고 과르디올라가 떠난 2010년대 중후반에 바르샤 공격에 핵심인
루이스 수아레스와
네이마르 주니오르를 언급하기도 한다.
[5]
오늘날 바르셀로나의 축구는
요한 크루이프 때부터 꾸준히 시도되고 있었다. 그것을 제대로 완성한 사람이 오늘날의 펩.
[6]
이견이 있을 수도 있으나, 이 시기의 FC 바르셀로나는 축구 역사를 통틀어 역사상 가장 강한 축구 팀으로 꼽힌다고 해도 무방하다. 스페인 국가대표팀 역시 바르사 선수들이 핵심 주축으로서 메이져대회 3연패를 기록하며 역대급 팀으로 평가받는다.
[7]
당시 아르헨티나 국가대표 감독이었던
디에고 마라도나와 비교해 보면 차이가 크다고 볼 수 있다. 마라도나는 리오넬 메시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해서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
[8]
치그린스키의 수비 기량 자체는 좋았으나, 바르셀로나의 팀 스타일과 맞지 않았다는 게 문제였다.
[9]
파브레가스는 유스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사실 바르셀로나라는 팀에 적응을 잘 하지 못하였다. 그를 오랜만에 본 코치가 볼터치가 왜 이리 나빠졌냐며 놀라기도 했다.
[10]
이 시기 바르셀로나는 애초에 사생활까지 강하게 통제할 수 있는 감독을 원하고 있었다고 한다. 참고로 펩 다음의 유력 후보는 보드진에게 강하게 감독직을 원한다고 어필하던
주제 무리뉴였다고 한다.
[11]
즐라탄이 자서전에서 디스한 바에 따르면 나머지 바르셀로나 선수들은 이런 시스템과 펩의 성향을 아주 익숙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았고 팀 전체가 학교 분위기였다고 한다. 당시 팀의 주축을 이루고 있던 라마시아 출신들의 경우 유스 시절부터 펩과 그의 수석 코치 빌라노바의 가르침을 받아왔으며 특히
리오넬 메시는 청소년기부터 잠자는 시간에 식단까지 다 짜주고 구단에서 키우는 로봇같았다고 할 정도로 빡센 관리를 받으며 자라왔으니 익숙했을 만도 하다. 다만 바르셀로나 측에서 제작한 다큐에 출연한 기자들의 말에 따르면 펩의 집권기 말년에는 이들조차도 힘들어서 나가 떨어질 정도였다고 한다.
[12]
마냥 선수빨이라기엔 펩 등장 이전 직전 시즌 레이카르트 시절은 애초에 무관이었고 펩 시대 이후의 바르셀로나도 챔피언스 리그를 우승한건 엔리케 단 한명 뿐이다.
[13]
사실 역대 최강의 팀 소리를 듣는 바르사 전체의 압도적인 포스로 인해 감독인 과르디올라는 물론이고 바르셀로나 선수들 역시 잘나가는 것은 항상 'xx빨'이라며 까이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메시가 잘하는 것은 샤비, 이니에스타빨이며 샤비가 잘하는 것은 메시 혹은 전술빨, 과르디올라는 선수빨이라는 식. 그런데 이는 달리 말하면 그만큼 당시 바르셀로나 선수들의 조직력이 탄탄했다는 이야기로도 볼 수 있다.
[14]
지금은 당대 최고를 넘어 역대급 미드필더로 거론되는
차비 에르난데스와
안드레스 이니에스타도 사실 과르디올라 부임 이전까지는 확실한 월드클래스 미드필더로 평가받지 못했다. 실제로 차비는 과르디올라가 정식 감독으로 데뷔하기 직전에 개최된
유로 2008, 이니에스타는 과르디올라가 정식 감독으로 데뷔하여
트레블을 달성했던 2008-09 시즌을 기점으로 해서 월드클래스 미드필더로 평가받게 되었다.
[15]
단, 구스타보는 단 한경기도 쓰지 않았는데 이미 구스타보가 스콜라리 감독의 조언에 따라 팀을 떠날 마음을 굳혔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16]
전반 7분만에
페르난도 토레스에게 선제골을 먹혔다가
프랑크 리베리의 환상적인 중거리포로 동점을 만들었다. 연장 시작하자마자
에당 아자르에게 실점했으나 경기 종료 10초전인 연장후반121분에
하비 마르티네즈가 극적인 동점골을 넣으며 원점을 만들었다. 승부차기에서는
마누엘 노이어가 첼시의 마지막 키커
로멜루 루카쿠의 슛을 선방하며 바이에른이 우승했다.
[17]
참고로 맨시티는 2013-14 시즌 11월까지 바이에른전을 빼면 단 한 경기도 홈에서 지지 않았다.
[18]
1974년 서독월드컵에서 독일 우승 직후 바이에른은 다음 시즌에서 챔스는 우승했지만 리그는 10위까지 쳐지는 등 유례없는 극심한 부진을 겪었고, 여타 월드컵 직후 시즌들도 비슷한 양상이었다. 2006 독일월드컵 직후에도 06-07 시즌은
펠릭스 마가트가 그야말로 팀을 말아먹으며 리그 11위까지 곤두박질 치게 만들고 경질되어 UEFA컵에 나가게 됐으며, 2010 남아공월드컵 바로 다음 10/11시즌도 월드컵때문에 부상당한
아르연 로번이 전반기를 통째로 쉬어야했고,
루이 판 할이 지나치게 모험적인 유망주 기용과
토탈 풋볼을 고집하다가 챔스티켓도 잃을뻔하고 결국 무관에 그치고 반할도 경질됐다. 그나마 02/03시즌은 월드컵 직후시즌임에도 더블을 했는데, 당시 독일 베스트11에 바이에른선수라고는
올리버 칸과
카르스텐 얀커 정도밖에 없었고 나머지는 대부분 2001-02 레버쿠젠의 콩트레블 멤버거나 유망주
미로슬라프 클로제,
토어스텐 프링스 등으로 채워졌다.
[19]
이유는 예상했겠지만,
바이에른 뮌헨의 주전급으로 뛰는 선수들 대부분이 자국 국대로 뛰는 데다, 특히 독일은 메이저대회만 나가면 기본 8강은 찍으니 체력소모도 많고 부상위험도 크다.
[20]
대표적인 포지션 변환으로 피에르-에밀 호이비에르의 풀백 기용, 알라바의 중앙미드필더 기용 등으로 포지션 변화를 주고 있다.
[21]
이 경기에서 메시의 2번째 골 장면에서
제롬 보아텡은 페이크 모션에 속아 자빠지면서 해외에서 합성요소가 되었다.
[22]
특히 부상으로 인한 전력누수에 대해서 운이 없다고 쉴드를 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러한 부상으로 인한 전력 누수는 펩의 로테이션을 안돌리는 강행군에도 분명 문제가 있었다. 특히 바르사의 감독인
루이스 엔리케가 리그에서 패하는 한이 있더라도 주력 선수들을 꾸준히 로테이션으로 관리하면서 챔스 결승까지 베스트 11을 최상의 상태로 관리한 것에 비교하면 매년 후반기에 부상병동으로 전력이 약화 되는 펩의 바이에른은 낙제점을 받을 수밖에 없다.
[23]
바르샤 전 부회장이자 현재 맨시티 CEO인
페란 소리아노, 바르샤 전 기술이사이자 현재 맨시티 기술이사인
치키 베히리스타인, 바르샤 전 수석 스카우트이자 현재 맨시티 수석 스카우트인 보얀 크르키치 시니어. 치키는 특히 펩을 바르샤 1군 감독으로 키워준 당사자라 펩이 자기 인생에서 가장 특별한 사람이라고 했을 정도. 만수르 구단주는 애시당초 펩을 위해 이 보드진들을 임명했다.
[24]
맨시티는 무려 지난 3년간 펩 한 명 모시기 위해 유스 스텝들을 포함해서 스카우트 등 전부 바르샤 출신에 펩과 친분있는 인물들로 구성한 데다 링크도 이미 펩 재계약 논의가 시작된 여름부터 나기 시작했다.
[25]
실제로 맨체스터 시티의 특급 유망주, 파블로 마페오가 이 구단으로 현재 임대 가있다. 맨시티의 실력있는 유망주들은 거의 이 구단으로 보낼 플랜.
[26]
맨시티 자체 팬덤이 국내에선 비교적 작은 편이다보니 이런 자세한 소식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27]
올 시즌 뮐러는 키커 평점 기준으로 분데스 전체에서도 2.66점으로 1위를 달리고 있다. 물론 2012-13 시즌의
리베리나 2014-15 시즌 전반기의
로번이 보여준 2점 초반대의 리그를 지배하는 독보적인 수준은 아니라고 할 것이나, 중추적인 선수로 볼 것임은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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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알라바는
보아텡,
하비 마르티네스,
바트슈투버 등의 부상으로 센터백 라인이 붕괴된 상황에서
키미히와 함께 센터백 라인을 구성하면서 위기를 이겨내는데 큰 역할을 했다. 그러나
베나티아가 센터백으로 기용될 수 있는 상황에서 굳이 리그에서 별로 좋은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는 베르나트를 선발로 기용하면서까지 알라바를 센터백으로 돌렸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의문이 제기되었다. 특히나 베르나트는 이번 경기 키커지 기준 평점 5점으로 최악의 활약을 보여준 상황이다.
[29]
하인케스의 리그 우승 1회를 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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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유명한 8:2 대승, 바르사 팬들에겐 일명 가르마 참사라고 불리는 그 경기이다.
[31]
게다가 플릭 감독은 트레블 스쿼드를 그대로 물려받았던 펩과 달리 코바치 감독이 망쳐놓은 얇은 스쿼드를 물려받으면서 시즌 도중 감독 대행으로 시작했다.
[32]
맨시티에 부임한 기간 동안에 수상 등의 업적과 더불어 전술적 가치와 영향력 또한 완벽히 인정받음에 따라 비로소 역대 최고 레벨의 감독으로 평가받게 되었다. 바이에른 뮌헨 시절까지는 한때 역대 최고의 반열에 놓일 만한 전성기를 이룩한 감독으로 평가받았었고 전술 능력까지는 인정받았었으나 뮌헨 시절 챔피언스 리그에서의 실패로 인해 평가가 갈렸었다.
[33]
다만 코바치는 리그우승은 압도적이었던 전 감독들에 비해 전반기엔 7위까지 추락한적도 있었고 후반기에는 도르트문트가 DTD를 시전하지 않았더라면 리그 우승은 도르트문트에게 내줄뻔 했다.
[34]
당장 펩이 부임하기 이전에 감독이었던
유프 하인케스가 각각 2011-12시즌과 2012-13 시즌에 챔피언스리그 결승에 올라갔을 때
준결승전
상대가 누구였는지 생각해보자.
[35]
4강 1차전에서는 또 명장병이 도졌는지 쓰리백을 사용하였다가 바르셀로나에게 가패당하자 전반전이 끝나기도 전에 황급히 포백으로 전환하는 모습을 보였고, 결국 유효슈팅을 하나도 기록하지 못한체 떡실신 당하고 말았다.
[36]
이마저도 아래에 언급할 볼파르트와의 갈등 문제가 언급되면서 자승자박이라는 말을 듣는다.
[37]
펩 부임 당시 보드진이었던
울리 회네스,
카를하인츠 루메니게가 무려 현역선수로 뛰고 있을때도 바이에른의 팀닥터로 일하고 있었다. 40년간 바이에른 팀닥터 자리를 지켜온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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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홈에서 펼쳐진 2차전에서 6:1 대승을 거두며 4강에 진출하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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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개인병원 축구계 방문자들의 명단으로는 클린스만, 훔멜스, 호나우두, 제라드, 키엘리니, 오언, 호날두, 메시, 메르테사커, 발락, 퍼디난드, 모드리치 등이 있다. 축구 외적으로 방문자들은 코비 브라이언트, 우사인 볼트, 보노 이런 사람들도 따로 찾아갈 정도로 스포츠의학계 최고의 명의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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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정작 로번은 후반기 말에 들어서면서 부터 각성했지 그 이전엔 로테이션 자원에 불과했다. 펩 이전 바이에른이 그만큼이나 스쿼드가 두텁고, 어느 한 명에 치우치지 않은 다양한 공격루트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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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펩보이들은 이 둘의 컨버전을 펩의 혁신적인 아이디어처럼 주장하지만 사실 풀백과 중원 포지션 간의 컨버전은 매우 흔하다. 바이에른의 레전드
클라우스 아우겐탈러부터 시작해서
요주아 키미히,
벤자민 헨리치,
라스 벤더,
요나스 헥토르,
세르지 로베르토,
제바스티안 루디, 심지어는
박주호까지 매우 흔하다. 게다가 알라바는 애초에 데뷔를 중원으로 했던 선수다. 애초에 활동량이 많아야 하고 기동력이 중요한 풀백의 특성은 중원에서도 유효하기 때문이며, 반대의 경우에도 중앙 미드필더에게 요구하는 활동량과 패스, 드리블 능력이 풀백에게도 핵심 능력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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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 속도로는 상대할 가능성이 있는 모든 선수를 압도한다는 의미. 실제로 로번은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시속 37km라는 안드로메다급 순속을 보여준 바 있다.